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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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56화
파계 3권 - 6화
제26장. 욕망이라는 이름의 두 글자
“음식은 이미 시켰어요.”
미소가 예쁜 여인이 조금 전 자신과 종삼이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냐는 듯 말했다.
그러나 오칠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여긴 주점이라고 말했다. 즉, 음식보다는 술을 시켜야 주문이 끝난다는 말이었다.
“어떤 술이 있죠?”
“분주가 있습니다.”
“다른 건요?”
“분주가 있습니다.”
“…….”
“…….”
“그렇다면 분주밖에 없다는 말인가요?”
“분주만 판다는 말이죠.”
오칠을 향한 여인의 미소가 좀 더 진해졌다.
‘이자가 내게 수작을 거는 건가?’
주점에 술이 하나라니, 그게 말이 되는 말인가?
오칠은 지금 말장난을 치고 있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성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말장난을 이용한다는 것을 여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하나, 오칠은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설명했을 뿐이다. 더구나 여인들에게 수작을 걸고자 하는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물론 여인은 절로 음심이 동할 만큼 예뻤다. 만약 예전의 오칠이었다면 단번에 작업을 걸어, 자신의 품에 안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오칠은 아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여인들은 그저 손님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오칠이 자신에게 마음이 동했고, 뭔가를 바라는 상태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내심 매우 흡족했다.
‘생각보다 쉽겠어.’
여인은 오칠에 대해 뭔가를 캐내고자 이곳에 온 것이다.
오칠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실력이기에 철근문의 금철산을 그리 압도적으로 패배시킬 수 있었는지, 그리고 굴욕적으로 패배한 금철산이 왜 며칠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아오는 것인지, 그리고 쌍칼파 등의 하오배들은 왜 주점을 들락거리고 있는지, 그래서 주위를 누군가 지키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 주점이 평범한 사람은 접근도 할 수 없는 곳이 되었는가에 대한 여러 의문을 풀고자 온 것이다.
그런데 오칠은 그녀가 어찌하기도 전에 벌써 관심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여인은 우선 탐색을 통해 상황을 살피려 했던 것을,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주겠어. 하지만 좀 더 확실히 해야겠지!’
여인은 애써 숨기고 있던 색기를 겉으로 발산하기 시작했다.
오칠이 관심을 드러냈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여인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여인은 좀 더 확실히 오칠을 현혹시키기 위해 색혼공(色混功)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색혼공(色混功).
동남구를 영향권으로 두고 있는 열락문(悅樂門)의 비전신공으로, 내공심법이며 상대의 이지를 흐리게 해서 말을 듣게 하는 섭혼공이기도 하다. 지금 색혼공을 펼치려는 여인은 현 열락문 문주의 장녀인 매적화였다.
‘걸려라!’
매적화는 몸의 굴곡을 강조하는 듯한 몸짓을 취하고, 더욱 짙게 미소를 지으며 오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색혼공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면서 매적화의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몸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나고, 작은 몸짓 속에선 절로 색기가 풍겨 나왔다.
킁킁.
기분 좋은 향이 나기 때문일까?
오칠이 매적화를 향해 코를 벌름거렸다.
매적화는 오칠이 걸려들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고, 사문은 어디고, 금철산은 왜 여기 오는지, 하오배들은 왜 들락날락거리는지 등등에 대해 물으려고 했다.
“……!”
그런데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봉긋 솟은 가슴 한쪽을 오칠의 더러운 손이 꽉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오칠의 손이 가슴으로 뻗어오는 것을 매적화는 전혀 보지 못했다. 눈치 채지도 못했다. 그래서 당황했다.
“악!”
순간, 오칠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그녀의 가슴이 거칠게 비틀리면서 매적화는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이 음적!”
매적화는 그녀의 가슴을 잡고 있는 오칠을 향해 분노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오칠의 팔을 치우게 만든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차가운 인상의 여인, 매청화였다.
스아악―
하늘거리는 매청화의 소매가 그녀의 손짓을 따라 칼날처럼 바짝 곤두섰고, 오칠의 어깨를 쪼개버릴 듯 휘둘러졌다.
오칠은 슬쩍 뒤로 물러나며 소매의 날카로운 공격을 피했다. 하나, 뒤로 물러나는 순간, 그의 몸은 다시 앞으로 움직여 매청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이번엔 매청화의 가슴이 오칠의 손에 잡혔다.
“이쪽이 더 크네.”
매청화의 차가운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것은 부끄러움보다는 분노와 수치스런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날카롭고, 사납게 팔을 휘둘러 오칠의 머리를 노렸다.
샤샤샥―
공기가 갈라지고, 그 끝에 위치한 오칠의 머리가 단번에 둘로 쪼개져버릴 듯했다.
하지만 오칠은 고개를 좌우로 젖히면서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로 그 날카로운 공격을 가볍게 피해버렸다.
“제법이군요!”
매적화는 요대처럼 허리에 감고 있던 백색의 채찍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에도 더 할 수 없이 색기가 넘쳤다. 내공을 운용하면서 색혼공의 기운이 발휘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그녀는 천성적으로 그러한 색기를 타고 난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색기를 발산하도록 교육받았고, 수련까지 한 그녀였다.
매적화는 탁자를 박차고 뒤쪽으로 물러나며 오칠과의 거리를 벌렸다.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모든 공격을 피해버린 오칠을 경계하고, 채찍이 좀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매청화도 그녀의 옆으로 물러났다. 그녀의 손에는 날이 잘 선 연검이 들려 있었다. 매적화의 채찍처럼 요대로 보이게 만든 백색의 연검이었다.
“우리를 능욕했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
매적화는 채찍을 더욱 꽉 움켜잡았다.
이제 공격을 할 것이니 각오하고 있으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칠은 그런 매적화의 말이 틀리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쪽이 먼저 날 유혹했잖아.”
매적화는 순간 움찔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수룩하지 않고, 이런 반격에 흔들릴 여인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면 당신의 잘못이 없어질 줄 알아요?”
“이봐, 당신 방금 섭혼공 썼잖아. 그거 나 유혹하려고 펼친 거 아니야?”
“누… 누가 섭혼공을 썼다는 거예요!”
매적화는 오칠이 자신의 수법을 눈치 채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오칠이 어찌 멀쩡할 수가 있었던 걸까?
그녀가 펼친 섭혼공은 아직 십 성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사내도 굴복시킬 수 있는 위력이 있었다. 또한 지금껏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칠은 어떻게?
“썼으면 썼다고 시인하면 되지, 뭘 숨기고 그래?”
오칠의 말에 매적화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섭혼공에도 끄떡없었고, 그 수법까지 눈치 채고 있으니 아니라고 우기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나, 이렇게 정당성을 잃어버리면 매적화에게 불리했다.
더구나 이런 말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던 그녀였기에, 더더욱 오칠의 말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리고 마침 한 가지 반박하기 좋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럼 내 동생의 가슴은 왜 만진 거지요? 내 동생은 내가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신을 막았을 뿐인데, 왜 동생의 가슴을 만진 거냐고요!”
이번엔 오칠도 할 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칠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내 팔을 자르려고 했잖아. 때리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야지. 내가 여자에게 폭력은 절대 금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가슴 한 번 만지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 운 좋은 줄 알아.”
“뭐라고요!”
매적화는 너무도 화가 났다.
여인의 가슴을 만진다는 건, 폭력을 쓰는 것 이상으로 심한 짓이었다. 그런데 오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하고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그건 매적화가 기녀라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욱 화가 나는 일이다. 자신이 기녀이기 때문에 더욱 가볍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의 자격지심 때문이라고나 할까.
물론 오칠은 그녀가 기녀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매적화는 논리적으로 오칠을 설득하고, 굴복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실상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은 오칠이 어떤 자인지를 알아보고, 열락문은 오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자신들에게 이득을 줄 것인지, 아니면 적으로서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알아보고 판단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칠은 매적화를 비롯한 열락문에 결코 이로운 자가 아니었다. 여인을 이처럼 가볍게 여기는 자가, 기녀들이라고는 하지만 여인들로만 구성된 열락문에 무슨 보탬이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죽이자.”
매적화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여전히 매혹적이고 색기가 가득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한 이의 얼굴엔 미소가 생겨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늘 예외는 있는 법.
매청화의 얼굴엔 반대로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싸늘하고, 차가웠지만 그것은 너무나 예쁜 미소였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기로 결심한 미소이기도 했다.
매적화, 매청화 두 자매는 그렇게 오칠을 죽이기로 결론을 내리고, 두 눈에 살기를 담았다.
“이거 귀찮게 됐군.”
오칠은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말했잖아, 난 여자는 안 때려.”
“흥! 그렇다면 죽어!”
싸늘한 코웃음과 함께 매청화가 움직였다.
오칠과의 거리는 일 장.
앞으로 쭉 내밀어진 연검이 단번에 그 거리를 줄이며, 오칠의 목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귀찮게.”
팅―
오칠은 코앞까지 다가온 연검의 끝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연검이 크게 흔들리고, 매청화의 몸까지 흔들리며 뒤로 밀려났다.
촤악―
매청화가 밀려난 공간으로 백색 채찍이 꿈틀거리며 날아와 요동쳤다.
먼저 오칠이 달려들 수 있는 길목을 차단하고 뒤이어 반격하려는 의도였지만, 오칠이 움직이지 않음으로 해서 매적화는 괜히 허공만 쳐댄 셈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고, 채찍은 어느새 오칠의 하체를 향해 넓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턱.
“……!”
바닥을 쓸 듯이 짓쳐 들어가던 채찍의 끝이 오칠의 발에 밟혔다.
어떻게?
변화가 많은 채찍의 움직임을 단번에 제압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건만, 오칠은 그저 발을 들었다가 내려놓는 간단한 동작으로 그 일을 성공시켰다.
“이잇!”
매적화는 채찍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오칠의 발에 밟힌 채찍은 조금도 당겨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철 기둥에 눌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만 하라니까.”
오칠의 무미건조한 음성.
그는 싸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여자하고 싸우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싸움이란 상대를 강하게 치고, 그 타격을 몸소 느끼는 맛인데, 여자를 때리지 않는 그로서는 그런 맛을 만끽할 수 없는 것이다.
오칠에게 여자란 성적인 것을 비롯해 여러 즐거움을 나누어야 할 대상이지, 치고 박고 하는 존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칠의 그런 생각을 매 자매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오칠이 말을 하지 않으니 이해할 수도 없고, 설사 들었다고 해도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매적화는 오칠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채찍을 다시 잡아당겼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매청화의 연검이 오칠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었다.
“계속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오칠은 다리를 들어 밟고 있던 채찍을 놓고, 오른쪽에서 베어오는 연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핫!”
매청화는 손목을 움직여 연검을 흔들었다.
내공이 응집되어 단단하게 세워져 있던 연검이 파르르 떨리며 부드럽게 요동치고, 뱀처럼 유려한 움직임을 보이며 오칠의 손을 피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덥석.
하지만 연검은 채 안쪽으로 파고들기도 전에 멈춰버렸다.
매청화의 손목을 오칠이 잡아버린 것이다.
“……!”
순간, 매청화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어느새 뻗어온 오칠의 더러운 손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은 것이다.
“역시 커.”
새삼 놀랍다는 듯 오칠이 말했다.
매청화는 거세게 팔을 휘저었다. 오칠의 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였지만, 역시 그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