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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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권 - 22화
‘말이 안 되지!’
운이라고 생각했다.
냉 대장이 기준으로 삼은 오칠의 무공은 그렇게 대단한 수준이 아니어야 했다. 만약 생각 이상으로 오칠이 대단한 고수라면, 이 공격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 되는 것이니까.
“사정 보지 말고 공격해-!”
냉 대장은 양 손에 비수를 움켜잡으며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는 수하들 사이사이를 움직이며 오칠을 향해 빠르게 손을 휘둘렀다.
쉬쉭.
냉 대장이 던진 비수는 수하들 틈새로 정확히 빠져 들어가, 오칠의 옆구리로 파고들어갔다.
“…….”
하지만 그뿐이었다.
비수는 갑자기 사라졌고, 오칠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자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냉 대장은 다시 수하들 사이로 움직이고, 오칠의 뒤쪽 방향에 서서 비수를 날렸다.
쉬쉭.
“악!”
“윽!”
갑자기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서너 명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서일까?
냉 대장은 자신이 날린 비수가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다만, 오칠이 여전히 멀쩡히 서서 수하들을 집어던지고 있다는 것으로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냉 대장은 오칠의 눈빛과 시선이 마주치면서 깨달았다.
‘고수다!’
오칠은 그 많은 사람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냉 대장의 존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은밀하고, 빠르게 날린 비수를 소리 없이 막아내기까지 했다. 이건 오칠이 고수라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차륜의 방법으로 오칠을 지치게 하자는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끈질기게 덤벼드는 다른 대장들에게 퇴각하자는 말을, 냉 대장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분명 그들의 손에 자신이 죽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식으로 계속 싸울 수밖에 다른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숨 쉴 틈도 주지 마!”
수하 한 명이 휙 하고 날아간 틈으로 자리를 잡은 양 대장은, 온힘을 다해 철곤을 내리쳤다.
붕-
하지만 오칠은 그걸 피해버렸다.
게다가 좌우에서 떨어지는 칼과 대도까지 피했다. 거기다가 양 대장의 얼굴로 주먹까지 날렸다.
“비… 빌어먹……!”
뻑!
양 대장은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입을 닫았지만, 오칠의 주먹에 맞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왕 대장의 주먹이 오칠의 주먹과 마주치며 방어 역할을 해주어서, 간신히 피 터지는 상황을 모면한 것이다. 그러나 왕 대장의 주먹을 감싸고 있는 철구장갑이 으그러지고 깨져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코앞에서 본 그의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저 주먹을 얼굴에 맞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상상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뭐 해!”
반대쪽에서 나타난 구 대장이 오칠의 등에 대도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 대도는 오칠이 슬쩍 옆으로 움직이면서 땅바닥에 박혀 들어가 흙만 튀었고, 오칠의 번개 같은 뒷발질이 구 대장의 가슴을 내질렀다.
퍽!
“큭!”
구 대장은 짙은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확실히 그는 무리를 이끄는 자였다. 다른 수하들은 한 방만 맞아도 주저앉거나 비틀거리다가 오칠의 손에 잡혀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나뒹구는데, 그는 끝까지 놓지 않은 대도로 가슴 옷깃을 잡으려는 오칠의 손목을 올려치고 있었던 것이다.
스악.
날카로웠지만 역시 대도는 오칠의 손목을 베지 못했고, 오칠의 손은 뱀처럼 미끄러져 어느새 구 대장의 가슴 옷깃을 움켜잡으려 했다.
쉬쉭.
그 순간, 짧은 비음과 함께 오칠의 어깨로 두 자루의 비수가 날아왔다.
휙-
그러나 비수는 오칠의 지척에 다가온 순간 갑자기 사라졌다.
바로 가까이 있던 구 대장 등은 보았다.
오칠이 너무도 빠르게 휘두른 손에 두 개의 비수가 잡혀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비수가 오칠의 손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그들도 보지 못했다. 다만 그의 몸 어딘가에 쏙 들어갔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하압!”
방금 전, 오칠의 놀라운 한 수를 보았음에도 왕 대장은 철구장갑도 끼고 있지 않은 주먹으로 오칠의 얼굴을 향해 내질렀다.
빠각!
“……!”
왕 대장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오칠의 얼굴에 채 당도하기도 전에 팔목이 부러져버렸으니, 놀란 것은 둘째치고라도 그 고통에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압!”
왕 대장에게 한 번 도움을 받아서 빚을 졌다 생각하고 있던 양 대장이 철곤으로 오칠의 하체를 쓸어 올렸다.
턱!
하지만 철곤은 반도 휘둘러지지 못하고 오칠의 발끝에 걸렸고, 어느 순간 위로 솟구친 발끝이 양 대장의 명치를 강하게 파고들었다.
“……!”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숨이 턱하고 막히는 아찔함에 주저앉지 않은 것만도 다행한 일이었다.
“냉 대장, 이제 그만 하지?”
오칠이 양쪽에서 떨어지는 칼과 대도를 피하며 저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퍼퍽!
칼과 대도를 휘두른 사내가 배를 움켜잡고 주저앉자, 그 뒤에 철곤을 든 자들이 덤벼들었다.
퍼퍽!
하지만 그들이라고 다른 결과가 있을 리 없었다.
“물러나라! 퇴각하라!”
이때, 가슴을 움켜잡고 뒤로 물러나 있던 구 대장이, 전쟁에서 패배한 군대에게 다그치듯 큰 소리로 소리쳤다.
벌써 절반 이상의 수하들이 쓰러져서 낑낑거리고 있고, 그 나머지 절반도 이미 기세를 잃었으며, 그 자신을 비롯한 다른 대장들도 어디 한 군데씩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더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르르르!
오칠이 그냥 보내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 사내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부축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물러나는 냉 대장의 외침이, 가만히 보고만 있는 오칠의 귀에 들려왔다.
“두고 보자!”
오칠은 그런 냉 대장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 크하하하하!”
새벽 공기가 진동할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듯 시원스럽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오칠은 그래서 더욱 크게 웃고, 즐거워했다.
‘감정이 메마른 것이 맞긴 맞는 건가?’
한참을 웃어대던 오칠은 문득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역시나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마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한가. 오칠 자신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면 그뿐인 것이다.
“오칠님은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종삼이 나오며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물었다.
“생각은 무슨 생각? 사람 찾으려는 거지.”
종삼은 말도 안 돼, 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종삼도 처음 오칠이 냉 대장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찾아달라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던가.
“진짜예요?”
“응.”
“그럼 무한의 밑바닥을 틀어잡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응.”
종삼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점점 엄청난 실력을 드러내는 오칠이 무한 밑바닥을 틀어잡으면, 자신은 인생 역전을 이루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종삼의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물었다.
“누굴 찾는데요?”
“목운교.”
“그게 누군데요?”
“어릴 때 알던 사람.”
“어디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르고요?”
“그래. 십칠 년 만에 처음 봤지. 그래서 찾는 거야.”
종삼은 옳다구나 하고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 거면 밑바닥을 틀어잡고, 확실히 냉 대장 등을 수하로 만들어서 사람을 찾으면 될 거 아니에요. 오히려 그게 나을 걸요? 아니, 그게 당연히 났죠. 냉 대장이 이대로 순순히 말을 들을 거 같아요? 그 사람, 고집 무지 세요. 악과 깡밖에 없어서, 이 바닥에서도 독종으로 소문났다고요. 이렇게 마음이 틀어졌으니, 더욱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할 걸요? 그러니 그냥 힘으로 눌러서 수하로 만들어요.”
“그렇게 독종이야?”
“그럼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할까?”
“그건…….”
“사지를 조각내고, 눈을 파내고, 가슴을 난도질한 다음에 목을 부러트리겠다고 해도 안 해?”
종삼은 말문이 막혔다.
겁도 났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오칠의 눈동자에서 뭔가 광폭한 기운을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할 것 같은, 조금 전까지 알고 있었던, 괴이하고 두루뭉술한 듯한 오칠이 아니었다.
살인을 우습게 아는, 사람의 목숨 정도는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자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오칠의 내면에 숨겨진 진짜 오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삼은 잘게 몸서리를 쳤다.
“춥냐?”
“아… 아니요.”
“근데 왜 떨어?”
오칠의 눈빛에선 광폭한 기운이 사라져 있었다.
다시 괴상하고 두루뭉술한 오칠의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종삼은 앞으로 영원히, 조금 전 보았던 오칠의 숨겨진 이면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었다. 그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자자.”
“예?”
“냉 대장이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어쨌든 오늘은 오지 않을 테니까. 못 잔 잠이나 자자고.”
“아, 예.”
종삼은 먼저 주점 안으로 들어가는 오칠의 지저분한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종삼은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오칠의 그 강렬한 눈빛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서, 싸늘하게 심장을 뒤흔들고 있었으니까.
* * *
“아이고, 가슴이야…….”
대도파 구 대장은 의자에 웅크려 앉아 낑낑거렸다.
오칠의 발길질에 가슴을 얻어맞아서 뼈에 금이 간 것이다. 하지만 그만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왕 대장은 오른손목이 부러져서 왼손으로 밥을 먹어야 했고, 양 대장은 명치를 맞고 창자가 꼬였는지 배에 힘도 주지 못하고 몇 번이나 뒷간에서 피똥을 싸야 했다.
거기다가 밖에 있는 그들의 수하 백여 명 중에 칠 할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어, 내일부터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씨발, 저 새끼만 멀쩡하잖아!”
구 대장은 주점 모서리에 앉아서 창문 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냉 대장을 노려보며 욕을 내뱉었다.
“야, 넌 뭐야? 우린 이 지경인데, 넌 왜 그렇게 멀쩡해!”
양 대장도 열이 잔뜩 올라 버럭 소리쳤고, 왕 대장은 멀쩡한 왼손을 꾹 움켜쥐며 너도 어디 한 군데는 다쳐야 하지 않겠냐? 하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이 새끼야!”
구 대장 등은 몸의 고통도 생각 않고 벌떡 일어났다.
“그놈은 강해.”
냉 대장이 창문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며 하는 말에, 세 사람은 잠깐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여기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우리가 얼마나 센 놈한테 당했는지도 모를 바보인 줄 알어?”
구 대장도, 양 대장도 각자의 무기를 꼬나 잡았다.
이대로는 더 이상 참을 수도, 냉 대장의 꼬락서니도 더 이상은 봐주고 있지 못하겠다는 눈빛들이었다. 왕 대장도 말없이 철구장갑을 끼고 있는 왼손을 꼼지락거리는 걸 보면, 그들과 동참할 뜻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냉 대장은 담담하기만 했다. 오히려 대장들의 행동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기까지 했다.
“나 하나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 같나?”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 거야!”
“우리가 네놈 말에 또 속을 거 같어!”
하지만 냉 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놈이 강하단 걸 알았으니, 우리는 이제 한 가지 방법밖에 없게 되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양 대장은 냉 대장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여 되물었다.
다른 두 사람도 분노를 잠시 진정시키고, 냉 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놈을 죽일 수가 없어.”
“무슨 소리! 독살하면 되지!”
구 대장이 죽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냉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수로 독살을 하는데? 차에 독을 타서? 아니면 주점에 몰래 숨어들어 음식에 독을 탈까? 놈은 자다가도 기척을 감지하고 일어난 놈이야. 뒤로 몰래 숨어들고, 지붕에서 급작스럽게 공격했는데도 놈의 옷자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고. 그런 놈이 우리의 접근을 못 알아챌 거 같은가?”
“화살을 쏘면 돼! 화살촉에 극독을 묻혀서 피부만 스쳐도 뒈지게 만드는 거야. 아니면 독을 잘 다루는 놈을 찾아서 놈을 죽이게 하면 되지!”
“수십 개의 도끼도 막은 놈이야.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몰래 비수를 날렸는데도 멀쩡한 놈이라고.”
구 대장도 알고 있었다.
다른 대장들도 오칠이 날아오는 비수를 손으로 잡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움직임으로, 그들로서는 어딘지도 모를 곳에 비수를 감추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독을 쓰는 놈이라고? 여기가 무슨 사천인가? 남만이야? 그 정도의 고수를 독살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놈을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워.”
하지만 구 대장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몇 가지 계획을 더 꺼내놓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오칠을 어찌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럼 어쩌자고?”
양 대장은 더 이상 의미 없는 대화는 듣고 싶지 않다며, 냉 대장에게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조금 전까지는 그를 죽일 듯하더니만, 이제는 그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왕 대장도,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하던 구 대장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