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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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33화
파계 2권 - 8화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내심 마구 욕을 내뱉으며 견봉생은 온 힘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그래도 지금 믿을 것은 자신의 두 다리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내공의 고갈도 신경 쓰지 않고 정신없이 달렸다.
“헉! 헉! 헉!”
숨이 턱까지 찼다.
견봉생이 언제 이렇게 뛰어본 경험이 있었던가.
그가 익힌 경신법은 절정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뛰어난 무공들이었고, 그래서 단 몇 걸음에도 남들의 배 이상으로 빨라서 그를 따를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이처럼 숨이 차고, 뭐 빠지도록 뛸 일이 언제 있었겠는가.
아마도 지난 세월 동안 지금과 같이 필사적으로 경신법을 수련했다면, 정말이지 고금제일의 경공대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 분명했다.
‘어라?’
두 시진 이상을 정신없이 달리던 견봉생은 문득 자신이 소림승들을 따돌렸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 위를 나는 듯이 뛰어서 넘은 봉우리가 몇 개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한 평야의 거리가 얼마나 길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다시 높고 거친 산으로 들어와서야 그걸 알아차린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빨랐나?’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했다.
극한 상황에 놓여 경신법을 펼치는 중에 저도 모르게 깨달음 비슷한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십여 년간, 아무런 진전도 없던 무공이 이렇듯 난데없이 발전하다니!
‘이거야말로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할 수 있겠군.’
견봉생은 극으로 펼치던 경공을 멈추고, 가파른 절벽 끝자락에 내려섰다.
주변은 마주보는 절벽을 좌우로 해서 인적을 찾을 수 없는 울창한 숲이었고, 저 아래로 거칠게 흘러가는 계곡도 보였다.
‘이놈을 어찌하나?’
견봉생이 멈춰 선 것은 짐짝처럼 허리에 차고 있던 오칠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견봉생은 일단 소림승들을 따돌렸고, 이 일을 의뢰한 자를 찾아가 고서를 넘겨주고서 돈을 챙긴 뒤에 은신처를 찾아서 한동안 숨어 있어야 했다. 혹은 의뢰한 자에게 몸을 위탁하여, 보다 분명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칠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냥 여기에 두고 갈까?’
소림승들이 이곳까지 오려면 족히 반나절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견봉생의 종적을 완전히 놓쳐서 포기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니 이곳에 오칠을 버려두고 가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 계획이라는 것은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을 더 염려해야 하고, 그래서 견봉생은 오칠을 그냥 두고 가지 않기로 했다.
뒤끝이 남기지 않기 위해 오칠을 죽이고서 그 시체를 저 아래 계곡으로 던져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 중놈들도 약속을 어겼으니!’
무공도 모르는 이를 죽인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기분 나쁜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원망해도 할 수 없다.”
견봉생은 점혈이 되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오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후우~
이때, 바람이 불어와 오칠의 산발한 머리칼이 휘날렸다.
“……!”
견봉생은 처음으로 오칠의 얼굴을 보았고, 그 해골 같은 얼굴에 흠칫했다.
그리고 그 순간, 딱딱하게 굳어 있던 오칠이 번개처럼 일어나 견봉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퍽!
“……!”
복부에 전해지는 급작스런 충격에 견봉생의 신형이 흔들렸다.
퍼퍼퍼퍼퍽!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격타음과 함께 견봉생은 세 걸음이나 뒷걸음질쳤다.
‘어떻게?’
견봉생은 가장 먼저 오칠이 점혈을 풀고 움직였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런 오칠이 무공을 펼쳤다는 것이 견봉생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백련신권(百鍊神拳)?’
견봉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오칠이 그의 상체를 두들긴 수법은, 말 그대로 백 번을 단련한다는 의미로, 빠르고 정확하게 권을 찌르는 동작을 특징으로 하는 소림권이었다.
그것도 쉽게 전수해주지 않는다는 칠십이절예의 무공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림 무공을 펼친 것보다, 오칠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견봉생을 더욱 놀라게 했다.
무공을 익혔다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고 그런 낌새도 전혀 없었으며, 더구나 몰골 또한 무공과는 전혀 관계없을 것처럼 생긴 놈이 아닌가 말이다.
“흥!”
하지만 놀람과 의문도 잠깐이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긴 했지만 그 위력은 소림 무공이라는 이름에는 부족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견봉생은 내공을 끌어올려 몸에 전해지는 충격을 완화시켰다.
그리고 위력은 없지만 계속해서 날카로운 공격을 해오는 오칠의 왼쪽으로 움직여 등을 내리찍었다.
“윽!”
오칠은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듯 비틀거렸지만, 순간 두 발을 엇갈리게 움직이면서 다시 견봉생의 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이번엔 불영선하보(佛影仙霞步)?’
특기가 경신법이다 보니 견봉생은 자연스럽게 오칠의 발동작을 유심히 보았고, 그래서 단순히 다리를 엇갈리게 한 동작이 소림 보법에서도 그 유명한 불영선하보임을 알아보았다.
물론 보법 또한 백련신권처럼 그 위력이 형편없었다.
불영선하보는 눈으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현란한데 지금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발목에 채워진 쇠줄 때문에 보폭에 제약이 있었고, 그래서 동작이 투박하고 어색해진 것이다.
타타타탁.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오칠의 주먹과 이를 막는 견봉생의 손이 맞부딪쳤다.
경신법에 관해서는 절정고수의 수준이지만, 공격적인 박투술 등에서는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견봉생은 일순 오칠의 공격에 밀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동작에 제약이 많은 오칠의 약점을 노리고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는 견봉생은 무차별적으로 오칠의 몸을 난타했다.
“크윽!”
가슴, 어깨, 다리, 등, 얼굴을 가리지 않고 견봉생의 주먹이 오칠의 몸을 강타했다.
‘밀리면 안 돼!’
오칠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힘찬 기합을 내지르며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어!”
두 사람이 선 곳은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절벽 위였고, 그래서 오칠이 멧돼지처럼 들이닥쳐 허리를 움켜잡는 것을 견봉생은 막지 못했다.
“이 자식이!”
견봉생은 허리를 꼭 끌어안고 마구 밀어대는 오칠을 떨어트리기 위해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퍽! 퍽! 퍽! 퍽!
하지만 오칠은 견봉생 이상으로 다급했고,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오기가 있었다.
“으아~!”
내공도 없고 몸도 허약해졌지만, 오칠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며 견봉생을 밀어붙였다.
“비… 빌어먹을!”
왜 박투술 쪽에 좀 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견봉생은 절벽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고, 오칠 역시 그와 함께 떨어졌다.
하지만 견봉생은 경신법의 고수.
절벽으로 떨어지며 팔 힘이 느슨해진 오칠을 몸에서 떼어내는 것에 성공하자, 곧바로 몸을 가볍게 만들고 크게 회전하며 절벽을 걷어찼다.
타탁!
발끝에 걸리는 탄력과 함께 떨어지는 힘을 상쇄시킨 견봉생은, 다시 서너 번을 그렇게 절벽을 차고 솟구쳐서는 순식간에 절벽 위로 올라섰다.
“후~”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무엇이든 찢어발길 듯이 거칠게 흐르고 있는 계곡에 빠져 죽을 뻔했다.
“근데 가슴이 왜 이리 허전하지… 어?”
견봉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상의 가슴 쪽이 찢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상의 안에 숨겨두었던 고서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 것은, 그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무공비급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염병!”
무공비급을 품에 넣어두고 있었던 것은, 비급 안에 있는 경신법 중에서 아직 완벽히 익히지 못한 신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 익히게 되면, 그 어디든 귀신처럼 숨어들 수 있는 절정의 신법이 된다. 그래서 십수 년을 노력해도 아직 그 오의를 깨닫지 못해 틈만 나면 꺼내서 읽기 위해 품에 넣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무공비급이 사라져버렸다.
“으아~!”
울분에 차 고함을 내질렀다.
너무 열이 받아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찾아야 한다!’
견봉생은 절벽 아래, 계곡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계곡을 보자 도저히 무공비급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암담한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
그래도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견봉생은 어떤 미세한 소리를 듣고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벌써 쫓아왔나?’
소리의 근원은 분명 소림사의 추적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종적을 놓쳤을 거라고, 포기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이렇게 빨리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 고서가 그리 중요한 것이었나? 하긴 신분을 숨긴 엄청난 고수가 의뢰한 것이니 중요하지 않을 리 없지.’
그러나 견봉생은 몰랐다.
소림사가 이렇듯 집요하고 다급하게 쫓는 이유가 고서 때문이 아니라 오칠 때문이라는 것을.
고서의 내용이야 그저 과거의 정마대전을 기록했을 뿐이지만, 오칠은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하자!’
견봉생은 비급이건 뭐건 간에 일단은 추적을 떨쳐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황급히 절벽을 박차고 숲으로 몸을 날렸다.
언제고 다시 돌아와 비급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 * *
‘이곳에 떨어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소림 방장 굉덕은 그가 서 있는 절벽 저 아래에 있는 계곡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불가능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그 어떤 무공 고수라고 해도 다리를 쇠줄로 속박당한 채 저 깊고 거친 물줄기 속으로 떨어져서 멀쩡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칠은 마기에 물들지만 않으면 무공도 모르고 정신도 온전치 않은 실혼인이 아닌가.
절벽에서 떨어져 수면에 부딪히는 순간, 내부 장기가 터져서 즉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혹은 떨어지는 중에 절벽에 충돌해서 수면에 닿기도 전에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부님, 다른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나한승들과 함께 주변을 수색하고 있던 담성이 다가와 말했다.
“발자국 깊이로 볼 때, 혼자서 이곳을 떠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그는 정말로 이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는 건가…….”
“어지러운 발자국과 찢겨진 옷 등으로 볼 때, 파계승이 만리신투에게 저항한 것이 분명하고, 만리신투 혼자 이곳을 떠났으니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집니다.”
방장의 얼굴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찌할까요?”
“나한승들과 함께 만리신투를 쫓아라. 한 달이다. 그 안에 그를 찾지 못하면… 포기하고 돌아오너라.”
“알겠습니다.”
담성은 방장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합장을 하고는, 다른 나한승들과 함께 만리신투가 사라졌다고 판단되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미안하오.”
방장은 절벽 아래 계곡을 내려다보며 슬픈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오칠의 죽음에 방장은 그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