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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1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11화

파계 1권 - 11화

 

 

 

 

 

여기가 저승인가?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죽은 자를 데리러온다는 사자니, 혹은 죽으면 건너게 된다는 어느 어느 강이라느니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둠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마치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은 공허함과 답답함밖에 느낄 수 없는 어둠이었다.

 

아, 이거 왠지 익숙한 느낌인걸!

 

문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많이 본 것 같은, 많이 느낀 적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깨알같이 작은 두 개의 붉은빛을 보며 깨달았다.

 

악몽!

 

많이 보고, 느꼈다는 기분은 요 며칠간 꾸었던 악몽과 지금의 어둠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가장 최근에 꾸었던 악몽이 지금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기 때문에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악몽을 꾸는 걸까?

 

오칠은 의문이 들었다. 분명 자신은 불에 타올라 죽었는데, 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죽은 자도 꿈을 꾸나?

 

웃기는 생각이었다. 그럼 자신은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설마 진짜로 안 죽었나?

 

하지만 분명히 죽었는데?

 

불길에 타올라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 정신을 잃었으니, 그건 죽었다는 뜻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죽지 않은 것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저 멀리 있던, 깨알같이 작은 두 개의 불빛이 점점 커져갔다.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뜻이었다. 이전의 악몽과는 달리 부르지도 않는데 스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도망갈까?

 

싫었다.

 

오칠은 자신이 죽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절대 도망치기는 싫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이고 뭐고 간에 싫었다.

 

저 붉은 두 개의 빛은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위험성을 강하게 분출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싫었다. 죽었다,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인지 죽음에 대해 여유로워졌다고 할까?

 

아니, 만약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이라면, 저 붉은빛이 자신을 삼켜서라도 죽여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

 

화아~

 

두 개의 붉은빛은 바로 코앞에서 전진을 멈췄다.

 

그리고 하나는 뒤로, 하나는 그대로 앞에 서서 오칠의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너냐?]

 

앞에 있는 붉은빛 하나가 순간 파란색으로 변하며 말을 했다.

 

오칠이 뒤를 돌아보니 다른 붉은빛은 여전히 붉은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오칠은 그렇게 생각했고, 입 밖으로 꺼내놓기도 전에 파란 불빛이 대답을 했다.

 

[네가 계승자냐고 묻는 것이다.]

 

계승자?

 

양피지 첫 말미에 그런 비슷한 말이 있었다.

 

계승서.

 

역시 그 말뜻이 심상치 않더니만, 파란 불빛이 그와 관련한 말을 꺼내놓은 것이다. 다만 불빛이 말을 하고 있다는, 그것도 매우 건방진 말투로 따져 묻듯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계승자가 뭔데?]

 

알지를 못하니 물을 수밖에.

 

그리고 파란 불빛은 의문을 표하지도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광명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암흑의 신 아리만의 의지를 받드는 교의 수장을 말하는 것이다.]

 

교? 무슨 교?

 

[그 계승자가 되면 뭐가 좋냐?]

 

문득 그게 궁금했다.

 

[구세주께서 세상을 구원하고, 스펜타 마이뉴가 앙그라 마이뉴를 굴복시켜 아후라 마즈다의 영원한 왕국이 세워질 그날까지 신도들을 이끌어갈 영광을 얻을 것이다.]

 

쳇, 그게 뭐야!

 

오칠은 그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갖기도 싫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말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또한 교를 수호하는 백팔 가문의 무공과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한 가지의 호교 무공을 전수받아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

 

오~ 천하제일인!

 

이 황당하고, 괴이한 상황에 기분이 별로였던 오칠은 갑자기 기분이 매우 유쾌해졌다.

 

[나 계승자 맞아.]

 

거짓말이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연이 있기 때문이고, 아직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네가 진정 교의 계승자인가?]

 

[맞다니까!]

 

찔리는 게 있어서인지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원래 어디서든 옭고 그름과 상관없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이었다.

 

[좋다. 그럼 이제부터 칠 대 계승자의 자격으로 팔 대 계승자의 시험을 주관한다.]

 

시험? 이건 또 뭔 소리야?

 

그리고 파란 불빛이 칠 대 계승자라니?

 

오칠은 어리둥절했지만, 파란 불빛은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아후라 마즈다, 혹은 아리만으로 가는 길을 너의 의지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너의 삶과 죽음을 가르고, 세상의 어둠과 빛을 구분 지으리라!]

 

도대체 뭔 소리야?

 

오칠은 크게 소리쳐 묻고 싶었지만, 어느새 파란 불빛은 멀어지고 있었다.

 

[크크크크…….]

 

그리고 시종 조용하게 있던 붉은빛은, 듣기 거북한 괴소를 흘리며 파란 불빛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이봐! 이봐! 계승자가 되면 준다는 무공은 왜 안 주고 가느냔 말이다!]

 

오칠은 계속 소리치며 빛들을 따라 뛰어갔다. 한데, 아무리 달려도 쫓아갈 수가 없었다. 물속을 뛰어가는 것처럼 뛰는 것도 힘들고, 거리도 줄어들지 않고, 빛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가 그 존재감을 상실했다.

 

그리고 오칠은 다시 의식을 잃었다. 꿈도 없는, 어둠도 없는, 빛도 없는, 그런 공허함 속으로 의식이 사라져갔다.

 

 

 

 

 

제7장. 노승의 제자가 되다

 

 

 

 

 

‘감히!’

 

흑의복면인의 신형이 여섯 장이 넘는 높다란 나무의 가지 끝을 밟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품에 넣고 다니던 신분패가 사라지다니.

 

어떻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 돼지 중놈이!’

 

아마도 부딪치는 와중에 바닥으로 떨어졌겠지.

 

복면인은 자신처럼 막강한 무공과 예민하기 그지없는 감각을 가진 초고수의 품에서, 오칠이 배수짓을 하여 금패를 꺼내갔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어떤 이유에서든 복면인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든 단번에 목을 분질러버릴 정도의 살벌한 분노를 말이다.

 

휘휙―

 

낭창거리는 가지 끝을 밟고 서너 장씩 날아오르던 복면인은 순식간에 외학전에 당도했다.

 

그리고 오칠과 부딪쳤던, 분명 오칠을 점혈시켜두었던 곳에 당도하고는 당혹해했다.

 

‘어디 있지?’

 

그 돼지처럼 뚱뚱한 중놈은 이곳에 점혈시켰던 그대로 석상처럼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없었다.

 

복면인은 다시 돌아오면서 중놈이 그대로 있으리란 상황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당혹스러움이 더욱 컸다. 하지만 곧 그 중이 사라질 곳이란 한정되어 있다는 걸 깨닫고 건물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물에 그놈이 있었다.

 

여러 다른 중놈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었지만, 그 빵빵한 얼굴과 몸뚱이,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 때문에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복면인은 매우 은밀한 음직임으로 중놈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지?’

 

곧바로 죽여 버리려다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자고 있는 놈을 깨웠다가, 벙어리라 어차피 말도 못할 테지만 입을 뻥긋거리기도 전에 점혈시켰다. 그리고 우선 중놈이 품 안에 꼭꼭 숨기고 있는 금패를 찾은 뒤에 가만히 지켜보았다.

 

“움직여봐라.”

 

아무리 기다려도 움직일 기미가 없어, 귓속말로 해야 할 일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아, 약간의 협박과 조언을 해주어야 했다.

 

“점혈을 풀고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에 죽여 버리겠다.”

 

다시 지켜보았다.

 

일각이 지나고, 한 식경이 지났다. 하지만 중놈은 눈동자만 좌우로 흔들기만 할 뿐, 몸을 움직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짜증나는군.’

 

밖에서는 새벽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래서 복면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놈을 데려가서 어떻게 한 건지 알아볼까?’

 

좋은 생각이었지만,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복면인은 중놈의 목을 움켜잡아 그냥 부러트려버렸다. 가끔 괴이한 신체를 가진 놈이 있으려니, 하고 그냥 잊기로 한 것이다.

 

‘서둘러 돌아가야겠다.’

 

교 몰래 나온 것이고, 그래서 복면인이 자리를 비운 걸 안다면, 그것도 외부로 나온 것을 안다면 대사형을 지지하는 고지식한 늙은이들이 난리를 치며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물론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어딜 갔었는지, 왜 나갔었는지에 대해서 다른 이들이 알게 되면, 또 따지고 들게 된다면 대답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문제일 뿐이었다.

 

흭! 얼어붙다

 

복면인은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구정으로부터 돌아서서,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가 그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아주 빠르고 높이 하늘을 날아서 말이다.

 

 

 

 

 

* * *

 

 

 

 

 

“…….”

 

오칠은 눈을 떴다.

 

아직 밖은 어슴푸레하고, 모두가 일어날 시간은 아니었다.

 

“어?”

 

몸을 일으키면서 오칠은 두 가지 때문에 깜짝 놀랐다.

 

우선 자신의 몸이 알몸이라는 것이었다. 바닥에 푸석한 잿가루가 날리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알몸이 된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원래대로 돌아왔네!”

 

그게 두 번째로 놀랄 일이었다.

 

어젯밤만 해도 빵빵하게 부풀어서 공처럼, 돼지처럼 보이던 몸이 원래의 잘빠진 몸매로 돌아온 것이다. 거기다 까무잡잡했던 피부도 원래의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되어 있었다.

 

더구나 얼굴을 비벼보니, 도끼파로부터 도망치던 중에 생겼던, 칼잡이 놈에게 베었던 상처까지 감쪽같이 사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귀신에 홀린 기분이군.”

 

무엇 하나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괴이한 것은, 어젯밤의 꿈이었다.

 

“그래, 꿈이었어.”

 

사라져버린, 아무래도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잿가루의 일부가 되었을 양피지를 생각한다면, 꿈이라고 규정짓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지만, 오칠은 그냥 꿈이라고 결론지어버렸다.

 

그게 마음 편하니까 말이다.

 

‘얼른 방으로 가서 옷이나 챙겨 입어야겠다.’

 

행자복은 고작 두 벌이었고, 어젯밤까지 입었던 것이 겨울용이었으니, 이제 남은 거라곤 얇디얇은 여름용 행자복뿐이었다.

 

그러나 알몸으로 있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오칠은 서둘러 잿가루를 치우고, 서각을 나가 승방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이상하게 안 춥네.’

 

어젯밤 뚱뚱한 몸으로 깨어났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추위를 거의 느끼지 않는 자신의 몸이 오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고, 야숙에도 익숙해져서 추위 정도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내심이라는 걸로는 설명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귀한 것은 귀한 것들이었나 보다.’

 

이러한 현상이 왜 생긴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역시 영초, 영물에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에는 잘못 먹은 것 같다고 후회했지만, 지금은 결론적으로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그냥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사실 추위에 강해진 것 정도로 고민할 이유가 무엇인가.

 

만약 불로불사를 얻었다든지, 엄청난 내공을 얻게 되었다든지 한다면 모를까, 그 외의 것들은 그냥 기뻐하는 정도에 만족하면 그뿐인 것이다.

 

끼익.

 

승방의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간 오칠은 서둘러 옷을 걸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졸리네.’

 

오칠은 갑자기 느긋해지는 마음에 졸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서각에서 잤었다는 것에 개의치 않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