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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39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5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39화

파계 2권 - 14화

 

 

 

 

 

“…….”

 

눈을 뜨고도 오칠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지만, 그걸 감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방금 전까지 그가 있었던 꿈속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된 이 갑작스런 변화에, 일 년 만에 돌아와 버린 이성을 현실에 적응시키기 위해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이 지독한 냄새는 뭐야?”

 

하지만 누워 있는 것도 그리 길지 않았다.

 

오칠은 더 오래 누워있고 싶었지만, 그가 누워 있는 곳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겨와 그럴 수가 없었다.

 

벌떡.

 

오칠은 빠르게 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이 누워 있던 곳에서 내려왔다.

 

철렁.

 

“어?”

 

오칠은 자신의 발목에 달려 덜렁거리는 쇠줄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단단한 것이 어떻게 풀렸고, 왜 한 쪽은 그대로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칠의 신경은 곧 그가 뛰어내린 곳으로 향했다.

 

“이놈이었군.”

 

엄청나게 큰 곰이었다.

 

꿈속에서 파란빛이 보여주었던 거울 속의 그 곰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이 되어 오칠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킁킁.

 

“냄새 한번 지독하네.”

 

죽은 지 얼마나 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 썩은 내로 짐작해볼 때 적어도 이틀은 지났을 것이 분명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오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꿈속에서 보았던 사냥꾼들의 시체를 발견했다.

 

“후~ 역시 진짜였군.”

 

꿈속에서 보았던 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자신이 그렇게 미친 듯이 사람을 죽이고, 그 피를 얼굴에 묻히며 괴성을 질러대는 모습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오칠의 바람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하긴 세상은 늘 내 희망을 무시했지.”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오칠은 이를 악물며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절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건 그렇고…….”

 

오칠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저 앞에 있는 나무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우웅! 펑!

 

커다란 나무 한쪽이 터져나가며 큼직한 구멍이 생겨났다.

 

“좋아!”

 

꿈속에서 펼쳤던 백보신권이 현실에서도 가능하게 되었다.

 

꿈속에서 내공을 사용하던 것이 그저 꿈이었기 때문이라면, 오칠은 정말 미쳐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꿈속에서처럼 온몸에 내공이 가득했다.

 

그 대단하다는 백보신권을 펼쳤는데, 내공의 부족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는 것도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 내공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유가 뭐든 상관없다. 강해졌으면 그뿐이야!”

 

오칠은 환호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내 의지로 한 일은 아니지만 미안하게 됐소.”

 

오칠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상태에서 자신이 살해한 사냥꾼들의 시체와 그 잔재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강력한 장력을 뿜어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체들을 몰아넣어 흙으로 덮었다.

 

“난 중도 아니었고 중이고 싶지도 않지만, 이것밖에 해줄 것이 없소.”

 

오칠은 염불을 자그맣게 읊조리고 사냥꾼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이제는 뭘 해야 하나?”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또 미쳐버리기 전에 내 몸에 있는 마기를 없애버려야지.”

 

의식 저편에 틀어박혀 있다가 깨어난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니던가.

 

그래서 오칠은 마기를 없앨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 강해지는 거지!”

 

파란빛의 말대로라면 착한 것을 생각(善思)하고, 착한 말(善言)을 하고, 착한 행동(善行)을 하는 것이 아리만이라는 마신의 기운에서 멀어지는 방법이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마기가 사라질 것이라 믿기에는 역시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보다 분명하게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무공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차피 무공수련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현재 오칠이 알고 있는 무공이라곤 소림 무공뿐이었다.

 

그리고 소림 무공 중에는 척마의 기운을 가진 것들이 많을 것이다. 직접 겪은 것은 노승이 가르쳐준 십팔나한공밖에 없었지만, 그 외에 다른 심법들 중에도 분명 그만한 효능이 있을 것이다.

 

“우선 반야신공(般若神功)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대승반야선공(大乘般若禪功), 불광대승신공(佛光大乘神功), 대승범천신공(大乘凡天神功),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 음, 우선 어떤 심법이 척마의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으니까, 하나씩 차례로 모두 수련해보는 거야.”

 

오칠은 마음을 정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어느 한곳을 향해 걸어갔다.

 

철렁. 철렁. 철렁. 철렁.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이 많은 오칠의 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 그리고 언제고 발목에 채워진 쇠줄을 끊어버려야겠다 생각하며 조용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심법을 수련할 만한 장소를 찾아 움직여나갔다.

 

 

 

 

 

제19장. 일단은 교주가 되었다

 

 

 

 

 

오칠은 정신을 차리고 마기를 제어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소림 무공을 수련하는 데에 온 힘을 다 기울였다.

 

마기를 제어할 것이라 기대한 심법들과 그동안 그 위력을 정확히 표출시키지 못했던 권, 장, 수, 장 등을 망라한 무공들, 그리고 기타 외워두었던 무공들까지 오칠은 미친 듯이 무공 수련에 전념했다. 그리고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너무도 빠르게 무공을 습득해 나갔다.

 

헌데, 어찌 홀로 수련을 하면서 그렇게 빠르고, 쉽게 무공을 익혀나갈 수 있는 것일까?

 

소림의 무승들조차 평생 동안 습득한 무공이 열 가지를 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현 최고의 고수도 마흔세 개를 익혔을 뿐이라는, 난해하고 익히기 어려운 소림 무공이다.

 

하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오칠의 신체가 무공을 익히기에 더할 수 없이 완벽한 상태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영물, 영초를 복용하면서 기혈과 근육 등이 단단하게 만들어졌고, 마기에 물들어 그 나머지 기운이 몸 전체에 퍼졌으며, 각성까지 일어난 신체는 한계까지 이르는 극한의 상태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칠이 일 년 동안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육체는 맹수의 그것처럼 육체를 단련시켰다. 본능과 파괴의 욕구만이 있어서 생존에 초점을 맞추어 움직이다 보니, 필요 없는 군살은 조금도 없이 가장 이상적인 근육만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결코 인간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오칠에게는 보다 완벽한 육체를 만들게 된 일 년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오칠의 몸에는 노승이 전해준 측량할 수도 없는 내공이 있었다.

 

내공이란 생명력의 또 다른 모습.

 

육체는 막대한 내공을 담게 되면서 그에 맞게 변화하고, 내공 또한 보다 원활하게 활동하기 위해 육체를 변화시키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오칠의 전신은 가히 환골탈태에 이른 것과 다름없이 전 기혈이 타통 되어 있고, 생각을 하면 운기가 되는 엄청난 경지에 올라서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렇게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심법을 수련하고, 무공을 습득해나가면서도 오칠은 또 다른 종류의 무공도 익히게 되었다.

 

경공총람(輕功總覽).

 

정신을 차린 오칠이 자신의 품안에서 발견한 비급이었다.

 

오칠은 곧 그 비급이 일 년 전에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자신을 인질로 삼았던 복면인의 품에서 훔쳐온 두 권의 책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책이 일 년 동안이나 고스란히 품속에 남아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물론 책의 상태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용을 식별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 정도일까.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양피지에 쓰여 있던 페르시아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이었다.

 

하나, 그 책은 경공총람과 달리 기름종이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글씨의 대부분을 알아볼 수 없었고, 그래서 오칠은 미련 없이 삼매진화로 태워버렸다.

 

약간의 궁금한 부분은 있었지만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해석하기란 불가능했고, 더구나 양피지 때처럼 곤욕을 치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오칠은 삼매진화라는 강력한 불꽃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엄청난 경지에 이르렀다는 기쁨 때문에, 그 책에 대한 궁금증을 순식간에 지워버릴 수 있었다.

 

어쨌든, 소림 무공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습득하면서 오칠은 경공총람의 무공까지 탐독하기 시작했다.

 

‘경공이란, 몸을 가볍게 해서 약간의 진기로 몸을 빨리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경공총람은 여러 잡스러운 경신법이 총 망라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칠은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서, 그 많은 경신법들 중에 단 세 가지만이 자신에게 쓸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붕장천비(大鵬長天飛), 환영귀보(幻影鬼步), 귀영백변신법(鬼影百變身法).

 

그 외에 다른 잡스러운 경신법은 엄청난 내공을 가진 오칠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었고, 혹은 소림 무공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한 줌의 진기만으로 십 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대붕장천비, 순식간에 수십 개의 환영을 만들어낸다는 환영귀보, 그림자조차 볼 수 없게 은밀히 움직일 수 있다는 귀영백변신법.

 

고작 세 가지뿐이었지만, 그 진기 운용의 오묘함과 난해함을 풀기는 결코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칠은 오히려 소림 무공보다 더욱 익히기 어렵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오칠은 결국 그 세 가지의 경신법조차 습득했다.

 

어떻게?

 

이 또한 간단한 이유였다.

 

오칠이 머리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괴이하게도 몸이 저절로 경신법을 익혀버린 것이다. 물론 하루 이틀 사이에 뚝딱 익혀버린 것은 아니었다.

 

안 되면서도 끊임없이 진기를 운용하고, 안 되면서도 나무 위를 달리고, 안 되면서도 절벽을 타고 오르고, 안 되면서도 거친 계곡의 수면 위를 질주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세 가지의 경신법을 완성시킨 것이다.

 

경공총람의 주인인 만리신투조차 그 오의를 완벽히 깨치지 못했고, 십수 년을 노력해도 귀영백변신법은 그 기초에 머물고 있는 상태인데, 오칠은 마치 그를 비웃듯 완벽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반년여 만에 습득해버린 것이다.

 

‘뭐 어때!’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안 되면, 그러면 어떤가.

 

다른 몸도 아닌, 자신의 몸이 익힌 것이고, 그래서 훌륭하게 펼칠 수 있으면 그뿐이라고 오칠은 편하게 생각하고 결론을 지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오칠은 심법을 수련하고, 무공을 수련하고, 경신법을 수련하면서 어느덧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 * *

 

 

 

 

 

또다시 어둠이 왔다.

 

당연히 현실 속의 어둠이 아니라, 악몽이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일 년 전처럼 겁나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그냥 무감각했다.

 

이번에는 어떤 괴물이 나올까, 이번에는 어떤 무기를 들고 나타날까,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숫자로 몰려올까.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희한하네.]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서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하고, 심법도 수련하고, 경신법까지 익혀나갈 때쯤인 반년 정도 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기대감으로 가슴 벅찼다.

 

오늘 밤은 어떤 무공으로 괴물들을 상대할까, 어떤 신공으로 이 막대한 내공을 뿜어낼까, 어떻게 피해서 괴물들을 박살낼까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괴물들은 어느새 이 밀림과 같은 숲 속에서 홀로 외로이 지내는 오칠의 유일한 낙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오칠의 무공을 더욱 발전시키는 완벽한 비무 상대였다.

 

아니,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지고 빈틈을 보이면 다리를 자르려 하고 팔이 찢겨나가도록 곤봉을 휘둘러대고 있으니, 비무를 수백, 수천 번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실전 상대였다. 그래서 오칠이 더욱 빠르게 무공을 습득하고, 더욱더 완성된 경지에 올라서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반년이 흘렀을 때쯤부터였다.

 

악몽이 시작되어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았다. 어떻게 싸울까, 하는 기대감도 없었다. 그저 익히고, 수련하고 밤이 되어 꿈을 꾸면 괴물이 나타나나 보다 하며 싸울 뿐이었다.

 

그저 어떤 놈이 나올까, 어떤 무기를 들고 나올까, 얼마나 많은 숫자로 덤빌까, 하는 건조한 생각만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의 메마름은 현실에까지 이어졌다.

 

예전에는 어떤 동물을 잡아먹을까, 어디서 수련을 할까 등등 잡스러운 고민도 많이 하고, 나름의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했었다. 그런데 악몽에 무감각해지면서 그런 고민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냥 일상화된 것처럼 무공을 수련하고, 심법을 수련하고, 경신법을 수련하다가 배가 고프면 사냥을 했고, 몸에서 냄새가 나면 물속에 들어가 씻었으며, 그러다 피곤하면 다시 잠을 자는 것이다.

 

[왜 이럴까?]

 

모르겠다.

 

오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런 생각 자체도 의미 없다 생각하고 있었다. 옛날부터 고민을 꺼려하고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처럼 무감각한 느낌은 오칠에게도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화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예전이었다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조바심을 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왜 안 오는지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