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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7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5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7화

파계 1권 - 7화

 

 

 

 

 

“이 이야기를 듣고 넌 무슨 생각이 드냐?”

 

가만히 듣고 있던 오칠은 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 중은 무공의 고수가 분명합니다. 고작 나무막대기를 던져 원숭이를 죽일 수 있었으니까요.”

 

“…….”

 

노승은 오칠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눈빛이었다.

 

“이 이야기는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 나오는 것으로, 보시의 바른 마음가짐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그 중이 원숭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보시행이라 생각했다면 절대 밥을 가져오는 걸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보시행은 수행과 같아서 잊어먹는 것 자체가 수행을 소홀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혹 잊어먹었다 해도 원숭이에게 막대기를 던지는 행위를 해서도 안 되었다. 오히려 원숭이에게 성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했으니, 보시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

 

오칠은 아무 말도 못했다.

 

노승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너는 내게 공양을 가져오는 것을 수행처럼 생각하고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내 말 알겠지?”

 

“아, 예…….”

 

대답하면서도 오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비유하고 내가 공양을 가져오는 것하고 연관은 있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만 갸웃거려졌다.

 

선문답(禪問答)이라는 것이 있다. 당사자 이외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문답이나, 요점을 잡을 수 없는 대답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절에서 스승과 수행자 사이에 많이 주고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노승이 하는 말은 그런 선문답 같지도 않았다. 그저 힘없는 늙은이가 밥 안 가져다줄까 봐 걱정되어 하는 말처럼 들릴 뿐이다.

 

‘나 또 바보 된 건가?’

 

오칠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순간, 노승의 벼락같은 고함이 머릿속을 크게 울렸다.

 

“이놈! 의문을 품기 전에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하느니!”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설마 노승은 오칠의 가슴에 생겨난 의심을 꿰뚫어 보았단 말인가.

 

“소인을 용서하십시오!”

 

오칠은 넙죽 엎드려 절했다.

 

노승이 고수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실수했다는 생각에 취한 행동이었다.

 

“되었다. 잘못을 알고 반성할 수 있다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도 있다는 것이니.”

 

노승은 손을 내저어 일어나라 했고, 오칠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내일 올 때는 서각에 들러 책도 몇 권 가져와.”

 

“예, 노스님.”

 

오칠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는 숲을 빠져나왔다.

 

“휴~”

 

머리가 멍했다.

 

아주 잠깐 동안의 대면이었지만, 노승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좀 더 지켜보자. 고수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똥 밟았다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남는 시간, 할 일도 없으니 노승이 고수인지 아닌지 알아본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근데 서각을 들어가 봐야 하나?’

 

구정에겐 겁을 줄 요량으로 들어가 본다고는 했지만, 원래는 절대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책 냄새만 맡아도 과거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노승에게 책을 갖다 주려면, 그의 비위를 맞추려면 꼭 가야 할 곳이 서각이었으니까.

 

‘기분 더럽네.’

 

오칠은 액땜을 하듯 땅바닥에 침을 뱉어내고는 서각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제4장. 양피지

 

 

 

 

 

‘뭐지?’

 

서각에 당도한 오칠은 아까와 달리 부산스러워진 광경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 못 보던 젊은 중들도 있고, 그들 모두가 등짐을 지고 있는 걸보면 뭔가 서각에 들어올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딜 갔다 오는 것이냐?”

 

말라깽이 중 담목이 부산스런 사람들 속에서 나오며 오칠에게 다가왔다.

 

“노스님께 공양을 가져다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그걸 왜 네가 하느냐?”

 

한 달 전 구정이 스스로 정재소 자리에서 물러나고부터 담목은 쭉 오칠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전에는 구정이 부상을 입거나 하는 일이 없었는지라, 담목은 오칠로 인해 뭔가 일이 있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 아무도 그에 대해 말을 않고, 알 수도 없는지라 담목은 그저 의심만 품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바쁜지라 제가 가게 되었습니다.”

 

담목은 오칠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하나, 바쁘지 않은 오칠이 한 식경 거리나 되는 암자에 갔다 왔다고 하는데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담목 사형, 어디에 둘지 일러주십시오.”

 

뭔가 더 캐낼 것이 없나 하고 있던 담목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오칠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

 

담목의 돌려진 고개를 따라서 시선을 던진 오칠은, 서각 안에서 걸어 나오는 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크고, 우람한 덩치에 놀란 것이다.

 

‘곰이다!’

 

칠 척이 훌쩍 넘는 키에, 승복에 가려졌음에도 윤각이 뚜렷한 근육들.

 

그 생김새도 단단하고, 사내다워서 절로 곰이 연상되었다. 더구나 가까이 다가온 중의 눈빛이 어찌 그리 강렬한지. 중은 단지 그놈 참 곱상하게도 생겼네! 하는 시선을 보내는 것뿐인데도, 오칠은 뒤로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담웅 사제, 그것은…….”

 

담목은 무공비급과 불교의 경전들을 보관한 소림사 장경각(藏經閣)의 승려 담웅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오칠을 보더니만 슬며시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닌가.

 

부처의 대자대비(大慈大悲: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한 마음을 따라가야 하는 마음가짐에서 뭔가 조금 빗나가 있는 듯한 의미가 숨겨진 웃음이었다.

 

“그냥 놔두게. 우리가 알아서 하지.”

 

“책이 꽤 많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네. 늦지 않으려면 사제는 지금 소림사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그렇기는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담목 사형,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당웅은 꾸벅 합장을 하고서는 짐을 지고 왔던 중들과 함께 사라졌다.

 

“담목 스님, 저분은 본사의 스님이십니까?”

 

가슴에 생겨난 궁금증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오칠은, 담웅이 사라지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음성으로 물었다.

 

“담웅 사제는 장경각의 승려이자, 빈도라발라타사다.”

 

“예?”

 

오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장경각의 승려라는 말은 이해하겠는데, 빈도라발라타사다는 뭐란 말인가?

 

순간, 담목의 얼굴에 노한 기운이 어렸다.

 

“공부를 게을리 했구나! 빈도라발라타사다는 석가세존께서 일정한 기간 동안 세상을 주재할 때에 정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존자 중 하나가 아니더냐.”

 

흔히 십팔나한(十八羅漢)이라고 하는 소림의 호법승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오칠은 욕을 내뱉어주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리고 대신 장경각, 십팔나한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열을 올리며 물었다.

 

“그럼 아까 그분은 엄청난 고수시겠네요? 제가 듣기로, 십팔나한이라 하면 무승들 중에서도 특히나 빼어난 실력의 무승만을 골라 채워진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는 그런 고수를 본 적이 없는지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분은 저기 저 커다란 바위도 일격에 부술 수 있으십니까? 아마도 그 유명한 소림칠십이절예 중에 한두 개는 익히셨을 테니, 그 정도는 우스운 일이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담목 스님?”

 

담목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칠이 그의 심기를 꽤나 어지럽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잡소리 그만 하고, 이리 오거라!”

 

오칠은 자신의 어떤 말이 담목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까? 하고 의아했지만, 알 수도 없고, 더 이상 물을 수도 없었다.

 

‘하여튼 속 좁은 중이라니까!’

 

오칠은 내심 투덜거리며 담목을 따라 서각의 입구로 걸어갔다.

 

“글은 읽을 줄 아느냐?”

 

지난번 책을 읽는 걸 보았으면서도 또 묻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오칠에 대한 담목의 시선이 단단히 틀어진 모양이었다.

 

“예.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책들을 서각 안으로 들여놓고, 그 내용에 따라 정리해두어라.”

 

“예?”

 

오칠은 깜짝 놀랐다.

 

소림사의 중들이 가져온, 그의 발치 앞에 수북하게 쌓인 짐들이 책이었다니. 게다가 대충 짐작하기로 수백 권이 넘을 듯해 보이는 이 많은 책들을 언제나 정리를 한단 말인가.

 

“저 혼자요?”

 

“그럼, 여기 또 누가 있더냐?”

 

“구정… 사형은요?”

 

구정은요? 라고 물으려던 오칠은 담목이 눈살을 찌푸리자 얼른 사형이란 말을 붙였다.

 

아무리 행자승끼리라도 엄연히 서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구정이 지 사형들한테 하는 짓거리는 그냥 두었잖아! 이 말라깽이 중도 큰 중은 못되겠군.’

 

담목이 세속의 연으로 따지면 구정의 백부라는 것을 이미 들었던 오칠은 내심 욕을 퍼부었다.

 

“그 아이는 내가 따로 시킨 일이 있으니, 이 일은 너 혼자 하거라.”

 

오칠에겐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예…….”

 

“오늘까지 할 수 있겠지?”

 

담목의 물음에 오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많은 책들을 오늘 안에 정리하라는 말은, 밤을 새서라도 일을 끝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칠은 쥐었던 주먹을 다시 풀었다.

 

‘참자.’

 

성질대로 하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지금 이 추운 겨울에 산을 내려가는 것도 그렇고, 도끼파의 이목을 피할 자신도 없었으며, 소림사에게 원한을 맺기는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참는 것이었다.

 

뭐가 못마땅한지 계속 트집을 잡고 있는 담목의 사지를 똑 하고 부러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참는 것이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오칠은 웃었다.

 

화가 날수록 웃을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임을 잘 알고 있고, 실행하는 데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제가 다 정리해놓을 테니 심려 놓으십시오, 담목 스님.”

 

“험, 귀하게 구한 책들이니 조심히 다루어라.”

 

미소까지 지으며 밝게 말하는 오칠의 모습에 담목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쯧쯧쯧, 저리 배포가 작아서야. 괴롭힐 심산이면 그냥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지, 뭘 저리 불안해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담목은 훌륭한 중이 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그보다…….”

 

오칠은 앞에 쌓여 있는 짐들을 암담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옮기는 것부터 쉽지 않겠구만.”

 

하지만 어떤 일이든 차근차근히 해서 안 될 것은 없었다.

 

그리고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렇지, 무엇이든 해서 제대로 못할 것이 없다 자신하는 오칠은 우선 하나의 짐 꾸러미를 들어올렸다.

 

“이 정도쯤이야.”

 

팔뚝이 강하게 당겨올 정도로 무거웠지만, 오칠은 성큼 걸음을 내딛어 서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오칠은 하나씩 하나씩, 수십 권씩 묶여 있는 책 꾸러미들을 서각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 * *

 

 

 

 

 

법화경, 은중경, 삼칠도경, 사십이장경, 계소재경, 계향경, 관무량수경, 노여인경, 도간경, 마등녀경, 만법경, 멸진경, 무량의경, 무상경, 무주심경, 문오역경, 미륵상생경, 미륵하생경, 마타게경, 혜탈경, 능엄경…….

 

“인연과 만물을 설명한 책… 아~ 짜증나!”

 

오칠은 능엄경(楞嚴經)을 선종(禪宗)의 주요 경전들이 있는 책장에 꽂아 넣고서, 목록서에 기록한 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추워!”

 

바닥으로부터 차가운 냉기가 스멀거리며 올라와 엉덩이를 까칠하게 자극했다.

 

책의 관리 때문에 서각 내부엔 화로조차 놓아두지 않아 어떻게 몸을 따듯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정재소 행자승이 가져다준 모포 하나로 몸을 덮을 수 있을 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게 뭔 짓이냐.”

 

지금 시각은 대략 자시(子時:밤 11~1시) 말쯤이었다.

 

그러나 정리한 책은 이제 삼분지 이 정도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밤을 새게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운 속도였다. 담목은 오칠이 글을 안다 해도 여러 복잡하고 난해한 글자로 이루어진 불경을 제대로 이해하긴 힘들고, 그만큼 정리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생각하고 맡긴 것이었다.

 

이 일로 단단히 혼을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속도로 본다면 오칠은 다음날 아침이면 모든 정리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래 봬도 소싯적에는 공부 좀 한 놈이라고!”

 

한때는 수만 자를 외우던 오칠이었다.

 

세상모를 때는 공부만이 최고인 줄 알았고, 그래서 가리지 않고 책만 읽던 오칠이었다. 그러니 담목이 책 정리라는 걸로 오칠을 낭패스럽게 하려 했다면 크나큰 오판인 것이다.

 

“아~ 졸리다!”

 

반들거리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크게 하품을 한 오칠은, 다시 책을 집어 들고 내용을 살핀 뒤, 그에 맞는 책장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언제 하품을 했냐는 듯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책 정리에 속도를 높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