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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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81화
파계 4권 - 6화
“도망 못 가!”
사방에서 압박하며 들려오는 소리가 온 힘을 다해 도주하는 견봉생의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더욱 잡힐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위지무성의 네 사제들도 나름대로 경지에 오른 고수들. 그들은 선점하고 있던 방향의 이점으로 견봉생을 포위하듯 둘러쌀 수가 있었다.
휘리릭.
견봉생의 발끝이 바닥을 박차고 새처럼 위로 솟구쳤다.
앞이 막혔으니 성벽을 뛰어넘듯 포위망을 벗어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에 있던 위지무성의 넷째 사제, 야율도동은 손에 쥐고 있던, 일반적으로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라고 하는 긴 손잡이에 큼직한 날을 자랑하는 대도(大刀)를 위로 그어 올렸다.
부웅―
묵직하고도 섬뜩한 바람이 공간을 가르고, 높이 솟아오른 견봉생의 하체를 향해 파고들었다.
‘잡았다!’
야율도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견봉생은 그의 도기에 휩쓸려 두 다리를 잘리고 말 것이라 확신했다.
타탁.
하지만 결과는 야율도동의 확신을 빗겨나갔다.
어둔 대기마저도 잘라버릴 것 같은 도기를, 견봉생은 놀랍게도 발끝으로 박차고 더욱 높이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하하하! 막내가 한 방 먹었군!”
시원스러운 웃음을 터트린 위지무성의 둘째 사제 원등곡은, 더욱 높이 솟아올라 도망치려고 하는 견봉생의 바로 아래로 바짝 날아올랐다.
“만리신투, 당신의 고명한 경공에 정말 탄복했소!”
원등곡의 말은 진정 그러한 감정이 가득한 듯 진솔하게 들렸지만, 그의 한 손에 들린 부채는 말과는 달리 너무도 험악하게 견봉생의 다리를 휩쓸고 있었다.
차라락― 차라락―
마치 새의 날갯짓 소리처럼 들렸지만, 부채의 움직임은 그보다 더욱 날카롭고, 화려하게 움직였다.
운신이 어려운 공중에서 이렇듯 놀라운 선법을 보인다는 것은 원등곡이 그만큼 뛰어난 경공을 익혔다는 반증. 하지만 그의 실력은 견봉생에게 한 수 뒤지는 모양이었다.
원등곡이 또 다른 손에 들린 부채로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견봉생의 하체를 공격했지만, 견봉생은 그의 공격권을 여유롭게 벗어나며 마치 공중을 걸어가듯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능공허도(凌空虛道).
마치 하늘을 걸아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경공의 최상승 경지 중 하나였다. 그리고 아무리 원동곡이 경공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도저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수준의 경공인 것이다.
“빌어먹을!”
조금 전 야율도동의 실패를 비웃었던 원등곡은 자신 역시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저 아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깔깔깔깔!”
밤하늘로 요사스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요사스러운 만큼 사내의 열망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웃음소리였다.
“내가 잡을 거야!”
사형제들 중 유일한 여인인 냉음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야율도동처럼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원등곡처럼 경공으로 솟구쳐 오르지 않았다. 그저 견봉생을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을 뿐이다.
“……!”
견봉생은 뒷골을 강하게 자극하는 어떤 무형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건 거의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추상적인 짐작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몸을 뒤틀었다.
파삭―
어깨의 옷깃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몸을 틀지 않았다면 등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져왔을 공격이었다.
“어라? 미녀 소수인을 피했어?”
미녀 소수인(美女素手印).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다는 무형의 장법으로, 장풍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놀라운 수법이었다. 하나, 하늘에 떠올라 있는 견봉생과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고, 위험을 감지할 수도 있을 만큼의 시간을 주었다는 것이 그녀의 공격을 실패하게 한 것이다.
“공 오라버니!”
냉음설은 분해하지 않았다.
그저 견봉생이 사람은 계속 날 수 없다는 걸 증명하겠다 듯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방향에서, 두 팔을 늘어트리고 서 있는 위지무성의 첫째 사제인 공병악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다.
‘위험하다!’
견봉생은 그가 떨어지고 있는 방향에 서 있는 사내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다른 세 사람의 공격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지금 당면한 사내는 도저히 마주할 자신조차 생기지 않았다.
왜?
사내는 너무나 빈약해 보이는 몸이었고, 얼굴은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처럼 하얗게 죽어 있었다.
외견상으로 보자면 무공이 뛰어나지 않은 그도 상대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검이다!’
가슴을 휘어 감는 불안감에 의문을 제기하던 견봉생은, 사내의 오른쪽 허리에 아무렇게나 매어져 있는 검을 발견했다.
좌수검(左手劍).
쉽게 볼 수 없는 좌수검객이었다.
오른손에 비해 제약이 많은 왼손으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알려졌지만, 그만큼 좌수검을 터득한 자 중에 약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쪽은 안 된다.’
견봉생은 타오를 것을 알면서도 불길을 향해 나풀거리는 불나방처럼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없었다.
좌수검의 사내를 발견하고 촌각에 불과한 시간 동안 판단한 것이지만, 견봉생은 억지로 끌어올린 얼마 남지 않은 내공의 줄기를 오른발에 밀어 넣고, 내공에 의해 단단해진 오른발을 왼발로 찍어 찼다.
휘리리릭―
마치 상승하는 돌풍에 휩쓸린 듯 견봉생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공병악의 창백한 얼굴에 아쉬움이 번져갔다. 아주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다리를 절단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의 표정도 잠깐이었다. 이제 견봉생은 그들보다 더욱 난폭하고 집요하며, 강력한 이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들의 사형이자, 혈천교의 주인인 위지무성을 말이다.
“장난은 그만 하지!”
그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자신하는 공중으로 날아오른 견봉생은 웅웅― 거리며 전해져오는 음성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지도 않고 몸을 활처럼 휘었다가 오 장여 앞으로 가까워진 봉우리로 몸을 밀어냈다.
궁신탄영(弓身彈影).
몸을 활처럼 휘게 해서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몸을 이동하는 최상승의 경신법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디딤대도 없는 공중에서 펼쳤으니, 견봉생은 경공으로서 올라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선 것과 다름없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하지만 견봉생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 위험을 감지한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는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경공들을 펼치고 있었다. 스스로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자신하지 못하던 경공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펼쳐져서 자신조차 놀랄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 경공 수법의 마무리가 무언가에 제약당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단전에서 내공의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궁신탄영의 수법이라면 그 자신은 이미 봉우리에 당도했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몸은 아직 그렇게 되지 않고 있었다.
‘당겨지고 있다!’
뭔가 그의 몸을 속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중에서 그의 몸이 우뚝 정지해버리면서 그러한 생각은 보다 확신으로 굳어졌다.
“유흥은 여기까지야!”
견봉생은 아래로 추락하면서 몸을 뒤틀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거대한 흡혈박쥐처럼 자신을 향해 덮쳐들고 있는 위지무성의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가 활짝 펼쳐 내뻗고 있는 손바닥에서 무형의 어떤 기운이 뿜어져 나와 그를 붙잡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압―!”
견봉생은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리고 빙글빙글 회전하며 위지무성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이었고, 견봉생도 그걸 알기에 순간 몸을 쭉 펼치며 다시금 그의 어깨를 붙잡으려 하는 위지무성의 손을 피해냈다.
“크하하! 실력이 늘었구나!”
위지무성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리며 오른손에서 뭉클거리는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파천혈전공.
그 강력하고도 질척한 검은 기운이 좌우로 몸을 뒤틀어대며 손을 피하고 있는 견봉생의 신형을 뒤덮어갔다.
“헉!”
마치 커다랗게 펼쳐지는 그물처럼 반경을 넓히고 있는 파천혈전공을 바라보며 견봉생은 절박한 헛바람을 토해냈다.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몸을 움직이고 뒤틀어도 저 검은 기운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화아악―
견봉생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아니, 그건 검은 기운에 뒤덮여 달빛조차 거부해버린 그의 온몸이 어둠에 동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위지무성은 그런 착시에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컥!”
검은 기운의 근원인 위지무성의 손에 목을 틀어잡힌 견봉생은 사지를 버둥거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목을 틀어잡고 있는 강력한 손아귀 힘뿐만이 아니라, 파천혈전공의 어두운 기운이 그의 숨통을 메워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모든 신체는 그 검은 기운에 잠식되어 있었다.
“살고 싶으냐?”
견봉생은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그의 의지를 벗어나 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위지무성은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그런 견봉생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침묵했다. 마치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견봉생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즐기고 있는 걸까?
아니었다. 그냥 궁금해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죽음과 삶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자의 눈빛이 어떠한지 문득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위지무성은 곧 견봉생의 몸을 잠식하고 있는 파천혈전공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생사의 경계에 놓여 있는 자의 눈도 다른 자들의 눈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안 것이다.
그 어떤 자도 생사를 초탈할 수 없음을, 죽음보다는 삶을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쿨럭!”
땅에 주저앉은 견봉생은 질척한 침을 흘리며 격렬하게 숨을 토해냈다.
위지무성의 발치에 엎드린 그의 몸은 조금 전까지 고수들을 농락하듯 경공을 펼친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이 초라해 보였다.
“책은 어디 있지?”
견봉생의 거친 숨결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진중하게 인내하고 있던 위지무성의 입이 열렸다.
“…….”
견봉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걸쭉하게 입가에 흘러내리고 있는 침을 다시 뱉어내고, 기침을 하면서 자신이 아직 대답할 상태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지만, 그건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자신이 진실을 이야기했을 때에 위지무성이 드러낼 분노가 두려웠기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날 시험하는 건가?”
쇠갈고리처럼 날카롭고도 강력한 손이 견봉생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손의 악력과는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견봉생의 신체를 비롯해 의식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끄아아!”
너무도 지독한 고통에 견봉생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두려움보다 당장 그를 괴롭히고 있는 고통에 순응하며 입을 열었다.
“잃… 잃어버렸습니다!”
“…….”
위지무성은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뭐라고 했지?”
“잃어버렸습니다!”
위지무성의 침묵과는 달리 머리를 헤집는 고통은 계속되었기에 견봉생은 괴성을 지르는 것처럼 소리쳤다.
어서 이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소림사에 침입한 것과 그곳을 빠져나온 것, 그리고 어떻게 해서 훔쳐온 책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를 마구 토해냈다.
“다시 말해봐.”
위지무성은 또 물었고, 견봉생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같은 질문과 대답은 열 번이 넘게 반복되었다.
“크크크…….”
슬쩍 비틀려진 위지무성의 입가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그는 웃고 싶었다. 지금 자신이 들은 견봉생의 말이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화교 칠 대 교주의 천마신공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버린 지금의 상황을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현실도피였고, 위지무성은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걸 후련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아쉬움과 분노, 살의 등등 감정 저 밑바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천마신공을 찾으려 한 것은 이 세상에서 그보다 강한 무공을 익힌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익히려고 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천마신공보다 강한 무공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무엇보다 강한 무공을 익히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파천혈전공과 같은 극강의 무공을 익히지 않고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즉, 이제는 그보다 강한 자가 세상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인 것이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가 천마신공을 찾지 못했다면, 세상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