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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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60화
파계 3권 - 10화
“…….”
“…….”
“…….”
일순간 일 층 전체가 묘한 침묵에 잠겨들었다.
가장 위층으로 올라가겠다는 오칠의 말에 손님들이 하나 둘씩 관심을 보이면서 거의 모두가 시선을 주고 있었는데, 그 모든 이들이 오칠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손님들의 시중을 들던 기녀들과 점소이들까지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은 보면, 오칠의 얼굴은 가히 색공이나 섭혼공에 비견될 수 있을 놀라운 위력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이놈의 인기는 역시나 변함이 없군.’
오칠은 패물점에서 확인한 자신의 아름다움을 새삼 다시 확인하며 내심 흡족해 했다.
그러나 단순히 만인의 관심을 받자고 천상루에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오칠은 목소리에 아주 조금 섭혼요마신공의 기운을 담아서 일 층 총관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 서 있어야 하는 거지?”
“아!”
총관은 화들짝 놀라서 머리를 조아렸다.
“위로 모시겠습니다.”
오칠의 아름다운 외모에다 섭혼의 효능까지 더해지자 일층 총관은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의심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서둘러 이 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오칠을 안내했다.
“육 총관님, 최상층으로 오르실 손님이십니다.”
일 층 총관은 계단 가장 끝자락에 멈추었고, 또 다른 중년의 미부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천상루는 각 층마다 총관이 있고, 칠 층부터 일 총관, 이 총관으로 호칭을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금 오칠을 안내한 이는 칠 총관이었다.
“아!”
칠 총관의 말을 듣고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오칠을 향해 고개를 돌린 육 총관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 순간 넋이 나간 듯한 감탄성을 흘렸다. 오칠은 약간의 소요를 일으키기 위해, 고의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지?”
오칠은 육 총관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인지 다 알면서도 물었고, 육 총관은 당황하여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소첩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총관의 지위에 있는 만큼 ‘본관’이라는 말을 써야 함에도, 육 총관은 마치 과거 그녀가 기녀 시절에 자신을 지칭했던 ‘소첩’이란 말을 쓰고 말았다. 육 총관은 오칠로 인해 그만큼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오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육 총관은 더욱 당혹스럽다는 듯 머리를 깊이 숙였다.
아마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감추기 위함일 테고, 그래서 삼 층으로 가는 계단 쪽으로 서둘러 몸을 돌린 것이 아니겠는가.
“따르시지요, 위로 모시겠습니다.”
오칠은 그러지, 하며 육 총관의 뒤를 따랐다.
이 층 역시 일층과 마찬가지로 침묵에 잠겨 들어가 있었고, 오칠이 삼 층으로 올라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돼서야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물론 대화의 대부분은 저리 잘생긴 이는 보지 못했다는 등등의 감탄과 질투 섞인 것들이었다.
오칠은 그렇게 질시와 동경이 가득한 소란을 일으키며, 천상루의 칠 층에 이르렀다.
“따르시지요.”
칠 층 총관은 확실히 다른 층들의 총관들과는 그 마음 자세부터가 달랐다.
물론 얼굴이 살짝 붉어지기는 했지만, 멍한 표정을 짓거나 어쩔 줄 몰라 고개도 들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드시지요.”
사 층부터는 그 수준에 맞게 각각의 방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확실히 칠 층은 그 격부터 완전히 달랐다. 바닥에 깔린 것들, 탁자들, 방의 분위기를 살리는 소소한 물품들까지 값지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그 배치의 적절함은 단순히 비싼 것들로 치장한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나쁘지 않군.”
오칠은 어떤 짐승의 가죽인지는 모르지만, 더없이 부드러운 것이 깔려 있는 바닥에 등받이를 대고 앉으며 말했다.
사실 그의 메마른 감정에도 불구하고 내심 꽤나 놀란 상태였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 얼굴 하나로 모든 이들을 당혹시키고 매혹시킨, 그 배경이 신비하기 그지없는 공자로 연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혹 공자님께서 특별히 찾으시는 아이가 있으신가요?”
이곳에선 술과 음식이 가장 최상의 것으로 정해져 있기에 따로 주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손님은 술시중을 들 기녀를 자신의 기호에 맞게 찾곤 하는 것이다.
“우선 보고나서 결정하지. 단,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내보내겠다.”
오칠은 단호한 시선으로 일 총관을 응시했고, 그녀는 오칠 정도면 그러한 요구를 할 만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곧 들여보내겠습니다.”
일 총관은 공손한 뒷걸음으로 방을 나왔다.
그리고 손님을 시중들고 있는 몇 명을 제외한 칠 층의 기녀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일 총관은 오칠을 만족시키는 것이 일생의 과업이라도 되는 듯 심각했다. 아니, 그건 그녀와 천상루의 자존심 문제였다.
경험 많은 그녀로서도 난생 처음 보는 미남자를 만족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무한 제일의 기루라고 자부하는 그녀에게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 * *
“큰아가씨.”
중요한 손님들을 마중하고 방으로 돌아가려던 매적화는 다급한 걸음으로 뛰어와 그녀를 부르는 기녀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냐?”
“일 총관께서 급히 오셔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왜?”
“그것이…….”
기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어물거렸고, 매적화는 되었다며 손을 저었다.
“직접 가보면 알겠지.”
방으로 돌아가서 동생과 의논할 것이 있었지만, 일단은 기루의 일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더구나 능력과 처세가 뛰어난 일 총관이 부른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일 수 없다. 그래서 매적화는 빠른 걸음으로 일 총관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큰아가씨.”
일 총관은 무척이나 낭패한 얼굴로 매적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매적화는 그녀보다는 그녀 주위로 몰려 있는 기녀들을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왜들 이러고 있는 거지?”
일 층부터 칠 층까지의 기녀들을 죄다 끌어 모았는지, 복도가 사람들로 가득했다.
더구나 기녀들의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고, 우울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으니 매적화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송구합니다. 소인의 능력이 부족하여…….”
매적화는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서두는 이야기하고 나서 송구하느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한 시진 전에 손님 한 분을 방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손님께서 시중 들 아이들을 보시고는…….”
일 총관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한 명의 준수한 공자가 손님으로 왔고, 그 방으로 시중 들 기녀들을 들여보냈지만, 그 공자의 마음에 든 아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매적화는 어이가 없었다.
이곳, 천상루가 어떠한 곳인가!
무한 제일의 기루인 만큼, 기녀들 하나하나가 미색과 기품이 빼어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특히 칠 층에서 시중을 드는 기녀들은 그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최고의 기녀들만 모아두었는데, 마음에 드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니.
하지만 그런 모든 것보다 매적화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복도에 쭉 늘어서 있는 기녀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이리 울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손님의 시중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평소 어떤 대답에든 주저함이 없던 일 총관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이 부끄럽다는 표정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더듬거리는 설명을 다 듣고 난 매적화의 얼굴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화가 났기 때문이다.
“울음 그치지 못하겠느냐!”
매적화의 싸늘한 외침에 기녀들은 황급히 눈물을 흠치고, 얼굴을 숙였다.
그리고 당장 방으로 돌아가라는 불호령에 서둘러 방으로 움직였다. 하나, 그런 중에도 손님이 들어가 있는 방으로 아쉬운 눈빛을 보내는 기녀들이 있으니, 매적화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가 찰 일이었다.
“미공자라고?”
매적화는 싸늘한 코웃음과 함께 물었고, 일 총관은 생전 처음 보는 준수한 공자라고 대답했다.
“내가 들어가지.”
“큰아가씨께서 들어가신다면 안심이지요.”
매적화는 그 미모도 빼어나고, 남자를 다루는 언변에, 여러 다른 능력들이 뛰어나서 천상루 제일의 기녀로 칭송받고 있었다. 물론 색혼공이라는 비전의 신공을 익히고 있어 그 능력을 더욱 발휘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제 그녀가 들어간다면, 아무리 눈이 높은 손님이라 해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일 총관은 한결 차분한 마음으로 매적화를 방으로 안내했다.
“공자님, 소첩 들어가겠사옵니다.”
조금 전까지 매적화의 얼굴에 그려져 있던 싸늘한 기운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얼굴엔 봄날 햇살처럼 따스한 미소와 요부의 그것처럼 가슴을 끓어오르게 할 색기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이었다.
드르륵.
안에서 대답은 없었지만 좌우에 있는 기녀들이 문을 열었고, 매적화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
문이 닫히고,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매적화는 잠시 침묵했다.
‘그림 같은 사내군.’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는 사내는 참으로 미남자였다.
더구나 그의 뒤로 펼쳐져 있는 풍경화와 어우러져, 마치 미남자의 대명사인 송옥(宋玉)과 반악(潘岳)을 화폭에 담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일 총관이 생전 처음 보는 준수한 공자라고 했던 말이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하지만…….’
매적화는 아주 짧은 감탄을 끝으로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상대가 다시없을 미남자긴 하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질 상대는 아닌 것이다. 그녀는 그런 감정을 조절하도록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다음 대 열락문의 문주로 내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매적화는 마음의 절제와는 달리 얼굴 가득 부끄러운 빛을 담았다. 사내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바보처럼 보이지 않게, 적당히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고,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인 것이다.
“그대는?”
고개를 살짝 삐딱하게 기울이고 있는 사내, 오칠은 담담한 시선으로 매적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내군.’
수십 명의 아름다운 기녀들을 단호하게 내쳤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소첩은 적미라 하옵니다. 공자님의 시중을 들고자 하는 욕심에 들어왔사옵니다.”
기루에서는 기명을 쓰는 것이 원칙.
지금 매적화는 열락문의 작은 주인이 아니라, 철저하게 기녀 적미가 되어 있었다.
“욕심이라… 이곳 천상루의 기녀들은 모두 욕심이 과한 것 같군.”
오칠은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매적화는 내심 화가 났지만 얼굴에 더할 수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처럼 뛰어난 분을 뫼시고 싶은 것은 저희 기녀들의 큰 소망이지요. 그러니 너무 탓하지 말아주시어요.”
매적화는 눈웃음을 치면서 오칠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그리고 색혼공(色混功)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 눈을 봐!’
내심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오칠의 오만한 미소가 점점 풀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매적화는 더욱 색기 가득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떠신가요, 공자님? 지금도 제가 나가기를 바라시는지요?”
“…….”
오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멍한 눈빛으로 매적화를 볼 뿐이었다.
‘의외로 쉽게 넘어오는군.’
색혼공이란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현혹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상대의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관심도를 높이고, 자신에게 집중을 하게 한 뒤에 발휘해야만 제대로 먹히는 고난도의 준비 작업이 필요한 수법인 것이다.
그래서 매적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색혼공을 발휘하자마자 넘어오니, 너무나 의외의 상황일 수밖에.
“그럼 제가 술 한 잔 올릴까요?”
매적화는 슬며시 자리에 앉으며 물었고, 오칠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원래 색혼공에 현혹되면 묻는 말에 고분고분해지고 진실해지게 되는 법인데, 오칠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매적화는 오칠의 몽롱한 눈동자를 보고, 현혹되었다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제부터 오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만 생각했다.
‘우선 이자의 정체를 알아야겠지.’
“공자님의 함자는 어찌 되시는지요?”
오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매적화가 물었다.
그런데 오칠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몽롱한 눈빛을 하고서 매적화 쪽으로 기어오는 것이 아닌가.
“공자님?”
그제야 매적화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오칠은 그녀의 옆에 바짝 다가와 있었고, 뭔가 헤벌쭉한 얼굴이 되어 몸을 더듬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