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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3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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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34화

파계 2권 - 9화

 

 

 

 

 

제17장. 목숨을 건지고 야수가 되다

 

 

 

 

 

촤아아~

 

거친 물결이 날카롭게 솟아 있는 바위와 충돌하고, 햇살에 반짝이는 투명한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하나, 일견 아름다운 그 광경 깊숙한 곳엔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오칠이 있었다.

 

오칠은 그 엄청난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졌음에도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다고 결론짓기에는 오칠의 앞에 아직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 숨을……!’

 

양팔을 마구 휘저어 물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거센 물살은 그런 오칠의 희망을 가볍게 묵살했다.

 

꾸르륵.

 

더 이상 참아지지 않는 마지막 숨결이 입 밖으로 꾸역꾸역 흘러나왔고, 오칠의 가슴은 더욱 고통스럽게 짓눌렸다.

 

“푸하!”

 

하나, 다행스럽게도 물살에 휘둘려 얼굴이 수면 위로 솟아올랐고, 오칠은 참았던 숨을 있는 힘껏 들이켰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 잠깐에 불과한 순간이었다. 더구나 물살에 휩쓸린 몸은, 계곡 중간 중간에 기둥처럼 틀어박혀 있는 바위에 부딪혀 더욱 큰 고통을 호소했다.

 

퍽!

 

한 번 바위에 부딪치자 오칠의 몸은 계속해서 물살에 이끌려 연속해서 바위에 충돌했다.

 

‘진짜 죽는 건가?’

 

바위에 부딪힌 팔에도, 어깨에도, 등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이제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물살에 이끌려 수면 위로 솟구칠 때마다 본능적으로 입을 벌릴 뿐이었다.

 

‘이제 와서 죽을 수는 없어!’

 

오칠은 내심 그렇게 소리쳤다.

 

진정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오칠은 아직도 그 정확한 내막을 모르지만, 인간이 아닌 마인으로 지목되어 삼 년을 살아왔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당당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실혼인으로 연기까지 하며 굴욕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 지경이라니!

 

‘내 운명은 결국 이렇게 죽는 거란 말이냐?’

 

말도 안 되었다.

 

운명이란 자신이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스스로가 당당하면, 삶에 대한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이렇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싫다! 난 살아남겠다!’

 

이를 악물었다.

 

뼈만 남은 앙상한 팔을 휘저었다. 쇠줄에 속박당해 움직이기가 힘든 다리도 있는 힘껏 움직였다. 하지만 강인한 의지와는 달리 오칠의 몸은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퍽!

 

게다가 계곡 곳곳에 솟아 있는 바위는 끊임없이 오칠의 몸에 부딪쳐왔다. 아니, 오칠의 몸이 물살을 거스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위 쪽으로만 흘러갔다.

 

오칠은 점점 지쳐갔다. 정신은 살겠다는 욕망으로 가득하고, 의식은 푸른 하늘처럼 맑고 또렷했지만, 육체는 그런 정신의 힘을 따라가지 못했다.

 

소림사에서의 삼 년간의 생활로 몸은 허약해졌고, 견봉생에게 저항하느라 온 힘을 다 썼으며, 지금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물살에 휘둘리느라 몸은 완전히 망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콰직!

 

‘윽!’

 

오른쪽 어깨뼈가 빠져버린 것 같았다.

 

감각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지만, 최소한 휘저을 수가 있었던 팔이 이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균형이 잡히지 않는 몸은 나무토막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칠의 몸은 더욱 결렬하게 물살에 이끌려서 커다랗고 투박한 바위를 향해 질주했다.

 

뻑!

 

이번엔 몸이 아닌, 머리로 바위를 들이박았다.

 

그리고 정수리에서 시작된 커다란 충격은 순식간에 오칠의 몸을 경직시켰다.

 

순간, 기이한 전율이 오칠의 정신을 휩쓸었다. 뭔가 강력한 어떤 기운이 쪼개져버리고, 그것은 꽉 메인 좁은 공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았다는 희열과 같은 전율이었다.

 

절대금마령(絶對禁魔靈).

 

노승이 오칠의 마성을 금제하기 위해 행한 심법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삶에 대한 오칠의 강인한 욕구와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너무도 어이없이 절대금마령을 무너트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으으……!’

 

어금니를 악문 오칠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물속이라 꽉 감겨 있던 눈동자가 번쩍 뜨이며 기괴한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뭐냐? 뭐냐?’

 

오칠은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기이한 기분에 휩싸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나, 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대로 계속 이어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크으……!’

 

우득!

 

탈골되었던 오른쪽 어깨가 갑자기 제자리를 찾았다.

 

어찌 된 일인지 오칠의 전신에 기이한 힘이 들어차고, 눈동자에서 번뜩이기 시작한 붉은빛은 더욱 강렬해져가고 있었다.

 

‘죽지 않겠다! 이대로 죽지 않을 거야!’

 

힘이 생기고, 욕망이 치솟았다.

 

가물거리는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오칠은 삶에 대해 섬뜩할 정도의 집착을 보였다.

 

퍽!

 

바위에 부딪힌 오칠의 몸이 물속에서 크게 출렁였다.

 

그러나 오칠은 고통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한 힘을 발산하며 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양팔이 한 번씩 물속을 헤집을 때마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몸이 위로 쑥쑥 올라왔다.

 

촤악-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거친 물살을 휘저으며, 오칠의 몸이 수면으로 솟구쳤다.

 

“크아-!”

 

오칠의 입에서 참고 참았던 괴성이 터져 나왔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인간적 이성은 어느새 존재감 없이 사라지고, 오칠은 광기에 번들거리는 한 마리의 야수로 변해 있었다.

 

야수는 강했다.

 

무엇이건 휘몰아쳐, 단번에 찢어버릴 것 같은 물살을 헤쳐 나가며 순식간에 계곡을 빠져나와 버렸다.

 

“크으……!”

 

붉게 번들거리는 오칠의 눈동자는 밀림처럼 우거진 숲 속을 꿰뚫어 볼 듯 응시했다.

 

킁킁!

 

마치 짐승이 먹이를 찾듯 코를 벌름거렸다.

 

아니, 오칠은 진정 그러고 있었다. 본능에 충실한 야수는 배고픔을 참지 못했고, 그래서 무엇이건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

 

오칠의 시선이 왼쪽 어느 한곳을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달리려 했다.

 

콰당탕!

 

하지만 오칠은 채 한 걸음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으!”

 

발목에 채워진 쇠줄이 문제였다.

 

오칠은 한쪽 발목의 고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단번에 뜯어내겠다는 듯 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년묵철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쇠였다. 오칠의 발목에 채울 때도 세 명의 뛰어난 대장장이가 힘을 합쳐 간신히 이룬 성과였다.

 

“크아아~!”

 

오칠은 분노했다.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흉포한 마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화아아-

 

순간, 오칠의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마성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힘이었다. 마성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정심한 기운이었다.

 

그동안 마성과 함께 금제되어 있었던 영물, 영초의 기운과 절대금마령을 유지하고 있던 노승의 막강한 내공까지 고스란히 오칠의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마성이 그 힘을 폭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뜨득!

 

뭔가 당겨지는 듯한 기음이 들렸다.

 

그리고 오칠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더욱 강력해지고, 뿌연 막처럼 부풀어 올랐다.

 

뜨드드드득! 쨍-

 

만년묵철의 굵은 고리가 발목에서 끊어져나갔다.

 

놀랍게도 인간의 힘으로는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일을 오칠이 가능케 한 것이다.

 

“크아!”

 

기쁨의 환호일까?

 

오칠은 자유로워진 다리로 땅을 쿵쿵 찍어대며 괴성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처음에 가려고 했던 왼쪽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철크렁. 철크렁. 철크렁. 철크렁.

 

한쪽 발목에만 이어져 있는 만년묵철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엉켜들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오칠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인간의 것 같지 않은 엄청난 속도.

 

오칠이 뛰는 모습을 표현하자면 그랬다. 땅을 박차고, 높이 솟은 바위를 뛰어넘고, 때론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몇 장 높이의 나무를 타고 올라, 새처럼 하늘을 나는 듯이 허공을 뛰어넘었다.

 

킁킁!

 

그리고 연신 무언가 냄새를 맡으며 코를 벌름거렸다.

 

탁!

 

넉 장의 높이에서 떨어져 내렸음에도 오칠은 가벼운 소리만을 내고 바닥에 착지했다.

 

오히려 발목에 달려 있는 쇠줄이 부딪치는 소리가 더 클 정도였다.

 

“크으……!”

 

오칠이 내려선 곳 두 장 앞에 그의 후각을 자극한 것이 있었다.

 

멧돼지.

 

다 큰 멧돼지는 털 빛깔이 검고, 크기가 반 장 정도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 오칠이 보고 있는 멧돼지는 털빛이 갈색으로 퇴색되어 있고, 길이만 한 장에 이르는 엄청나게 큰 놈이었다. 더구나 삐죽하게 주둥이 밖으로 솟아오른 송곳니는 길이가 무려 다섯 치나 되니, 웬만한 맹수도 상대하기를 꺼려할 놈이 분명했다.

 

더구나 멧돼지는 들쥐 같은 작은 짐승부터 어류와 곤충에 이르기까지 아무것이나 먹는 잡식동물.

 

눈앞의 멧돼지는 지금 입가에 핏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토끼를 절반이나 먹어치우고 있었으니, 한마디로 한창 살기가 올라 있는 흉포한 놈이라는 뜻이었다.

 

“크크크!”

 

오칠은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며 음침한 괴소를 흘렸다.

 

꾸으윽!

 

한참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던 멧돼지는, 그 웃음소리에 커다란 머리를 휙 하고 돌리며 오칠을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줄행랑부터 치고 말 멧돼지를 보고 군침을 삼키는 오칠과 자신의 식사를 방해한 누구든 들이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멧돼지의 시선이 교차했다.

 

꾸으으!

 

먼저 멧돼지가 돌진을 시작했다.

 

두두두두!

 

육중한 무게만큼이나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낸 멧돼지는 순식간에 오칠의 지척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타탁!

 

오칠의 신형이 위로 솟구쳤다.

 

인간의 것 같지 않은 도약력으로 뛰어오른 오칠의 신형은 몇 개의 나무를 디디고는 다시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아직도 앞으로 내달리고 있는 멧돼지를 향해 달려갔다.

 

쿵!

 

멧돼지는 커다란 나무를 힘껏 들이받고 돌진을 멈췄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동물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강력한 머리를 가진 멧돼지였기에,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달려드는 오칠을 향해 또다시 돌진해갔다.

 

퍽!

 

후우웅! 와당탕탕!

 

멧돼지에 들이받힌 오칠의 몸은 서너 장을 날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마기에 정신이 홀려 있다고는 하지만 몸에 살점 하나 없이 허약한 오칠이었고, 그런 몸으로는 멧돼지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벌떡.

 

그러나 오칠은 순식간에 일어나 우뚝 멈춰 선 멧돼지를 노려보았다.

 

“크아!”

 

양팔을 위로 치켜든 오칠은 한껏 괴성을 질렀고, 멧돼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멧돼지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몇 번 바닥을 구르고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잔뜩 곤두세워 마주 뛰었다.

 

두두두두!

 

타타타타!

 

육중한 울림을 터트리는 멧돼지와 가볍고 빠르게 뛰는 오칠의 신형은 순식간에 중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