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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26화

파계 2권 - 1화

 

 

 

 

 

제13장. 배화교전록(拜火敎戰錄)

 

 

 

 

 

숭산 위로 해가 뜨면 새벽 종소리가 새들을 놀라게 하고,

 

숲 속의 작은 개울물은 졸졸 흐르며,

 

산기슭에 푸른 풀이 밝게 빛나네…….

 

 

 

 

 

“금 사형, 정말 좋은 글귀가 아닌가요?”

 

능소혜의 활기찬 물음에 금원종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듣기 좋은 글귀구나.”

 

금원종의 이 같은 말을 듣기 위해 글귀를 외었던 능소혜는, 잠도 설치고 책을 뒤적거린 보람을 느끼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죠? 역시 금 사형은 듣는 귀가 있다니까요. 누구처럼 머릿속에 무공만 가득한 사람하고는 아~ 주 달라요.”

 

그렇게 말하며 능소혜는 그들의 바로 몇 걸음 앞에서 걸어가는 사내의 등을 쏘아 보았다.

 

“금 사형이 언제 아니다, 라고 한 적이 있더냐?”

 

앞서 걸어가던 사내, 능소혜의 친오빠 능진철은 슬쩍 고개를 돌려 비웃음을 날렸다.

 

“저 앞에 있는 바위가 예쁘다고 해도 금 사형은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란 말이다.”

 

“흥! 오빠는 시에 대해 알지 못하니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맞다. 난 무공 외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러는 넌 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이냐?”

 

능소혜는 순간 당황했지만, 옆에 있는 금원종의 시선을 느끼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난 매일 밤마다 시경을 읽고 있단 말이야!”

 

“하하! 무공서를 읽다가도 잠을 자는 네가 시경을 읽다니! 이거야말로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구나!”

 

능소혜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가 책 읽기를 싫어하는 것은 화산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워낙 잠이 많아서 유일하게 새벽 수련에 참가하지 않는 화산제자가 바로 능소혜였다.

 

만약 그녀가 장문인의 여식만 아니었다면, 그러한 게으름으로 인해 진작 쫓겨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무림인이니 시경을 모르더라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란다. 그러니 사매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야.”

 

금원종은 고개를 푹 숙인 능소혜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금 사형은 시경을 읽었잖아요. 그리고 논어니, 맹자니 하는 것들도 다 읽었다고 했잖아요.”

 

능진철이 그런 것을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 한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능소혜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 읽긴 했지. 하지만 난 약간의 관심만 있었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단다.”

 

실상 금원종이 읽은 것들은 사서삼경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그것은 약간의 관심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금원종의 말 때문에 능소혜는 활기를 찾았고, 다시 말하기 좋아하는 명랑한 아가씨로 돌아와 종알종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귀를 혹사시키지 않아도 되겠군.”

 

숭산의 줄기를 한참이나 올라가던 일행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고, 능진철은 귀를 후비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번 싸워보자는 거야!”

 

능소혜가 등에 메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노려보았다.

 

“이곳에서는 너를 보호해줄 사람이 사형밖에 없다는 걸 잊었나 보구나.”

 

능진철은 친동생이라고 해서, 여자라고 해서 봐주고 하는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

 

더구나 누군가 그의 앞에서 검을 잡으려 할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둘 다 그만 해라. 우리는 화산파를 대표해서 온 것이니 이제부터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금원종은 늘 만면에 가득하던 부드러운 미소가 아니라, 화산파 제자들의 대사형으로서의 무게감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을 나무랐다.

 

그리고 이러한 표정의 금원종은 매우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더 이상 티격태격하지 않고 상종하기 싫다는 듯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와~ 사람이 많네.”

 

금원종 등이 도착한 곳은 소림사였다.

 

그리고 소림사에 불공을 드리러 온 많은 사람들이 산문으로 들어가고, 혹은 나오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금원종 등은 보통 사람은 오르기가 쉽지 않은, 하체가 튼실하고 한 장의 높이는 훌쩍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경공능력을 가진 무림인들만이 오를 수 있는 빠른 길로 왔기 때문에 이제야 이리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 것이다.

 

“화산에서 오신 분들이시군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산문에 들어서던 금원종 일행 앞에 한 명의 젊은 승려가 다가왔다.

 

가슴에 매화 문양이 새겨져 있고, 등에 검을 차고 있는 금원종 일행은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확 띌 수밖에 없고, 그래서 특별히 용건이 있다 여긴 모양이었다.

 

“화산파의 금원종이라 합니다. 장문인의 명으로 방장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러시군요. 저를 따라오십시오.”

 

젊은 승려는 일행을 산문 안으로 이끌었다.

 

‘역시 소림사는 남다른 데가 있군.’

 

금원종은 젊은 승려의 표정과 몸가짐을 통해 소림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화산파라 하면 구파일방의 하나로, 검파 중 제일이라는 평을 받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화산파 장문인의 명을 받고 왔다 하면 우선 깜짝 놀라는 것이 일반적이 반응인 것이다.

 

그리고 금원종은 화산파의 매화검수(梅花劍樹)로서 매화신검(梅花神劍)이라는 별호와 함께 후기지수 중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수였다.

 

더구나 승려는 소림사 지객당의 승려로서 금원종의 이름을 모르지는 않을 터.

 

이는 알고도 놀라지 않는, 차분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었지만, 결코 쉽게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승려의 품행만으로도 금원종은 소림사의 격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금 사형.”

 

금원종은 문득 그의 소매를 잡는 능소혜 때문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저 사람 좀 봐요.”

 

능소혜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금원종은 뭔가 괴이한 모습의 사람 하나를 보게 되었다.

 

‘뭐지?’

 

머리카락은 어깨를 뒤덮을 정도로 길고 무성했다.

 

게다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참으로 지저분하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당연하게도 그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어떠한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옷은 어떠한가.

 

몸에 맞지 않게 커서 후줄근하고, 소매는 손까지 가릴 정도로 길었으며, 바지는 신발도 보이지 않게 늘어져 있어서 뒤쪽으로 바닥을 질질 끌면서 걸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신발을 신지도 않은 맨발일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옷이 찢어지고, 해어지고, 때에 절어 있어서 당장에 갈아입히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겨울이 다 지나 봄으로 성큼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아직 밤이면 쌀쌀한 날씨가 아니던가. 저런 몰골로 밖에서 잠이라도 들었다가는 얼어 죽고 말 것이었다.

 

한마디로, 정상인과는 아주 동떨어진 광인의 몰골과 다름없어 보였다. 아니, 광인이라기보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실혼인(失魂人)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발목이 쇠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 정도로 짧고 굵은 쇠줄이었다.

 

‘왜 저런 사람이 여기 있는 것이지?’

 

산문 밖이라면 모를까, 실혼인은 산문 안에 서 있었다.

 

마치 밖으로 나가야 하나? 하는 자세로 서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사람이 아니라, 산문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실혼인은 안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입고 있는 옷은 승복 같은데…….’

 

때에 절어 있는 데다 찢어지고, 해어져 있어서 그렇지, 분명 실혼인이 입고 있는 것은 승복이었다.

 

즉, 그는 이곳 소림사의 승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승려가 죄인처럼 발목에 쇠줄을 차고 있으니, 무척이나 이질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스님!”

 

능소혜가 앞장 서 걷던 승려를 불러 세웠다.

 

“저 사람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수행을 하는 것인가요?”

 

소림사에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일까, 하여 금원종이 차마 묻지 못하는 말을 능소혜는 전혀 망설임 없이 끄집어냈다.

 

“아, 저 사람은…….”

 

금원종의 짐작처럼 젊은 승려는 말하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은 능소혜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었다.

 

“왜요? 저 사람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건가요? 외부에 알리면 안 되는 비밀이라도 있나요?”

 

“사매!”

 

더 놔두었다가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금원종은 황급히 능소혜를 말렸다.

 

“아닙니다. 저 사람은… 파계승입니다.”

 

“예?”

 

능소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금원종과 능진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은 소림사에서 파문할 때 어찌 처리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렇게 몸이 망가진 파계승은, 절대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 금원종 등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의문들을 풀 수가 없었다.

 

파계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뭔가 좋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이고, 더구나 발목에 쇠줄까지 채워 속박을 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중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에 대해 묻는 것은 능소혜도 인식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예의에 벗어난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지만 저 사람은 정신이 온전하지 않습니다. 몸을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고, 광기를 부리니 낭패를 당하시기 싫으시다면 절대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실혼인의 주위로는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실혼인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거나, 혹은 승려들의 경고를 받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지저분한 몰골 때문에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궁금증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능소혜는, 그래서 생각을 접었다. 그녀도 지저분한 사람은 싫어하고, 더구나 미친 사람에게는 더더욱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미친 사람이라…….’

 

금원종은 문득 저 미친 사람이 왜 산문을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혼인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기 저렇게 서 있는 걸까, 하는 괜한 궁금증이 일었다.

 

“이제 가시지요.”

 

젊은 승려는 더 이상 실혼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듯 일행을 재촉했고, 그래서 금원종 등은 승려를 따라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 * *

 

 

 

 

 

시간은 해시(亥時:밤 9~11시) 초.

 

원칙상 취침을 해야 할 시간이었기에 소림사는 짙은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한곳, 소림사 방장실은 작은 등불로 방 안의 어둠을 밝힌 채, 두 사람이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금 시주도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가?”

 

소림 방장은 그의 앞에 높여진, 오래되어 보이는 얇은 책을 바라보며 물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금원종은 약간 무거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고서.

 

흐릿하게 보이는 제목은 페르시아어로 되어 있지만, 해석을 하면 배화교전록(拜火敎戰錄)이라는 이름의 고서였다. 그리고 이 고서를 해석하는 데 금원종도 일부 개입을 했으며, 그래서 누구보다 고서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다 말할 수 있었다.

 

“그 내용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이 늦은 시간에 방장이 금원종을 부른 이유였다.

 

그리고 금원종의 말은 화산파 장문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묻는 것이었다. 아마도 금원종은 화산파를 떠나기 전에 어떤 언질을 받고 왔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방장이 배화교전록의 해석을 화산파 장문인에게 부탁한 것은 반년 전이었다.

 

화산파 장문인은 전형적인 무인이면서도, 섬서성의 여러 문인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고 있었고, 그래서 삼 년 전부터 배화교전록의 해석 때문에 고심을 하고 있던 방장이 반년 전 그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일단 이 고서의 내용은 이백 년 전에 있었던 정사무림과 마교의 싸움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저 마교의 교인 중 하나가 당시 마교의 발호와 쇠락을 울분에 차서 기록한 것이지요.”

 

배화교전록의 기록대는 이백여 년 전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당시는 무림의 암흑기로, 무림 역사상 세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마교가 엄청난 힘으로 무림을 집어삼키는, 무림인들에게는 언제 세상이 뒤엎어질지 모르는 풍전등화와 같은 때였다.

 

당시 마교가 이전에 비할 바 없이 강했던 이유는, 수백 년에 한 번 나타나곤 한다는 마종(魔宗)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사를 대표하는 그 많은 절정고수들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하는 엄청난 무위 앞에 걸림돌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래서 마교는 처음으로 무림을 제패하는 위업을 코앞에 두게 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마교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한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확한 출신이 알려지지 않은, 훗날 천도신녀(天都神女)라고 불리게 된 여인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마교의 교주를 죽였고, 그래서 때를 맞추어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모아 반격을 시작한 정사무림의 공격에, 마교는 이후 그 잔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