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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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53화
파계 3권 - 3화
턱.
하나, 오칠의 발바닥이 금 문주의 발끝을 밀어내고,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은 고개를 슬쩍 돌리는 것으로 간단히 피해버렸다.
그리고 오칠의 주먹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금 문주의 가슴을 강타했다.
뻑―
강력한 위력이었고, 금 문주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러나 단지 흔들렸을 뿐, 여전히 쓰러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칠의 주먹은 다시 금 문주의 복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뻑!
“……!”
금 문주는 순간적으로 배에 힘을 주었지만, 그 충격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오칠의 주먹이 다시 가슴으로 날아왔다. 피할 수 없는 속도였기에 가슴에 힘을 꽉 주고 근육을 팽창시켰다.
뻑―!
금 문주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역시 끄떡없군.”
오칠의 담담하게 가라앉은 음성이 들리고, 묵직한 주먹이 다시 금 문주의 복부를 강타했다.
뻑!
“훅!”
절로 공기가 내뱉어졌다.
이전보다 몸에 전해지는 충격도 강렬했다. 그리고 오칠의 주먹은 계속해서 날아와 상반신을 때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금 문주는 오칠의 주먹을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해야 하는데, 피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 엄청난 속도와 연속적인 호흡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의 반응은 더욱 둔해지고, 근육의 방어력도 약해져가고 있었다.
뻐억―! 우둑!
금 문주의 복부 어딘가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의 허리가 처음으로 구부러졌다. 오칠보다 더 위에 있던 그의 얼굴이 아래로 떨어지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오칠의 공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뻑! 뻑! 뻑! 뻑!
웅크린 듯 굽혀진 금 문주의 품으로 바짝 붙은 오칠의 양팔이, 쉼 없이 휘둘러지며 가슴과 복부를 가리지 않고 연속으로 두들겼다.
금 문주는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어깨를 쥐어 잡아 흔들어도, 머리칼을 움켜잡아도 오칠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오칠은 절대 금 문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상체를 공격한다는 하나의 목적에만 충실했다.
“커헉!”
도저히 참아지지 않는 신음이 금 문주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그의 신형이 바닥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털썩.
금 문주는 무릎을 꿇었다.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그의 강인했던 상체 근육들은 시커멓게 멍이 들어 초라하게 꿈틀거렸다.
“…….”
오칠은 그제야 공격을 멈추고, 그의 발치 아래 꿇어앉은 금 문주를 내려다보았다.
“문주님을 보호하라!”
너무나 격렬하고 빠르게 벌어진 싸움이었던지라 규 단주를 비롯한 철근문 무사들은 이제야 문주를 도우려는 움직임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르르 몰려가던 그들의 걸음은 곧바로 우뚝 멈춰졌다. 금 문주가 손을 들어서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후…….”
금 문주는 길게 숨을 뿜어내며 구부러졌던 상체를 세웠다.
하나, 일어설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근육들은 크게 손상되었기에 금 문주는 지금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중이었다.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야 호흡 조절로 가능했다고는 하지만, 일어서는 것까지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고개를 들어서, 그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오칠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내게 무엇이 부족하지?”
본격적으로 싸우면서 오칠이 했던 말을 계속 신경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오칠은 곧바로 대답해주었다.
“내공과 신법.”
금 문주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더 다른 충고를 기대했던 걸까?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몸을 단련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 그래, 난 아직 부족한 거야! 더 단련해야 돼. 더 단련하면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어!”
금 문주는 크게 소리쳤다.
더 단련해서 오칠을 이겨주겠다고 악을 썼다. 하지만 오칠은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단단하면 부러지기 마련이야.”
“…….”
금 문주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고통 때문일까?
아니다. 송곳처럼 그의 가슴에 박히는 오칠의 말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 철근문은 단단하게만 할 수 있을 뿐이야. 그것밖에 할 줄 몰라.”
금 문주는 자신과 그의 문파가 가진 한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골을 단련하는 만큼 그에 어울리는 내공심법이 있어야 했지만, 그것이 없는 철근문의 약점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내가 알려주지.”
오칠이 큰 문제도 아니군, 하며 말했다.
“……?”
“그 단단함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법을 내가 알려주겠어.”
금 문주는 멍하니 오칠을 바라보았다.
오칠의 말은 그에게, 철근문에게 내공심법을 알려준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오칠이 그럴 능력이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뭘 원하는 거지?
금 문주의 머릿속에 복잡한 의문들이 떠올랐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금 문주는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인 것이다.
“무한에서 사람 하나를 찾아줘.”
“……!”
오칠의 요구는 금 문주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작고 간단했다.
“할 수 있겠지?”
오칠은 히죽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금 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칠의 웃음에 화답하듯 그도 웃기 시작했다.
제25장. 호걸(豪傑)에겐 절로 사람이 모인다
“아~ 피곤하다.”
오칠이 주점 안으로 들어와 몸을 이리저리 틀면서 말했다.
하지만 실상 오칠의 얼굴은 그리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철근문 문주와 크게 싸움을 하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대화를 끝내고서 금 문주를 돌려보낸 뒤 주점 안으로 들어온 오칠이,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오칠의 얼굴은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 하나 없었다.
하나, 오칠이 피곤하건 피곤하지 않건, 종삼은 즉각 의자를 대령하고 물까지 떠와 오칠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뭐야?”
오칠은 너 같지 않게 왜 이래? 하는 시선으로 종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종삼의 이런 행동은 이미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철근문 응풍단의 임단주와 그 단원들이 오칠에게 박살이 나서 쫓겨났을 때부터였다.
‘이 사람은 내 인생의 대박(大舶)이다!’
사람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될 세 가지 인연이 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를 사이에 스쳐가는 인연도, 혹은 악연이라 생각했던 것도, 혹은 용기가 생기지 않아 떠나보내야 했던 인연 등등, 무엇이 그 전환점이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있다고 했다.
그리고 종삼은 오칠과의 만남을 그 세 인연 중 하나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내 인생을 꼬이게 만든 새끼라고 속으로 욕을 하곤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구나 나머지 두 가지 인연이 있기는 있었는지, 오기는 했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이 확실히 보이는 인연을 반드시 부여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부님을 보필하는 것은, 제자 된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종삼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오칠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 철면피를 뒤집어 쓴 듯 당당한 표정에 오칠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또 옛날 생각이 나는군.’
오칠은 노승에게 뭔가 얻을 것이 있지 않을까 하여 취했던 자신의 가식적인 행동들을 떠올렸다.
그 당시의 오칠에겐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으며, 그래서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런 자신과 비슷한 행동을 취하고 가식을 떠는 종삼을 보자 기분이 영 별로였다.
게다가 노승이 얼마나 큰마음으로 자신을 대했는지 더욱 깊이 깨달아지는 순간이었다. 노승은 대자대비하여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고승이었지만, 오칠 자신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파계승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굳혔다.
“맞을래?”
오칠이 툭 내뱉었다.
종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자가 사부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나쁘게 보지 마십시오.”
종삼은 말투조차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나, 오칠은 그런 종삼의 말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눈빛 가득 살기를 일으키며 말했다.
“죽고 싶으냐?”
종삼의 얼굴에 당혹감이 일었다.
오칠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싸늘한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어 피부를 따갑게 자극했다.
“사… 사부… 아니, 오칠님! 잘못했습니다!”
종삼은 넙죽 엎드렸다.
반은 그 스스로 취한 행동이었고, 반은 오칠로부터 뿜어지는 강력한 압력에 몸이 내리눌린 것이기도 했다.
“내가 경고했잖아.”
낮게 가라앉은 오칠의 음성이 종삼의 몸을 부르르 떨게 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아까까지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종삼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빌었다.
며칠 전 오칠의 눈동자에서 보았던 그 광폭한 기운을 잊고 있었던 자신을 원망했다. 이제는 잊지 않겠다는, 쓸데없는 욕심으로 오칠을 자극하지 않겠다고 내심으로 소리치며 오칠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고개 들어.”
오칠이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에서 살기가 사라지고 이전의 나른한 어투로 돌아와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몸을 내리누르던 압력도 없고, 피부를 따갑게 자극하던 싸늘함도 존재감 없이 사라져 있었다.
“…….”
종삼은 엎드린 채 바닥에 바짝 붙이고 있던 고개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산발한 머리카락으로 절반 이상 가려진 오칠의 얼굴이 보였다.
오칠은 뒤로 물러나, 종삼이 가져다놓은 의자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뭔가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는 걸까?
그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종삼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건 확실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 제자 같은 거 만들 생각 없다.”
오칠은 그런 거추장스런 관계가 싫었다.
그와 늙은이가 사제 비슷한 관계였고, 노승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오칠은 그들 덕에 목숨을 건졌고, 나름의 기연도 얻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죽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들의 죽음으로 오칠은 뭔가 굴레를 덮어쓴 기분이었다. 애써 아니라고 하지만 저 깊은 곳에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억이, 끊임없이 오칠의 생각을 흐트러트리고, 인생의 갈림길에서 뭔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 기억과 그들과의 인연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 인연의 일부는 자신의 책임이고,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싫었다.
그런 구차하고, 짜증나고, 신경 쓰이는 관계가 더는 싫었다. 그저 내키면 얼굴 보고, 내키면 술이나 먹고, 내키면 도와줄 수도 있는 그런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속편한 관계라면 모를까, 사제의 인연은 절대 사양이었다.
“분명히 기억해. 내게 그런 걸 강요하면 죽는 거야. 그냥 뒈지는 거라고.”
“예, 예!”
종삼은 고개를 쉼 없이 끄덕이며 몇 번이고 알아들었다는 걸 강조했다.
“일어나.”
종삼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오칠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의자에 앉았다.
“무공이 배우고 싶으면 요리나 연습해. 내가 말했잖아, 너 하는 거 봐서 가르쳐주겠다고. 내 말 알았냐?”
“예, 오칠님.”
종삼은 잔뜩 주눅 든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칠은 그런 종삼의 뺨을 툭툭 쳤다. 어린 녀석한테 조금 과하게 위협을 한 것 같아 미안함이 들었던가?
아니다.
오칠에겐 그런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친 것이다. 조심하라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의미로 말이다.
“…….”
그런데 갑자기 오칠의 시선이 주점의 문 쪽으로 돌아갔다.
문이 없어 훤하게 밖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투박한 인상의 얼굴 하나가 들이밀어졌다. 석두파 왕 대장이었다.
“뭐냐?”
오칠이 왜 왔냐는 듯 물었다.
이제는 그들과 볼 일이 없었다. 원래는 목운교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었고, 그 와중에 재미를 느껴서 냉 대장 등과 반은 장난스럽게 싸움을 계속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에게 볼일이 없었다. 철근문 금 문주가 목운교를 찾아주겠다고 했고, 냉 대장 등과의 싸움에는 더 이상 흥미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쿵.
한데, 왕 대장은 오칠이 묻자마자 문 안으로 성큼 들어와 바닥이 울리도록 엎드리고 머리를 숙이는 게 아닌가. 마치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받아주십시오!”
“뭐?”
오칠은 뭐라는 거냐며 되물었다.
왕 대장은 힘차게 대답했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