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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8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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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84화

파계 4권 - 9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도 돈이 없어서 잘 못 먹어요.”

 

아이들은 이런 당과를 먹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자신들처럼 가난한 아이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먹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렇구나.”

 

오칠은 문득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말을 했는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현재의 여유롭고 느긋한 처지를 기준으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 또 그걸 이 아이들에게 맞추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그렇게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인 것이다.

 

“너희들 여기 자주 오냐?”

 

“네. 거의 매일같이 와요.”

 

“그럼 가끔 내가 여기 올 때 내 말동무나 해라.”

 

“왜요?”

 

“그냥.”

 

“그냥 왜요?”

 

당과를 쭉쭉 빨며 아이들은 오칠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며 오칠은 웃으며 말했다.

 

“나하고 있으면 당과를 먹을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곧 하하, 웃어댔다.

 

그리고 오칠에게 여기 자주 오라고, 그러면 말동무 같은 거 자신들이 다 해주겠다고 떠들어댔다.

 

“너희들 당과 더 안 먹을래?”

 

오칠이 먼저 자판에 있는 당과를 집어 들며 물었고, 아이들은 와~ 하며 자판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오칠은 그렇게 아이들과 아주 즐겁게 당과를 먹었다. 아마도 과거 그 어느 때 이후로 오칠이 이처럼 순수하게 즐거워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오칠은 칠 대 교주의 시험 중에서 잃었던 감정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잃었던 감정 하나를 지금 되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38장. 노백과 싸우고, 술을 마시다

 

 

 

 

 

“그렇게 마구 손을 내민다고 해도 소용없어. 차례로 줄을 서야지!”

 

동북구에서 당과를 팔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인 고씨는 자판 앞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아이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저 ‘빨리빨리’라는 말을 반복하며 열심히 당과를 만들고 있는 고씨를 다급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채근에 고씨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 많은 아이들이 그가 만든 당과를 먹음으로써 생기는 이익도 이익이거니와, 아이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한 아름다운 외모의 사내 때문에도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경천미공자(驚天美公子) 오칠.

 

얼마 전부터 사람들은 그에게 그런 유치한 별호를 붙여주었다. 동북구와 동남구를 제패한 그이기 때문에 더없이 어울리는 별호이기도 했다.

 

그 말을 그대로 풀자면, 하늘도 놀라게 만드는 아름다운 외모의 공자라는 뜻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뜻은 순식간에 무한의 판도를 변화시킨 놀라운 능력에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수백의 하오배들을 교화시켜 수하로 거두고, 철근문과 열락문, 게다가 전통의 사파문인 천목보까지 제압해 모두 정파문으로 뒤바꾼 사람이 저렇게 젊은 사내라니.’

 

고씨는 처음 그 소문의 오칠이 눈앞에 보이는 바로 저 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대단하다는 사파 고수들을 모두 때려눕혔다는 말도 오칠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불신과 의심으로 돌변했다.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이 아름다운 외모의 사내가 어찌 그렇게 살벌하고 험난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 것이다.

 

하지만 요 사흘간 그의 자판 앞에서 점점 숫자가 불어나는 아이들과 당과를 먹는 오칠에게 찾아와 인사를 하는 이들을 보면서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무한 제일 사파 고수였던 천목보 경 보주와 총관 등을 비롯해, 철근문의 금 문주 및 그 산하 단주들, 그리고 열락문의 매 문주와 그녀의 아리따운 딸들, 또 도끼파, 쌍칼파 등등으로 불리다가 사두문이란 정식 문파를 세워 그 위세가 이전에 비할 수 없이 커진 왕 대장 등의 하오배들이 차례로 오칠을 찾아와 안부를 묻고, 불편한 것이 없는지를 살피고 갔던 것이다.

 

“여기 있다.”

 

고씨는 완성된 하나의 당과를 내밀었고, 몇 개의 자그마한 손이 똑같이 당과를 향해 내밀어졌다.

 

“내가 먹을 거야!”

 

“내가 먼저 기다렸잖아!”

 

“아니야!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아이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 먹겠다고 다투기 시작했다.

 

“싸우면 당과 못 먹게 한다.”

 

서로 치고받을 것처럼 다투던 아이들은 저 뒤쪽에서 몇몇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오칠이 한 소리를 하자 곧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한 아이가 먼저 당과를 손에 쥐고는 얼른 뒤로 빠졌다.

 

“차례로 기다리면 모두 먹을 수 있으니까, 모두 다투지 말아라.”

 

아이들은 오칠의 경고 섞인 일침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칠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노스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기억나네.’

 

이제는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서로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오칠은 과거 노승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오칠이 노승과 숲 속 암자에서 지낼 때, 두 사람이 먹을 공양은 바가지에 한꺼번에 담겨 올라왔었다. 오칠은 어릴 때 굶어 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 음식에 대한 집착이 무척 강했고, 그래서 노승과 같이 먹을 때도 엄청 빠른 속도로 먹었다.

 

그런 오칠을 보다 못한 노승은 물었었다.

 

“넌 밥을 왜 먹느냐?”

 

“죽지 않으려고요.”

 

노승은 허허, 웃으며 다시 물었다.

 

“사람들이 보시를 왜 한다고 생각하느냐?”

 

오칠은 별걸 다 묻는다는 얼굴로 나물밥을 입 안 가득 물고 대답했다.

 

“부처에게 바라는 게 있나 보죠.”

 

노승은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들도 있겠지. 하나, 보시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내 마음속에 쌓인 물질에 대한 집착을 밖으로 내놓아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즉, 탁발승은 무엇을 소유하고, 품에 쌓아놓으려 하는 집착을 받아주는 것이지. 잘 생각해 보거라. 너는 혼자 먹을 때 맛이 있더냐? 아니면 누군가와 같이 먹을 때 맛이 있더냐?”

 

오칠은 가만히 생각하다 같이 먹을 때에 더 빨리 먹으려고 하고, 그래서 더 맛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먹을 때라고 대답했다.

 

노승은 무릎을 치며 바로 그것이라 했다.

 

“그것이 부처의 마음이니라. 탐욕적인 집착을 버리고, 내가 아닌 우리가 되었을 때 만족과 기쁨은 더욱 커지는 것이 바로 부처의 마음인 것이야.”

 

하지만 노승의 그 말을 들으며 오칠은 내심으로 코웃음을 쳤었다.

 

자신이 많이 먹으니 노승이 삐쳐서 하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누군가와 무얼 나누어 먹는다고 만족과 기쁨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결론지어버렸다.

 

 

 

 

 

‘그렇다면 난 이제 우리가 되면서 얻는 기쁨과 만족을 알게 된 걸까?’

 

노승과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오칠은 현재의 자신을 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절대 그러한 인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무얼 나누었기 때문에 기쁨과 만족이 생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편하게 어울릴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당과를 사주고, 마치 골목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놀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은 집착을 버리고 기쁨을 얻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언가에 더욱 집착하며 만족하고 있다는 말이었고, 절대 그걸 부정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저… 나리?”

 

아직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이 당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고씨가 송구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왜 그러시오?”

 

“재료가 떨어져서 당과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요.”

 

오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뭔가 먹고 싶다는 표정을 짓는 백 명에 가까운 숫자의 아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아마도 한 명 한 명이 몇 개씩의 당과를 먹다 보니, 모든 아이들의 식욕을 충족시키기도 전에 재료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물론 지난 이틀간 이런 적이 없었으니, 당과를 먹기 위해 찾아온 아이들의 숫자가 더욱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알겠소. 그럼 다른 곳을 찾아가야지.”

 

“내일은 더 많은 재료를 준비해 놓겠습니다요!”

 

고씨는 오칠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오칠이 아이들에게 사주는 당과의 양도 양이거니와, 저기 저쪽에서 힐끔거리는 여인들처럼 이 아름다운 사내를 보겠다고 당과를 사먹는 여인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즉, 고씨의 장사 인생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고씨의 생각이고, 오칠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냥 평소대로 준비하시오. 내일 내가 올 지 안 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오칠은 속으로 울상을 짓는 있는 고씨에게 먹은 만큼의 돈을 건네주고는 아이들에게 다른 곳을 찾아가자고 크게 소리치며 앞장서 걸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일제히 왁자지껄한 기쁨의 환성을 지르며 오칠의 뒤를 우르르 따르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요, 오칠님!”

 

“오늘은 아이들의 숫자가 더 많아진 거 같습니다요!”

 

사흘 전보다 더욱 친근한 투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인사를, 오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파의 기치를 내건 문파의 장문인이란 꼬리표가 붙었으니, 그에 합당한 모양새를 적당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하하, 웃으며 몇 마디 말로 대꾸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와~ 역시 우리 대장이야!”

 

“맞아, 맞아!”

 

아이들은 그런 오칠을 대장이라 부르며 마치 개선장군을 뒤따르는 용감무쌍한 병사들이라도 된 듯 우쭐해 했다.

 

“오칠님을 뵙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엄청난 덩치에 흉악스럽다고 할 수 있는 인상을 가진 사내들의 등장에는 조용히 침묵했다.

 

근처를 지나던 십여 명의 사두문 문도(하오배)들이었던 것이다.

 

“어딜 가는데 이리 몰려다녀?”

 

문도들을 이끌고 있는 자는 사두문의 대형 왕공단의 측근 중 한 명이라 얼굴이 눈이 익은 자였다.

 

“가청 주점을 보수하고 있어서 그 일을 도우러 가는 중입니다.”

 

이제는 사두문의 문도지만 이전에는 하오배들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 외견상 하오배들이라고 불려도 상관없을 사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왕공단 등이 오칠을 주군으로 섬기고부터는 이전의 잡스럽고 수준 낮은 행동들을 금지시키고 있어서, 근래의 그들은 오칠을 통해 전해진 무공을 수련하는 등 매우 성실한 생활만을 해오고 있었다.

 

물론 문도들 중에서는 그런 갑작스런 변화에 불만을 느끼는 자도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먹고, 즐기고, 난장판을 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또 그걸 즐기기 때문에 하오배 생활을 하고 있던 자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머리가 향하는 방향은 어쩔 수 없이 꼬리도 따를 수밖에 없는 법이다.

 

금철산과 매소옥이 오랫동안 이어온 사파 성향과 문파의 독립적인 위치를 버리고 단박에 오칠의 밑으로 들어가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지만, 그 휘하의 문도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도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배나 든든히 채우면서 해.”

 

오칠은 품에서 은덩이를 꺼내 내밀었다.

 

며칠간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다른 것에도 꽤나 여유로움을 갖게 된 것일까?

 

아니었다. 오칠은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이를테면 이기적인 자기만족의 연장이라고나 할까.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두문 문도들은 하늘같이 높은 오칠의 너그러움에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크게 숙였다.

 

“가봐.”

 

오칠의 손짓에 문도들은 공손하게 돌아서서 가던 길로 향했고, 오칠은 다시 당과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하다가 다시 우뚝 멈춰 섰다.

 

‘노백.’

 

오칠이 마주보는 길 앞쪽으로 북성문교위(北城門校尉) 노백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복장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발산하는 당당한 장수의 복장이 아니라, 소매가 좁은 푸른색 관복을 입고서 허리에는 포승과 방망이까지 꿰차고 있었다.

 

‘포쾌?’

 

노백의 복장은 포쾌의 복장이었다.

 

노백의 뒤쪽에서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린 사내도 역시 포쾌의 복장이었으니, 오칠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포쾌는 보통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순찰을 하니, 분명 두 사람도 지금 순찰을 하던 중이었겠지.

 

하지만 왜?

 

더구나 포두도 아니고, 가장 낮은 지위의 포쾌라니.

 

오칠은 궁금증이라는 크나큰 감정을 느끼며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노백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백도 오칠을 보고 있었기에 절로 두 사람의 시선은 마주치게 되었다.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꽤나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

 

날카로운 눈빛을 던지며 다가오는 노백에게 오칠은 느긋하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더 이상 당과를 사줄 수 없게 되었다고, 그러니 다음에 보자고 말하며 집으로 가라고 했다.

 

아이들도 범상치 않은 눈빛을 가진 포쾌의 등장에 불안했는지 금세 뿔뿔이 흩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 중간에서 무한의 새로운 강자로 올라선 오칠과 과거에는 장수였지만 지금은 포쾌가 된 노백이 대치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전에 당신과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오?”

 

노백의 말에 오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패와 노인을 말하는 거라면 기억하고 있지.”

 

“그럼 내가 지금 그 일을 마무리하려 하는 것에 불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겠소.”

 

노백의 말에 그의 뒤에서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어린 포쾌는 낯빛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