파계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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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2화
파계 1권 - 12화
웅성웅성.
‘뭐야?’
아직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오칠의 머리는 귓전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소음 때문에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바로 눈을 뜨고 일어나지는 않았다. 소음이건 뭐건 간에 그냥 이대로 아주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의 소망과는 달리 오칠은 곧바로 일어나야 했다. 행자승들이 아닌, 평소 승방에 잘 오지 않는 학승들이 떼거지로 들어와 직접 오칠의 몸을 흔들어 깨웠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신지요?”
막 깨어났다는 듯 일어난 오칠은 눈을 비비며 자신을 깨운 담려 승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정재소 행자승이 손을 잡고서 밖으로 끌어냈다.
“왜요?”
잔뜩 심각해진, 왠진 두려움과 슬픔이 배어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행자승이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구정이 죽었어.”
“예?”
“조금 뒤에 본사에서 사람들이 와서 정확한 사인을 알아보겠지만, 아무래도 살해당한 것 같아.”
“살해당했다고요?”
“그래. 죽은 구정을 내가 처음 발견했는데, 목이 부러져 있었거든.”
오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물론 구정의 죽음이 슬퍼서는 아니었다. 구정이 왜? 누구에게 죽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이 변한 것이다.
‘그 복면인이 다시 와서 죽였구나!’
분명 금패를 찾으러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금패를 주워들고는, 처음의 마음을 바꾸고 오칠 자신을 죽이기로 했고, 구정을 같은 사람이라 착각하여 죽였을 것이다.
‘이거 미안해지는데.’
복면인과 마주칠 당시에 오칠은, 구정과 거의 비견될 정도로 뚱뚱해져 있었고, 피부까지 까무잡잡해서 복면인은 크게 차이점을 찾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어찌 보면 오칠에겐 매우 운이 좋은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아무 죄 없는 구정이 죽었다는 것에 오칠은 아주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찌 처신을 해야 하나,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놈이 또 오면 어찌하지?’
복면인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마음 놓고 있는다는 것도 불안한 일이었다.
‘도끼파도 신경 쓰이는데, 이제는 정체도 모르는 복면인이라니!’
오칠은 뭔가 안전하게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본사에서 중들이 오고, 구정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오칠을 비롯한 행자승들 모두에게 질문을 하는 중에도, 쭉 그에 대한 해결방법을 고민했다.
‘그거밖에 다른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모든 일이 대충 마무리되고, 본사의 중들이 돌아가면서 한결 차분해진 외학전을 나와 북쪽으로 향했다.
암자가 있는 북쪽으로 말이다.
* * *
오칠은 외학전과 암자를 벽처럼 가르고 있는 숲으로 들어가 한 식경을 걸은 끝에 암자에 도착했다.
“역시 없군.”
몇 번이나 암자에 왔었지만, 단 한 번도 집에 있는 노승을 본 적이 없었다.
노승은 매번 숲 속 공터나, 얼어 있는 작은 샘터, 혹은 낭떠러지 같은 곳에 있어서 늘 찾아다니게 만들었던 것이다.
‘참으로 활달한 분이라니까.’
오칠은 노승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각 정도를 돌아다닌 끝에, 얼은 샘터 위에 앉아서 참선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노승을 발견했다.
“…….”
노승은 샘터 근처까지 다가갔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해서 오칠은 잠시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노승이 깊은 참선에 들은 것 같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중들이 참선을 할 때엔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참선이란, 고요히 앉아서 선(禪)의 진리를 구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몇 시진 동안이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서 진리만을 찾을 수 있을까?
머리란 굴리면 굴릴수록 잡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과거의 어느 시절, 미래의 어느 때, 내가 원하던 것은 뭔가. 돈, 여자, 권력, 일상적인 생활의 여유로움.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할 여유도 없어 떠오르지 않는 것들이 고요히 앉아 머리만 굴리게 되면 무차별적으로 머릿속을 헤집기 마련인 것이다.
‘하긴 중이 괜히 중이겠어? 그러한 일이 가능하니 중이겠지. 더구나 노스님처럼 수십 년을 하다보면 생활 자체가 참선이고, 일념(一念:전심(專心)으로 염불함)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오칠은 그렇게 궁금증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때,
드르렁!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오칠의 시선이 얼음 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노승의 등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꼿꼿이 세워진 허리와 달리, 머리가 앞쪽으로 살짝 숙여져 있는 듯하지 않은가.
드르렁!
그리고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로 오칠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고 있잖아!’
조금 전까지 노승을 향해 차곡차곡 쌓여가던 경외심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저런 노인네가 무공의 고수일까?’
아직도 명확해지지 않은 그 의문을 떠올리며 오칠은 노승에게로 다가갔다.
와지직! 풍덩!
“……!”
얼어 있는 샘터에 발을 디딘 순간, 오칠의 발은 얼음을 깨고 차가운 물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갔다.
‘어라? 이거 왜 이리 약해!’
오칠의 시선이 얼은 샘터의 중앙에 앉아 있는 노승을 향했다.
그리고 물에 빠진 자신의 다리를 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의문을 느끼는데, 살짝 숙여졌던 노승의 고개가 들려졌다.
“너 거기서 뭐 하냐?”
“예? 그냥 노스님께 가던 중이었습니다.”
“멍청한 녀석. 그쪽은 얼음이 얇으니 이 앞쪽으로 왔어야지.”
‘이런!’
그런 것이었다.
노승은 단단히 얼어 있는 앞쪽을 통해 중앙에 이른 것이다.
다시 한 번 노승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한데, 그렇게 말을 한 노승이 일어서더니만, 오칠의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칠은 어리둥절했지만, 곧 노승의 뒤를 따라 뛰어갔다.
“공양은 아까 딴 녀석이 가져왔는데, 넌 뭐 하러 왔냐?”
“그것이…….”
오칠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노승의 앞으로 풀쩍 뛰어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노스님, 받아주십시오!”
“응? 뭘 받아? 먹을 거라도 가져왔어?”
“그것이 아니오라, 절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제자? 무슨 제자?”
“부처를 알고 싶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다. 세상에 미혹되는 저의 연약한 마음을 다스려주십시오!”
오칠은 엎드렸던 고개를 들어 노승을 올려다보았다.
노승은 그런 오칠을 나이에 비해 너무나 맑고 투명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오칠은 왠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것 같아서 다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끊어라.”
엎드린 오칠의 귀에 노승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뭘 끊으란 말인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
“미혹하려는 것이 있다면, 안으로든 밖으로든 만나는 것을 모두 끊어라.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거든 조사를, 아라한을 만나거든 아라한을, 부모를 만나거든 부모를 죽여라. 그것이 깨달음의 길이요, 해탈의 길이니라.”
오칠은 멍하니 노승을 쳐다봤다.
노승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 죽이라니. 그럼 눈앞에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죽이란 말인가?’
노승의 말이 그런 뜻일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 뜻을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오칠은 물어보았다.
“소인은 노스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부디 소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알려주십시오.”
“나도 몰라.”
“예?”
“당나라 때의 고승인 임제의현이 한 말을 네게 말해준 것일 뿐이야.”
“…….”
오칠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하나, 생각한다고 풀릴 상황이 아닌지라 다시 한 번 노승에게 간청했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노승은 문득 눈살을 찌푸리더니 오칠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놈에게서 왜 갑자기 사기가 느껴지누.’
겉으로 드러난 기운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승은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나쁜 기운이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기운이라 더욱 괴이했다.
‘별수 없군.’
사기란 선천적일 수 없는 것.
마음에서, 혹은 환경에서 생겨나는 나쁜 기운이 조금씩 몸에 쌓여 사람의 인성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그래서 노승은 오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짐을 싸서 암자로 와라.”
“감사합니다, 노스님! 아니, 사부님!”
“사부는 무슨! 이전처럼 불러라.”
“예, 노스님! 명심하겠습니다!”
오칠은 노승의 제자가 되려면 뭔가 더 극적이고, 완성도 있는 연기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한데, 너무도 간단하고, 쉽게 허락이 떨어져서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었으면 그뿐이지.
“곧 돌아오겠습니다, 노스님.”
오칠은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외학전으로 향했다.
전주에게도 말을 해야 하고, 서둘러 외학전에서 나와 안전한 암자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8장. 십팔나한공(十八羅漢功)
“사바가 무어냐?”
오두막 문가에 기대앉아, 졸린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던 노승이 물었다.
하지만 오칠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손을 앞으로 내밀고, 다리는 어깨 넓이의 두 배로 벌린 채 반쯤 구부린 마보(馬步)의 자세로 한 시진을 넘게 있었더니, 말 할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실상 힘은 별로 들지 않고, 짜증이 나서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사바는 원래 범어인 사하에서 비롯됐다. 사하는 참는다는 뜻이지. 자, 그럼 사바의 의미는 무엇이겠냐?”
오칠은 대답하기 싫었다.
이 자세로 있는 것만 해도 지겹고, 짜증나고, 울화통 터질 일인데, 사바고 뭐고 간에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노승이 어서 대답하라는 듯 빤히 쳐다보는데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참는다는 뜻인 거 같습니다.”
달리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 그저 노승이 해준 말을 아주 조금만 바꿔서 말한 것이었다.
한데, 그 대답에 노승은 무릎을 치며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사바란 그런 것이다.”
“…….”
“인생은 고통이다. 아무리 즐거워도 곧이어 고통이 찾아온다. 생이 있으면 죽음이 오는 것과 같지. 또한 내가 남을 배려하는 노력이 큰 만큼, 남이 나에게 끼치는 괴로움을 참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더욱 큰 노력으로 참아야 하는 것이 사바, 즉 인생이다.”
“네… 그렇군요……. 근데 노스님, 이제 이 마보는 그만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왜? 힘드냐?”
별로요. 하지만 이제 그만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참아. 내가 방금 말하지 않더냐. 인생은 사바이기에 참아야 한다고. 인고(괴로움을 참음)의 참뜻을 알았으니, 그깟 마보 정도야 문제될 것이 없지.”
“하지만…….”
오칠이 원한 것은 이런 마보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무공이 아닌 거 같으냐?”
“소인의 좁은 생각으로는 그렇게 여겨집니다.”
“어허!”
노승은 여전히 눈을 게슴츠레하고 뜨고 있는 상태로 노한 외침을 터트렸다.
당연하게도 오칠은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절대 움츠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노승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취하는 연기일 뿐이다.
“그 어느 것이든 기초가 튼실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 진리는 늘 평범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지!”
노승의 말에 오칠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역시 내심으로는 전혀 수긍할 수 없었다.
‘난 진리를 찾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강한 무공을 익히고 싶단 말입니다!’
오칠은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열흘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오칠은 암자로 거처를 옮기고, 이틀간 노승을 관찰하면서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