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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5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1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5화

파계 1권 - 5화

 

 

 

 

 

“이름이 뭐냐?”

 

반말이네?

 

오칠의 눈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생긴 것은 둔해 보이는데, 힘 좀 쓴다, 이 말이지?’

 

구정의 눈동자는 살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도 않았지만, 오칠은 그 눈동자 속에 숨겨진 어설픈 흉포함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런 흉포함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힘을 펼칠 수 있는 대상이 이곳, 외학전에 더 있다는 말. 아마도 늙은 학승들을 보좌할 행자승들이 이곳에 몇 명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참아주지.’

 

오칠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꾹 참아내고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칠.”

 

“하!”

 

구정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둔해 보이는 만큼 묵직한 팔을 내밀어 오칠의 멱살을 잡아서 자신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입 조심해. 난 너보다 몇 년은 더 절밥을 먹었어!”

 

구정은 자신의 빵빵한 얼굴을 오칠의 코앞에 들이대며 한 대 칠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물론 빵빵한 얼굴의 특성상 크게 일그러지지는 않았지만, 오칠은 구정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내 참, 이런 놈이 행자승이라고?’

 

오칠이 알기로, 행자(行者)란 중이 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수행자였다.

 

그리고 훗날 멀고도 긴 여정의 중 생활을 이겨내기 위한 자제력과 인내심을 기르는 데 그 중점을 둔다고 하였다. 절의 기본적인 예법과 의식을 익히고 간단한 경전(經典)을 배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말이다.

 

즉, 행자승이란 겸손하고, 스스로 자숙하며, 배움과 수련에 뜻을 두어 부처가 되기 위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 속에서 안정된 정신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땡중도 지천에 깔렸고, 절 같지도 않은 절에서 수련이랍시고 사람들에게 사기나 치는 중들도 적지 않았지만, 어쨌든 행자란, 중이란 그런 존재인 것이다.

 

한데, 이 구정이란 놈에게서는 그런 행자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채식만 한다는 절에서 이렇게 살이 찐 것만 해도 그 식탐이 얼마나 강할지 짐작할 수 있으니, 분명 그리 훌륭한 중이 될 인물은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놈의 협박에 머리가 숙여질 정도로 오칠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참아주지.’

 

마음만 먹으면 단박에 모가지를 비틀어줄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착하고, 성실하고, 재능 있는 중처럼 보이려면 이런 놈에게도 좋게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늙은 중들에게 괜히 헛말이라도 흘러가게 되면 전혀 좋을 것이 없으니까.

 

“알았냐? 난 네 녀석의 상판대기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앞으로 조심해!”

 

오칠은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과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 역력한 표정을 짓는 구정에게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볼에 옅은 상처 자국이 생기기는 했으나, 여전히 아름다울 정도로 잘생긴 자신을 부러워하는 구정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면서 화를 참아내는 것이다.

 

“따라와. 다른 녀석들을 소개해줄 테니까.”

 

구정은 처음보다 한층 힘이 들어간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앞장섰고, 오칠은 내심 코웃음을 치며 그 뒤를 따랐다.

 

* * *

 

 

 

 

 

구정에게 어리바리한 행자승 십여 명을 소개받고 이틀 뒤 오칠은 삭발을 하고 행자복을 착용했다.

 

오계니, 삼귀의계니 하는 계를 받는 등등의 수계식(受戒式)도 있었지만, 전주가 중요하다고 한 그런 것들보다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 더욱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 같은 것은 이후 한 달여간 해온 행자생활에 밀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시(寅時:새벽 3~5시) 말에 일어나 아침 공양(식사)을 위해 산중턱에 있는 샘까지 가서 물을 떠오고, 불을 피우고, 밥을 짓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공양이 끝나면 진시(辰時:오전 7~9시)부터 석가모니를 모셔놓은 대웅전(大雄殿)이니,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명전(大光明殿)이니 하는 법당들을 청소한다.

 

오시(午時:오전 11~1시) 중순쯤 점심 공양 준비를 하고, 두 시진을 사찰에서 필요한 기본 의식, 불자로서의 올바른 행위 규범 등등의 불교학문을 배우게 된다. 그러고 나서 저녁 공양 준비, 술시(戌時:밤 7~9시) 전후쯤에 참회 밑 좌선을 하고, 해시(亥時:밤 9~11시) 초에 취침을 하게 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염병!’

 

절로 욕이 나올 짓이었다.

 

너무나 규칙적이고, 꽉 짜인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은 정말 오칠에게 맞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 웃긴 것은 그러한 일상에 오칠이 아주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들에게 잘 보여 뭔가 이득을 얻어 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과거 어릴 때에 배우고, 익힌 습관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기에 바른 생활에 금세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습관은 과거의 습관일 뿐.

 

오칠은 밥을 짓는 일과 나무하는 일, 그 밖의 온갖 허드렛일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이미 지쳐 있는 상태였다.

 

더구나 한 달간의 생활 동안 오칠은 한 가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숨은 고수는 없다!’

 

소림사의 외전이라고 하는 점 때문에 혹시나 했던 생각은 그저 망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더 이상 성실, 순수, 재능을 표출하기 위해 가식을 떨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이 겨울을 나고, 도끼파 놈들의 감시망이 느슨해질 때까지만 조용히 지내자는 생각만 하게 되었을 뿐이다.

 

“저… 저기 오칠아, 저녁 공양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는데…….”

 

행자승 하나가 오후의 교육을 마치고 승방에 들어와, 침상에 털썩 누워버린 오칠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오칠은 말을 걸어온 행자승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이러니 흑돼지 놈이 그렇게 기가 살아 있지!’

 

이곳, 외학전에 있는 행자승은 구정을 포함하여 모두 열한 명이었다.

 

아니, 이제는 오칠까지 포함하여 열둘이 되었다. 그런데 구정을 제외한 이 행자승들 모두가 골골거리는 상판에 대나무 몸뚱이를 가지고 있지 뭔가.

 

그 담력은 어찌나 작은지, 가장 나이가 어린 구정에게 잡혀서 행자승 중 가장 높은 계열이나 앉을 자리인 정재소 자리를 그냥 내맡기고 있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행자승이 된 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는 오칠에게조차 말을 제대로 걸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는 지금의 모습을 보자면 답답함을 넘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급한 놈이 알아서 하겠죠.”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대꾸지만 오칠은 최소한 구정처럼 말을 놓지 않았다.

 

‘난 개념이 된 놈이거든.’

 

누가 자신을 건드린다면 모를까,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타협 선을 찾는 것이 오칠의 인생철학이었다.

 

물론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아주 이기적인 판단에 따라 마구 변화하는 인생철학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구정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행자승은 원래 정재소의 행자승으로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나이도 행자승들 중 가장 많고, 행자 생활도 오래 했을 뿐만 아니라, 들리는 말로는 학문에 대한 성취도 남다르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 년 정도면 비구(比丘:정식 승려)가 될 수 있는 사미(沙彌:비구가 되기 전의 수행자)인 것이다.

 

한데, 그 성정이 너무나 여리고, 착해서 구정에게 찍 소리도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 나라도 가서…….”

 

공양할 쌀을 나르고, 불을 지필 나무를 나르고, 물을 솥에 담는 등등의 일은 현재 오칠의 역할이었다.

 

원래는 정재소 행자승인 구정이 해야 할 일이지만, 원래부터 다른 행자승들이 대신하고 있었던 걸 오칠이 들어오면서 그 일을 맡아버린 것이다. 아니, 오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구정이 억지로 떠맡겼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됐어요.”

 

오칠은 옆으로 지나가는 행자승의 소매를 붙잡았다.

 

“일이 생겨도 내가 감당합니다.”

 

그러니 가만있으라고 행자승을 가지 못하게 했다.

 

‘소림사의 중들은 죄다 무공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워낙 소림사가 무림에서 유명하고, 그 무승들의 위명이 세상을 떨어 울리다보니 생겨나는 오해인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곳의 행자승들은 너무 심한 편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고, 순수한 불심에 그 뜻을 둔 것은 이해해도 어찌 보통 사람보다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단 말인가.

 

‘이 험한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생활들은 다 헛짓거리인가!’

 

행자승 생활이란 아무리 심신으로 약한 이도 힘이 생기고, 악바리가 되는 고된 생활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행자승들은 어찌 죄다 이 모양인지.

 

스스로가 아주 이기적인 심성을 가졌다 생각하는 오칠이지만, 이제는 그런 행자승들의 모습에 답답함을 넘어 안타까움이 생겨날 정도였다.

 

“오칠―!”

 

덜컹!

 

퉁퉁한 고함이 들리고, 승방의 문이 벌컥 열리며 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훙― 하고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죄다 가리고 선 존재, 구정이 험상궂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야, 너 뭐 하는 거야!”

 

구정의 쫙 찢어진 눈에선 불길이 일고, 반들반들 퍼런 머리에서는 김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구정의 분노한 모습에도 오칠은 별달리 당황한 표정이 아니었다.

 

“뭐가?”

 

오칠은 느긋하게 상체를 일으키고, 살짝 기울어진 고개를 들어 구정을 빤히 바라봤다. 마치 왜 그리 열이 받았어? 하는 눈빛으로 말이다.

 

“건방진 새끼!”

 

구정은 늘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던 오칠이 왜 갑자기 달라졌는가, 라는 점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지 않고 와락 달려들었다.

 

‘느려 빠져가지고!’

 

오칠은 쿵쿵거리며 다가오는 구정을 보고 코웃음 치며 벌떡 일어났다.

 

휙~

 

“어!”

 

양팔을 뻗어 단번에 오칠의 멱살을 잡으려던 구정은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봤다. 아니, 침상을 박차고 머리 위로 뛰어오른 오칠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퍽!

 

“악!”

 

오칠의 작은 발이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구정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으…….”

 

한 방에 코피가 터져버린 구정은 얼굴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바닥에 내려선 오칠은 그런 구정을 그냥 물러나게 하지 않았다.

 

퍼퍽! 퍽!

 

오른발로 무릎을 걷어차고, 왼발로 복부를 걷어차고, 연이어 턱에 주먹이 작렬했다.

 

쿵!

 

“크으…….”

 

바닥이 울리도록 크게 뒤로 넘어진 구정은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오칠은 그런 구정을 향해 다가가 가슴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퍽! 퍼퍼퍽! 퍼퍼퍼퍽!

 

“악! 아악! 악!”

 

더욱 몸을 움츠린 구정은 비명을 질러대며 때리지 말라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울먹였다.

 

하지만 오칠은 멈추지 않았다. 한 달간 쌓여왔던 분노를 터트리며,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 완전히 기를 죽여 놓을 심산인 것이다.

 

“그만 해!”

 

행자승들이 오칠을 말리기 시작했다.

 

팔을 잡고, 어깨를 잡고, 허리를 잡아 구정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헉… 헉… 헉……!”

 

행자승들을 뿌리치고 몇 번이나 구정을 짓밟은 오칠은 격해진 숨을 내뱉으며 가슴에서 치솟았던 분노를 가라앉혔다.

 

“됐어요. 이제 놔요.”

 

오칠은 좌우에서 그의 몸을 붙잡고 있는 행자승들을 보며 말했다.

 

행자승들은 얼른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든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오칠을 붙잡았을 뿐, 그들은 여전히 겁쟁이였던 것이다.

 

“이놈은 좀 쉬어야 할 겁니다.”

 

오칠은 기절해버린 구정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른 행자승들에게 눈짓을 했다.

 

같이 침상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으싸~!”

 

서너 명이 달려들어서야 간신히 구정을 침상에 눕힐 수 있었다.

 

“앞으로 정재소를 맡으세요.”

 

오칠은 가장 연장자이자, 원래 그 자리를 맡아야 할 행자승에게 정재소의 역할을 맡겼다.

 

그리고는 구정에 의해 중구난방으로 맡겨졌던 여러 역할들까지, 행자승들의 자율적인 자기 판단과 취향에 맞추어 맡을 수 있게 했다.

 

“담려 스님은 알아서 할 수 있겠죠?”

 

오칠은 이제부터 정재소를 맡게 된 행자승에게 자신 있죠? 하는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담려 스님은 괜찮지만, 담목 스님이…….”

 

행자승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렸다.

 

담려 스님은 행자승들의 역할 등의 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담당승이지만, 다른 학승들처럼 경전 등에 푹 빠져 있어 평소에도 그리 마주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담목 스님은 달랐다. 담당승이 아니면서도 행자승들의 여러 역할을 꼼꼼히 살피며 잔소리를 하는 유일한 스님인 것이다.

 

“피만 닦으면 그리 크게 티가 나지 않으니까, 적당하게 말만 잘하면 될 겁니다.”

 

구정의 얼굴에 발 한 번, 주먹 한 번으로 끝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른 중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땔감 구하다 넘어졌다고 하세요. 구정 녀석에겐 내가 입도 뻥긋 못하게 단단히 일러둘 테니까요. 모두들 알겠죠?”

 

오칠의 당부에 행자승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구정 때문에 적잖게 마음고생을 해왔기 때문인지, 어쨌는지 행자승들은 오칠의 처사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사실 구정을 때려눕힌 오칠에게 뭐라고 할 간담을 가진 행자승도 없을 것이다.

 

“정재소로 가죠. 얼른 저녁 공양을 지어야 하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이 녀석 얼굴 좀 닦아요.”

 

오칠은 우선 해야 할 일을 끝내기로 하고 행자승 몇 명과 함께 정재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