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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9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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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29화

파계 2권 - 4화

 

 

 

 

 

어느새 괴물들은 사라지고, 수십의 아리따운 여인들이 짓이겨진 오칠의 주위에 나타나 있었다.

 

[너무나 멋져요!]

 

여인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진탕시키는 웃음소리를 내며 오칠의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가슴이 터져 갈비뼈가 튀어나오고, 내장이 흘러나오는 오칠의 몸을 더 할 수 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애무했다. 이리저리 뒤틀리고, 부러진 다리를 마치 보물이라도 만지듯 얼굴에 비볐다. 어떤 여인은 풍만한 가슴을 피범벅이 된 오칠의 얼굴에 들이대며 흔들었다.

 

[하하하하!]

 

오칠은 웃었다.

 

빌어먹을 몰골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갖은 애무를 다 쏟아 붓고 있는 여인들의 행태에 웃음이 나오고, 그런 가운데도 흥분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이 악몽이며, 결국 환상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자신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아~!]

 

한 여인이 어느새 오칠의 몸 위로 올라와 끈적끈적한 신음을 내질렀다.

 

그렇게 짓이겨졌는데도 거기는 멀쩡하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오칠을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매일 밤 이런 상황이었고, 그때마다 웃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기도 했다.

 

[아아~!]

 

먼저 올라왔던 여인이 절정의 탄성과 함께 쓰러졌다.

 

싸움 실력은 별로라도, 그 짓 하나만은 도가 튼 오칠이었다.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조절하며 여인을 굴복시키는 것은 일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네다섯 명을 넘어가면서 힘들어졌다.

 

손을 이용하지도, 입을 이용하지도, 다른 여타의 행동도 취할 수 없는 오칠은 여인을 상대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곧 그 자신도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저 아래로부터 뭔가 빠르게 솟아올라오는 느낌에 오칠은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것은 쾌락의 감각이었지만, 정말 원치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기에 불쾌감도 일었다. 하지만 이 절정의 순간이 악몽의 마지막이라는 것에 오칠은 안도했다.

 

그리고 곧 잠에서 깨어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몽롱한 의식 저편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

 

오칠은 악몽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빌어먹을!”

 

늘 그렇듯 욕부터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탑림 한 구석이었다. 어젯밤 화산파의 불청객들이 가고 난 뒤에 이곳에서 그대로 잠이 든 것이다.

 

“또 쌌냐?”

 

바지춤이 끈적거리는 느낌이 싫었다.

 

삼 년 동안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이랬고, 그래서 왜 끈적거리는지 알기 때문에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잠을 자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자다니!”

 

잠을 자지 않게 위해 불광대승신공(佛光大乘神功)을 운기하지 않았던가.

 

티끌만큼의 내공도 모이지 않고, 몸에 내공이 없어서 운기도 되지 않지만, 어쨌든 자시(子時:밤11~1시) 말이면 끊임없이 몰려드는 잠을 떨쳐내기 위해 소림사의 그 유명한 불광대승신공을 수련했는데, 아무런 효과도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하긴 대승반야선공(大乘般若禪功), 달마대선공(達摩大禪功), 소림보리신공(少林菩提神功)도 소용없었으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반야신공(般若神功),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 달마역근경(達摩易筋經), 세수진경(洗髓眞經)…….

 

소림사에서 내로라하는 신공수련을 다 해봤다.

 

하지만 잠을 쫓아내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더구나 신공이란 것들이 아무리 수련해도 내공을 만들지 못하니, 정말 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

 

무림에서는 개세절학이라고 불리는 내공심법으로 수련하는데도 왜 내공이 모이지 않는 걸까?

 

오칠로서는 알아낼 수 없는 답이었다. 혹여 소림의 무승들이라면 알 수 있을지 모르나, 그들에게 묻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씻기나 하자.”

 

오칠은 탑림 구석에서 일어나 소림사와는 반대쪽 숲으로 들어갔다.

 

발목을 속박하고 있는 쇠줄 때문에 불편하기는 했지만, 얼마 걷지 않아 작은 계곡에 당도했다.

 

계곡은 높이가 간신히 무릎 정도에 미칠 정도로 작고 좁았지만, 이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커다란 폭포를 볼 수 있고, 그 아래로는 엄청난 협곡 사이로 흐르는 노도와 같은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오칠이 탑림에서 지내는 것을 방장과 장로들이 용인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계곡 때문이었다.

 

계곡 밖으로는 절정의 고수가 아니라면, 수백 장에 이르는 절벽을 아무렇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나갈 수 없는 험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오칠은 옷을 입은 채로 계곡 속에 온몸을 푹 담갔다.

 

“푸하!”

 

한참 동안 물속에 잠겨 있다가 일어난 오칠은, 완전히 물에 젖은 들쥐와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볼썽사나웠다.

 

크고, 더럽고, 헤어진 승복이 물에 젖어 윤곽이 드러난 몸은, 뼈만 남아 대나무보다 더 앙상했고, 축 처진 무성한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달라붙은 얼굴은 그 자체로 해골이었다.

 

오칠은 왜 이리도 흉한 몰골이 된 걸까?

 

일단은 밥을 잘 먹지 않아서였다. 먹을 것에 대해서 미친 듯이 욕망을 발산할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실혼인으로 보이기 위해 음식을 거의 입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대외적인 이유였고, 실상은 악몽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악몽 때문에 거의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 그리고 매일 같이 정기를 쏟아낸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부터 계속해서 꾸게 되는 빌어먹을 악몽.

 

악몽의 말미에는 늘 여인들의 욕구 대상으로 전락하는 신세.

 

물론, 그 덕분에 실혼인처럼 보일 수 있었고, 오칠의 실혼인 연기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지만, 사실 이 정도로 끔찍한 몸 상태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약간 마른 정도, 그리고 최소한 몰래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정도.

 

그것이 오칠이 바랐던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공 수련은 고사하고, 쓰러지지 않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의 상태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악몽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시간이 되었군.”

 

오칠은 계곡에서 나와 탑림을 지나 소림사 내부로 들어섰다.

 

물에 젖어 후줄근한 몰골과 머리카락에 가려 있기는 하지만 멍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오칠의 앞으로 갑자기 다섯 명의 젊은 승려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갑작스런 승려들의 출현에도 오칠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이번엔 제대로 좀 먹여주라.’

 

겉으로 보이는 무감각한 표정과는 달리, 오칠은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실혼인처럼 보이기 위해 음식에 대한 욕구를 절제하고 있긴 하지만, 어찌 사람이 먹지도 않고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나타난 승려들이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것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승려들은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다.

 

방장의 명으로 오칠에게 음식을 먹이는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행동은 열정이 없고, 자연히 음식을 먹이는 데에도 그리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오칠이 조금이라도 크게 발광을 하면, 항아리에 물을 퍼 담듯 입에 음식을 쏟아 붓고는 그냥 가버렸다.

 

사실 승려들의 무성의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오칠의 몰골도 이러하고, 삼 년 전에 마기에 물들어 살육을 벌이려 했던 그 일은, 비밀로 취급되기는 하지만 소림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당연히 승려들은 오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승려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오칠을 두려워했다.

 

들리는 말로는 아주 배분 높은 노승이 목숨을 버리고 마기를 금제시켰다고는 하지만, 언제 또 그런 광기가 나올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나한진에 맞섰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힘을 뿜어냈다고 하니, 두려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각설하고,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승려들이 순간적으로 사지를 움켜잡자 오칠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 끄아아~!”

 

귀가 다 멍멍할 정도로 크게 소리치고, 사지를 잡은 승려들의 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눈을 까뒤집으며 마구 발광을 했다.

 

“좀 가만히 있으라고!”

 

네 명이 오칠을 제압하고 있는 사이에, 나머지 한 승려가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오칠의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에 거의 힘도 없고, 뼈만 앙상하더라도 오칠의 몸짓은 격렬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음식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됐어!”

 

승려들은 제압했던 오칠을 놓아주고, 재빨리 물러났다.

 

오칠은 다시 멍한 상태로 돌아왔다. 아니, 그렇게 보이려 노력했다. 그리고 승려들이 사라지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차라리 점혈이라도 하면 좀 좋아!’

 

실상 오칠의 몸엔 점혈이 통하지 않는다.

 

이유는 오칠도 모르지만, 그런 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걸 승려들이 알 리가 없고, 그래서 점혈을 했다면 오칠은 마지못한 척 음식을 제대로 받아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노승에 의해 억지로 마기가 제압된 몸을 자극하여,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방장과 장로들의 명 때문에, 승려들은 점혈 같은 수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

 

오칠은 슬며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기척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들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흙이 묻어 더러웠지만, 오칠은 개의치 않고 흙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꿀꺽꿀꺽 삼켜댔다.

 

살기 위해서였다. 먹지 않고는, 최소한이라도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법 배가 부르네.’

 

오칠은 나름대로 만족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상태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그리고 삼 년 동안의 삶이 오칠에게 이런 상황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이제 가볼까.’

 

오칠은 다시 실혼인의 모습을 만들어내며 걷기 시작했다.

 

십여 개의 크고 작은 건물과 담장을 지나고, 수십 명의 승려들을 스쳐서 뭔가 범상치 않은 건물에 도착했다.

 

장경각(藏經閣).

 

소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건물이었다. 눈에 드러나게 지키지는 않지만, 주변에는 정확한 규모도 알 수 없는 수의 소림 고수들이 은신하여 조용히 이목을 집중하고 있을 것이었다.

 

오칠은 출입을 허가받지 않은 승려나 혹은 불청객이라면 벌써 제지를 받거나 제압당했을 거리에까지 진입해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도 오칠을 막는 이가 없었다.

 

삼 년 전 며칠간은 이런 오칠을 막았지만, 오칠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제약하지 말라는 방주와 장로들의 명이 있고부터는 아무도 막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실혼인으로서 완전하게 인식되어버린 오칠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소림사에 아무도 없었다.

 

지금 소림사에서 오칠의 존재는 이렇듯 아무것도 아니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사물과 다름없는 존재가 바로 오칠이었다. 오칠이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바로 그러한 상태인 것이다.

 

‘담철.’

 

장경각 안으로 들어선 오칠의 시선 안에 승려 한 명이 보였다.

 

장경각 각주의 둘째 제자이자, 십팔나한 중 아시다라 불리는 담철이었다.

 

“…….”

 

담철은 오칠이 장경각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오칠이 지금과 같은 시간에 장경각에 들어온 것이 삼 년이나 되었고, 장경각 한쪽 구석에서 두 시진 정도를 멍하니 있다가 나가는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담철은 오칠의 광기를 분명하게 경험한 이들 중 하나였다. 물론 오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담철은 오칠과 대면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방주와 장로들의 명만 아니었다면, 오칠을 장경각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계속 나를 외면하라고!’

 

오칠은 느릿하게 커다란 장경각 내부를 거닐었다.

 

그리고 순간, 손을 뻗어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빼내 품에 넣었다. 배수짓을 하던 손놀림이었기에, 조용하고 빨랐으며, 오칠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 담철이 전혀 눈치 채지도 못할 은밀한 동작이었다.

 

오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장경각 가장 안쪽, 승려들도 잘 오지 않는 어둡고 구석진 곳으로 가서 벽을 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