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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37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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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37화

파계 2권 - 12화

 

 

 

 

 

퍽!

 

“……!”

 

둔탁한 소리였다.

 

뛰어난 칼은 아니지만, 분명 살점 정도는 단번에 잘라버릴 수 있는 박도로 등을 내리쳤는데, 소리가 이리 둔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박도를 내리친 막산일의 얼굴은 짙은 불신에 물들었다. 그러나 더욱 그를 당혹시키는 것은, 등에 틀어박힌 박도가 아무리 잡아당겨도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근육 때문에?’

 

야수가 인간 같지 않아 보여도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있었고, 그래서 그 몸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칼이 박힌 채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칼이 꽉 물려서 나오지 못할 정도로 등에 엄청난 근육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퍽!

 

“윽!”

 

야수가 등 뒤로 휘두른 팔에 가슴을 얻어맞은 막산일은 이 장여나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크크!”

 

야수가 웃었다.

 

휙 하고 돌아선 야수는 겁에 질려 있는 사냥꾼들을 향해 와락 덮쳐들어갔다.

 

“으아!”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며, 사냥꾼은 자신을 덮쳐오는 야수를 향해 창을 찔렀다.

 

텅!

 

하지만 파리를 쫓아내듯 가볍게 휘두른 야수의 손짓에 창날은 한쪽으로 튕겨나갔고, 비어버린 공간으로 야수의 갈고리 같은 손이 비집고 들어갔다.

 

푹!

 

“……!”

 

야수의 손에 가슴이 꿰뚫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사냥꾼은, 떡하니 벌린 입으로 핏물을 꾸역꾸역 쏟아냈다.

 

야수는 그런 사냥꾼의 얼굴을 손으로 움켜잡았다가 뒤로 밀어냈다.

 

풀썩.

 

시체가 되어버린 사냥꾼은 땅바닥으로 무너지고, 어느새 야수의 신형은 또 다른 사냥꾼을 향해 뛰어오르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야수가 덮쳐들고 있는 사냥꾼은 그물을 던진 사내였다.

 

그의 손엔 창이 있었고, 인간 같지 않은 도약력으로 허공을 뛰어넘어 오는 야수를 향해 창을 찔렀지만, 그것이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와줘!”

 

혼자서는 야수를 막을 수 없었다.

 

몇 명이 같이 한다고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머지 십여 명이 한꺼번에 싸운다면 최소한의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사내의 외침에 호응하는 사냥꾼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질려 도망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새끼들아, 도와달라고-!”

 

사냥꾼들이 무리를 이루는 요건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얼마나 결속을 잘 하는지를 점을 높이 친다.

 

기술만 있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동물도 있지만, 용기와 배짱이 있어야만 잡을 수 있는 맹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맹수를 상대할 때, 동료를 두고 도망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또한 사냥꾼들은 그걸 수치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근방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냥꾼들이 그 수치스런 행동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할 말은 있었다. 지금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맹수가 아닌 사람의 탈을 쓴 야수였고, 도저히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었으니까.

 

콰직!

 

“악!”

 

창대가 부러지고, 사내의 어깨가 야수의 손에 잡혀 뜯겨져나갔다.

 

그리고 먼저 죽은 사냥꾼처럼 오른쪽 가슴이 꿰뚫리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역시 광산에 오는 것이 아니었어…….’

 

사내는 점점 힘이 빠지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얼굴을 땅에 박았다.

 

하지만 사내의 숨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도움을 저버리고 도망치는 동료들이 야수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죽기 전에 모두 볼 수 있었다.

 

‘제대로 도망치기나 하지…….’

 

사냥꾼들은 팔이 뜯겨나가고, 머리가 통째로 부서지고, 등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죽임을 당했다.

 

제일 멀리 도망친 사냥꾼도, 서너 장을 단번에 뛰어넘어 덮쳐드는 야수에게 잡혀 몸이 두 동강나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촌각에 불과했다.

 

십여 명이나 되는 사냥꾼들이 촌각에 불과한 시간 동안 모두 살육을 당한 것이다.

 

“크카카카카!”

 

야수는 광소를 터트렸다.

 

그의 양손을 흠뻑 적신 핏물로 얼굴을 문지르며 즐거운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아직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타탁!

 

야수의 신형은 몇 번의 도약으로 아직 살아 있는 존재에게 다가섰다.

 

“으…….”

 

막산일이었다.

 

나무 한편에 기대어 있는 그의 가슴은 부서져서 움푹 들어갔고, 신음이 나오는 입술 사이로는 조금씩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수는 그런 막산일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순간, 연민과 동정 비슷한 어떤 감정이 얼굴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런 감정에 젖어든 야수의 얼굴은 인간처럼 보였다.

 

오칠.

 

야수는 작은 감정의 변화로 오칠이 되었다.

 

하나, 이성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잠시 잠깐 감정의 혼란을 겪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크……!”

 

오칠은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움켜잡고 신음을 내질렀다. 그러나 곧 고개를 들고, 다시 붉은빛을 번득이는 야수로 변해 그의 발치 아래 있는 막산일을 내려다보았다.

 

철컹.

 

야수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는 발을 들어 막산일의 얼굴에 올려놓았다.

 

콰직!

 

야수는 수박 깨지듯 부서져버린 막산일의 머리에서 발을 치웠다.

 

“크크크!”

 

재미있다는 듯,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야수는 곰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그 몸을 움켜잡아 가볍게 반대로 뒤집었다,

 

쿵-

 

커다란 곰의 신형이 휙 하고 뒤집어지며 육중한 울림을 터트렸다.

 

야수는 그에 개의치 않고 검은 털이 수북하게 난 곰의 등에 올라가 누웠다. 그리고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제18장. 열 받아서 정신을 차리다

 

 

 

 

 

오칠은 잔뜩 웅크린 채로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구석진 곳에 앉아서 멍하니 자신의 발끝만 쳐다보았다.

 

이때, 파란빛이 나타나고, 붉은빛이 뒤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리만을 선택한 것이냐?]

 

파란빛이 물었다.

 

오칠은 고개를 들어 파란빛을 응시했다.

 

[너 좀 작아진 거 같다?]

 

파란 빛을 본 지가 정말 오래되었다.

 

아마도 사 년 정도는 되었겠지.

 

그런데 파란빛은 그 크기가 너무도 작아져 있었다. 그리고 반면에 뒤에 있는 붉은빛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마치 파란빛의 기운을 붉은빛이 빨아들여 제 몸집을 불린 것처럼 말이다.

 

[너 때문이다.]

 

[나 때문에? 뭐가?]

 

[네가 아리만으로 기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칠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리만으로 기울어간다고? 근데 아리만이 뭐야?]

 

예전부터 궁금해 하던 것이다.

 

[악신이다.]

 

[아~ 아리만이 악신이었군. 그럼 아후라 마즈다는?]

 

[선신이며, 최고의 창조신이다.]

 

[그럼 넌 아후라 마즈다의 편이냐?]

 

[나는 누구의 편이 아니다. 그저 아후라 마즈다의 의지를 받들고 있을 뿐이다.]

 

[그럼 저 붉은빛은 아리만의 의지를 받드는 거고?]

 

[그렇다.]

 

[그러니까 내가 악신 쪽으로 기울어서 저 붉은빛이 커지고, 넌 작아지고 있다는 거냐?]

 

[맞다.]

 

[하하하하!]

 

오칠은 크게 웃었다.

 

웃기는 상황이었다. 자신은 일 년이 넘도록 그냥 여기에 가만히 있었다. 육체의 안쪽, 의지를 저버린 의식 안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일 년이 다되도록 가만히 있는데, 무슨 아리만 쪽으로 기울고 있단 말인가.

 

[내가 왜 악신 쪽으로 기운다고 하는 거냐?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난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그것이 바로 네가 아리만으로 기울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교는 착한 것을 생각(善思)하고, 착한 말(善言)을 하고, 착한 행동(善行)을 하는 것을 의지로 삼고 있다.]

 

[그게 뭐야! 선악의 선택은 스스로 하는 거라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을 시켜도 되는 거냐? 그리고 네가 말하는 교가 무슨 교야? 도대체 내가 무슨 교의 계승자가 된 거지?]

 

[배화교다.

 

[배화교? 아! 그거 마교 말하는 거 아니야?]

 

[세상에선 그렇게 말을 하지.]

 

오칠은 소림사가 그렇게 자신을 속박하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생각했다.

 

물론 소림사도 자신이 배화교와 연관된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림에서 악으로 규정짓고 있는 배화교의, 그러니까 마교의 계승자라면 그 어떤 자라도 척살 대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그 의지란 것 중에 무얼 어겼다는 거지? 난 여기에서 멍하니 있었으니 아무 생각도 안 했고, 대화할 사람도 없어서 말도 한 적이 없었고, 그리고 의식만 있는 상태라서 아무 행동도 취한 적이 없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그 세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어겼다는 거냐고?]

 

[크크크크!]

 

이때, 가만히 있던 붉은빛이 괴소를 흘렸다.

 

오칠은 그 웃음소리가 신경에 거슬렸지만 그냥 참았다. 괜히 놈을 건드려봤자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세 가지 다 어겼다.]

 

[뭐?]

 

[생각하지 않는 것 자체가 죄고, 말하지 않는 것도 죄다. 타의에 의해 강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감추는 것 자체가 죄인 것이다.]

 

[뭔 소리야?]

 

[그리고 지금 너의 행동은 마인과 다를 것이 없다.]

 

난 여기에 그냥 있었다니까! 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너는 스스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렇군. 너는 너의 모습을 보지 않고 있었군.]

 

파란빛은 얼굴이 없었지만, 오칠은 왠지 파란빛이 비웃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럼 보여주지, 네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말과 함께 파란빛이 순간 밝은 광채를 뿌렸다.

 

그리고 커다란 거울 같은 것이 오칠의 앞에 나타나더니 뭔가 풍경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숲이네?]

 

[지금 네가 살고 있는 곳이다.]

 

오칠은 흥미를 느끼며 자세히 거울 안을 응시했다.

 

거울 안에 사람이 보였다. 그 모습은 지저분했지만,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잖아!]

 

[그래, 지금 너는 바로 저 모습을 하고 있다.]

 

[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구나.]

 

거울 안의 모습은 사 년 전, 소림사에서 실혼인으로 연기하기 전의 오칠의 모습과 같았다.

 

해골 같은 얼굴은 보기 좋게 살이 올라 이전의 아름다운 사내의 얼굴이 되었고 , 빼빼 말랐던 몸엔 튼튼하고 강인해 보이면서 잘빠진 근육이 형성되어 있었다.

 

몰골이 조금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그렇지, 보고 있는 오칠이 감탄할 정도로 오칠의 모습은 매우 훌륭하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근데 내가 왜 붉은 옷을 입고 있어?]

 

[피에 물든 것이다.]

 

[피? 옷이 왜 피에 물들어?]

 

오칠은 파란빛이 대답해주길 기다렸다.

 

[크크크크!]

 

이때, 다시 붉은빛이 괴소를 흘렸다.

 

오칠은 그 웃음소리가 아까보다 더 신경에 거슬렸지만, 이번에도 꾹 참았다. 게다가 거울 속에서 오칠 자신이 괴이한 짓거리를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신경이 쏠리기 시작했다.

 

[저거 뭐야? 왜 생으로 고기를 먹고 있는 거지?]

 

거울 속의 오칠은 처음 본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사슴을 쫓아가 목을 부러트리더니, 손으로 뱃가죽을 갈라서 그 안으로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딱 봐도 사슴의 속살을 입으로 뜯어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오칠은 거울 속의 광경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때, 갑자기 거울 속의 배경이 뒤바뀌고, 웬 십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사냥꾼이네?]

 

왜 사냥꾼들의 모습이 보이는 걸까?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이번엔 곰의 뱃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오칠이 사냥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보고 있기만 해도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내가 왜 저렇게 미쳐 있는 거야!]

 

문득 사 년 전, 소림사 지하광장에서 방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