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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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63화
파계 3권 - 13화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매 문주는 우선 오칠의 내심을 떠보기로 했다.
하지만 오칠은 어깨를 으쓱이며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절대 매 문주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문득 오칠의 시선이 그녀의 뒤쪽으로 넘어갔다.
“당신은 또 누구야?”
매 문주는 그제야 자신의 뒤에 경 보주가 와 있다는 걸 알았다.
한데, 경 보주의 눈빛이 이상했다. 마치… 필생의 대적을 만난 듯 오칠을 긴장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 오칠이란 자가 그리 강한 자인가?’
무한에는 정사로 나뉘어져 있는 만큼, 이를 양분하는 세력의 수장들 역시 그 고하를 점칠 수 없는 고수로 평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매 문주가 그 두 사람을 객관적으로 판단해볼 때, 경 보주의 실력이 한 걸음은 앞서 있었다. 어쩌면 두 보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경 보주의 무공은 추측할 수도 없을 만큼 강했다.
사실, 그들 열락문의 초대 문주에게 색혼공과 몇 가지 무공을 알려준 것도 당시의 천목보 보주였던 만큼, 그 숨겨진 힘과 내력조차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천목보였다.
‘그런 천목보의 보주가 긴장을 한다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다른 이에게 들었다면 농으로 듣고 웃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웃을 수 없는 것은, 지금 그녀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경 보주는 진정 긴장된 눈빛으로 오칠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오칠이오?”
경 보주가 매 문주의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오칠은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선 모두들 왜 묻는 말에 바로 대답을 않는 거야? 맞아, 내가 오칠이다.”
오칠의 말은 누구라도 건방지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말투였고, 그래서 매 문주는 곧이어 경 보주의 분노한 얼굴을 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경 보주는 뭔가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을 뿐이었다.
왜?
매 문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저 두 사람 사이에서 묘하게 엇갈리는, 괴이한 기운을 피해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다가는 뭔가 큰 위험에 휘말릴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두근거림은 뭐지?’
경 보주는 매 문주의 짐작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아름다운 사내를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압박감에 목 언저리가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이다.
‘왜지?’
경 보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를 긴장시킬 사람은 세상에서 몇 되지 않을 정도로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 가진바 무공의 강함과 숨겨진 신분의 막강함을 생각하자면, 세상에서 그에 필적할 능력을 가진 이는 몇 명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가지는 자부심이 강했다. 그런데 긴장을 하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신, 느낌이 묘하군.”
오칠이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사악한 미소였다.
“당신은 선악의 경계에서 어디를 보지?”
“……!”
경 보주는 너무도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하고 오칠을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무… 무슨 말을…….”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말하려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칠이 전음을 통해 그의 머릿속에 전달한 말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난 광명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암흑의 신 아리만의 의지를 받드는 자다!
경 보주는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머릿속을 울려대는 그 말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찾아와. 우리 사이엔 할 이야기가 많은 거 같으니까.”
오칠은 손을 내저었다.
이제 그만 나가보라는 듯이 말이다.
‘저자가 미쳤군.’
뒤에서 보고 있던 매 문주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경 보주의 모습이 평소와는 달랐고 왜 그런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천목보의 보주였다. 그리고 무한에서 천목보의 보주에게 감히 이런 식으로 명령하는 자는 없었다. 더구나 경 보주도 그러한 행동을 참고 있을 정도로 물렁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 문주는 이제 곧 피를 볼 일이 생길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경 보주가 마치 오칠의 축객령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황급히 방을 빠져나가 계단 아래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
왜?
경 보주는 왜 저리 급하게 떠난 것일까?
마치 초식동물이 맹수를 피해 도망치는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닌가.
“자, 그럼 이제 우리 사이의 일을 해결해볼까?”
“…….”
매 문주는 침묵했다.
조금 전 경 보주의 행동도 그렇고, 저 당당한 오칠의 모습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녀의 말문을 막히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날 탐문하게 했어?”
매 자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오칠이 물었다.
매 문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딸들이 그렇게 말하던가?”
“뻔한 이야기지. 왜 날 조사하려고 했지?”
“그건 말해주지 않았나 보군.”
“그런 것까지 묻기에는 여러 가지로 너무 바빴거든.”
오칠이 미소를 짓고, 매적화와 매청화 자매는 더욱 깊이 오칠의 품에 안겨들었다.
하지만 매 문주는 더 이상 딸들의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다. 늘 당당하던 매적화와 사내를 돌처럼 보던 매청화의 종속적인 모습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제는 오칠의 존재만큼 그녀를 놀라게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하지. 그래도 직접 듣고 싶더라고.”
“그렇다면 말해주지. 그대가 우리의 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려 했다.”
“그래서?”
“적이면 죽이고, 아니면…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 했지.”
“그런데?”
“글쎄, 내 딸들의 행동을 보면 좋은 관계가 된 거 같긴 하지만, 금 문주가 그대를 은공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 복잡해졌다고나 할까?”
“그래? 그럼 내가 조금 쉽게 결론을 내려줄까?”
“……?”
“그냥 나에 대해 관심을 끊으면 돼.”
매 문주는 오칠의 내심을 살피듯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싫다면?”
“내 의중을 떠보는 건가? 하지만 튕기지 않는 게 좋을 걸?”
“왜지?”
“그러다 죽는 수가 있거든.”
매 문주의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경 보주가 그리 당황스런 모습으로 사라졌고,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눈앞에 있는 오칠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이리 말할 수는 없다. 조금 전 그녀를 물러나게 했던 불안감도 살기에 의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대는 내가 누군지 잠시 잊은 것 같구나.”
“안 잊었어.”
“그럼 단순히 간담이 큰 건가?”
“아니, 그냥 당신을 설득할 정도로 강할 뿐이야.”
“하!”
매 문주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허리에 감고 있던 채찍을 잡아서 바닥에 늘어트렸다.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볼까?”
매 문주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붉어졌다.
중년은 훌쩍 넘어선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오히려 더욱 완숙된 미모에 색기가 가득 담겨졌다. 섭혼공을 운용하며 생기는 현상인 것이다.
“열락문의 사람들은 죄다 허리에 무기를 감고 있나?”
바닥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는 매 문주의 채찍을 보고도 오칠은 별반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오칠의 반응에 매 문주는 더욱 강하게 살의를 일으켰다.
철썩―
손목의 작은 움직임과 함께 채찍이 공간을 격하고 오칠의 얼굴로 날아갔다.
좌우에 그녀의 딸들이 있음에도 매 문주의 손속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싸움에 임하는 그녀는 그만큼 냉정하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덥석.
“……!”
하지만 그녀의 매서운 공격은 오칠이 채찍 끝을 잡아버리면서 간단히 멈춰버렸다.
“나 강하다니까.”
오칠은 여전히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잔이 들려 있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술은 조금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
“확실히 느끼게 해주지.”
오칠은 술잔을 입 안으로 기울이면서, 잡고 있는 채찍 끝을 강하게 움켜잡고 손목을 기이하게 틀었다.
휘리릭.
오칠의 손목에서 시작된 커다란 요동이 채찍 끝을 타고 퍼져나가며, 매 문주의 손목까지 전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윽!”
매 문주는 채찍을 놓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채찍의 움직임은 그녀의 손목을 비틀고, 팔 전체에 엄청난 압력을 주고 있어 끝까지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거봐, 나 강하잖아.”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손목을 다른 손으로 움켜잡으며 매 문주는 오칠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오칠은 그녀의 채찍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빙긋이 미소만 지으며, 더욱 그녀를 분노케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치르릉.
매 문주는 손목에 차고 있던 연검을 꺼내 잡았다.
“역시 문주라 무기도 많군.”
오칠은 채찍을 돌려 잡았다.
“한 번 덤벼봐.”
매 문주는 이를 악물었다.
일어서지도 않고, 앉은 채로 덤비라니! 마치 어른이 어린애를 상대로 장난을 치듯 저리 여유를 부리다니!
매 문주로서는 이처럼 모욕을 당한 적이 없으리라. 오칠의 저런 오만한 모습을 마주한 적도 없으리라. 그래서 화가 났다. 분노가 일고, 살의가 끓어 넘쳤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내음은 더욱 향긋해지고, 색기는 눈이 시릴 정도로 강하게 뿜어졌다. 매 문주의 색혼공이 십 성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좋아!”
오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매 문주의 기세를 느끼고, 그에 맞게 상대해주려는 것이다.
휘리리. 휘리리. 휘리리리.
오칠의 손목을 따라 채찍은 끊임없이 공중을 휘돌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요사스러움이 느껴졌다.
월하요무편(月下耀舞鞭).
배화교 백팔가문의 무공 중 하나였다.
매 문주는 이를 악물었다. 오칠이 진정 강하다는 걸, 그녀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편법의 고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질 수 없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강함은 무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 임하는 자신에게 달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샤악―
추풍이십사식(追風二十四式).
바람을 쫓을 정도로 빠르고, 매서운 칼바람이 연검의 끝에서 일어나 오칠의 손목을 따라 휘돌고 있는 채찍을 향해 뻗어갔다.
티팅. 티티티팅.
짧고도 격렬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매 문주의 연검은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면서도 계속해서 채찍을 쫓았고, 채찍은 쉼 없이 요동치며 연검을 밀어냈다.
“좀 더 정교하게 해볼까?”
오칠은 마치 놀이라도 하고 있는 듯 소리치며, 손목을 좀 더 짧고 경쾌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큰 움직임 속에서 휘돌고 있던 채찍이 일순간 꼿꼿하게 일어서고, 그 채찍 끝이 창처럼 연검을 찌르기 시작했다.
티티티티티티팅―
연검과 채찍 끝이 맞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튕겼다.
‘이럴 수가!’
매 문주의 신형은 좌우를 오가며 움직이고, 그 움직임을 따라 연검은 더욱 날카롭고 맹렬하게 공간을 잘라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오칠과의 삼 장 간격 안으로 전진할 수가 없었다.
왜?
채찍의 길이가 딱 삼 장이기 때문이다.
매 문주는 간격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더욱 매섭게 몰아쳤지만, 뻣뻣하게 곤두선 채찍 끝은 정확하게 그녀의 연검을 노리고 뻗어와 짧고도 강렬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정교함의 극치.
어찌 채찍의 가는 끝으로 구부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연검의 끝을 정확하게 밀쳐낼 수 있단 말인가.
“헉… 헉… 헉…….”
매 문주는 점점 지쳐갔다.
내공은 한계를 드러내고, 공세를 취하던 그녀는 채찍을 막아가는 것에 급급해지기 시작했다.
팅―
순간, 연검의 끝이 크게 흔들렸다.
채찍의 힘이 갑자기 강해진 것이다. 오칠은 더 이상의 싸움이 의미 없다 생각하고, 월하요무편에 좀 더 강한 내공을 담아가고 있는 것이다.
팅―
내공이 채찍 끝에 응축되었다가 연검과 격돌하며 터져나갔다.
팅― 팅― 팅― 팅― 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