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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38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38화

파계 2권 - 13화

 

 

 

 

 

‘광기에 물들어 있었소. 눈은 핏빛처럼 빛나고, 온몸에서는 눈에 확연하게 보일 정도의 살기가 꿈틀거렸소. 사흘 전의 그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려 했었소.’

 

 

 

 

 

방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오칠은 전혀 믿지 않았었다. 약간 미친놈처럼 날뛰었겠지, 하는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거 아주 피에 환장한 새끼잖아!]

 

거울 속의 모습이 오칠,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너무도 화가 나서 파란빛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야! 누가 나를 저렇게 만든 거야!]

 

[바로 너다.]

 

[무슨 헛소리야! 난 나쁜 놈이었지만, 저렇게 머리가 돌아버린 놈은 절대 아니었어! 너지! 네가 나를 저렇게 만든 거지!]

 

오칠은 벌떡 일어났다.

 

그냥 이곳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마음 편했던 오칠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저따위로 행동한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크크크크!]

 

또 붉은빛이 괴소를 흘린다.

 

짜증이 와락 치밀어 올랐고, 오칠은 붉은빛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버럭 소리쳤다.

 

[이 자식아, 넌 아까부터 왜 그렇게 웃고 지랄이야! 그 아가리 안 닥쳐!]

 

[크크크크!]

 

하지만 붉은빛은 괴소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붉은빛이 크게 일렁일 정도로 괴소는 더욱 커져갔다.

 

[너 이리 와! 한 판 붙어보자!]

 

오칠은 붉은빛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이상하게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파란빛과 붉은빛이 있는 곳은 오칠로부터 고작 오 장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오칠은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야, 이리 안 와! 이런 술수나 쓰고, 나하고 싸우려니까 겁나냐! 당장 이리 와, 개자식아! 이리 오라고!]

 

순간,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붉은빛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오칠의 말에 화가 난 걸까?

 

아니었다. 파란빛과 붉은빛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오칠이 서 있는 주변의 어둠이 바람에 밀리듯 사라지더니, 주위는 순식간에 눈에 뒤덮여 있는 커다란 도시로 변해버렸다.

 

[이건 또 뭐야……?]

 

대로 한복판에 선 오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상가에서 물건을 팔고, 저 멀리엔 마차도 달리고 있었다.

 

[꽤나 익숙한 느낌인데?]

 

오칠은 언젠가 이 비슷한 광경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저 앞에서 걸어오는 노인을 보고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늙은이잖아!]

 

등봉(登封)에서 도끼파 두목 장고동에게 살해당한 늙은이였다.

 

그런데 그 늙은이가 지금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곳이 처음 늙은이를 만난 산서성의 태원(太原)이기 때문이었다.

 

늙은이의 모습도 죽기 직전의 초췌한 모습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생기가 있던 구 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뭐 하자는 수작이야!]

 

오칠은 주위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하나, 어디서도 대답 같은 것은 들려오지 않았다.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니, 마치 자신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어? 저건 나네.]

 

주위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오칠의 시선은 절로 늙은이에게 향했다.

 

늙은이가 길의 구석진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는데, 그곳에 열 살 때의 오칠이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여기의 모든 것은 내가 처음 늙은이하고 만날 때를 재현한 거구나!]

 

오칠은 왜, 누가 이런 환상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리 즐겁지 않았던 과거의 추억을 보자 가슴 한쪽이 쓰리고 아팠다.

 

[그래도 늙은이를 만나서 운이 좋았던 거지.]

 

열 살의 오칠은 허기와 추위에 지쳐 죽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오칠에게 손을 내민 늙은이는 그 이후의 짜증나는 행태와는 별개로 무척이나 고마운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래서 오칠이 그의 복수를 하겠다고 도끼파의 장고동을 죽인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외학전에 가게 되고, 소림사에 가게 되고, 결국 마인으로 찍혀서 지금처럼 환상이나 보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늙은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가끔씩 괜한 짓을 했다 싶은 생각도 했지만, 지금 늙은이를 보니 오히려 그가 무척이나 그립기까지 했다.

 

[역시 어떤 괴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고, 애틋한 추억이 되기 마련인가?]

 

오칠은 문득 자신도 참 많이 성장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어린 오칠을 품에 안고 다독이던 늙은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오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는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여?]

 

대로에 있는 누구도 오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늙은이는 손짓까지 하며 부르고 있으니, 오칠로서는 기분이 무척이나 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칠은 저도 모르게 이미 그쪽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진짜는 아니더라도, 예전의 그 어느 때를 떠올리며 늙은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오칠은 늙은이가 부르니, 그에 응했을 뿐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습니까?]

 

오칠은 늙은이의 두 장 앞에 서서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늙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품에 안고 있는 오칠을 가리키고, 다시 그들을 보고 있는 다 큰 오칠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인 듯하다.

 

[…….]

 

한데, 늙은이의 소리 없는 대답을 듣고는 오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너 누구야?]

 

늙은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오칠은 그런 늙은이의 행동에 표정이 더욱 딱딱하고, 차갑게 변했다.

 

[넌 늙은이가 아냐. 늙은이는 그렇게 웃은 적이 없어. 넌 누구야!]

 

오칠의 고함에 늙은이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어린 오칠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어린 오칠은 차가운 바닥에 떨어지며 충격을 입었을 텐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오칠의 얼굴은 더할 수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 마치 죽은 시체처럼 말이다.

 

[크크크!]

 

오칠이 어린 오칠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데, 늙은이가 웃었다.

 

결코 인간의 웃음이라고 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리고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뭔가 피부 안쪽이 부풀어 오르고, 얇은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 전체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너……!]

 

오칠은 변화하는 늙은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늙은이는 역시 진짜 늙은이가 아니었다. 단지 늙은이의 탈을 쓴 괴물일 뿐이었다. 소림사 삼 년의 생활 동안 밤마다 나타나 오칠을 공격하던, 눈이 하나에 뿔이 두 개 달린 그 괴물이었다.

 

[크크크크!]

 

괴물은 비웃고 있었다.

 

자신을 늙은이라 생각했던 오칠이 참으로 바보 같다는 듯, 흉측한 이빨이 다 드러나도록 커다랗게 웃고 있었다.

 

[너, 이 개자식!]

 

오칠은 너무 화가 났다.

 

괴물이 그의 기억 중 하나를 끄집어내서, 그를 조롱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 그를 분노케 하고 있었다.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가지고 놀 수는 없었다. 오칠은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절대 이 분노를 그냥 참을 수 없었다.

 

[으아-!]

 

오칠은 고함을 버럭 지르며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우웅- 퍽!

 

오칠의 주먹 끝에서 쏘아져 나간 강력한 무형의 기운이 괴물의 가슴을 격타하고, 괴물은 가슴이 완전히 함몰되어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라?]

 

오칠은 자신의 주먹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금 오칠이 펼친 것은 소림의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다. 그저 이론적으로만 알고, 동작으로는 펼칠 수 있었지만, 전혀 그만한 위력을 내지 못하고 있던 무공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된 것이다.

 

백보신권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강력한 경력을 뿜어냈고, 가슴이 함몰되어 날아간 괴물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건가?]

 

어떻게?

 

그리고 언제 자신의 몸에 내공이란 것이 있었던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도 바라마지않던 내공이 생겼고, 지금 이렇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하하하!]

 

오칠은 진정 기뻐서 웃었다.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들이 방금 오칠에게 맞아 죽었던 괴물처럼, 사람의 껍질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흡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좋아, 한번 싸워보자!]

 

힘이 생겼으니 오칠은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

 

온몸에서 불끈불끈 생겨나고 있는 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내공을 마음껏 끌어올려, 그동안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소림 무공을 펼쳐보고 싶었다.

 

[크아!]

 

가장 가까이 있는 괴물이, 손에 든 가시가 박힌 곤봉을 들고 괴성을 질렀다.

 

우웅-

 

그런 괴물의 얼굴을 향해 오칠은 다시 한 번 백보신권을 날렸다.

 

퍽!

 

괴물의 얼굴이 박살나며, 사방으로 그 잔재가 흩뿌려졌다.

 

[좋아!]

 

오칠은 자신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어느새 수십으로 불어난 괴물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덤벼!]

 

퍽! 퍼퍼퍼퍽! 퍼퍽!

 

관음청강수(觀音靑剛手), 쇄비장(碎碑掌), 백련신권(百鍊神拳), 광한수(廣寒袖),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일지선공(一指禪功) 금룡십이해(金龍十二解), 관음십팔족(觀音十八足), 반선수(盤禪袖)…….

 

오칠은 온몸으로 소림 무공을 발산했다.

 

주먹이 날아가고, 발이 움직이는 곳에는 광폭한 경력이 폭발하고, 사방에서 몰려오는 괴물들은 오칠의 근처에도 채 다가오지 못하고 몸이 박살나며 나자빠졌다.

 

[하하하하!]

 

오칠은 지치지도 않았다.

 

괴물들의 숫자도 끝이 없었지만, 오칠의 체력 역시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퍼퍼퍽! 퍼퍽! 퍼퍼퍼퍼퍼퍽!

 

오칠의 주위로 뿌연 막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손과 발에서 뿜어지는 경력이, 마치 절정의 검객이 검막을 펼친 것처럼 주변을 가득 메운 것이다.

 

그렇게 영물, 영초의 기운과 노승에 의해 주입된 측량할 수도 없는 엄청난 내공이 오칠의 몸에서 줄기차게 뻗어 나와 오칠을 더욱 막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라? 더 없어?]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더 이상 살아 있는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아무리 악다구니를 쳐도 더 이상 괴물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쉽잖아!]

 

오칠은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파란빛이 듣기를, 붉은빛이 그 소리를 듣기를 바라며 커다랗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오칠의 외침에 반응하는 존재가 없었다.

 

[예전에는 마지막에 여자들이 꼭 나왔는데 지금은 나타나지 않네.]

 

과거 악몽에서는 괴물들에게 박살난 오칠의 몸을 탐하기 위해 여인들이 나타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들의 옷자락 하나 볼 수가 없었다.

 

[겁을 먹은 건가?]

 

그녀들이 나타나면 크게 혼을 내주려고 생각했던 오칠은 아쉽기 그지없었다.

 

사실 꿈일지라도, 오랜만에 여인의 탐스러운 육체를 탐해보겠다는 나름의 기대도 있었다.

 

[어?]

 

갑자기 오칠의 눈앞이 흐려졌다.

 

그의 주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버럭 소리쳤지만, 오칠의 음성조차 산산이 흩어져 멀리 퍼져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칠의 의식은 현실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