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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5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6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54화

파계 3권 - 4화

 

 

 

 

 

오칠은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 바보냐?”

 

“…….”

 

“너 얼마 전까지 나 죽이겠다고 미친개처럼 덤벼들었어. 그런데 뭐? 제자로 받아달라고? 내가 머리에 칼 맞았냐? 나 죽이겠다던 놈을 제자로 받게?”

 

오칠은 코웃음을 쳤고, 옆에 있는 종삼은 저 사람 이제 송장 됐네, 하고 생각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제자로만 받아주십시오!”

 

왕 대장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오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는 절실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오칠은 그런 왕 대장의 눈빛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왜?

 

왕 대장의 눈빛에서 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전의 자신과는 다른, 조금 전 종삼과는 다른, 조금의 가식도 없이 진정 가슴에서 우러나는 간절함을 본 것이었다.

 

오칠은 왕 대장의 이런 눈빛 비슷한 것을 철근문 문주에게서 보았기 때문에 그에게 내공심법 등을 알려줄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던가.

 

우당탕탕.

 

한데, 이때 세 명의 사내가 요란스럽게 주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왕 대장의 뒤에서, 그처럼 바닥에 넙죽 엎드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크게 소리쳤다.

 

“저도 받아주십시오!”

 

“저도 받아주십시오!”

 

“저도 받아주십시오!”

 

냉 대장, 구 대장, 그리고 양 대장이었다.

 

그들은 원래 철근문 문주가 오칠에게 패한 것을 보고, 이곳 무한을 떠날 결심까지 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석두파의 시조가 되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다가 오칠의 제자가 되겠다며 주점 안으로 들어가는 왕 대장을 미친놈 취급했었다. 오칠이 왕 대장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슬며시 주점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칠이 크게 화도 안 내고, 뭔가 묘한 침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마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기회다 싶어 뛰어 들어온 것이다.

 

“……!”

 

“……!”

 

“……!”

 

하지만 그들이 안으로 들어온 순간 주점 안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뭔가 엄청나게 살벌한 기운이 단번에 왕 대장을 비롯한 세 사람의 주위를 맴돌아 그들을 짓이겨버릴 듯 내리눌렀다.

 

“윽!”

 

“악!”

 

“큭!”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냉 대장 등의 세 사람은, 돌멩이에 눌린 개구리처럼 바닥에 짓눌려서 사지를 바동거렸다.

 

다친 상처가 터져나가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처럼 바닥에 밀착되었다.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 어떤 발악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압력은 너무나 거세고 강력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냐?”

 

콰지직!

 

오칠이 앉아 있던 의자가 무형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애써 가라앉혔던 분노가 치솟아 올라 벌떡 일어난 오칠의 몸을 휘돌았다. 아니, 그건 분노가 아니었다. 미약한 그의 감정은 분노에 낯설어했다. 그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존재에 대한 살생 욕구를 발출하는 것일 뿐이었다.

 

“사… 살려주… 주십시오!”

 

“용서… 해주십… 시오!”

 

“잘못했… 습니… 다!”

 

호흡을 내쉬기도, 입을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냉 대장 등은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하나, 오칠은 그들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한동안 감추어두고 있던 난폭한 파괴 본능을, 예전처럼 아리만의 의지가 아닌 그 자신의 의지로서 끌어올려, 그를 귀찮게 하는 이자들을 단호하게 처리하리라 마음먹었다.

 

“바… 받아주십시오!”

 

한데, 하나의 커다란 외침이 오칠의 신경을 건드렸다.

 

냉 대장 등처럼 바닥에 짓눌려 있지 않고, 부러지지 않은 한쪽 팔과 두 다리에 핏줄이 터질 정도로 힘을 주고 버티는 왕 대장이었다. 아니, 실제로 핏줄이 터진 것인지, 왕 대장의 사지 곳곳에선 선혈이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쭈구리!’

 

오칠은 제법이네, 하는 눈으로 왕 대장을 쳐다보았다.

 

그가 뿜어내는 무형지기를 감당한다는 것은 절대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본신의 절반도 안 되는 내공을 뿜어낸 것이지만, 어쨌든 웬만큼 단련한 자라도 왕 대장처럼 견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왕 대장이 그걸 가능케 하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고, 아마도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가서 곧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갈 것이 분명했지만, 어쨌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곰 같은 녀석.’

 

오칠은 밖으로 분출하던 진기를 안으로 갈무리했다.

 

다른 놈들은 모르겠지만, 왕 대장은 죽이고 싶지 않았다. 변덕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런 모든 감정의 변화도 오칠 스스로의 선택이니까 말이다.

 

“이름이 뭐야?”

 

오칠은 헉헉거리며 축 늘어지려는 몸을 간신히 버티어내고 있는 왕 대장에게 물었다.

 

왕 대장은 얼른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왕공단입니다! 공단이라 불러주십시오!”

 

오칠이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한 걸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건 왕 대장의 착각이었다.

 

“이봐, 난 제자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천하제일미인에다 아방궁까지 지어준다고 해도 절대 제자는 안 받는다 이 말이야.”

 

물론 거짓말이었다.

 

신념이고 뭐고 간에 억만금을 주고, 미인에다 아방궁까지 지어준다는데, 구차하고 짜증나고 귀찮은 것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사실, 세상 어떤 자가 그런 조건에 넘어가지 않을쏜가.

 

그건 감정이 메마른 오칠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정은 미약해도 이성은 멀쩡했고, 똑바른 이성이라면 그러한 제안을 절대 포기하는 바보짓은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오칠은 그만큼 자신의 생각이 분명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왕 대장의 얼굴에 실망 가득한 표정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런 왕 대장을 쳐다보며 오칠이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너 무공이 배우고 싶은 거 아냐? 내가 좀 강하다 싶으니까, 뭐 좀 배워서 세상 좀 대차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제자가 되려는 거 아니냐고.”

 

“맞습니다!”

 

순진하게도 왕 대장은 부정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하는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던 종삼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뒤쪽에서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있는 냉 대장 등의 얼굴엔 두려움이 생겨났다.

 

혹여 진정돼가던 오칠의 분노가 다시 폭발해서, 간신히 건진 목숨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머리에 돌만 찬, 멍청한 새끼!’

 

냉 대장 등은 왕 대장이 왜 부정을 하지 않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칠은 왕 대장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해서 좋았다. 어쩌면 머리가 둔해서 변명을 못하고 속이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오칠은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머리를 굴리고,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쫓아 세상을 현혹하는 것은 그 자신이면 충분했다. 주변 사람이 그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더구나 오칠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그건 오칠의 성질을 제대로 건드리는 것이고, 죽여 달라고 발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대차게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 그거냐?”

 

“예! 오칠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뒤에 있는 냉 대장 등은 생긴 것 같지 않게 아부를 떤다고 속으로 욕을 했지만, 그 말은 아부가 아닌 왕 대장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왕 대장은 응풍단의 표 조장 등을 때려눕히던 오칠의 박력과 힘을 동경하게 됐고, 그래서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은 것이니 말이다.

 

“너 맘에 드는 말만 하는구나.”

 

오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 했다.

 

“하지만 난 제자 안 만든다. 그러나 무공은 가르쳐줄 수 있지.”

 

왕 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 듯 머리를 바닥에 쿵 찍으며 넙죽 절을 했다.

 

“오칠님을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뭐?”

 

“제자가 안 된다면, 주군으로 모시게 해주십시오!”

 

오칠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구차한 인연이 싫어 적당하게 해결하려 했건만, 왕 대장은 다른 쪽으로 인연을 만들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하라는 건, 귀찮다 싶으면 내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군신유의(君臣有義:임금과 신하 사이의 도리는 의리에 있다)를 따지기도 하지만, 오칠에겐 전혀 관계없는 말인 것이다.

 

“좋다. 하지만 날 귀찮게 하는 짓은 하지 마라. 무공 외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만 알아둬.”

 

“명심하겠습니다, 주군!”

 

왕 대장은 더 할 수 없이 기쁜 표정으로 힘껏 외쳤다.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그가 이처럼 말을 많이 하고 표정을 밝게 하는 것은 이곳의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오칠의 앞이 아니라면, 누구도 이런 왕 대장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저도 대차게 살고 싶습니다!”

 

눈치를 보고 있던 냉 대장이 외친 소리였다.

 

좌우에 엎드려 있는 구 대장과 양 대장도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대차게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고 힘껏 고함을 질렀다.

 

“…….”

 

오칠은 그런 그들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분명 세 사람이 대차게 살고 싶다는 말은 진심일 것이다. 세상 그 누가 대차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왕 대장처럼 두려움을 이겨내고 말을 하는 것과 눈치를 보고 때를 포착하여 말을 하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오칠이 감동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한데, 이번엔 냉 대장도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아님, 왕 대장 흉내라도 내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눈에 힘을 팍 주고 오칠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 보면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오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너 나 노려보는 거냐?”

 

오칠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냉 대장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고, 그런 그에게 오칠이 나직하게 말했다.

 

“눈 깔어.”

 

“예, 예!”

 

냉 대장은 얼른 시선을 아래로 숙였고, 옆에 있던 양 대장과 구 대장은 따라하지 않길 잘했다는 듯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니들도 무공 배우고 싶냐?”

 

고개를 숙이고, 언제 모가지가 잘리나 하며 가슴을 떨고 있던 냉 대장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구 대장과 양 대장도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오칠을 올려다보았다.

 

“배우고 싶습니다! 오칠님을 주군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오칠은 피식 웃었다.

 

하는 짓거리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름대로 용기 있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좀 잘 하지 그랬어? 내가 사람 좀 찾아달라고 했을 때 들어주었으면 좋았잖아.”

 

“죄… 죄송합니다!”

 

냉 대장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사실 아직까지도 오칠이 누군가를 찾기 위해,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오칠이 누구를 찾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제압하려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고, 명분에 불과한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와 다른 두 사람의 처지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고, 오칠의 손짓 한 번에 생사가 결정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뭐, 좋아. 너희들에게도 가르쳐주지.”

 

“……!”

 

냉 대장의 얼굴이 대번에 환하게 피었다.

 

다른 두 대장들의 얼굴도 이게 웬 횡재냐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나를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오칠의 물음에 냉 대장 등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 예! 하고 대답했다.

 

오칠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졌다. 한데, 뭔가 약간은 장난스런 미소 같기도 했다.

 

“하면, 왕공단하고 음… 너희들 이름이 뭐냐?”

 

“냉대손입니다!”

 

“구장질입니다!”

 

“양만창입니다!”

 

세 사람은 즉각 이름을 밝혔고, 오칠은 그렇구나 하며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럼 이제부터 너희의 서열을 정해주지. 우선 왕공단이 첫째다. 그리고 구장질이 둘째, 양만창이 셋째, 그리고 냉대손, 네가 막내다.”

 

“……!”

 

“……!”

 

“……!”

 

왕공단은 그저 하명을 받듭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냉 대장 등은 순간 당황한 표정들이었다. 가장 멍청한 자라고 생각했던 왕공단이 첫째가 되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왜, 싫어?”

 

오칠의 얼굴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싫으면 그냥 죽든가, 하는 표정인 것이다. 그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듯 오칠의 눈동자는 점점 붉게 변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주군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 대장이, 아니 왕 형님이 당연히 첫째가 되어야지요!”

 

또 오칠의 분노가 폭발할까 싶어 세 사람은 마구 손사래를 치며 머리를 조아렸다.

 

실상 냉대손을 제외하고, 구장질과 양만창은 크게 불만이 없었다.

 

서열로 자존심을 구기는 정도는 죽는 것보다는 나았고, 상대적으로 막내가 된 냉대손이 있으니, 자신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 자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