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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43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43화

파계 2권 - 18화

 

 

 

 

 

거기엔 중년의 사내가 있었는데, 왜 보라고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의 발을 보면 신발 위까지 흙이 많이 묻어 있고, 옷도 약간 지저분하지? 분명 어디 멀리서 온 사람일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면, 객잔을 찾는 것이 분명해. 다만, 지리를 몰라 걸음이 빠르지 않은 것이지.”

 

“그래서요?”

 

“저런 사람은 뒤쪽으로 감각이 무디다. 앞이나 좌우를 살피기는 하지만, 낯선 곳에선 뒤쪽으로 잘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법이거든.”

 

“진짜요?”

 

“내 경험상으론 그래. 그리고 내 말에 토 달지 마.”

 

“예.”

 

“그러니 저 사람은 네가 뒤쪽으로 접근해서 손을 쓰면 쉽게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저쪽 사람을 봐라.”

 

이번엔 몇 가지 물건을 양손에 들고 조금 걸음이 빠른 뚱뚱한 사내를 지목했다.

 

“저 사람은 어딘가에 약속이 있거나, 혹은 다급하게 어디를 가야 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한곳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곳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주 약간의 접촉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지. 그러니 저 사람에게는 작은 접촉을 통해 좀 더 거리를 가까이 해서 손을 쓰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오칠은 그 외에도 여러 사람의 유형과 그 행동 방식, 또 그런 이들에게는 어떤 형태로 접근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 설명했다.

 

“알겠냐?”

 

“대충은요.”

 

오칠은 소년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그리 똑똑한 녀석은 아니었군, 하는 눈빛이었다. 오칠 자신은 과거 늙은이에게 배울 때 너무나 잘 이해하고, 빠르게 습득해서 탈이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이 년 만에 늙은이의 모든 것을 전수받고, 열둘이란 나이에 그를 먹여 살리기까지 했겠는가.

 

“멍청한 녀석아, 나 하는 걸 잘 봐라.”

 

오칠은 귀찮다 생각하면서도 손수 시범을 보이기로 하고, 길가로 나갔다.

 

오칠은 행색이 지저분하고 냄새까지 나서 타인에게 접근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다 방법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술에 취한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사람들에게 막무가내로 몸을 들이밀었던 것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손을 이리저리 놀리고는 소년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봤지?”

 

“네…….”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오칠을 보았다.

 

한데, 오칠은 그런 소년을 번쩍 들어서는 골목을 따라 한참 가다가 배가 다닐 정도로 길고 넓은 수로가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긴 왜 온 거예요?”

 

오칠이 다시 땅에 내려놓자 소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거기 계속 있어야겠냐? 은밀히 훔치고, 재빨리 빠지는 것이 바로 배수짓의 기본 철칙이란 말이다.”

 

소년은 그제야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칠은 그 사이에 소년의 점혈을 풀어주고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소년이 어찌 점혈이 풀렸는지 깨닫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손속이었다. 사실 소년은 자신이 점혈이 되었는지도 몰랐었다.

 

“이거.”

 

오칠은 배수짓을 해서 챙긴 주머니를 소년에게 내밀었다.

 

“가지라고요?”

 

“그래. 난 조금만 있으면 되니까.”

 

오칠이 배수짓 한 돈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차피 시범을 보인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적당하게 손을 쓴 것이다. 그리고 오칠은 그것들 중에서 은 두 냥을 빼서 품에 넣고는 소년에게 내민 것이다.

 

과거 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오칠이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오칠은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배수짓은 처음에 말한 것처럼 마음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라. 내가 꼭 훔치겠다, 상대는 그걸 절대 모를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자신 있게 손을 써야 손도 제대로 움직이는 거야. 이제 그만 가봐.”

 

소년은 오칠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손에 쥐어진 주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저… 아니, 오칠님은 이제 무한에서 배수짓을 하며 살 건가요?”

 

“몰라. 아직 어떻게 먹고살지 생각 안 해봤어.”

 

“거지는 아니죠?”

 

“당연하지.”

 

하지만 오칠은 문득 거지 생활도 그리 나쁠 것은 없다 생각했다.

 

이런 몰골로 구걸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거지가 되면 여러 가지 귀찮은 일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배수짓을 하려면 먼저 나한테 이야기해야 해요. 혼자 했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길 테니까요. 여기에서는 혼자 하는 꼴을 절대 봐주지 않거든요. 잘못했다가는 두 손을 잘릴 수도 있으니까 내 말 허투루 듣지 마요. 아, 내가 그냥 우리 대장한테 오칠님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 실력이면 대장도 별말 않고 받아들일 것이 분명해요.”

 

“별로.”

 

오칠은 배수짓을 하기로 생각을 굳힌 적도 없고,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리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오칠의 반응을 그저 한 번 자존심을 세우는 정도로 치부한 모양이었다.

 

“내가 잘 말해볼 테니까 걱정 말아요. 그럼 나중에 봐요.”

 

오칠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년은 손까지 흔들면서 복잡한 골목 어딘가로 사라졌다.

 

“저놈, 제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가네. 그보다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소년이 사라지자 오칠은 약간 후회가 됐다.

 

‘후회?’

 

하나의 감정이 또다시 윤곽을 드러냈다.

 

‘감정을 되찾는 방법은 사람들하고 많이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오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제약 당했다고는 하지만, 쭉 산에서만 있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못하다 보니 감정이 생길 무엇도 없었던 것이다.

 

‘흠, 그 꼬마가 말한 패거리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해봐야겠는데…….’

 

오칠은 한쪽 벽으로 가서 기대앉았다.

 

눈앞에는 커다란 수로가 보이고, 그 수로로 작은 배들이 지나다녔다. 또한 수로 양옆으로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그 사람들을 손님으로 만들기 위해 좌우로 많은 자판들이 늘어선 것은 불문가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아까 있었던 곳과 거의 차이점이 없는 광경이었다.

 

‘사람 참 많구나.’

 

오칠은 수로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 * *

 

 

 

 

 

저녁이 지나고, 밤이 지나고, 새벽이 지나고, 다시 낮이 돌아왔다.

 

봄의 따사로운 빛이 흘러가는 물결에 반사되고, 물결 위로 넘실대는 배 위엔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뭐가 저리 할 말이 많을까?’

 

벽에 기댄 채로 잠들었다가 방금 깨어난 오칠은, 크고 작은 배들을 바라보며 별 의미 없는 생각을 했다.

 

꼬르륵.

 

오칠의 뱃속에서 허기가 요동쳤다.

 

‘뭘 좀 먹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산을 내려오고부터 며칠간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일어나기가 싫었다.

 

자리는 불편해도 오칠은 정말 수년 만에 편안한 잠을 잔 것이었다.

 

사 년 전까지는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고, 악몽을 꾸지 않게 되자 무공 수련 때문에 거의 잠을 잊고 살았다.

 

사실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잠 잘 시간을 줄이고 무공에 더욱 매진해야 얼른 산 생활을 정리할 것이 아닌가. 게다가 무슨 최면에 걸린 것인지 머릿속에선 무공을 익혀라, 무공을 익혀라,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편안한 수면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이 기분을 날려버리기가 싫었다.

 

꼬르륵. 꼬르르륵.

 

하지만 뱃속의 소리는 계속해서 오칠을 괴롭혔고, 이대로는 나른한 기분을 만끽하기가 힘들었다.

 

‘움직이긴 싫고, 뭐든 먹어서 이 뱃속을 진정시키기는 해야겠고…….’

 

오칠은 반쯤 누운 자세로 고개만 좌우로 움직여보았다.

 

‘만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팔고 있는 자판이 보였다.

 

그 외에 국수 같은 것도 있었지만, 만두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어디 해볼까?’

 

오칠은 몸을 반쯤 앞으로 움직여 양손을 슬며시 내밀고는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우웅.

 

단전으로부터 솟구친 내공은 가슴을 지나, 양팔을 타고 손끝에 모아졌다.

 

그리고 손끝에 모아진 내공은, 무형의 실처럼 뻗어나가 허공을 지나서 오칠이 노리고 있는 만두에 안착했다. 그리고 조금씩 만두를 휘어 감더니만 오칠의 의지에 따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격공섭물(隔空攝物).

 

내공을 이용해 손을 안 대고도 물건을 취하는, 상승의 경지에 오른 절정고수나 펼칠 수 있는 수법이었다.

 

실상 웬만한 공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고, 감히 이를 펼칠 수 있다 자신하는 고수가 무림에서 몇 명이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지금 오칠이 그 격공섭물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고작 몸을 움직이기 싫다 하여 만두를 훔치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들키지 않게 하려니 이거 아주 힘들구만.’

 

마음만 먹으면 휙- 하고 끌어당겨 단박에 손에 쥘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만두 장수의 시선에서도, 그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그리고 그 주변을 오가는 행인들의 시선에서도 들키지 않게 만두를 움직이게 하려고 하니, 여간 힘들고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칠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밀하게 내공을 운용하여 어느덧 냄비에서 만두를 빼내는 데에 성공했고, 이제는 바닥에 거의 닿을 듯 말 듯하게 공중에 띄워 끌어당기면 되는 것이었다.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등장이 오칠의 성공을 방해했다.

 

“여기요.”

 

찰랑.

 

가느다란 여인의 음성과 함께 몇 푼의 동전이 앞으로 내밀어진 오칠의 손바닥에 떨어지고, 손끝에서 뻗어나가 만두를 휘감고 있던 내공의 줄기가 흔들렸다.

 

탁.

 

냄비를 벗어나 있던 만두는 바닥에 떨어지고, 오칠은 헉! 하고 입을 벌리며 신음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 만두!”

 

이리도 안타까울 수가.

 

그 어떤 감정의 메마름도 단번에 가득 채울 것 같은 절망감이 오칠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한데 그런 오칠의 심정도 모르고, 동전을 던져주었던 여인이 말했다.

 

“많이 배고프세요? 이봐요, 여기 만두 좀 갖다주세요!”

 

“알겠습니다요, 손님!”

 

만두 장수는 즉각 반응하며 그릇에 두 개의 커다란 만두를 담아왔고, 그 만두는 고스란히 오칠의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많이 드세요.”

 

여인이 어서 먹으라며 손짓했다.

 

오칠은 멍해졌다.

 

‘이리 간단한 방법이!’

 

어찌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품 안에 은 두 냥이 있는데, 만두 장수에게 만두를 가져오라 시켰으면 되는 것인데, 왜 격공섭물이라는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

 

오칠은 큼직한 두 개의 만두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들었다.

 

그를 구걸하는 거지로 착각하고, 사실 누구든 오칠의 몰골과 손을 내밀고 있는 자세, 그리고 옆에 세워둔 투박한 묵철곤을 보자면 몸까지 불편한 사람으로 착각했을 것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착각해서 돈을 주고 이렇게 만두까지 사주고, 오칠의 무지까지 일깨워주는 여인이 누군가 하고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

 

여인은 예쁜 얼굴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했다.

 

뒤로 질끈 동여맨 긴 머리에, 약간은 가무잡잡한 피부에다 옷차림도 수수한 여인이었다.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외모의 여인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여인의 웃음은 평범하지 않았다. 아니, 그리 특별하다 할 수 없는 웃음이었지만 오칠에게는 달랐다.

 

‘따스하다.’

 

오칠은 단 한 번도 여인의 웃음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여인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왠지 낯이 익은데…….’

 

어디서 보았던 얼굴일까?

 

“목 언니, 어서 가요!”

 

그녀의 일행인지 저 앞쪽에서 조금 짜증이 묻어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오칠은 그들이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사내 몇 명이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는데, 부잣집 공자가 멋으로 멘 장식용이 아니라, 진짜 실전에서 쓰는 제대로 만들어진 검이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칠의 앞에 있는 여인도 등에 칼을 차고 있었다.

 

그리 좋은 칼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잡이에다가 미끄러지지 않게 헝겊을 꼼꼼히 감아둔 걸 보면 제대로 쓰이는 칼이었다. 더구나 그 헝겊이 제법 낡아 있다는 건, 꽤나 열심히 수련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딴 데 신경 쓰다가 칼도 보지 못했군.’

 

오칠은 이 여인의 무엇이 그리 신경 쓰이게 만든 것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여인은 그녀의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고, 곧 멀리 사라져버렸다.

 

“아!”

 

여인이 떠난 줄도 모르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오칠은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목운교……?”

 

드디어 떠오른 이름을 불러보지만, 이미 여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벌떡.

 

오칠은 지금껏 나태하던 그였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났다.

 

그리곤 묵철곤을 허리에 차고, 분명 목운교가 확실한 그 여인을 찾으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휘휙.

 

오칠은 주변의 그 누구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높다란 지붕에 올라가 주변을 쭉 둘러보기 시작했다.

 

“…….”

 

없었다.

 

내공을 눈에 집중해서 백 장 밖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까지 세밀하게 관찰했지만, 그 어디에도 목운교는 없었다.

 

목운교.

 

그녀는 누구이기에 오칠을 이리 화급히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왜 안 보여?’

 

오칠은 귀영백변신법(鬼影百變身法)을 운용하여 지붕에서 내려왔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딘가에 들어갔기 때문일 테고, 그래서 괜한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그녀를 찾기 위해서 귀영백변신법을 운용한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