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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7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27화

파계 2권 - 2화

 

 

 

 

 

물론 야사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정사무림이 마지막 비장의 수로, 당시 천하절색의 미녀를 이용하여 마교 교주를 유혹하는 미인계를 썼고, 교주는 그 음험한 암계에 죽은 것이며, 그래서 정사무림은 간신히 마교를 물리칠 수 있었다는, 사실 마교는 진 것이 아니라 교주를 잃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훗날을 기약하고 조용히 흩어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이 책의 말미에 기록된 내용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구만.”

 

단순히 마교대전을 기록한 것뿐이라는 고서의 말미에는, 죽기 직전에 교주가 무엇을 했는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 내용인즉 마교는 언제고 다시 일어날 것이고, 그래서 교주는 후인을 위해 하나의 안배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마교의 비술로 교주의 모든 것을 남겼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었다.

 

“혹시라도 방장 스님이 그러한 염려를 하신다면, 사부님께서 제게 이 말을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

 

“그날 이후로 무림은 많은 발전을 했고, 또한 무림맹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 이백 년이라 하면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이백 년 전에는 구파일방이라 해도 각자의 울타리에만 신경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마교대전 이후로 무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맹이 창설되지 않았던가.

 

비록 지금은 그 맹이 정사(正邪)로 나뉘어져 있고, 근래에 들어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마교와 같은 강력한 세력이 출현하게 된다면 언제라도 하나가 되어 싸울 수 있는 체계가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내 걱정이 기우에 불과한 것이겠지.”

 

어찌 되었든, 방장은 고서를 해석함으로써 의문만 증폭되었던 내용을 속 시원히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동안의 걱정을 떨치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삼 년 전, 노승이 그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열반에 들어 괜한 걱정만 남았던 것이 이제는 모두 풀어지게 된 것이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금원종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방장실을 나왔다.

 

금원종은 내일 일찍 소림사를 떠나야 했다.

 

아니, 실상은 그리 급하게 갈 일은 없었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소림사에 며칠 묵으면서 십팔나한 등의 여러 무승들과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나, 출발하기 전에 사부가 능소혜를 데리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안계를 넓혀주라는 말을 했고, 그래서 좀 더 일찍 출발하여 능소혜가 가보고 싶다는 곳들을 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꽤나 다급한 일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부님께서 왜 그런 명을 내리셨는지…….’

 

화산파 장문의 속내는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금원종과 능소혜가 좋은 인연으로, 좀 더 깊이 연결되기를 바란 것이지만, 금원종은 그 속내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그믐달이라 날이 어두우니, 수련하기에는 그리 흥이 나질 않겠구나.’

 

방장실을 나온 금원종은 팔대호원의 끝자락에 마련된 숙소로 향했다.

 

원래 소림사를 찾아온 객들은 지객당 산하의 숙소에서 지내게 되어 있지만, 금원종 등은 특별히 방장실과 가까운 팔대호원에 배정을 받은 것이다.

 

끼익.

 

‘역시 없군.’

 

여인인 능소혜는 바로 옆방을 배정받았고, 금원종과 능진철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금원종이 들어선 방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침상이 정리된 채 그대로 있는 걸 보면, 능진철은 방에 그리 오래 있지도 않은 것이 분명했다.

 

사실 금원종은 방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아무도 없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능진철은 무공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화산에서도 틈만 나면 수련을 했고, 소림사에 왔다고 해서 그러한 습관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사매도 따라 나갔나 보군.’

 

청각을 돋워 옆방의 기척을 살핀 금원종은, 그 방도 비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금원종은 방을 나와 능진철과 능소혜가 갈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방장실 주변은 소림사에서도 내원이었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당연히 능진철도 그러한 점을 알 테고, 만약 모른다고 해도 근방을 은밀히 지키고 있다는 무승들에게 제지를 받을 것이 분명하니, 그리 비밀스럽지 않은, 그러면서도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움직였을 것이 분명했다.

 

‘저쪽이 그럴듯하군.’

 

금원종이 바라보는 곳은 방장실과 멀어지고, 여러 중요한 건물들이 있다는 곳과는 반대쪽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하나의 소로로 이어져 있는데, 나무들이 많고, 뭔가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즉, 남의 집이지만, 조용히 혼자 무공을 수련하기에는 더없이 좋을 듯한 곳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사제도 그리 느꼈겠지.’

 

금원종은 산보를 하듯 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몇 개의 무성한 나무들을 지나고, 어둑한 소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아!”

 

나무들도 사라지고, 확- 하고 펼쳐지는 공간에 들어선 순간 금원종은 우뚝 멈춰 섰다.

 

초승달의 가녀린 빛이 은은하게 비춰드는 대지 위로, 크고 작은 탑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둥글한 모양은 누군가가 묻혀 있을 무덤이리라.

 

탑림(塔林).

 

소림사 내에는 역대 고승들의 묘와 석탑이 나무처럼 늘어서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을 탑림이라 불렀다.

 

‘이런!’

 

금원종은 자신이 소림사의 성지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여 당황했다.

 

그리고 얼른 이곳을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에 금원종은 다시 걸음을 멈췄다.

 

‘검풍?’

 

소림사에 검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승들이 전통적으로 갈고닦는 것은 곤봉이나, 선장 등을 이용한 무공, 혹은 권각술이었다.

 

그러니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소림승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능진철이 펼치는 검법에서 생성되는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금원종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몇 개의 탑을 지나고, 몇 개의 무덤을 지나자 검풍이 생겨나는 근원지에 당도했다.

 

“아, 금 사…….”

 

금원종은 한쪽에 앉아 있던 능소혜가 기척을 느끼고 입을 열려 하는 것을 막고는, 그 옆에 서서 능진철을 진중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

 

능진철이 펼치는 검법의 이름이었다.

 

솨솨솨솨-

 

십여 개의 검영이 은은한 달빛에 반짝이며 허공을 수놓았다.

 

그리고 검을 아래로 당긴 능진철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땅을 향해 빠르게 검을 찌르고, 휘두르며 매서운 칼바람을 일으켰다.

 

‘좋군.’

 

금원종은 능진철의 모습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사제가 펼치는 백팔식광풍쾌검은 화산파에서도 가장 쾌속한 검법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익히기 어려운 검법이기도 했다.

 

능진철 정도의 수준으로 백팔식광풍쾌검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장문인과 서너 명의 장로, 그리고 금원종 정도뿐일 것이다. 물론 그 말을 능진철이 들었다면, 분해하며 더욱 수련에 힘을 쏟게 될 것이지만 말이다.

 

촤촤촤촤-

 

마지막 초식이 어두운 공간을 빠르게 밝히고서 사라졌다.

 

그리고 능진철은 격해진 숨을 가라앉히다가, 고개를 돌려 금원종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떻습니까?”

 

“좋구나.”

 

“그리고요?”

 

“하지만 급하구나.”

 

“급하다고요?”

 

“백팔식광풍쾌검은 빠름을 지향하는 검법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족하다. 그런데 너는 더 빠르게 하려 하는구나. 네가 검법을 펼치고 숨이 격한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비무도 아니고, 실전적 싸움도 아닌데, 그리 숨이 가빠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그렇군요.”

 

“내 조언을 듣겠느냐?”

 

“…….”

 

능진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었고, 그래서 대답을 않는 것이 듣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임을 금원종은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백팔식광풍쾌검을 느리게 펼치는 수련을 해라. 그리고 냉천한월공(冷天寒月功)보다는, 옥함신공(玉函神功)에 더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능진철은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형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금원종은 그가 뛰어넘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금 사형의 백팔식광풍쾌검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꼭 봐야 하겠느냐?”

 

금원종은 괜히 능진철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자만이 아니라, 금원종의 경지는 확실히 능진철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아직은 다다를 수 없는 곳을 본, 대부분의 사람은 절망을 하기 마련인 것이다.

 

“예.”

 

하지만 능진철은 꼭 봐야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금원종은 그의 사제가 쉽게 포기하거나, 절망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손을 내밀었다.

 

“지금 내겐 검이 없구나.”

 

능진철의 검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능진철은 검을 주지 않았다. 그는 결코 다른 이에게 자신의 검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설사 대사형이라 해도 말이다.

 

금원종은 어깨를 으쓱이며 미소를 지었고, 뒤에서 분위기가 왜 이래? 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능소혜에게 잠시 검을 빌리자고 말했다.

 

“금 사형이 제 검을 쓰겠다면 나야 영광이죠!”

 

능진철과는 무인의 개념자체가 기본적으로 다른 능소혜는 흔쾌히 자신의 검을 건네주었다.

 

대부분의 전통 있는 문파는 문하 제자에게 함부로 무기를 소유하거나, 정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같은 검이고, 도라도 개개인에 맞게 그 크기, 무게, 아주 약간이라도 모양의 차이를 두고 만들어서 때가 되었을 때에 하사를 하는 것이다.

 

능소혜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열아홉이 되었던 작년에 검을 받았고, 그 검은 능소혜의 능력과 신체, 그리고 그녀가 대표하는 무공 특징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휙휙!

 

금원종은 우선 능소혜의 검을 들어 이러저리 휘둘러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검을 손에 적응시키려는 것이다.

 

“시작하겠다.”

 

능진철 등으로부터 멀찍이 물러난 금원종은 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백팔식광풍쾌검의 기수식이었다. 그리고 순간 번개처럼 앞으로 검을 찔렀다.

 

일검일풍(一劒一風).

 

하나의 검이 움직여, 하나의 바람을 일으킨다고 하는 단순한 일초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백팔식광풍검의 시작이었고, 검은 순식간에 십여 개로 늘어나고, 바람도 그에 맞는 광폭한 바람으로 돌변했다.

 

후아아- 후아아-!

 

마치 협곡에서 치솟아 오르는 바람처럼 사나운 바람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 사이사이마다 검빛이 번뜩이고, 어두운 대기를 더욱 뿌옇게 만드는 흙가루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젠장!’

 

능진철은 내심 이를 악물었다.

 

사형과 그 자신이 어느 정도의 격차를 가졌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지금은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놓은 기분이었다.

 

무공에 있어서는 포기란 없고, 실패란 없으며, 후회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능진철의 가슴에, 결코 생겨서는 안 되는 감정이 생겨났다.

 

사형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화산파의 중급 무공으로도 지금과 같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형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자신은 왜 사형보다 재능이 없는 것인가, 라고 마음에서 외쳐대고 있는 질투심.

 

‘포기하기는 이르다!’

 

능진철은 스스로에게 아직 많은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섣부른 포기도, 절망도 바보 같은 짓거리라고 자신을 질책했다. 그리고 훗날 지금 보고 있는 백팔식광풍쾌검 이상의 위력을 펼치기 위해서 금원종의 모습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일단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니까 말이다.

 

후우우…….

 

한데, 공중으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검풍을 일으키던 금원종이 갑작스럽게 검을 거두고 땅에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

 

금원종은 어리둥절해 하는 능진철의 시선 속에서 능소혜를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왜… 왜 그래요, 금 사형?”

 

갑자기 검법 시현을 멈춘 금원종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능소혜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살포시 숙였다.

 

너무나 환상적인 검법과 그 검법을 펼치는 금원종의 헌앙한 모습에 멍해 있었고, 그래서 금원종이 자신의 속내를 눈치 챈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금원종은 능소혜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 뭐야!”

 

가만히 보고만 있는 금원종과 달리, 능진철은 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능소혜는 뭔데 그래? 하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