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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9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9화

파계 1권 - 9화

 

 

 

 

 

겨울이라 짐승을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몇 가지 습성만 안다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는 동물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짐승 중에 사냥하기 용이한 놈이 바로 산토끼였다.

 

산토끼는 각종 초근목피를 먹고, 특히 칡의 순과 잎을 좋아한다.

 

더구나 같은 길만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발자국만 발견해도 거의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칡이 자랄 만한 곳 주변으로 찾기 시작한 지 한 식경도 안 되어 하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리고 곧 아주 먹기 적당한 몸집의 회색빛 토끼를 발견했다.

 

‘조심히.’

 

큰 귀만큼이나 청각이 엄청 발달한 토끼에게 접근하는 것은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

 

오칠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기 위해 느릿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하나, 맨 땅도 아니고, 수북하게 쌓인, 그것도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 겉면이 딱딱해진 눈 위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뽀드득!

 

‘이런!’

 

코앞까지 접근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가 되면 칼을 던져 맞추려고 했었는데, 토끼의 반응이 너무 빨랐다.

 

그 큰 귀를 쫑긋 세우자마자 오칠이 있는 곳의 반대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란 것은 오칠의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게 빨랐다.

 

‘눈 위라서!’

 

제법 사냥 경험이 있는 오칠이었지만, 겨울 사냥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눈 위에서 토끼가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 몰랐던 오칠은, 헉헉거리며 그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푹푹. 푹푹푹…….

 

“헉, 헉, 헉, 헉!”

 

주변에 울리는 소리라고는 수북하게 쌓인 눈 속으로 쑥쑥 들어가는 오칠의 발소리와 거친 헐떡임뿐이었다.

 

산토끼와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이대로라면 분명 놓치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오칠은 포기하지 않았다. 토끼도 곧 지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예상처럼 토끼와의 간격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데, 순간 오른 발끝에 전해지는 감각이 지금까지 밟아오던 것과는 달랐다.

 

푸푹.

 

“악!”

 

와르르르.

 

먼저 오른발이 아래로 푹 꺼지고, 뒤이어 몸이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눈에 덮인 한 장 정도의 땅바닥이 지붕 꺼지듯 아래로 침몰하며 오칠을 뒤덮었다.

 

“…….”

 

이렇게 허망할 수가.

 

토끼를 다잡아놓고 놓쳐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온몸이 눈과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몸이 젖으면서 냉기가 온몸을 몰아쳐대고, 땅바닥에 문댄 얼굴은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더 열 받는 것은 아침을 거른 배가 허기를 호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 배고파. 어?”

 

다시 토끼를 찾아야 한다는, 그리고 다시 열나게 뛰어야 한다는 상황에 깊은 한탄을 터트리며 일어나던 오칠은, 뭔가 따듯하고 향긋한 냄새를 맡고는 의아했다.

 

그리고 바로 코앞에 보이는, 이파리까지 붉은색을 띠고 있는 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겨울에 꽃이라니!

 

“산삼?”

 

가만 보니 아니었다.

 

산삼은 푸른 잎사귀에 열매만 빨간색이라고 들었다.

 

“그럼 이건 뭐지?”

 

아무리 보아도 심상치 않은 식물이었다.

 

이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 것만으로도 분명 영초라고 불릴 식물일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영초의 주변은 기가 쇠하여 이곳처럼 땅이 푸석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더구나 이 코끝을 감싸고 도는 향기는 절로 군침이 돌게 하지 않는가. 향기가 따듯하다, 라고 느껴지는 것도 이 붉은 꽃에 대한 신비로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설마 독초는 아니겠지.”

 

독초는 우선 이렇게 향긋한 냄새를 풍길 수 없을 것이었다.

 

“먹자.”

 

배도 고프고, 식욕까지 자극하는 꽃을 눈앞에 두고 망설일 오칠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는 조심스럽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영초라 하면 그 뿌리까지 모두 먹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냄새 좋다.”

 

절로 벌름거려지는 코를 킁킁거리며 오칠은 매우 신중하게 땅을 팠다.

 

겨울 땅이란 원래 딱딱해서 파기가 쉽지 않아야 했지만, 영초 주변의 땅은 푸석한 데다 칼을 이용해 파니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한데, 뿌리의 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파고 있던 오칠은, 순간 손등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통증에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 뱀이다!”

 

뱀을 아주 맛난 먹을거리로 생각하는 오칠에게 혐오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등을 꽉 하고 문 반 장 길이의 뱀을 보면서 비명을 참을 정도로 느긋한 성품도 아니었다.

 

“떨어져! 떨어져!”

 

팔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뱀은 오히려 손목을 시작으로 팔뚝 전체를 휘감았다.

 

“이 새끼가!”

 

뱀의 몸통을 움켜잡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뱀의 조이는 힘이란 것이 너무나 엄청났다. 아무리 당겨도 떨어지지 않고, 팔뚝이 터져버릴 것처럼 고통만 커져갔다.

 

“으아!”

 

분명 독사였다.

 

아니, 독사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어쨌든 물고 있는 손등에서 떼어내야 했다.

 

콱!

 

뱀의 몸통을 입으로 물었다.

 

이를 곤두세워 뱀의 껍질을 물어뜯었다. 한데, 이놈의 뱀은 껍질이 질기기 그지없었다. 이로 깨문 부위 외에는 잘 뜯어지지도 않았다.

 

“으―!”

 

안되겠다 싶어 피를 빨았다.

 

이에 뜯겨나간 부위를 통해 피를 쭉쭉 빨아들였다.

 

‘으~ 차가워!’

 

무슨 놈의 피가 이리 차가운가.

 

비릿한 향은 문제도 아니었다. 입 안을 시작으로 목으로 피가 넘어가는 순간, 속이 꽝꽝 언 것처럼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하지만 빠는 걸 멈추지 않았다. 뱀이 힘을 잃을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쭉쭉 빨았다.

 

“후읍~!”

 

오칠은 뱀의 몸통에서 입을 떼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뱀의 몸통은 축 처져 있었다.

 

“독사가 아닌가?”

 

독사는 머리가 세모꼴이었다.

 

한데, 축 늘어진 뱀의 머리통을 보니, 설명하기 애매한 모양새이기는 하나, 적어도 세모꼴은 아니었다.

 

더구나 독사에게 물리면 진작 몸에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피를 빨면서 느꼈던 냉기 외에는 이렇다 할 증상도 없었다. 다만 뱀이 문 손등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 좀 불안하다고 할까?

 

“이놈도 영물일까? 영초에는 꼭 영물이 있다고 하잖아.”

 

언젠가 들은 말로는 영초에는 그에 반하는 극상의 기운을 가진 영물이 은신해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부족한 기운을 얻기 위해 영초 근처에 은신해 있다가, 그 열매를 받아먹게 되면 완전히 신령스런 짐승이 되어 승천을 한다나?

 

그래서 영초를 먹을 때, 그 영물의 피까지 같이 먹으면 몸에 무지무지 좋다고 한다. 한마디로, 보통 사람은 불로불사를 얻고, 무림인은 환골탈태하여 최고의 내공과 신체를 얻는다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지!”

 

하지만 왠지 지금은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다, 어쨌든 먹으려고 했으니까.”

 

오칠은 다시 붉은 꽃을 캐내기 시작했다.

 

“요상하게 생긴 뿌리군.”

 

꽃의 뿌리는 마치 작은 감자처럼 조그만 알맹이가 두 개 달려 있었다.

 

그리고 꽃잎과 이파리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먹기 좋네!”

 

오칠은 흙을 완전히 털어내고 뿌리와 꽃까지 한 번에 입에 구겨 넣어 씹기 시작했다.

 

아삭아삭.

 

생으로 먹는 것이라 느낌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입 안 가득 퍼지는 향은 그러한 이질감을 없애고도 남을 정도로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흠… 왠지 배가 든든한 거 같기도 하고.”

 

좋은 걸 먹었다고 생각하니 마음까지 흐뭇했다.

 

하지만 역시 뭔가 미진하다는 생각에 한쪽에 던져놓은 뱀에 시선이 돌아갔다.

 

“저놈처럼 맛깔스럽고, 몸에 좋은 것도 없지!”

 

오칠은 서둘러 불을 피울 수 있는 마른 나무를 찾았다.

 

주변이 온통 눈에 덮였고, 겨울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잠깐의 노력으로 뱀 하나 구울 정도는 찾을 수 있었다.

 

화르르! 지글지글.

 

뱀의 껍질을 벗기고, 알맞게 토막 내어 나무에 꽂아서 타오르는 작은 불길에 굽기 시작했다.

 

“맛있겠다!”

 

노릇하게 구워지는 뱀고기.

 

적당하게 익었다 생각한 오칠은 한 토막을 입에 넣어 씹었다.

 

“냠냠. 이거거든!”

 

오칠은 환호를 지르며 빠르게 뱀고기를 먹어댔다.

 

그리고 순식간에 뱀고기를 다 먹어치운 오칠은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치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근데 왜 이리 졸음이 오냐.”

 

배도 부르고, 눈앞에서 열기를 발산하며 타오르는 불꽃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요 며칠간 악몽으로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피곤했기 때문일까.

 

혹은 뱀에 물린 기운이 지금에서야 몸을 잠식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오칠은 너무나 극심하게 몰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제6장. 계승자

 

 

 

 

 

‘아구, 몸뚱이야.’

 

문득 잠에서 깬 오칠은 오랜만에 악몽도 꾸지 않고 푹 잤다는 개운함에 기분이 좋았지만, 곧 온몸이 당기고 욱신거리는 고통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

 

왜 이렇게 움직이는 게 힘이 들지?

 

“차가운 땅바닥에서 자서 그런가?”

 

찬 데서 자면 한기가 몸에 들어, 잠시잠깐 근육이 굳어서 움직이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하지만 늙은이와 같이 다니면서 야숙이라면 이골이 난 오칠이었다.

 

지금껏 산과 들에서 그렇게 잠을 자도 끄떡없던 몸이, 새삼 이리 될 이유는 뭐란 말인가. 더구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전혀 한기를 느끼지 않고 있었다.

 

어두운 주위를 보면 꽤나 시간이 지났고, 피워놓은 불은 예전에 꺼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뭐야, 이거!”

 

허리를 뒤틀고 무릎을 바닥에 댄 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선 순간, 오칠은 자신의 몸에 뭔가 큰 변화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 부풀어 있는 거야!”

 

뻐근하기까지 한 목을 움직여 가까스로 고개를 숙여 손을 내려다보니, 가늘고 긴, 마치 여인의 옥수처럼 섬세했던 손이 곰발바닥처럼 퉁퉁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건 곰이라기보다는 돼지발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설마?’

 

전혀 원치 않는 상황 하나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목을 좌우로 흔들어,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몸을 살펴보았다.

 

“안 돼―!”

 

돼지가 되었다.

 

도저히 믿기 힘들었지만, 보이는 모든 부위가 퉁퉁하게 부풀어서 마치 남의 몸을 보는 것 같았다. 목을 움직이기 힘든 것도 한기에 근육이 굳었기 때문이 아닌, 살이 부풀어 올라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피부 색깔은 왜 이렇게 까맣게 변한 것이란 말인가. 살이 부풀어 옷이 터진 곳으로 삐져나온 살들이, 마치 흑탄을 칠해놓은 것처럼 까무잡잡했다.

 

“이건 마치…….”

 

흑돼지 행자승, 구정의 모습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손으로 만져본 얼굴도 부풀어 올라 있는 걸 보면, 구정과 생김새까지 비슷하게 변했으리라.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문득 떠오르는 것은 붉은 꽃과 뱀이었다.

 

자기 전에 먹은 것이 붉은 꽃과 뱀이었고, 당시에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지만, 뱀에 물리기까지 했었지 않은가.

 

“으아~ 미치겠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본래의 내 모습을 찾아야 해!”

 

하지만 지금의 이 엄청난 변화를 진정시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의술 쪽으로 좀 아는 중이 있었던가?”

 

오칠도 민간의술에 대한 약간의 지식은 있었으나, 이런 괴상망측한 증상에 대해서 어찌할 지식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중들 중에 그러한 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즉, 돌아가 보았자 이 빌어먹을 변화를 해결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왜 그랬냐고 따지고 들면 뭐라 그러지?”

 

시간이 늦은 것만 해도 변명할 거리가 마땅치 않은데, 몸까지 이리 되었으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기가 허한 것 같아 고기 좀 먹으려 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에이, 일단 돌아가자.”

 

오칠은 걷기 힘들어진 몸을 뒤뚱거리며 외학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구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군.’

 

이런 뚱뚱한 몸으로 어떻게 뛰어다닐 수 있었던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