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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6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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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64화

파계 3권 - 14화

 

 

 

 

 

“윽!”

 

매 문주는 완전히 기세를 잃었다.

 

연검은 이미 그녀의 의지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채찍 끝이 밀어내는 대로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그녀의 균형까지 무너트리고 있었다.

 

후우웅―

 

순간, 채찍이 묵직한 바람을 일으키며 요동쳤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이전보다 느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고 화려하며,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매 문주는 채찍을 막기 위해 마지막 남은 내공을 몽땅 연검에 쏟아 부어야 했다.

 

펑―!

 

“악!”

 

쨍― 채채챙그랑.

 

부드러운 연검이 충격을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 매 문주의 손에서도 벗어나 바닥을 뒹굴었다.

 

“헉… 헉… 헉……!”

 

매 문주는 문이 있는 곳까지 밀려나, 벽에 몸을 기대고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귀가 찢어진 손에선 가는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얼굴이 창백한 것이 작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설득될 마음이 생기나?”

 

오칠이 물었다.

 

하지만 매 문주는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오칠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매 문주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은 색기로 볼 때, 그녀는 색혼공도 풀지 않은 상태였다. 즉, 전혀 승복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복하지 않으니, 좀 더 강한 힘을 보여줄 생각일까?

 

“…….”

 

하지만 일어서기만 했을 뿐, 매 문주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오칠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매청화, 매적화 자매가 그의 양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눈동자엔 뭔가에 대한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효심이라고 해야 하나?’

 

매 자매의 상태는 말 그대로 오칠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섭혼요마신공에 의해서라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이성적으로도 오칠에게 완벽히 현혹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들이 오칠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아마도 오칠이 매 문주를 해하려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칠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난 여자는 안 때려.”

 

그러니 안심하라고 했다.

 

매 자매는 오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팔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공손한 자세로 돌아가 그의 처분을 기다렸다.

 

“당신, 딸들은 잘 두었군.”

 

오칠은 매 문주를 향해 다가갔다.

 

매 문주는 딸들의 행동을 보고 있었지만, 오칠에 대한 적의를 가라앉히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녀의 뒤쪽에는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그녀의 수하들이 빼곡히 몰려와 있었다. 물론 그 뒤쪽으로는 금철산 등이 올라와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당신한테 좋을 거 없어.”

 

오칠은 매 문주의 뒤쪽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 열 받으면 모두 죽는 거라고.”

 

오칠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구라도 빠져들게 하는 매혹적인 미소.

 

하지만 매 문주는 그 미소를 보고 잘게 몸을 떨었다. 그 미소 속에 담겨진 광폭함과 잔혹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칠은 진정 모두를 죽일 것이다. 지금처럼 웃으면서도 사람을 몰살시켜버릴 수 있는 사람이고, 매 문주는 그걸 깨닫고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말로 할 때 그냥 들어.”

 

오칠의 눈동자가 붉은 섬광을 뿜었다.

 

섭혼요마신공이 발휘된 것이다. 하지만 결코 매 문주를 현혹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칠은 지금 섭혼요마신공을 통해, 색혼공을 운용하고 있는 매 문주를 기세로 제압하려는 것이다.

 

털썩.

 

매 문주가 쓰러지듯 엎드려 무릎을 꿇었다.

 

오칠의 눈동자에서 붉은 섬광이 뿜어지면서 그녀는 더욱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단순히 오칠이 강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심령을 압박하는 무언가가 그녀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항복도 받았으니, 그만 가야겠군.”

 

오칠은 매 문주를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매 자매를 돌아보았다.

 

“나중에 또 놀러올게.”

 

순간, 오칠의 눈에서 섬광이 나오고, 매 자매를 옭아매고 있던 섭혼요마신공이 풀렸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거기 있었군. 이제 가자고.”

 

오칠은 방 안의 상황을 살피고 있던 금철산 등에게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그 사이엔 수십의 열락문 문도들이 있었지만 감히 오칠을 막지 못하고 좌우로 물러났다. 웃기는 것은 그녀들 중 절반이 환하게 웃는 오칠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는 것이다.

 

오칠은 그런 문도들에게 슬며시 눈웃음까지 지어주고는 금철산 등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제29장. 그는 광명좌사(光明左使)였다

 

 

 

 

 

“열락문 문주하고 사이가 그렇게 안 좋다며?”

 

오칠은 천상루를 나오며 금철산을 힐끔 쳐다보았다.

 

“예, 은공. 서로 편한 사이는 아니죠.”

 

“그 은공 소리는 이제 그만 하지.”

 

“하지만…….”

 

금철산은 은공을 은공이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했다.

 

그래서 오칠은 종삼처럼 이름에 님을 붙이라 했다. 그게 더 듣기 좋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오칠님.”

 

“그런데 뭐가 문젠데?”

 

“예?”

 

“왜 그리 사이가 안 좋아졌냐고.”

 

“모르겠습니다. 선대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싸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웃기는 사이군.”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오칠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누가 누구를 싫어하는 데엔 이유가 필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반대로 누가 누구를 좋아하게 되는 것에도 이유가 필요 없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서로 큰 싸움도 없이 잘도 멀쩡히 있네?”

 

“거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천목보에서 싸움을 용납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오칠은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금철산을 쳐다봤다.

 

덩치는 산만 하고, 보고 있기도 버거울 정도의 근육으로 다져진 금철산이 누가 싸우지 말래요, 하고 말하고 있으니 웃기는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천목보가 막강한 세력이라는 뜻이어서, 오칠은 세력 간의 격차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까 경 보주님이 매우 급하게 떠나든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금철산은 아까부터 궁금해 하고 있던 것이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서는 지금껏 경 보주의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궁금증이 더욱 컸던 것이다. 하지만 오칠의 대답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급한 일이 있었나 보지.”

 

오칠의 무관심한 표정에 금철산은 계속 물을 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목운교는 찾았어?”

 

오칠은 금철산뿐만 아니라, 좌우 뒤쪽에 있는 왕공단 등에게도 물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금철산이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왕공단 등도 무한을 이 잡듯이 뒤지고 탐문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하루 이틀이면 찾을 것처럼 말하더니.”

 

오칠의 타박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혹자는 무한의 사분지 일을 틀어잡고 있는 철근문과 밑바닥을 제 속살처럼 꿰고 있는 하오배들이 사람 하나 찾는 것이 무에 어려운 일이냐?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칠이 찾으라며 제시한 단서라고는 이름 하나와 추상적인 얼굴 형상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열락문의 영역과 정파 세력이 터를 잡고 있는 서북구, 서남구를 탐문하는 일은 그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과장한다면 볏짚 속에서 바늘 하나 찾는 일이라고나 할까.

 

어찌 되었든, 그런 여타의 어려움으로 인해 목운교를 찾는 일은 크게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모두들 가봐.”

 

무한을 가로지르는 수로를 건너고 나서 오칠은 금철산 등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금철산 등은 그럴 수 없다며 주점까지 뫼시겠다고 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충분해.”

 

오칠은 그의 뒤쪽으로 쭉 늘어서 있는 이백여 명의 사내들을 가리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이 지나는 길은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시원스럽게 뚫려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겁을 먹고 좌우 골목으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남의 시선에 무감각하다 해도 험상궂고 덩치만 커다란 사내들을 꼬리에 달고 다니는 것에 마냥 무감각할 수는 없었다.

 

오칠은 자신의 잘난 얼굴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길까 싶어 시선을 끌고 싶지 않은데, 금철산 등으로 인해 천상루를 나오고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얼른.”

 

오칠이 크게 손을 내젓자 금철산과 왕공단 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이 머리를 숙이고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칠의 존재를 의식했고, 그래서 오칠은 한참 동안을 더 사람들의 경외심과 두려움 가득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응?’

 

주점에 거의 도착할 쯤에 오칠은 괴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종삼이 뭔가가 담긴 그릇을 웬 지저분한 몰골의 소년에게 건네주고 있는 것이다.

 

“야!”

 

오칠은 종삼을 불렀다.

 

“얼른 가!”

 

종삼은 무얼 그리 숨길 게 있는지 황급히 소년을 보내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오칠을 돌아보았다.

 

“멀쩡하게 잘 돌아오셨네요.”

 

“멀쩡한 게 당연하지. 그런데 아까 그 아이는 뭐냐?”

 

“예? 무슨 아이요?”

 

“너 나랑 장난하니?”

 

오칠은 맞고 말할래, 그냥 말 할래 결정하라는 듯 눈을 치켜떴다.

 

결국 종삼은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알던 동생이에요.”

 

“언제부터?”

 

“무한에서 거지 생활할 때부터요.”

 

“아까 준 건 뭐고?”

 

“먹을 거요.”

 

“먹을 거?”

 

“녀석들이 동냥을 하고는 있지만, 늘 부족하니까요.”

 

오칠의 입맛에 맞춘다고 매일같이 요리 연습을 했고, 그런 중에 실패하여 남는 음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왕 먹지 못할 거, 차라리 굶는 녀석들에게 주는 것이 낫다 싶어서 요 한 달 간 그렇게 음식을 주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물어서 캐내보니 예전부터 돈이 생기면 종종 찾아가 밥을 먹이곤 했단다.

 

‘기특하네.’

 

오칠은 괜히 음식을 빼돌렸다고 맞는 것이 아닌가, 하며 눈을 내리깔고 있는 종삼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잔머리나 굴리고, 무공에 대한 허황된 욕심이나 있는 철없는 녀석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같이 어울리던 아이들도 잊지 않고,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와는 조금 다른 녀석이었네.’

 

오칠이 어릴 때는 그런 쪽으로 전혀 생각도 안 했었다.

 

나 먹기도 힘든 세상에 무얼 나누고, 무얼 베푼단 말인가.

 

‘노스님이 좋아할 만한 녀석이야.’

 

오칠은 종삼 같은 녀석이야말로 죽은 노승의 제자가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했다.

 

“내일 데리고 와.”

 

“예?”

 

“네가 아는 동생들 주점으로 데리고 오라고.”

 

“왜요?”

 

“왜긴 왜야, 주점에 데리고 와서 밥 먹이라는 거지.”

 

“왜요?”

 

딱.

 

“아고!”

 

“이유 없어. 먹이라면 먹이면 되는 거야.”

 

종삼은 왜 갑자기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지만, 오칠은 정말로 이유 없이 그리 시키는 것이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노승이 죽기 직전에 오칠이 들었던 자비에 대한 의미가 문득 떠올랐다고나 할까?

 

‘남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것이라…….’

 

노승이 그 말로 방장을 설득한 덕분에 쇄마동에 갇히지 않게 되었지만, 오칠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긴 시간 중에 한두 가지 정도는 자신의 가치관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예.”

 

오칠은 괜히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먼저 주점으로 향했고, 종삼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