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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45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6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45화

파계 2권 - 20화

 

 

 

 

 

오칠은 종삼을 빤히 쳐다봤다.

 

‘나도 옛날에 이놈 같았을까?’

 

같을 리가 없었다.

 

종삼은 말을 독하게 하는 수준이지만, 그 나이 때의 오칠은 청부살인으로 밥벌이를 했으니 비교조차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너 말을 참 험악하게 한다.”

 

“뭐가요?”

 

“어떻게 사람 다리 부러트리는 일을 그렇게 쉽게 생각해?”

 

종삼은 어이없다는 듯 오칠을 바라봤다.

 

“오칠님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요?”

 

방금 전에 여섯을 때려눕혔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임마, 난 어른이잖아.”

 

“나이는 어려도 나도 알 건 다 알아요.”

 

“뭘 아는데?”

 

“오칠님은 지금 쌍칼파를 시작으로 하오배 무리를 박살내려는 거죠? 그러고 나서 무한에 세력을 만들려는 거잖아요.”

 

“…….”

 

“당연히 그 때문에 내게 접근한 거구요. 그런데 왜 그들을 그냥 보내준 거냐구요?”

 

“너 참 상상력이 풍부하다.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입 다물고 있어.”

 

하지만 종삼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좀 있으면 냉 대장이 나머지 패거리를 데리고 올 것이라느니, 그 숫자가 족히 스물은 넘을 것이라느니 하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칠은 그런 거에 전혀 관심 없었다. 그리고 종삼의 시끄러운 소리를 계속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맞는다.”

 

주먹까지 들어올리며 하는 말에 종삼은 곧바로 입을 닫았다.

 

하지만 조금 뒤에 슬며시 한마디를 더 꺼냈다.

 

“내가 오칠님을 도와줬다는 거 잊지 마세요.”

 

오칠은 피식 웃었다.

 

처음엔 멍청한 녀석이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여간 약은 놈이 아니었다.

 

“여기 가만히 있어.”

 

그런데 오칠이 갑자기 종삼을 뒤쪽으로 밀었다.

 

“왜 그래요?”

 

콰직!

 

종삼은 곧바로 들려오는 굉음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이 새끼 어디 있어-!”

 

문을 박살내고 들어선 이는 육중한 도끼를 든 커다란 덩치였다.

 

하지만 독이 잔뜩 오른 듯한 냉 대장의 외침은, 그 뒤쪽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들려왔다.

 

“냉 대장이라는 놈, 의외로 간이 작은 놈이었네.”

 

오칠은 성큼성큼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 빨리 걸은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오칠의 신형은 문을 부순 덩치의 코앞에 다가서 있었다.

 

“왜 멀쩡한 문을 부수고 그래?”

 

오칠은 그 말과 함께, 놀란 눈을 하고 있는 덩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

 

“아욱!”

 

덩치는 피범벅이 된 얼굴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 뒤쪽으로 스무 명이 훌쩍 넘는 숫자의 사내들이 손에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새끼, 이리 나와!”

 

반원형으로 주점 문을 둘러싸고 있는 사내들 뒤쪽으로 냉 대장이 소리쳤다.

 

“싫어.”

 

오칠은 싸우고 싶으면 너희들이 와야지, 하고 말하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냉 대장은 벌게진 얼굴로 공격해! 라고 소리쳤다.

 

“시끄러운 녀석.”

 

소리만 지르고 앞으로 나서지도 않는 냉 대장을 비웃으며, 오칠은 가장 앞에서 달려와서 칼을 내리치는 사내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당연히 내리치던 칼은 떨어지지 않았고, 오칠의 발이 그 사내의 복부를 내질렀다.

 

“욱!”

 

창자가 뒤엉키는 듯한 고통에 주저앉으려던 사내는, 오칠이 손으로 떠밀자 한 장이나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고, 공간이 생기면서 또 다른 사내가 오칠에게 달려들었다.

 

스악.

 

제법 날카롭게 휘둘러지는 칼이었지만, 그 역시 손목을 움켜잡히고 이전의 사내처럼 배를 움켜잡으며 뒤로 날아갔다.

 

“이 새끼들아, 어서 공격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놈들 중에는 아까 오칠에게 맞은 경험이 있던 자들도 있었기에 그들은 오칠의 주먹과 발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기에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먼저 치고 들어갔던 두 명이 힘도 못 쓰고 나뒹굴자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뒤에서 악다구니를 치는 냉 대장의 명령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으아~!”

 

두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오칠이 비좁은 문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어서 공격하기가 껄끄러웠지만, 혼자보다는 두 명이서 덤비는 것이 더 용기가 생기는 법이니까 말이다.

 

터턱.

 

하지만 그 둘도 칼을 쥐고 있는 손목을 오칠의 양손에 잡혀버렸다.

 

그리고 여지없이 복부를 부여잡으며 뒤로 날아갔다.

 

“…….”

 

“…….”

 

잠시 침묵이 돌았다.

 

오칠의 발치에는 한 자루의 커다란 도끼와 칼 네 자루가 떨어져 있고, 저 앞으로는 쓰러져서 일어날 줄 모르는 네 명의 사내와 피범벅이 된 얼굴을 한 덩치, 그리고 감히 덤빌 생각을 못하는 이십여 명의 사내가 냉 대장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떤 놈이 너한테 사주를 했냐?”

 

갑작스런 소강상태가 부담스러웠는지 냉 대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오칠은 뭔 소리야? 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대도파 구가 놈이야? 아니면 철곤파 양가 놈? 설마 그 돌대가리 석두파 왕가 놈이 시키디?”

 

저 혼자 떠들면서 열을 올리는 냉 대장을 가만히 보고 있던 오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도 아닌데. 그냥 나 혼자야.”

 

냉 대장의 눈이 커졌다.

 

“그럼 무한에서 터를 잡기 위해 날 노린 거냐!”

 

냉 대장은 자신을 가장 만만하게 본 것이라며 아까보다 더 열을 냈다.

 

그리고는 오칠이 그것도 아닌데, 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 자식들아, 어서 공격해, 라고 버럭 소리쳤다. 당연히 그 말을 무시할 수 없는 사내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오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와~!”

 

“와~!”

 

사내들은 한두 명도 아닌 이십여 명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그런 방법으로는 문에 서 있는 오칠을 공격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턱. 퍽. 턱. 퍼퍽. 턱. 퍼퍼퍽…….

 

손목이 잡힌 순간, 주먹이 배를 강타하고, 다시 손목이 잡히면 발이 올라와 얼굴을 걷어차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어찌 긴 칼이 휘둘러지는데 번번이 손목을 잡힐 수 있는 것인지 공격하는 사내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칠은 그렇게 했고, 어느새 사내들 모두가 뒤로 날아가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냉 대장은 이를 악물며 오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수하들이 모두 당한 상태인지라 감히 덤벼들지는 못하고, 소매 속에 숨기고 있는 비수만 만지작거렸다.

 

이걸 던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듯이 말이다.

 

“자, 이제 그만 고집부리고 내 말 좀…….”

 

“두고 보자!”

 

오칠이 다시 사람 좀 찾아달라고 이야기하려는데, 갑자기 냉 대장은 버럭 소리치고는 후다닥 사라져버렸다.

 

“…….”

 

오칠은 사라져가는 냉 대장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쓰러져 있는 사내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대장 도망갔다. 너희들도 그만 가라.”

 

쓰러진 사내들은 오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더니만, 곧 몸을 추스르고 잘 걷지 못하는 동료를 부축해서 자리를 떠났다.

 

“왜 또 그냥 보내주는 거예요?”

 

싸움이 끝난 것을 알고 밖으로 나온 종삼이 물었다.

 

“대장이 없는데, 그 수하들을 잡고 있으면 뭐 하냐?”

 

“냉 대장은 또 올 거라니까요. 이번에는 다른 무리도 같이 데리고 올 것이 분명해요. 그러면 몇 명이 되는 줄 알아요? 수십 명이라고요. 잘하면 백 명도 넘게 올 수도 있어요!”

 

“그렇겠지.”

 

오칠은 다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정도도 생각 못할 오칠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오배 무리들이란 의외로 고집이 있어서 쉽게 승복하는 놈들이 아니었다. 물론 엄청나게 강한 힘을 보여주어 공포심을 느끼게 하면 대충 말을 듣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게 목적이 아니거든.’

 

오칠은 세력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열심히 사람을 찾게 해야지, 힘으로 어쩌고저쩌고 해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매번 냉 대장을 그냥 보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 힘으로 잔뜩 협박을 하면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왠지 그러기는 싫었다.

 

뭔가 이런 것도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

 

‘재미라…….’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이 좋았다.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는 것도 좋았고, 계속 사건이 일어나 심심하지 않다는 것도 좋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나태하고, 움직이기가 싫더니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감정이 메말라서 그러나? 작은 변화에도 너무 민감해지는 것 같은데.’

 

오칠 자신도 이런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예전 그의 생활신조처럼 본능에 충실하자! 라는 것이 딱 맞아 들어가는 상태라고나 할까?

 

‘모르겠다.’

 

왠지 목운교를 찾아야 한다는 처음의 절실함도 작아지는 것 같았지만, 오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인생이 그의 생각대로 움직인 적은 거의 없었고, 늘 그런 상황에서도 잘 버티어내고 꿋꿋하게 살아왔으니까.

 

“뭘 그렇게 생각해요?”

 

종삼은 말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오칠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배고프다.”

 

“예?”

 

“여긴 주점이니까 먹을 게 있겠지?”

 

“있긴 있죠. 하지만 숙수(熟手:요리사)가 없잖아요. 아까 도끼로 문짝 부수고, 오칠님한테 얼굴을 얻어맞은 덩치가 여기 숙수였어요. 뭐,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말이죠.”

 

“진즉에 알았다면 그 놈은 그냥 잡아두고 있었을 텐데. 음… 너 요리할 줄 아냐?”

 

종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는 할 줄 알아요. 본격적으로 배수짓을 하기 전에 그 덩치의 보조 노릇을 했거든요. 하지만 그 사람도 실력이 별로라서 그리 배울 게 없어서… 읍!”

 

“네가 할 수 있는 거 아무거나 만들어와.”

 

더 놔두었다가는 말이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오칠은 종삼의 입을 손으로 막고 주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오칠은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종삼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창가 옆 탁자에 앉았다.

 

끼익.

 

오칠은 꽉 닫혀 있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봤다.

 

시간은 대략 미시(未時:오후1~3시) 말쯤이었다.

 

‘내일이나 오겠지?’

 

냉 대장이 다시 사람을 모으고, 자신을 어찌할 궁리를 하려면 이번에는 꽤나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심심하네.’

 

오칠은 그때까지 뭘 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달리 할 것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참 할 일 없는 인생이군.’

 

오칠은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해서, 언제나 무엇이든 하려고 했던 과거의 자신이 그리웠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모습이고, 지금의 모습을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오칠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일단 지금은 그냥 있기로 했다.

 

주방에서 풍겨오기 시작하는 음식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오칠은 그렇게 느긋하게 마음을 늘어트렸다.

 

 

 

 

 

* * *

 

 

 

 

 

오칠로부터 도망쳐온 냉 대장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점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곳은 오칠에게 빼앗긴 주점과는 달리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제대로 운영하는 곳이었고, 냉 대장은 이런 주점을 이것 말고도 두 개나 더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냉 대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 주점은 손님을 받고 있지 않았다. 오늘 그는 이곳에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냉 대장님, 준비할까요?”

 

대외용으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퉁퉁한 장년인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물었다.

 

“내가 아까 한 말 허투루 들었어?”

 

잔뜩 날카로워져 있는 냉 대장의 되물음에 주인은 대번 기가 죽어서 얼른 술자리를 준비하겠다고 하고는 후다닥 주방으로 사라졌다.

 

“곧 있으면 녀석들이 올 테니까, 애들보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해.”

 

냉 대장은 뒤에 시립하고 있던 수하에게 말했고, 수하는 알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빌어먹을.”

 

냉 대장은 수하가 사라지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수하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그의 수하들은 곧 나타날 놈들에게 시비를 걸 힘도 없었다. 그 염병할 거지새끼에게 맞아서 거의 대부분의 수하들이 골골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오늘 밤이라도 조용히 요양을 해야 내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설마 무림 고수일까?’

 

냉 대장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꼴이 엉망이긴 해도 목소리는 또박또박한 놈이 아니던가. 하지만 싸우는 것을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았다. 물론 혼자서 이십 명이 훌쩍 넘는 수하들을 쓰러트린 자가 대단하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엔 여섯 명뿐이었고, 그 다음엔 문에 서서 위치적 이점을 활용하지 않았던가. 그건 냉 대장이 알고 있는 무림 고수들이 취할 행동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