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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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48화
파계 2권 - 23화
“우리 힘으로 안 되면, 우리보다 더 강한 힘을 사용해야지.”
“……?”
“……?”
“……?”
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냉 대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냉 대장은 넷 중에서 자신만 한 머리가 없음을 증명했다는 듯 거만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철근문(鐵筋門).”
“뭐? 철근문?”
구 대장도, 양 대장도, 특히나 왕 대장의 무뚝뚝한 얼굴엔 심하다 싶을 만큼 놀란 표정이 지어졌다.
무한은 호북의 성도인 만큼 규모가 컸고, 그래서 하나가 아닌 몇 개의 세력이 이익을 나누어갖고 있었다. 그 세력 구도를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일단 무한 성내는 하나의 크고 넓은 수로가 동서로 지나가면서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그리고 다시 각기 두 지역으로 또 나뉘게 되는데, 그래서 수로 위쪽은 서북구, 동북구, 수로 아래쪽은 서남구, 동남구라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력이 터를 잡고 있는 형세는 이보다 조금 더 복잡했다.
이왕 나눌 것이면 수로를 사이로 해서 나누면 편할 텐데, 그게 아니라 수로와는 역으로 선을 긋고서 정파 세력과 사파 세력으로 구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서남구와 서북구는 정파 세력의 영향권이고, 동북구와 동남구는 사파 세력의 영향권인 것이다. 그리고 철근문(鐵筋門)은 그중 사파 세력 영향권인 동북구의 주인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철근문을 이용해!”
양 대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화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철근문은 그들 쌍칼파, 철곤파 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곳이었다. 상납도 하고, 그 산하에서 돈벌이를 하고는 있지만, 자신들은 그들에게 없어도, 있어도 마찬가지인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 철근문도 이곳 무한에서 보면 삼사 위 정도에 불과한 세력이고, 무림 전체로 보자면 이류 정도에 간신히 이름을 올린 문파일 뿐이었다. 하나, 그렇다 해도 자신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고, 큰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철근문을 이용하자니!
그곳의 중급 무사들하고는 상납 건 때문에 어느 정도 안면이 있어 말이라도 해볼 수는 있겠지만, 이런 일을 부탁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욕을 하는 것과 같고 도리어 화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그럼 이대로 그 거지새끼한테 당하고 있겠단 말이야?”
“그건 아니지만…….”
“하지만 철근문을 이용한다는 것이…….”
구 대장과 양 대장은 영 꺼림칙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지금껏 한마디 이상을 하지 않던 왕 대장이 버럭 소리쳤다.
“무슨 모욕?”
냉 대장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고, 왕 대장은 또다시 버럭 소리쳤다.
“모욕이야!”
그런 왕 대장을 보며 구 대장과 양 대장은 소문이 사실이었군, 하며 혀를 찼다.
“너 정말 철근문을 이상향으로 삼고 있는 거냐?”
네 사람은 평소 얼굴이나 알고 있지, 제대로 대화 한 번 나누어본 적이 없는 사이들이었다.
하지만 소문이나 슬며시 퍼진 이야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듣고 있었다. 네 사람은 경쟁자고, 그래서 상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둬야 할 필요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들려오는 이야기들 중 하나가 왕 대장이 철근문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철근문의 시조는 외공의 고수였다. 그리고 지금 그 문인들의 대부분이 외공을 익혔고, 그 문주 역시 외공을 극으로 익혀 고수 소리를 듣는 자였다.
왕 대장은 어떠한가.
그는 주먹 하나로 석두파를 다른 세 개의 파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혹자는 그 정도가 뭐 대단할 것이 있느냐, 하겠지만, 배운 것 없고, 익힌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하나 없이 무식한 그에게 있어서, 이십여 명의 수하들과 세 개의 주점은 그리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피와 땀.
무조건 몸을 단련하고, 무조건 앞장서 싸우고, 무조건 물러나지 않는다는 신조 하나로 몇 번이나 목숨을 내건 끝에 이룩한 기반인 것이다.
그런 왕 대장에게 철근문은 가장 완벽한 본보기일 수밖에 없었다.
철근문의 시조는 내공 하나 없이 고수가 되었고, 무한의 한 귀퉁이를 움켜잡고 있는 문파의 시조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철근문은 내공도 없이 외공 하나로 지금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철근문이 이류 문파이고, 세워진 지 수십 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왕 대장은 철근문의 시조를 존경했고, 지금의 철근문에 뭔가 환상과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차라리 철근문의 밑으로 들어가지 그러냐?”
구 대장의 말뜻은,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면 그 문하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난 석두파의 시조고, 석두파도 언젠가는 철근문처럼 될 거다. 그러니 시조인 난 다른 곳에 들어가면 안 되지.”
“…….”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듣는 이들은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그래서 냉 대장이 그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이봐, 왕 대장. 그 포부는 정말 감탄이 나올 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당면한 문제가 있다고. 그 오칠이란 거지새끼를 죽이지 않으면, 시조고 나발이고 간에 쫄딱 망하게 될 거란 말이야. 알아듣겠어? 지금 우리는 먼 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지켜야 하는, 암담한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라 이 말이야!”
냉 대장의 일장 연설에 왕 대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도 방금 들었던 복잡한 말들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힘쓰는 것이야 문제가 없는데, 이처럼 이론적 대화에 봉착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왕 대장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냉 대장은, 더 이상 왕 대장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못을 박았다.
“그럼 넌 뭔가 방법이 있는 거냐?”
구 대장이 물었다.
냉 대장은 당연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근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판단해볼 때, 철근문에서도 그 거지새끼를 상대할 고수는 몇 명 없어.”
“뭐?”
“무슨 헛소리야?”
“아닌 것 같으냐? 잘 생각해봐라. 아무리 우리가 하오배 무리라 해도 백 명이 넘는 인원이었다고. 내 비도술이 무림에서 이거다 하고 내세울 만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쉽게 막힐 만한 것도 아니야. 구 대장, 너 대충이라도 칼질 배웠다고 내가 들었거든? 그런데 그놈한테는 전혀 먹히지 않았잖아. 양 대장, 넌 그 철곤으로 바위도 쪼갠다고 소문내고 다녔지? 그런데 그놈 발질에 막혀서 힘도 못 썼잖아. 그리고 왕 대장, 철구장갑을 낀 네 주먹은 쇠판도 우그러트릴 수 있다고 하던데, 그놈 맨손에 막히고 손목까지 부러졌잖아.”
냉 대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구 대장 등을 쓱 훑어보았다.
자신이 하는 말을 잘 따져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게 아무나 가능할 것 같아? 놈은 진짜 고수라고. 왜 그런 놈이 우리를 노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놈이 마음만 먹으면 철근문 문주하고도 맞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실력이라, 이 말이야.”
“헛소리!”
왕 대장이 얼굴을 불게 물들이며 고함을 질렀다.
하나, 냉 대장은 코웃음을 쳤다.
“넌 철근문 문주를 무슨 엄청난 절정 고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사람은 열락문(悅樂門) 문주한테도 상대가 안 돼.”
열락문(悅樂門)은 기녀들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문파로서, 그 시조도 기녀라고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문주 역시도 과거엔 기녀였다.
그렇다고 열락문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은 동남구를 영향권으로 두고 있는 강력한 사파 세력이기 때문이다.
“열락문이 철근문을 그냥 놔두는 것은 순전히 천목보(千目堡) 때문이라고.”
천목보(千目堡)
동북구와 동남구를 아우르고 있는 무한 최고의 사파 세력이다.
사실상 무한 상권을 규합한 상인 무리라고 보아야 했지만 그 힘도 만만치 않고, 자신들을 사파문이라 당당히 내세우는 집단이다. 이들이 있기에 반대쪽에 있는 정파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철근문과 열락문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천목보의 보주가 두 세력의 다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천근문은 진작 사라져버렸을 걸.”
왕 대장의 얼굴은 더욱 붉게 변했다.
하지만 반박을 못하는 것이 냉 대장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뭐야? 네 말은 철근문의 문주까지 나서야 그 거지새끼를 처리할 수 있다, 그 말이야?”
“그렇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우리로서는 그 밑에 있는 단주들도 끌어들이지 못하는 형편인데, 어떻게 문주를 끌어들일 수가 있겠어!”
냉 대장은 그게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무슨 끗발이 있다고 문주를 끌어들이겠어. 하지만 움직이게 할 수는 있지.”
“그게 무슨 말이지?”
“잘 생각해보라고. 문주를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냉 대장은 대답을 듣고자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뛰어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꺼낸 말에 불과했다.
“철근문을 뒤흔들 수 있는 적이 나타나면 되는 거잖아.”
“아! 그럼?”
“그래. 그 거지새끼가 적이 되는 거야.”
“그런데 철근문이 우리 이야기를 믿어줄까?”
“당연히 믿지 않겠지.”
“뭐?”
“하지만 문파 사람의 시체를 보게 되면 믿을 수밖에 없게 되겠지.”
“답답해 죽겠구만!”
구 대장 등은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제대로 이야기해보라는 듯이 다그쳤다.
“그러니까 우리는 철근문의 조장쯤 되는 사람을 끌어들여서 거지새끼와 싸우게 하고, 그 조장이 죽으면 철근문에 악심을 품은 자가 나타났다고 철근문에 알리는 거야.”
“잠깐.”
이때, 양 대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냉 대장의 말을 막았다.
“왜?”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그 오칠이란 놈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거야.”
“……?”
“우리 중에 누구 죽은 사람 있어? 밖에 있는 수하들도 다치긴 많이 다쳤지만, 죽은 놈은 하나도 없다고. 우리는 죽이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놈은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단 말이야.”
냉 대장도 그 점을 생각 못했는지 잠시 침묵했다.
하나, 곧 그리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완전히 죽이진 않더라도 반쯤 죽이게 만들면 되지.”
“어떻게?”
“성질 고약하고, 속 좁은 놈을 골라서 싸우게 만들면 되니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거지새끼에게 반쯤 죽을 정도로 계속 덤비고 꼭 앙갚음을 할 놈이면, 우리가 하지 않더라도 자기가 알아서 철근문에 보고하겠지.”
“바로 그거야. 그럼 철근문은 거지새끼를 잡으러 올 거고, 결국은 문주까지 움직이게 되는 거지.”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구 대장이 웃고, 양 대장이 웃고, 냉 대장도 웃었다.
웃지 않는 것은 왕 대장뿐이었다. 그는 그가 목표로 삼고 있는 철근문을 이용한다는 것이 영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반대할 수도 없는지라 묵묵히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놈을 골라야 하나?”
구 대장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물었다.
누굴 골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 아니라, 너무 웃어대다가 다친 가슴에 다시 통증이 온 것이다. 그 옆에선 같이 웃었던 양 대장이 배를 움켜잡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넷 중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냉 대장이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딱 적당한 놈이 하나 있지.”
제23장. 여우가 건네준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당기다
표 조장은 그의 잔에 담겨진 여아주(女兒酒)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천하의 명주라는 이 여아주를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가 언제 이런 공짜 술을 마다한 적이 있었던가.
꿀꺽.
부드럽게 넘어간 여아주는 그 뒤끝도 깔끔해서 안주도 필요 없었다.
그래서 표 조장은 매우 만족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웬 잡놈이 철근문을 욕하기에 몇 마디 충고를 했더니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더라고?”
“예, 그렇습니다.”
냉 대장은 그의 좌우에 앉아 있는 구 대장과 양 대장을 눈짓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 옆에 그 증거가 있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놈이 무공을 익혔던가?”
“예.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놈이었습니다. 물론 표 조장님께는 한 주먹감도 안 되는 놈일 테지만 말입니다.”
냉 대장의 빤히 보이는 아부에 표 조장은 기분이 좋은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뒤에 선 조원들도 우리 조장님이 실력은 있지, 하며 그 아부에 동조했다.
“그런데 말이야. 왜 밑에 애들을 데리고 가서 혼내지 않은 거야?”
“처음엔 저희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놈의 말이 영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놈이 글쎄 조만간 철근문은 자기 손에 무너질 거라지 뭡니까.”
“뭐?”
표 조장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처음에 들었던, 단순히 철근문을 욕한 내용과 이 말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새끼가 그런 말을 했어?”
“예. 놈이 저희를 쓰러트리고는 마구 웃어대며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는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지만…….”
역시 실력이 되지 않아 막을 수 없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표 조장이 알아서 생각하게 놔둔 것이다.
“그 새끼 어디 있어?”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냉 대장은 기꺼이 앞장서겠다며 벌떡 일어났고, 표 조장은 조원들과 함께 그를 따라 주점을 빠져나갔다.
“저 새끼 무지 단순하네?”
표 조장 등이 완전히 사라지자 양 대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아닐 걸.”
구 대장이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뭐가?”
“저 표 조장이 그렇게 단순한 놈은 아니라고.”
“무슨 말이야?”
“넌 저놈 별로 상대 안 해봤지?”
“응.”
“저 새끼, 무지 욕심 많고 교활한 놈이야. 내 구역이 저놈이 속한 웅풍단(熊風團) 관할에 있기 때문에 저놈한테 상납을 하거든. 그런데 저놈은 그 상납금 말고도 따로 제 몫까지 달라는 놈이야. 아마도 상납금 중 일부도 떼먹고 있을걸. 거기다가 툭하면 주점에 와서 공짜 술을 마시고, 가끔은 제 식구들까지 끌고 와서 밥을 먹인다니까. 어쩔 때는 내 영역도 아닌 딴 곳에서 처먹다가, 대신 돈을 내라고 부른 적도 있어.”
“그럼 지금 잔뜩 화를 내며 나간 건 뭐야?”
“넌 그놈이 철근문 때문에 열이 받은 줄 안 거냐?”
“그런 줄 알았지.”
“쯧쯧쯧! 그놈에겐 철근문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없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