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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51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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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51화

파계 3권 - 1화

 

 

 

 

 

제24장. 호랑이를 제압하고, 머리를 쓰다듬다

 

 

 

 

 

철근문 표풍단 규 단주는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곳 단련장에 온 이유는 한 가지 낭패스런 보고를 하기 위해서지만, 문주는 단련을 할 때에 누가 방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근 반 시진가량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문주의 단련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늘 경탄하게 하고, 스스로 ‘충분히 노력을 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해주니까 말이다.

 

드드드득.

 

이백 근에 이르는 커다란 철구가 양쪽으로 달려 있는 철봉이, 문주의 양손에 잡혀 번쩍 들어올려졌다.

 

도합 사백 근이나 되는 엄청난 무게였지만, 문주는 기합 한 번 없이 머리 위로 올렸다가 어깨로 다시 내리기를 벌써 백 번이 넘게 하고 있었다.

 

‘철근문 역사상 가장 강한 문주가 될 분이지.’

 

규 단주는 분명 그렇게 믿고 있었다.

 

열 살이란 어린 나이에, 이백 근에 이르는 사자석상을 들어올려 모두를 놀라게 했던 문주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힘과 덩치만 따져본다면 철근문에 다시없을 인재가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부친이 마무리하지 못한 도지휘사와의 내기(전대 문주는 평소 알고 지내던 무한성 군사들을 지휘하는 도지휘사(都指揮使)와 천 근의 바위를 들고 백 보를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내기를 하다가 바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깔려죽었다)를 나이 스물에 성공시켜, 결국엔 도지휘사의 정중한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한 그가 아니던가.

 

금철산.

 

당금 철근문의 금 문주는 그렇듯 모든 철근문 사람들의 영웅이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런 문주에게 지금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규 단주로서는, 참으로 난감하고 송구한 마음에 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였다.

 

쿵―

 

스스로에게 맞는 무게의 철구로 교체할 수 있는, 그래서 일명 단련봉이라고 부르는 철봉이 사백 근의 육중한 무게와 함께 땅에 내려지며 둔중한 울림을 터트렸다.

 

팔 척 거구의 금 문주는 땀에 번들거리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한껏 힘을 쓰고 나서 적당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근육이 뭉치게 돼서, 그저 단단하기만 하고 부드럽지 않은, 매우 불균형적인 신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규 단주, 오래 기다렸나?”

 

금 문주의 나이 이제 스물하고도 여덟이었다.

 

사실 수하의 신분이라고는 하나, 규 단주는 전대 문주 때부터 문파의 일을 해왔던 오래된 가신이다. 보통 그런 인물이면 아무리 문주라도 경어를 쓰고, 그 공로와 연장자로서의 예우 차원에서 그 언사에 신중을 기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금 문주는 그런 게 없었다. 그리고 규 단주는 그 점에 대해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금 문주는 어릴 때부터 이러했다.

 

전대 문주의 확실한 교육도 있었지만, 그 스스로도 다음대 문주가 될 것이란 확신 속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스스로를 강하게 다그쳤다. 그래서 이처럼 엄청난 힘과 강한 신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로 인해 약간 과하게 오만한 점이 있지만, 응당 문주라 하면 그 정도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 무슨 일인가?”

 

말을 하면서도 금 문주는 계속해서 몸에 힘을 주고 풀기를 반복했다.

 

어깨에 힘을 주고, 배에 힘을 주고, 다리에 힘을 주며 몸 곳곳의 근육을 한시도 쉬게 하지 않았다.

 

금 문주는 중요한 곳만 간신히 가리고서 단련을 하기 때문에 그런 상태로 근육질 몸을 움직이는 모습은 보고 있기가 참으로 민망한 것이었지만, 규 단주는 애써 그 점을 무시했다. 문주는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임 단주의 일로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임 단주? 아~ 그래. 아침에 어떤 시건방진 놈을 처리하기 위해 나갔다 온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것이…….”

 

규 단주는 망설였다.

 

하지만 문주는 무엇이건 어물거리는 것을 싫어했고, 그래서 계속 망설일 수 없어 결국 말을 끄집어냈다.

 

“두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실신해서 돌아왔습니다.”

 

“응?”

 

팔뚝에 알통을 만들면서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금 문주는,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 들었지? 하는 눈빛으로 규 단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신은 차렸는데, 꽤나 충격이 컸는지 아직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습니다.”

 

“어디 있는데?”

 

얼굴이 살짝 붉어진 금 문주가 물었다.

 

아마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거처에서 누워 있습니다.”

 

“누구한테 당한 거야? 아니, 어떤 놈들한테 당한 거야? 열락문이야? 아니면 정파 놈들하고 시비가 붙었나?”

 

“아닙니다. 임 단주를 따라갔던 수하들의 말로는 행색이 거지같이 더러운 녀석이랍니다.”

 

“뭐?”

 

문주의 얼굴이 본격적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럼 개방의 고수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과거보다 세가 많이 약해진 개방은 중원 전체에 두루 퍼져 있기는 하지만, 고수라고 할 만한 인물은 대부분 총타가 있는 하북 천진(天津)에 모여 있었다.

 

“그럼 도대체 그놈은 뭐야? 그리고 임 단주를 보좌하던 조장들은 뭐 했데?”

 

“세 명의 조장이 임 단주와 같이 갔는데… 그들도 팔다리가 부러져서 혼절한 채로 실려왔습니다.”

 

“뭐?”

 

규 단주의 보고는 그게 끝이 아니기에 고개가 더욱 아래로 숙여졌다.

 

“조장들을 따라갔던 조원 삼십 명 중에 절반의 인원이 크게 다쳐서 돌아왔습니다.”

 

“뭐?”

 

금 문주의 얼굴은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만큼 붉어지고,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죄송합니다.”

 

규 단주는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원래는 문주 모르게 단주들끼리 사람을 끌고 가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한데, 정신을 차린 조장들의 말이 그런 단주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그놈, 괴물입니다! 아무리 때려도 끄떡도 없고, 몸이 마치 강철과 같았습니다!’

 

‘금강불괴인 줄 알았습니다! 쇠몽둥이로 후려쳤는데 놈은 끄떡도 없고, 도리어 쇠몽둥이가 우그러들었습니다!’

 

조장들의 말을 믿기가 힘들어서 조원들에게도 물었지만, 그들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규 단주는 일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철근문의 기반은 외문 무공이다. 그리고 개파한 이래로 그 전통을 쭉 유지하여 지금껏 살아남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철근문의 사람들을 육체적 단단함으로 경악시킨 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철근문의 뿌리를 뒤흔들고도 남을 매우 심각한 사태였다. 더구나 그자가 철근문을 무너트린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말까지 해서 표 조장이 해결하러 갔었다지 않은가.

 

그래서 단주들은 문주에게 보고하는 쪽으로 계획을 바꾸었고, 그 대표로 누구보다 문주의 신임을 받고 있는 규 단주가 나서게 된 것이다.

 

“한 놈이라고?”

 

“예.”

 

“그 한 놈한테 웅풍단이 개박살 났다 이거야?”

 

규 단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있는 곳으로 안내해.”

 

안내하라고는 했지만, 대충 옷을 걸친 문주의 신형은 벌써 단련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규 단주는 서둘러 문주의 뒤를 쫓아 움직였다.

 

 

 

 

 

* * *

 

 

 

 

 

“애들 보내라니까.”

 

금 문주는 뒤쪽으로 따라오고 있는 백여 명의 수하들을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놈을 포위하기 위해섭니다. 혹시라도 그놈이 도망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규 단주는 은근히 문주의 위신을 세우면서, 철근문이 경공에 너무 취약하여 빠르게 도망치는 자를 잡는 데에 매우 서툴다는 것을 돌려서 설명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군.”

 

금 문주는 어깨에 힘을 팍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규 단주의 말에 우쭐해진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도 몸에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서 근육이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정말 몸을 단련하는 노력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음이 분명했다.

 

“저곳입니다.”

 

규 단주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문주는, 허름한 주점보다는 그 방향 좌우로 늘어선 백여 명의 사내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철근문이 오기를 기다리는, 철근문의 문주가 나서서 오칠을 때려눕혀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냉 대장과 구 대장 등을 비롯한 하오배 무리였다.

 

“한 놈이라며?”

 

“저자들은 아닙니다. 듣기로는 저자들이 처음 그자와 시비가 붙었답니다.”

 

“쟤네들이 누군데?”

 

“저희 관할 지역에서 자그맣게 장사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시비가 붙었데?”

 

“놈이 철근문을 욕하고, 폄하하는 것을 듣고 화를 내다가 그렇게 되었답니다.”

 

“오~ 그래? 기특한 녀석들이군.”

 

하지만 금 문주의 시선은 냉 대장 등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존재가 허름한 주점의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기다란 탁자를 놓고, 그 위에 누워서 일광욕을 하듯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아니, 진짜 일광욕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저 자식이야?”

 

문주가 주점으로부터 오 장여 앞에 멈춰 서서 물었다.

 

오칠의 얼굴을 알고 있는 수하의 눈짓을 받은 규 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색이 거지같다고 하더니, 정말 거지같이 더러운 놈이군요.”

 

산발한 머리에, 해지고 변색된 옷차림, 거기다 맨발이기까지 하니 오칠의 몰골은 누구나 거지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이백여 명의 사람들은 오칠을 전혀 우습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 중 절반은 오칠에게 얻어맞은 적이 있고, 그래서 무척이나 강하고 무서운 자라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도 나서지 마.”

 

“예? 하지만 놈은…….”

 

규 단주는 오칠이 강한 것 같으니 그냥 한 번에 몰려가 곤죽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문주의 눈빛은 그런 말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괜히 말했나?’

 

금 문주는 지금 호승심에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

 

규 단주가 이곳으로 오면서 오칠이 엄청난 외공을 수련한 것 같다는, 수하들이 쇠몽둥이로 후려쳐도, 아무리 때려도 끄떡도 없었다고 했던 말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 문주는 외공 방면에서는 자신을 따를 자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만큼, 그런 오칠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한 번 붙어보고, 그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수하들을 다치게 하고, 문파의 위신을 깎아내린 자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목적도 있을 것이지만, 아마도 첫 번째 이유가 더 클 것이라 규 단주는 확신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금 문주는 사람들 속에서 걸어 나와, 주점 방향으로 차분하게 걸어갔다.

 

뒤쪽에선 철근문의 무사들뿐만이 아니라, 냉 대장 등의 하오배 무리까지 해서 이백 명이 훌쩍 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주변은 너무나 조용하기만 했다.

 

오히려 저 뒤쪽, 철근문 문주가 누군가와 싸우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철근문 무사들의 제지를 받고 가까이 오지 못해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

 

주점으로부터 이 장 앞에 멈춰 선 금 문주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탁자에 누워 있는 오칠이 먼저 일어나 반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도 오칠은 좀처럼 일어날 기미기 없었다.

 

그리고 금 문주의 인내심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어이, 좀 일어나 보지?”

 

금 문주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진정시키며 오칠을 불렀다.

 

그리고 그제야 오칠은 슬며시 눈을 떴다. 하지만 역시 일어나지도 않고 슬쩍 고개만 돌려서 금 문주를 바라봤다.

 

“나 부른 거야?”

 

금 문주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냐?”

 

“그렇긴 하지. 근데 왜 불렀어?”

 

“네놈이 내 수하들을 두들겨 팼다며?”

 

“네 수하들이 누군데?”

 

“철근문이라고 말하면 알겠냐?”

 

“아~ 걔네들? 자꾸 싸우자고 귀찮게 해서 적당히 손을 봐주긴 했지. 그런데 그놈들을 수하라고 말하는 넌 누구냐?”

 

금 문주는 이 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상대는 자신을 고의로 모른 척하고 있고, 주저리주저리 입을 놀리는 것도 눈에 빤히 보이는 말장난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금 문주는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