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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30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30화

파계 2권 - 5화

 

 

 

 

 

천수여래장(千手如來掌).

 

오칠이 책장에서 꺼내온 무공서인데, 어제 반밖에 외우지 못하고 다시 꽂아두었던 무공서였다.

 

‘이것만 생각해라, 이것만!’

 

오칠은 온 신경을 무공서에 집중했다.

 

여유 시간은 두 시진이었고, 그 사이에 무공서의 내용을 모두 외워야만 했다.

 

하지만 고작 두 시진 만에 소림칠십이절예 중에 하나인, 천수여래장의 반을 외운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가능할 수도, 혹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칠의 경우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런 식으로 소림칠십이절예의 대부분을 외웠으니까.

 

매일 밤마다 잠을 떨쳐내기 위해 수십 가지의 심법을 시험할 수 있는 것도, 악몽 속에서 괴물들을 상대로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지금처럼 장경각에서 무공들을 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은 죽기 살기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리고 오칠과 같은 경우처럼 필사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면 불가능하다 하는 것들을 가능케 하는 놀라운 힘이 생기는 것이다.

 

‘좋아!’

 

저 뒤쪽에서 누군가 오는 기척이 느껴진 순간, 오칠은 무공서에서 눈을 뗐다.

 

어느새 시간은 두 시진 가까이 지났고, 오칠은 천수여래장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외워버린 후였다.

 

“…….”

 

무공서를 품에 넣고 멍하니 서 있는 오칠을 발견한 한 승려가 움찔 놀랐다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겁쟁이 녀석.’

 

오칠은 내심 코웃음을 치며 천수여래장을 꺼내온 책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누구도 모르게 무공서를 다시 책장에 꽂아 넣었다.

 

“…….”

 

장경각 입구에 앉아 있는 담철이 아주 잠깐 오칠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오칠은 매일같이 그랬듯 정오 무렵쯤에 장경각을 나왔다.

 

화창한 날이었다. 봄의 따스한 빛이 세상에 드리우고, 바람 한 점 없는 공기는 산뜻하고, 시원했다.

 

하지만 오칠은 그런 감정적인 기분에 빠져들지 않았다. 머리가 뜨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용을 쓰고 나온 뒤에는 늘 맥이 빠지고, 만사가 귀찮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쓰러지고 싶을 정도였다.

 

오칠은 멍한 몸짓으로 걸음을 움직여, 소림사의 산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림사를 찾아온 불자들이었다.

 

그들 중 반은 시주를 하고 불공을 드린 뒤 돌아가고 있었고, 나머지 반은 이제 산문 안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

 

오칠은 그런 사람들과 산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섰다.

 

오고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고, 오칠이 선 곳은 그런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이었지만, 누구도 오칠 근처로 접근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오칠이 있는 곳에 마치 장벽이 있는 것처럼 크게 돌아서 지나갔다.

 

‘겁쟁이들.’

 

이 년여 전 어느 날, 오칠은 소림사 내원에서만 돌아다니다가 처음으로 산문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방장이나 승려들이 오칠이 실혼인이 된 것을 완전하게 믿지 않고 있었기에 행동 하나하나에 매우 신중을 기하던 때였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겠지, 하는 마음으로 산문까지 나온 것이었다.

 

물론 소림사 승려들이 인간의 힘으로는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만년묵철(萬年墨鐵)로 오칠의 발목을 구속해놓고서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혹은 도망쳐도 금세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산문으로 나온 오칠은 그의 주변을 지나다가 옷깃을 스친 한 불자를 이용하여 그의 존재를 소림사에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다.

 

어떻게?

 

비명을 지르고, 온몸을 뒤흔들어 갖은 발광을 다 떨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오칠의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다. 지객당 승려들이 오칠은 파계승이고, 미친 사람이라고 불자들에게 설명해준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친 짓을 하는 것은 오칠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칠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승려들이 오칠을 다시 마인으로 규정하며, 절대 이대로 살려둬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바꾸면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오칠은 자신의 존재를 소림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드러낸 것이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여기, 소림사에 있다는 걸 알리고, 자신이 쇄마동(鎖魔洞)에 갇혀버리거나, 혹은 사지 근맥이 절단되고 단전이 파괴됨으로 인해 죽어버렸을 때, 왜 갑자기 보이지 않는 걸까,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존재라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소림사의 승려들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물론 승려들이 오칠을 어찌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이런 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하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칠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반드시 저 밖으로 나갈 것이다!’

 

오칠은 산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산발한 머리카락에 가려 다른 사람은 오칠이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지만, 오칠은 내심 강인한 의지를 다지며 뚫어질 듯 산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언젠간 이곳, 소림사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당당히는 아니라도 승려들에게서, 소림사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그렇게 한 식경가량을 먼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며 산문을 바라보고 있던 오칠은, 몸을 돌려 다시 내원 쪽으로 움직였다.

 

 

 

 

 

제15장. 무공을 훔쳐 배워서라도 고수가 되련다

 

 

 

 

 

오칠은 팔대호원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방장실을 둘러싸고, 호법의 역할을 하는 곳인 팔대호원 주위는 아무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칠은 실혼인이 아닌가.

 

오칠이 소림사에서 갈 수 없는 곳은 쇄마동과 계율을 어긴 승려들을 가둔다는 참회동(懺悔洞)밖에 없었다.

 

사실, 참회동도 오칠이 원하면 갈 수 있겠지만, 고의로 가지 않는 것이었다. 괜히 그곳으로 갔다가 잡혀 들어가서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칠이 왜 팔대호원으로 가는 걸까?

 

이유는 한 가지,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누구를 찾아갈까?’

 

오칠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장로들이 있는 장생전(長生殿)으로 방향을 잡았다.

 

소림사에는 방장의 사숙들인 다섯 명의 장로들이 있는데, 그중 세 명은 속세로 나아가 탁발승 생활을 하고 있고, 지금 장생전에는 두 명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칠은 그 두 명 중에서 지법의 달인인 광등 대사에게 가려는 것이다.

 

하면, 장로들이 오칠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걸까?

 

아니다. 오칠이 장생전에 가는 이유는 무공을 훔쳐 배우기 위해서였다.

 

오칠이 삼 년 전부터 장경각을 드나들며 무공들을 몰래 외우는 것은 그것들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소림의 무공을 수련하고 익혀서 소림에서 도망쳐 나가더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 소림의 추적망을 빠져나가고 추적자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공이란 외우기만 한다고 해서 자연히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더 자세하고, 본이 될 수 있는 가르침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오칠은 승려들이 수련할 때 훔쳐 배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누구도 오칠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을 테고, 다른 방법은 찾을 수 없었으니까.

 

무공을 훔쳐 배우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어떤 어떤 승려가 무슨 무슨 무공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 승려가 수련하는 곳을 찾아가서 보고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소림사 같은 곳에서도 무공 수련은 매우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

 

아무리 같은 소림사 승려라 해도 칠십이절예 같은 것은 나름의 전승자가 있고, 지켜야 하는 규칙 같은 것이 있어서 수련은 매우 조용하고 개인적인 곳에서 비밀스럽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승려들도 처음엔 오칠의 시선을 껄끄럽게 생각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빤히 보고 있는 오칠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겠는가.

 

하지만 그런 오칠의 행동이 익숙해지자 승려들은 아무도 오칠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실혼인인 오칠이 보는 것이니,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거라 여기게 된 것이다.

 

오칠은 그렇게 장경각에서 외운 무공들을, 수련하는 승려들의 모습을 통해서 배우고, 밤이면 탑림에 가서 눈에 담은 그 무공들을 직접 시현해보며 몸에 익혔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탁발승 생활을 하고 있다는 현 소림의 최고 고수도 칠십이절예 중에서 마흔세 개를 익혔을 뿐이라고 하니, 그 수련의 어려움을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오칠은 이미 그 이상의 무공을 익힌 상태였다.

 

고작 삼 년 동안에 불과하지만, 칠십이절예 중에서 무려 쉰아홉 개의 무공을 몸에 익혔다.

 

여타의 무공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 많고 머릿속에 있는 무공은 그 이상이었으니, 오칠은 가히 경악스러울 정도로 많은 무공을 익히고 있으며 더 많이 익힐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오칠도 몰랐다.

 

그냥 익혀졌다.

 

머릿속에 담은 무공들과 이를 수련하는 승려들의 몸짓을 뒤섞어 생각하고, 고민하고, 펼치다 보면 그냥 익혀졌다. 물론 쇠줄 때문에 하체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약간 어색한 면이 있었지만, 꿈에서는 분명하고 정확하게 무공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칠은 자신이 무공의 천재였구나, 라고 간단한 결론을 내려버렸지만 분명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실상은 삼 년 전, 마기에 의해 일어난 각성과 영물, 영초가 신체를 보다 그럴듯하게 변화시켰고, 그래서 머리 이전에 몸이 익혀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지만, 오칠은 진상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이 천재이고, 그 엄청난 천재성으로 무공을 익혀버렸다고 생각하면 편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됐으면서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동작으로는 익혀버렸지만, 그에 어울리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공이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왜?

 

그 이유 역시도 오칠은 알지 못했다.

 

노승이 추측할 수도 없는 엄청난 내공을 이용하여 절대금마령(絶對禁魔靈)을 발휘하고, 오칠의 정신을 지배하려 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광폭한 의식을 금제했을 뿐만 아니라, 영물, 영초로 몸에 생겨난 엄청난 기운까지 차단했다는 것을 오칠은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금제로 인해 내공이 생겨나고, 흘러가야 할 혈들이 막힌 상태라는, 그래서 아무리 대단한 소림의 내공심법을 수련해도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오칠은 그러한 내공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무공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공이 생겨날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지금의 오칠에게는 무공을 수련하는 것 외에 달리 삶을 개척해나갈 가능성 높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공을 익히는 재미가 너무나 컸다.

 

과거에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던 소림 무공을, 너무도 쉽게 마구 익혀나가고 있지 않은가.

 

내공만 생기게 되면, 말 그대로 천하제일인도 꿈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우선 내공이 생기고 소림을 빠져나가고 하는 일들이 먼저 해결되어야 했지만 말이다.

 

‘……!’

 

팔대호원에 들어서고, 방장실 근처를 지나가려던 오칠은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방장!’

 

오칠이 느낀 시선의 주인은 소림 방장이었다.

 

방장실 앞 계단 위에 서서, 마치 오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오칠이 방장과 마주친 적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오칠이 익히려는 강력한 무공을 익힌 승려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그 대부분이 아무나 쉽게 접근하지 못해 은밀히 무공을 익힐 수 있는 방장실 주변을 애용하는지라 오칠은 자연히 요 근방을 자주 돌아다니게 되었고, 그래서 방장과 만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왜 그리 쳐다보는 거야?’

 

찔리는 것이 있는 오칠은 당연히 긴장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실혼인의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삼 년이 그랬듯, 방장이 그냥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날과 뭔가 다른 심경의 변화가 있는 모양이었다.

 

방장이 계단 아래로 내려오며 오칠에게 말을 건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대답을 해서는 안 되었다. 걸음을 멈춰서도 안 되었다. 어떠한 반응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오칠이 연기하고 있는 실혼인은 그러한 존재여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