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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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4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32화
파계 2권 - 7화
일지선공(一指禪功), 항마복호장(降魔伏虎掌), 광한수(廣寒袖).
광등과 나한승들이 펼치던 동작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동작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위력적인 바람과 경력은 전혀 없었지만, 하체의 움직임이 약간은 어색했지만 오칠의 동작은 소림승들이 보았다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정확했다.
어찌 뼈만 앙상한 몸으로, 이제는 거의 힘도 없는 오칠이 지치지도 않고 이렇듯 놀라운 집중력을 보일 수 있는지 괴이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오칠은 그렇게 자시(子時:밤11~1시)가 넘도록 무공 수련에 온 정열을 다 기울였다.
시간도 잊고, 피곤도 잊고, 동작에만 열중하던 오칠이 갑자기 쓰러졌다.
매일 같이 자시 말이 되면 오칠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에 빠져들고, 다시 악몽을 꾸는 것이다.
그리고 몸에 익힌 온갖 소림 무공을 다 사용하여 괴물들에게 저항하지만 결국 망신창이가 되고, 여인들에게 정기를 빼앗기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이 아직은 피할 수 없는 오칠의 현실이었다.
오칠은 모르고 있지만, 그렇게 칠 대 계승자는 처음 오칠이 팔 대 계승자의 지위를 승낙한 순간부터 계속해서 오칠을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리만의 마기에 정신이 미혹당해 광기를 부린 것도, 그러한 시험 속에서 오칠이 자신의 분노를, 피에 대한 욕망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칠이 교를 수호하는 백팔 가문의 무공과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한 가지인 호교 무공을 전수받아 배화교의 영광을, 아후라 마즈다의 영원한 왕국을 예비할, 배화교의 교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인지를 증명하기 위해선 그 모든 걸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즉, 칠 대 계승자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오칠에 대한 시험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16장. 인질이 되어 소림사를 나가다
오칠은 여느 날과 같이 불쾌한 배출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변함없는 하루의 시작이군.”
지난밤에도 여지없이 잠이 들었고,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다.
당연히 어제의 좋은 기분 같은 것은 존재감 없이 사라져버렸다.
“빌어먹을 악몽!”
오칠은 하초의 끈적끈적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매일 같이 가는 계곡에 가서 몸을 담갔다.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에게 밥을 먹이려는 승려들과 만나기 위해 소림사 내부로 향했다.
‘……?’
한데, 뭔가 이상했다.
이때쯤이면 승려들의 모습을 보이고 오칠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접근해 와야 하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밥 먹이는 것도 귀찮아졌다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내켜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승려들이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할 리가 없었다.
‘뭔가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점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딱하니 말할 수 없는 기분이지만, 불길한 예감일수록 이상하게 잘 들어맞는 법이다.
“쫓아라!”
“앞을 막아라!”
저 앞쪽 몇 개의 담장들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마치 사냥에서 짐승을 몰이하는 것 같은 외침들로 유추해볼 때, 누군가가 쫓기고, 누군가가 쫓는 중이 분명했다.
하지만 누가?
이곳은 소림사이니 쫓는 것은 당연히 승려들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쫓기고 있단 말인가?
어느 정신 나간 놈이 소림사에서 이리 불온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정도로 큰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하지만 오칠은 곧바로 관심을 접었다.
어떤 일이 생긴 것인지 모르지만, 오칠은 상관할 이유도, 상관할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오칠의 생각과는 별개로 상황은 매우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승려들의 호통소리가 더욱 커지고, 점점 오칠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불길하다 했더니만!’
오칠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탑림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소란에 얽혀들지 않으려면 그곳에서 멀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도 오칠의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소리로만 들려오던 소란스러움이 이제는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 * *
‘빌어먹을!’
만리신투 견봉생은 내심 욕을 씹어 뱉으며 담장을 밟고 붕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 방향에서도 서너 명의 승려들이 마주 달려오고 있어서 곧바로 반대쪽을 향해 몸을 틀어야 했다.
‘괜히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 터질 일이었다.
방장실에서 페르시아어라는 해괴한 문자로 쓰인 고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은 견봉생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방장이 방에서 나간 사이에, 주변을 지키는 무승들의 교대 시간에 맞추어 침투했다가 빠르게 빠져나오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어서 충분한 조사를 통해 알아낸 길로, 은밀하고 뛰어난 잠입술을 이용하여 장경각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 이상으로 쉽게 성공했다.
얼른 한두 권의 무공서만 가지고 나와서 미리 파악해놓은 도주로로 재빨리 빠져나갔으면 되는 것인데, 그놈의 욕심이 문제를 일으켰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였다. 억지로 일을 맡아 소림사에 침투했지만, 지금처럼 용기 있게 마음을 먹을 일도, 장경각에 숨어들 수 있는 날도 다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욕심을 내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견봉생은 보이는 족족 무공서를 빼들어 품에 넣었다.
소매, 가슴, 바지춤까지,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고 무공서를 구겨 넣었다.
그러나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욕심을 뒤로하고 장경각을 빠져나오면서 일이 발생했다.
무게도 늘어나고, 부피도 커진 몸으로는 은밀하면서도 빠른 잠입술을 펼칠 수 없었고, 장경각에서 채 열 걸음을 벗어나기도 전에 승려들에게 발각되어 쫓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웃기는 것은, 지금 견봉생의 몸에는 욕심을 일으키게 만든 빌어먹을 무공서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승려들의 강력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게와 부피를 줄여야 했고, 그래서 결코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은 무공서들을 던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은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 저절로 빠져나가버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처음 의뢰를 받았던 고서만이 남아서 견봉생의 마음을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그래도 소림사 장경각에 숨어들었다는 명예는 있으니까!’
견봉생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자존심은 세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의뢰를 받았던 고서도 가지고 있으니,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우선 소림사를 빠져나가고 나서 자화자찬할 일이었다.
지금처럼 승려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도망칠 곳이 점점 부족해지면 결국 잡히게 될 것이고, 죽는 일은 없더라도 무공을 쓰지 못하는 반병신이 되어 평생을 참회동이니, 쇄마동이니 하는 동굴에서 썩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자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저 멀리서 웅혼한 외침이 들려왔다.
‘염병, 소림 방장이다!’
드디어 방장까지 쫓아오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방장의 주변에서는 범상치 않은 신법을 펼치고 있는 늙은 승려들까지 있었다. 아마도 각주나 원주의 자리에 있는 방장의 사제들일 것이 분명했다.
‘어쩌지, 어쩌지!’
당혹스러웠다.
미리 정해놓은 퇴로는 물론, 예비로 생각해놓은 방법까지 이미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마땅히 다른 탈출로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견봉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빈 공간을 향해 달려가는 방법뿐이었다.
견봉생은 공중에서 네 번이나 방향을 뒤트는 엄청난 경신법을 선보이며, 승려들이 아직 포위망을 구축하지 않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 방향에 아주 흥미로운 존재가 눈에 띄었다.
‘저놈은?’
어제 방장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던 놈이었다.
소림사에서 보기 쉽지 않은 몰골이라 견봉생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
발목엔 쇠줄을 차고, 몰골은 거지처럼 지저분하기 그지없었지만, 방장과 계단에 나란히 앉아 편하게 이야기할 정도니 분명 뭔가 있는 놈일 것이다.
견봉생은 오칠을 인질로 써먹기로 결심했다.
쇠줄 때문에 뛰어가는 폼이 투박하고, 어눌한 모습이 분명 무공을 익히지 않았음이 분명했고, 그래서 인질로 잡기가 쉬울 것 같다는 게 더욱 마음에 들었다.
타탁! 휘휙-!
견봉생은 진기를 끌어올려 바닥을 박차고, 무림 제일이라 자부하는 그의 경신법 중 하나인 대붕장천비(大鵬長天飛)의 움직임으로 단번에 칠 장여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오칠을 붙잡아서는 재빨리 점혈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했다.
“가까이 오지 마라-!”
오칠을 제압하고도 오 장여를 더 물러난 견봉생은 압박해 들어오는 승려들을 향해 힘껏 고함을 질렀다.
“손가락 하나 움직였다가는 이놈의 목을 분질러버리겠다!”
농담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견봉생은 오칠의 목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방장의 손짓과 함께 승려들이 달려오던 걸음을 멈춘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져 나올 견봉생의 또 다른 말을 기다렸다. 아니, 실제로는 방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이와 고서, 장경각에서 가져간 것들을 고이 놓고 간다면 추적하지 않겠소.”
방장은 노한 음성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견봉생은 그런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소림사에 숨어든 이유가 고서인데, 그걸 두고 갈 리 없었다.
‘이걸 가지고 가지 못하면 내 목이 부러지게 될 것이란 말이다!’
일을 의뢰한 자는 정말 무서운 자였다.
복면을 쓰고서 목소리를 변조하여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신분과 종적을 비밀스럽게 유지한 견봉생을 찾아낸 것만 봐도 무시할 수 없는 자였다.
더구나 그 엄청난 무위란!
단언하건대, 현 무림에서 그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채 열을 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견봉생은 절대 이 고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장경각에서 빌린 것들은 이제 내 품에 남아 있지 않소! 그리고 사정상 난 이 고서를 포기할 수가 없구려!”
견봉생은 말을 하면서 슬며시 뒤로 움직였다.
이때, 지객당(知客堂)의 당주(堂主) 굉만이 방장의 귀에 무슨 말을 속삭였다.
순간, 방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대가 만리신투였구려. 한데, 당신은 왜 마교와 관련한 그 고서를 가져가려는 것이오?”
복면 안에 숨겨진 견봉생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마교라니? 이 고서가 그 전설 속의 미친놈들과 관련된 책이란 말이야?’
이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정체까지 드러났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그래도 다행이라면 무림에는 견봉생의 별호와 무공만 드러나 있을 뿐,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소림의 추적을 피해 숨어살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남아 있다는 말이다.
또는 이 일을 의뢰한 자에게 위탁하여 숨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잡설은 그만둡시다! 난 이 고서를 포기할 수 없고, 그러니 당신들은 더 이상 날 쫓지 마시오! 안 그러면 이놈이 죽는 걸 보게 될 것이오!”
견봉생의 호통에 조금씩 다가오던 승려들의 몸이 우뚝 정지했다.
생각 이상으로 잘 먹혀들어가는 듯해 견봉생은 기분이 좋았지만 그가 어찌 알까,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 오칠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이는 방장과 견봉생, 두 사람뿐이라는 것을.
하나, 어찌 되었든 소림 방장이 오칠의 목숨을 귀히 여기고 있기 때문에 견봉생의 협박은 크게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견봉생의 마지막 선택 하나가 그런 이점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이놈은 내가 안전한 거리까지 물러나고 나서 풀어주겠소!”
그것이었다.
방장은 오칠이 죽지 않기를 바랐지, 결코 소림사를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칠을 소림사에 두고 있는 것은 마인이기 때문이고, 마인은 절대 속세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견봉생은 나중에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방장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협상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럼 난 가오!”
견봉생은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뒤로 몸을 날렸다.
방장은 잠시 망설였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쫓아라!”
아까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경공을 발휘하여 달리기 시작하던 견봉생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몰려오는 승려들을 보고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놈, 쓸모없는 놈이었잖아!’
분명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는데도 어찌 승려들이 쫓아온단 말인가.
머리는 산발하여 얼굴을 뒤덮고, 몸에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한 냄새를 풍기는 오칠을 보며 견봉생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견봉생은 승려들에게 협박한 것처럼 오칠을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후의 상황에서 협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인질이고, 지금은 온 힘을 다해 도망쳐야 했기에 누굴 죽이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