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35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35화
파계 2권 - 10화
퍽!
여지없이 둔탁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오칠은 이번엔 뒤로 날아가지도, 땅으로 나뒹굴지도 않았다. 분명 가슴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을 텐데도, 멧돼지의 커다란 대가리를 부둥켜안고서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꾸으으!
멧돼지의 듣기 거북한 울음소리가 주변을 메아리쳤다.
머리를 뒤흔들고, 밀어내는 뒷다리엔 근육이 꿈틀거렸다. 이런 적이 없었다는 듯, 그래서 너무 화가 난다는 듯 멧돼지는 털을 곤두세울 만큼 사납게 울부짖으며 오칠을 밀어붙이려 용을 썼다.
그러나 오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찌 빼빼 말라 아무 힘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오칠이 이처럼 굳건하게 버티어낼 수 있단 말인가.
“크으!”
순간, 오칠의 입에서 음침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힘을 쓰기 시작하겠다는 신호와 같았고, 곧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꾸으으!
한결 기세가 죽은 울음과 함께 멧돼지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턱!
오칠의 오른손이 멧돼지의 한쪽 어금니를 틀어잡았다.
뚝!
굵고 날카로운 어금니는 너무도 쉽게 부러져나갔다.
그리고 오칠은 나머지 어금니도 틀어잡아서는 단번에 부러트려버렸다.
꾸으으!
어금니가 부러졌다고 해서 멧돼지가 고통을 느낄 리는 없었다.
그러나 오칠이 대가리를 부여잡고 짓누르자, 멧돼지의 커다란 거체는 조금씩 바닥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으드득!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기음이 들리고, 멧돼지의 아가리에선 고통에 신음하는 울음이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오칠의 손에 짓눌리는 멧돼지의 피부가 찢겨나가고, 그 커다란 몸이 만근거석에 짓눌리듯 바닥에 밀착되어 바동거렸다.
“크아~!”
순간, 오칠의 입에서 엄청난 괴성이 터지고, 멧돼지를 짓누르던 양손이 피부를 뚫고 살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꾸으으!
멧돼지는 지독한 고통에 신음했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오칠의 손이 근육을 끊고, 살을 찢으며 척추 어느 한 부분을 움켜잡았다.
우두둑!
일순간에 척추가 부러지고, 그 중심을 기점으로 멧돼지의 몸이 찢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둑! 우둑! 와지지직!
근육으로 똘똘 뭉쳐 단단하기 그지없던 멧돼지의 거체가 단번에 양쪽으로 뜯겨나갔다.
“크아~!”
오칠은 양쪽으로 갈라진 멧돼지의 커다란 몸통을 위로 치켜들며 포효했다.
내장과 핏물이 오칠의 전신으로 쏟아져 내렸다.
“크카카카카~!”
온통 핏물에 물든 오칠은 통쾌하게 웃었다.
이성도 없고, 심지어 광기를 일으키는 아리만의 존재감조차 망각한 듯, 마기에 뒤덮인 오칠은 그저 야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야수가 된 오칠은 고깃덩이로 변한 멧돼지의 몸통에 얼굴을 파묻고 고기를 뜯어먹었다. 뜨끈한 핏물도 들이켰다.
그렇게 오칠은 본능에 충실한 완벽한 야수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 * *
광산(狂山).
하남의 끝자락에 줄줄이 이어져 솟아 있는 산줄기 중에 한곳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한데, 어찌 이름을 미친 산이라고 지은 걸까?
그것은 산이 인간의 입산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산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의지에 의한 물리적인 힘으로 입산을 막을 리는 없었다. 그저 인간이 도저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맹수.
맹수에게는 각기 영역이라는 것이 있고, 사냥터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다른 맹수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걸 용납하지 않고, 그래서 일정 범위마다 구분이 지어져서 특정한 맹수 외에는 마주칠 일이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광산은 달랐다.
그저 두세 개의 높고 커다란 산으로 구성된 이 광산에는 맹수란 맹수는 죄다 몰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맹수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동물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먹이가 되는 동물들이란 것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초식동물들보다 덩치가 크고, 그 성정도 전혀 순하지 않고 사나웠다. 어떤 이는 호랑이와 싸우는 멧돼지를 본 적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또 어떤 이는 서너 마리의 늑대들을 뿔로 찔러 죽이는 노루를 보았다고도 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소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 광산엔 맹수 등의 흉포한 짐승이 많아서 보통 사람은 절대 입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짐승을 잡아 생을 이어가는 사냥꾼들에게조차 그건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디서건 그러한 예외에서 벗어나려 하고, 혹은 욕심 때문에 위험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광산의 중턱쯤에서 조심히 걸음을 내딛고 있는 십여 명의 사냥꾼들이 바로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너무 깊이 들어온 거 아니오?”
무리의 중간에서 걸어가고 있는 사내는 뭔가 불안하다는 빛을 감추지 못하고 선두의 사내에게 물었다.
무리를 이룬 사냥꾼들을 모집하고 광산까지 이끌고 온 선두의 사내, 막산일은 얼굴을 찌푸렸다. 산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틀이나 야숙하고, 드디어 광산의 초입에 들어섰는데 사내가 겁먹은 말투로 분위기에 초를 쳤기 때문이다.
“왜? 무서워?”
막산일은 조롱기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하나, 사내는 그런 말에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노골적으로 불안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광산에 들어왔는데 무섭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오?”
“그럼 그냥 돌아가든가.”
“누… 누가 돌아간다고 했소! 그냥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 같으니 조심하자는 말을 하는 거요!”
‘흥! 혼자 돌아갈 용기가 없는 게 아니고?’
막산일은 내심과는 달리 사내를 조롱하지 않았다.
겁을 먹기는 했지만 무리에서 사내만큼 그물을 잘 던지는 이도 없었고, 또 괜히 분위기를 망쳐서 결속력을 깨트려서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대신 보다 확신에 찬,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시키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도 충분히 조심하고 있어. 나, 막산일이야. 여기서 나만큼 경험 많은 사냥꾼이 있나? 내가 그렇게 어수룩하게 일할 것 같아? 내가 너희들을 모아서 한탕 크게 하자는 것도 충분히 고심하고 결정한 일이란 말이야!”
그랬다.
사냥꾼 생활이 벌써 이십오 년에, 나이가 마흔이 넘은 막산일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고민한 끝에 일을 추진한 것이었다.
광산은 감히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만큼, 사냥꾼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다른 곳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백호에, 뿔의 길이만 세 척이 너끈히 넘는 사슴도 있고, 한 장에 황급 수십 냥을 너끈히 받을 수 있는 귀한 가죽의 짐승들이 사방에 깔린 곳이 바로 광산이었다.
그러나 탐은 나지만 이 보물창고를 뒤적거릴 간담을 가진 사냥꾼은 아무도 없었다. 그 어떤 귀한 것도 목숨과는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가 안 되면 둘이 모이면 되고, 둘이 안 되면 넷으로, 그 넷도 안 될 것 같으면 열이 모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막산일은 열 넷을 모았다.
제법 실력이 있고, 어느 정도 경험이 많은, 나름대로 어느 한 방면에서 제 몫을 할 만한 사냥꾼들을 찾아서 광산으로의 사냥을 제안하고 설득해서 지금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너희들 중에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생각을 가진 사람 있나?”
아무도 대답을 안 하는 것이, 누구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호랑이 한 마리만 잡아도 일 년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크고 질 좋은 가죽이 생길 거야. 백호라도 만나게 되면 십 년은 일도 안 하고 지낼 수 있을 거고. 사슴의 녹용이 얼마나 비싼 약재인지 모두 알지? 여기서 잡히는 사슴은 다른 곳에 있는 놈들보다 두 배는 더 크다고. 그것 말고도 여기서 잡을 수 있는 짐승들을 생각하라고. 한 달만 꾹 참고, 아니지 보름만 꾹 참고 그놈들을 잡아서 돌아간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사냥 안 하고도 평생 배부르게 살 수 있는 몸이 된다, 이 말이야!”
막산일의 길고도 힘 있는 설명을 듣고 있던 사냥꾼들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들뜨고,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어서 갑시다!”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고, 다른 사냥꾼들도 동조하며 얼른 움직일 것을 재촉했다.
‘하여튼, 꼭 이렇게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니까.’
막산일은 이리 생각이 좁고 귀가 얇은 놈들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사냥만 잘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며 불안감을 씻어냈다.
더구나 이런 놈들이어야만 나중에 돈을 분배할 때에도 적당하게 속여 넘겨서 자신의 몫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두 준비를 갖추고 따라와.”
막산일은 여기서부터 광산에 들어선 것이고, 그만큼 조심하면서 이동을 해야 하며, 사냥감이 나탔을 때는 즉각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냥꾼들은 생각이 조금 부족하기는 해도 나름대로 경험과 실력이 뒷받침되는 자들이라 서둘러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맞추어 장비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부터 출발한다.”
출발한다고 했지만 막산일의 걸음은 이전보다 더디게 나아가고 있었다.
하나, 아무도 그 점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거나 딴죽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막산일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짐승의 흔적을 살피며 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한 식경가량을 조용히 걸으며 바닥을 살피던 막산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산 근처에만도 맹수가 지천으로 널렸다고 했는데…….’
물론 그건 과장이 약간 섞인 소문일 뿐이었다.
하나, 막산일은 그 소문의 절반은 믿고 있었다. 아니, 과거에 한 번 광산 근처까지 와본 경험이 있었고, 소문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근접할 정도로 이곳에 많은 맹수와 이상할 정도로 성정이 사나운 짐승들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진즉에 몇 마리 짐승 정도는 발견했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일단 광산 밑자락까지 오면서도 사슴 한 마리 발견하지 못했고, 지금도 변변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돼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큰맘 먹고, 일생의 가장 큰 도전이라 여기며 찾아왔는데, 짐승의 발자국 하나 보지 못하다니!
물론 아직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고, 이 넓고 높고 깊은 광산을 살피려면 하루 이틀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할 테니, 섣부르게 낙담하고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 아직 시간은 많다.’
막산일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뒤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표정에서 불안함을 느끼지 못하게 다시 땅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식경 정도가 흘러갔을 쯤에 드디어 막산일은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었다.
‘곰이다!’
발자국의 모양새를 보자니 분명히 곰이었다.
더구나 지금 시기는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먹이를 찾아 활발하게 활동할 시기가 아닌가. 게다가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의 보폭, 땅의 긁힘 정도로 짐작해볼 때, 이 곰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무겁고 큰 놈이 확실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쫓아서, 아마도 초식동물 같은 것을 쫓아서 빠르게 달려간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 근처에서 사냥한 놈을 먹고 있을 것이 분명해!’
막산일은 나쁘지 않은 상황을 맞이한 것에 내심 기뻐했다.
곰은 청각과 시각이 매우 나쁜 반면에 후각이 엄청나게 발달한 놈이다. 수백 장 밖의 먹이도 냄새를 쫓아 찾아낼 정도이니, 그 능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지금 곰은 뭔가를 잡아먹고 있다. 그 어떤 냄새보다 강렬한 혈향 속에 코에 박고서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것이다. 즉, 지금 근처에 있을 곰은 막산일 등의 접근을 전혀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었다.
“곰이다. 모두 준비해.”
막산일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에 사냥꾼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화살을 활에 메기고, 창날을 앞으로 겨누었으며, 그물을 던지기 쉽게 손에 잘 갈무리했다. 그리고 막산일의 뒤에서 적당하게 간격을 벌리면서 곰의 시야를 분산시킬 수 있는 형태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