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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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40화
파계 2권 - 15화
[응?]
갑자기 어둠이 가시고 주변이 뽀얀 안개에 휩싸였다.
매우 기분 좋은 향기가 나고, 오칠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우윳빛으로 찰랑이는 아름다운 호수에서 알몸으로 있었다.
[호호호호!]
요사스런 웃음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진탕되고, 하초에 힘이 들어가는 기묘한 힘을 가진 웃음소리였다. 더구나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들이 어디 하나 모나지 않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들이라면, 그 웃음소리의 힘은 더욱 위력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칠의 주위로 그런 여인들이 하늘거리는 옷을 나풀거리며 나타나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오칠은 여인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도리어 너무나 익숙하여 담담하기까지 했다. 아니, 요 근래 무감각해진 감성으로 인해 이렇듯 아름다운 여인들의 등장에도 동요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어쨌든, 오칠은 그의 주위로 다가와 눈웃음을 치고, 몸을 기묘하게 흐느적거리며 유혹의 몸짓을 보내는 여인들을 가만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당신들이 상대인 건가?’
여인들은 이 년여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 오칠의 악몽에 나타났었다.
그런데 소림사를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한 후부터는 나타난 적이 없었다. 어쩌면 오칠이 괴물들을 물리치고, 그녀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타나지 않던 여인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호호호호!]
여인들은 그냥 입고 있어도 속살이 모두 보이는 옷을 슬며시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칠의 주위로 바짝 다가설 때는 완전한 나신이 되어, 보고 있기만 해도 가슴이 꽉 막힐 정도의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
하지만 오칠은 여전히 무감각했다.
마치 나무토막을 보는 것처럼 그의 눈빛은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왜 이러지?]
풀이 죽어 있는 자신의 하초를 내려다보며 오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인을 보면 당연히 하초가 불끈 서야 하고, 당장에 달려들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꿈속이라 해도 말이다.
한데, 이리 느낌이 없다니!
오칠은 갑자기 화가 났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열 살에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한 여인을 굴복시키고, 그 이후로도 많은 여자들을 그의 앞에 무릎 꿇렸던 자신이 아니던가.
오칠의 메말랐던 감정에 불이 붙었다. 순간적이고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불길은 오칠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무감각 속에서도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
‘욕망이 일지 않으면, 의지로 하면 된다!’
오칠은 하초에 신경을 집중했다.
과거에 읽었던 성에 관련된 수많은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어찌 기운을 돋워야 하는지 기억해내고, 또 그렇게 기운을 돋우기 시작했다.
벌떡.
섰다!
[역시!]
오칠은 흡족하다는 듯 자신의 우람한 하초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기분은 여전하군.’
하초는 섰지만, 역시 기분은 나지 않았다.
[호호호호!]
여인들이 다시 음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전의 웃음도 요사스러웠지만 오칠의 하초가 일어선 순간, 그 웃음은 더욱 방탕하고 음란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래, 당신들은 힘으로 하면 안 되지.’
여인들에게 폭력은 금물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오칠에게 있어서 여인은 부드럽게 감싸주어야 하고, 포근히 안아주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리고 열락을 향해 힘을 합쳐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오칠은 과거 그렇게 배웠고, 또 그런 것이 남녀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믿고 있었다. 또 그 믿음을 바꿀 생각도 없었다.
‘어디 한 판 뛰어봅시다!’
욕망의 이끌림은 아니었다.
의지를 바탕으로 한 도전 정신이었다. 과거 온몸이 망신창이가 되었을 때, 자신을 성으로 농락한 여인들에 대한 복수 심리였다.
그때는 하초 외에는 어디 한 군데 움직일 수 없어서 멍하니 당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당하게 맞상대할 준비가 되었다. 지금 보이는 여인들이 수십 명이었지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수백이 나타난다 해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아~!]
오칠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인을 향해 손을 뻗어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인은 벌써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니, 오칠의 손길이 아니라도 이곳의 모든 여인들은 이미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오칠은 그런 여인들을 감각적으로 이끌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오칠과 여인들의 승부가 시작되었다.
우윳빛 호수는 여인들의 몸짓에 따라 크게 일렁였다. 수십 명의 여인들이 후끈한 열기를 발산하고, 그 중심에서 오칠은 현란하게 손을 움직였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네 명…….
오칠은 가장 말초적인 기능을 사용하지도 않고, 그저 손으로 열 명이 넘는 여인들을 열락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 혼절시켰다. 그러나 주위엔 아직 많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결코 손에만 만족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오칠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더할 수 없이 환한 미소로 여인들을 현혹했다. 아무런 감정도 없고 전혀 욕망이 일지 않았지만, 오칠은 마치 열기에 휩싸인 것처럼 후끈한 입김을 내뱉었다.
그리고 신체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 여인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아~!]
사방에서 한없이 올라가는 신음들이 터져나갔다.
한 명씩, 한 명씩 오칠의 기교에 굴복하고, 환희에 가득한 얼굴로 정신을 잃었다.
그러나 오칠은 지치지 않았다.
그는 괴물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능숙하게 움직였고, 여유로웠으며, 강인했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주변에는 어떤 여인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오칠에 굴복한 여인들은 나타날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끝인가?]
호수 위로 넘실거리던 안개가 사라져갔다.
코끝을 매혹시키던 기분 좋은 향도 엷어지고, 무릎에서 찰랑거리던 우윳빛 물결도 조금씩 수위가 낮아졌다.
주변은 메마른 대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대지 위로 파란빛과 붉은빛이 나타났다.
[왜 또 나타났냐?]
오칠은 일 년 만에 나타나 그의 앞에 선 파란빛에게 물었다.
어차피 붉은빛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파란빛은 일 년 전에 본 것처럼 작지 않았다. 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붉은빛과 같은 크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훌륭하군.]
파란빛이 말했다.
[뭐가?]
오칠은 무슨 소리인가 하여 되물었다.
[너는 칠 대 계승자인 나의 시험을 통과했다.]
[시험? 아~ 예전에 네가 하겠다는 시험! 그럼 지금까지 괴물이 나타나던 것이 네가 사주한 짓이란 말이냐?]
[맞다. 네가 교의 수장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으니까.]
[통과했다라…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처음 약속한 것처럼 네게 교를 수호하는 백팔 가문의 무공과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한 가지의 호교 무공을 전수해줄 것이다.]
[그리고 난 천하제일인이 된다, 이 말이지?]
[그렇다. 그리고 교를 이끌어 구세주께서 세상을 구원하고, 스펜타 마이뉴가 앙그라 마이뉴를 굴복시켜 아후라 마즈다의 영원한 왕국이 세워질 그날까지 신도들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오칠은 파란빛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난 싫다.]
[…….]
[난 네가 준다는 무공들이 필요 없어. 지금만 해도 난 강하다고. 그깟 것들 없어도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는데, 뭐 하러 그 귀찮은 짓을 하고, 세상에서 욕이나 먹는 집단의 수장이 되겠냐.]
[넌 계승자다.]
[이제는 싫다고. 나 그 계승자 자리 포기하겠어.]
[이미 늦었다. 넌 이미 나의 시험을 통과했고, 그것으로 너의 존재 가치는 결정된 것이다.]
오칠은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화가 난다느니, 짜증이 난다느니 하는 감정은 생기지 않았지만, 파란빛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었다.
[너의 그 시험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소림사에선 마인으로 찍혔고, 나 때문에 착한 노스님이 죽었어. 예전에는 생각이 부족해서 네 말을 듣고 좋아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그러니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마.]
오칠은 여차하면 주먹을 날려 부tu주겠다는 듯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
한데, 파란빛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뭔가 이전보다 그 빛이 더욱 밝아졌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붉은빛도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하는 거야?]
오칠은 뭔가 불안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소리쳤다.
파란빛이 더욱 강하게 빛났다.
붉은빛도 더욱 강하게 빛났다.
그리고 순간, 두 개의 빛이 하나로 모이며, 주변을 가득 메울 정도로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불꽃이었다.
겉은 붉은색으로, 속은 파란색으로 타올랐다.
그 불에서 피어오르는 빛 때문에 오칠은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뜨겁지 않았지만, 그 빛이 너무도 찬란하여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칠은 눈에 공력을 돋웠다. 그리고 불꽃을 똑바로 쳐다보며 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우우웅-
흔히 불문의 사자후(獅子吼)라 불리는 그런 고함이었고, 강력한 내공이 담겨 있어 주변을 크게 진동시켰다.
하지만 불꽃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오칠이 내지른 사자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커다란 울림이 순간 불꽃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주변을 가득 메워나갔다.
[때가 되었느니-!]
오칠의 신형이 뒤흔들렸다.
불꽃이 크게 일렁였다. 오칠까지 집어삼킬 것처럼 불길이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오칠의 몸을 휘어 감았다.
[으아~!]
오칠은 비명을 질렀다.
온몸을 뒤덮은 불길이 너무도 뜨거웠다. 조금 전까지는 전혀 열기를 느낄 수 없었는데, 막상 불길이 몸을 휘감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내공을 끌어올려 저항하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도저히 불길에서 벗어날 수도, 떨쳐낼 수도 없었다.
[번뇌를 끊어라-!]
불꽃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이 오칠의 내부를 흔들었다.
[오욕을 버리라-!]
마치 불문의 가르침 같은 소리였다.
[웃기지 마!]
오칠은 고통 중에도 버럭 소리쳤다.
재물을 탐내고(財欲), 먹을 걸 탐내고(食欲), 명성을 탐내고(名譽欲), 잠을 자고자 하고(睡眠欲), 여인을 취하고 싶은 것(性欲)을 버리면 세상을 무슨 맛으로 산단 말인가.
[칠정을 지우라-!]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을 지우라니.
그럼 인간이 되지 말란 말인가?
감정을 가지지 않은 바위가 되라는 말인가?
[웃기지 말라고!]
오칠은 저항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뭔가 공허해져 가고 있었다. 요 근래 느끼고 있던 무감각 이상의 허탈감이 오칠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시험을 통해 이미 너의 번뇌는 끊어졌다-!]
오칠은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 지독한 고통과 백지처럼 변해가고 있는 어떤 힘에 저항하느라 대꾸할 힘도 없었다.
[받으라-!]
불은 더욱 크게 타오르고, 오칠의 정신은 황폐해졌다.
[나의 기억이 너를 더욱 강하게 할지니-!]
공허해가던 오칠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칠은 계속 저항하면서도, 점점 굴복되는 참담한 기분에 빠져 들어갔다.
[이제부터 네가 배화교의 팔 대 교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