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82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4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82화
파계 4권 - 7화
혹자는 누군가 기연으로 천마신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설이, 이야기에나 나오는 기연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들을 위지무성은 절대 믿지 않았다.
그저 기연이라는 이름의 어쭙잖은 운으로 힘을 쟁취한다는 것은 모래 위의 성과 같다. 그 사람의 능력과 의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노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위지무성의 가슴에 일시지간 치솟고 있던 분노는 너무도 쉽게 가라앉았다. 마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좋아. 그렇게 된 거군.”
너무도 쉽게 수긍하는 위지무성의 태도에 견봉생은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그 모습이 누군가를 죽이기 전에 마음을 좀 더 차갑게 가라앉히는 살인마의 그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지무성은 진정으로 견봉생의 말을 수긍한 상태였다.
다만, 이제부터는 다른 이유로 분노를 폭출시킬 차례일 뿐인 것이다.
“그 일은 그렇다 치고, 이제는 수년 간 나를 처박히게 만든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
견봉생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위지무성을 감옥에 가둔 것도 아닌데, 어디에 처박는단 말인가.
“……!”
움켜잡고 있던 머리를 번쩍 들어올리자, 위지무성의 냉혹한 눈동자와 견봉생의 고통에 일그러진 눈동자가 똑같은 높이에 맞추어졌다.
“네놈 때문에 잔뜩 웅크리고만 있었더니 삭신이 다 쑤신단 말이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견봉생이 어찌 알겠는가.
위지무성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천마신공의 존재가 그 기다림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만약 배화교전록이 절벽에 떨어져 계곡 속으로 빠졌고,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누구도 그 배화교전록을 볼 수 없고, 또 천마신공의 존재는 영원히 과거 속으로 묻혀버릴 것이라는 걸 위지무성이 진작 알았다면, 그의 사부이자 전대의 혈천신교 교주는 좀 더 일찍 죽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지무성은 지금보다 몇 년은 더 빨리 교를 전복시키고 교주의 자리를 차지한 뒤, 중원을 공격하려는 준비를 더 일찍 시작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쯤 중원을 제압하여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왕으로 군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놈의 사지를 뜯어내고, 껍질을 도려내어 교에 전해오는 백마흔다섯 가지의 고문으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지독한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들 수도 있다.”
견봉생의 얼굴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겁에 질려갔다.
정확히 백마흔다섯 가지의 고문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사지가 뜯기고 껍질이 도려내어져도 죽지 못한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지독할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위지무성이 아닌가.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그를 찾아내 소림사까지 들어가게 만든 자였다. 결국 이 메마르고 척박한 감숙까지 도망치게 만든 장본인인 것이다.
그런 위지무성의 협박은 그 누구의 협박과도 비견될 수 없고, 그래서 더욱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죽이지는 않아.”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줄 뿐이지,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모…모든지 하겠습니다! 시키시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뭐든지?”
위지무성은 견봉생의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 손을 바짝 당겼다.
그리고 코끝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는 히죽 웃었다. 하지만 웃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밤공기를 흡수한 듯 검게 물들었다. 그래서 그의 웃음을 더욱 사악하게 보이게 하고, 흉포하게 만들었다.
“개가 되라.”
“……!”
“내 개가 되어 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짖어라.”
개가 되라.
위지무성이 말하는 뜻은 종이 되라는 것이었다. 아니, 종보다 더욱 비천한 존재가 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견봉생은 그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를 가득 채우는 위지무성의 검은 눈동자는 그에게 다른 대답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 개가 되겠습니다! 주인님의 개가 되겠습니다!”
위지무성의 사악한 웃음은 좀 더 짙어지고,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공병악 등의 사제들은 무겁게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는 감숙성의 메마른 공기도 그들처럼 그저 고요히 주변을 감싸고 돌 뿐이었다.
제37장. 아이들과 당과를 먹다
짹짹. 짹짹.
열린 창문으로 빛과 새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날이 후텁지근하더라도 기분 좋은 상태에서 들으면 얼굴에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것들이고,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그저 무시하고 흘려들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정도로는 계속 잠을 자려고 하는 오칠을 방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빛과 새의 지저귐에 더해져 서른네 명의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는 분명 커다란 소음이었고, 그걸 무시하고 잠을 자기는 오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빌어먹을.”
오칠은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헤집으며 느릿하게 일어났다.
시간은 대략 진시(辰時:오전 7~9시) 말.
주점에서 오칠이 일어나는 시간은 늘 오시(午時:오전 11~1시) 초쯤이었기에 지금 일어난다는 것은 수면 부족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오칠이 이렇게 방해를 받고 일어난 것이 벌써 나흘째라는 것이다.
끼익.
방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앞에 물이 가득 담긴 넓은 주둥아리가 넓은 사기 그릇이 탁자에 놓여 있었다.
방을 나오면 씻으라고 종삼이 떠놓은 것이다.
“흠.”
오칠은 잠시 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냥 나갔다가는 종삼이 쏟아내는 투덜거림이 귀를 괴롭힐 것이고, 그래서 허리를 구부리며 양손을 물속에 푹 담갔다.
“푸하! 푸하!”
일단 손에 물을 묻혔고,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사방으로 물이 튀길 정도로 시원스럽게 얼굴을 씻어냈다.
“물만 떠놓고, 수건은 챙겨놓지 않다니.”
나흘 동안 쭉 그래왔으니 종삼이 일부러 갖다놓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슥슥.
오칠은 종삼의 간덩이가 점점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생각을 하며 소맷자락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주점의 앞마당으로 나와 긴 한숨을 쉬었다.
‘점점 많아지네.’
앞마당에 놓인 탁자엔 스물세 명의 남녀 손님들이 후루룩 짭짭거리는 소리를 남발하며 한창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 주점 안에는 열한 명의 손님들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탁자 사이를 오가며 음식을 나르는 몇 명의 어린아이들과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종삼의 기척을 빼고, 오칠이 그의 방에서 감지한 사람의 숫자가 딱 서른네 명이었으니까.
그런데 왕공단 등의 하오배들이나, 철근문 금철산 등이 아니라면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곳 주점에 왜 이리 사람이 많은 걸까?
사흘 전, 마성에서 돌아와 경가장에 들렀다가 주점에 왔을 때에 오칠은 바로 그러한 의문을 가졌었다.
왜?
왜 이렇게 많은 손님이 생겨버린 거지?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은 종삼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열락문의 기녀들을 통해 맛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주점을 찾았고, 종삼은 식사 때도 아닌 시간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놀라운 현상을 만둘 정도로 실력을 발휘하여 단골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많은 손님들의 시끄러운 주절거림 때문에 잠을 푹 못 자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이곳은 장사를 하는 곳이다. 그것도 자신은 주인을 자처하고 있으니, 그리 기쁘지 않은 속내와는 별개로 손님이 많은 것을 반겨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은 있어도, 오칠 자신이 담가놓은 분주를 마시는 손님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종삼의 말을 듣자면, 주점을 찾는 손님들이 다른 곳에서 술을 사와 먹기는 해도, 주점의 분주는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지난날 열락문 문주가 분주를 먹고서 며칠 동안 구역질을 하며 앓아누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점에 와서 술을 안 사먹겠다고 하다니, 빌어먹을 것들!
오칠이 거슬리는 신경 상태를 여과 없이 겉으로 표출하자면 손님이고 뭐고 죄다 뒤집어엎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참았다. 아니, 그런 질투 비슷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즐겼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종삼에 대한 대견함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칠님?”
바쁘게 음식을 나르던 소년이 오칠을 보고는 얼른 인사를 했다.
그러자 소년의 인사 소리를 들은 다른 소년들, 오갈 데가 없어 다리 밑을 전전하다 이곳의 소문을 듣고 오칠이 무한에 없을 때 찾아와서는 결국 점소이가 된 소년들이 일을 멈추고 오칠에게 넙죽 인사를 했다.
“…….”
“…….”
“…….”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주문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고 오칠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건 노골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그저 오칠의 존재가 그들에게 매우 커다란 위압감을 주는 듯 그들은 잔뜩 겁을 먹고서 오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계속 식사들 하시오.”
오칠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고, 사람들은 그제야 다시 이전의 활기를 찾아 음식을 먹는 데에 집중했다.
‘돌겠군.’
이틀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오칠에게 이런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사내들은 진실인지, 아닌지 확신하지도 못하는 오칠과 철근문 문주의 싸움, 그리고 열락문 문주와의 싸움 등등을 떠들어대며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고, 여인들은 얼굴이 곱상하네, 하지만 들었던 만큼 빼어난 미남은 아닌데? 부스스한 머리가 얼굴을 가려서 그런가? 하는 눈으로 오칠을 관찰하는 시선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 하나의 소문이 그런 그들의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경탄과 두려움.
몇 가지의 감정들이 더 있겠지만, 오칠을 향한 시선에 담긴 감정들을 크게 분리하자면 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소문일까?
소문의 내용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천목보는 무적 정의파(無敵正義派)에 패배를 자인하고 복속한다.
사실, 이 말은 소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골목의 음지에서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뒤섞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경가장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한 말이 급속도로 무한 전체에 퍼져나간 것이니까.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말로 인해 몇 가지의 정보와 진실, 그리고 추측이 뒤섞인 여러 가지 소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적 정의파는 정파를 지향하는 문파다.
무적 정의파에 복속한 곳은 천목보 뿐만이 아니라, 철근문과 열락문도 있다.
무적 정의파는 쌍칼파, 대도파 등의 하오배들이 뭉쳐서 새로이 만든 사두문(四頭門)이 그 핵심이 되어 탄생했다.
무적 정의파의 장문인은 주점을 하고 있는 오칠이란 젊은 사내다.
이 같은 소문은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경가문에서 고의로 퍼트린 것이지만, 그 외에도 허무맹랑하고, 얼토당토하며, 환상적이고 기괴하기까지 한 소문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천목보가 흑천맹의 방해 없이 사상적 전향을 하기 위해 술수를 쓰고 있다느니, 오칠이 경 보주의 숨겨둔 자식이고 내부적으로는 정식 후계자 승계라느니, 혹은 남색에 빠진 경 보주가 오칠에게 반했기 때문에 가업을 통째로 넘겨버린 것이라느니 등등의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문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소문들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적 정의파가 어디에 있고, 그 장문인은 정말 소문처럼 오칠이 맞는지 등등에 대해 누구도 명쾌한 답을 알 수 없었고, 감히 무서워서 오칠을 찾아와 직접 묻는 이도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반나절도 되지 않아 무한을 들끓게 만든 이러한 소문 때문에 오칠은 순식간에 무한의 유명인이자 가장 막강한 인물들 중 하나가 되었고,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경탄과 두려움이 가득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일정 부분 사실을 근거로 한 소문이기는 하지만, 동남구, 동북구를 제패한 무적 정의파의 장문인이 이런 허름한 주점에 있는 것도, 또 그런 사람이 있는 주점에 음식을 먹으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오칠은 이러저러한 사건을 통해 이전에 비할 수 없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을 투덜거릴 수 없었다.
문파를, 그것도 백천맹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정파 문파가 필요하다 한 것이 오칠 본인이었으니, 방법을 찾아내 실행에 옮긴 경 보주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
일어났으니 뭐든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점 안으로 들어가려던 오칠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저 멀리 허름한 집들 사이에 난 골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웅성웅성.
주점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목인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사내를 발견하고 사람들이 조그맣게 숙덕이기 시작했다.
역시 소문이 진짜야, 그럼 오칠이란 저 젊은 사내가 진짜 천목보를 패배시킨 건가? 등등의 숙덕거림이었다.
왜?
골목에서 걸어오는 이는 천목보의 총관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쌍둥이들이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경 보주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총관들 중에 한 명은 확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