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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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79화
파계 4권 - 4화
십칠 년 전, 금검문은 그들의 생업을 표국으로 삼았지만 아직 번성할 여건을 갖지 못했고, 더구나 자금적으로도 크게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마침 조정에서 다시 역모에 관련한 피바람이 불었고, 우연히 목운교에 대한 소식을 접한 것이다. 당연히 금검문은 그 천금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장에 문주이자 국주인 자가 목운교와의 혈연관계를 거론하며 후견인을 자처한 것이다. 그리고 재산은 많았지만 의지할 곳 없었던 여덟 살 어린여아, 목운교는 당연하게도 금검문 문주의 양딸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런데 백천맹에는 왜 가 있는 거지?”
금검문에 들어갔으면 그곳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백천맹에는 열혈군(熱血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맹에 속한 모든 대소 문파는 사문의 후기지수들 중 최소 두 명 이상을 열혈군에 보내게 되어 있는데, 금검문은 목 소저를 보낸 것이지요.”
오칠도 열혈군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알고 있었다.
열혈군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젊은 무인들의 집합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 창립했을 당시에는 다시 발호할 수도 있는 마교를 상대할 고수들을 양성하자는 것과 또 한편으로는 무림맹의 힘을 직접적으로 키우자는 취지였다.
아무래도 중원 곳곳에 퍼져 있는 문파들이 단기간에 힘을 합해서 강대한 마교를 상대하는 것이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능력도 있고, 재능도 있는 젊은이들을 한곳에 모아 무공 수련을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열혈군은 처음의 의미와는 약간 달라졌다. 마교에 대비한 고수 양성이라기보다는, 흑천맹의 철심각(鐵心閣:열혈군과 같은 목표로 만들어진 단체)과 경쟁하는 단체가 된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었고, 표면적인 존재 의미는 여전히 마교의 발호를 대비한 인재양성이었다.
“목운교가 금검문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가?”
열혈군에 들어간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문파에서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는다는 것이고, 또한 그 문파의 다음 대를 이어갈 재목이라는 뜻이다.
즉, 문파에서 밀어줄 생각이 아니면 보내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
“조사한 바로, 목 소저가 익힌 무공은 금검문의 건곤금검식(乾坤金劍式)이 아니라, 가전 무공인 회풍무류검법(回風無流劍法)이었습니다.”
“회풍무류검법…….”
오칠은 과거 목운교로부터 그 검법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밤마다 나무 몽둥이를 들고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녀를 보고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너무도 자랑스러운 얼굴로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최고의 검법이라고 했었다.
그때, 오칠은 정말 그녀의 말을 믿고 회풍무류검법이 최고의 검법인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검법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왜 건곤금검식을 익히지 않았지?”
“그녀가 거부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부친에게 전수받은 무공을 버리기 싫었을 것이다.
“그럼 금검문의 검법도 익히지 않고 있는 목운교가 왜 열혈군에 들어간 거야?”
“표면상으로 보자면 열혈군 모집 요망에 걸맞는 인재 파견입니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금검문에 두기가 껄끄러웠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무슨 말이지?”
“금검문의 기반인 금검 표국이 산서에서 클 수 있었던 것은 목 소저의 가문이 영향을 줄 수 있는 관부와의 관계와 막대한 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목 소저가 성인이 되고부터 문제가 생긴 겁니다. 더 이상 후견인으로서 목 소저를 붙잡을 수도 없고, 재산을 관리할 명분도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목 소저는 분가를 한다거나, 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오칠은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그 내막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금검문의 문주는 그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목 소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아들과 혼인을 시켜서 모든 것을 취하려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목운교의 거부로 실패했습니다.”
친인척 관계를 따져보아도 너무도 먼 사이이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양딸을 순식간에 며느리로 삼는다는 것부터가 무리수였고, 목운교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문주는 그래서 목 소저를 외부로 시집보내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적당한 혼인 예금으로 더 이상 목 소저가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게 하고, 관부와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지요. 하지만 그때, 목 소저가 자신은 혼인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 그러한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지요. 문주는 당연히 불안해지기 시작했을 겁니다. 언제 집을 나가 그들 표국 재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몫을 요구할지 모르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다르게는 그러한 점을 통해 표국 운영에 간섭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열혈군으로 보낸 겁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뭔가 일어나기를 바랐겠지요.”
“뭔가 일어나기를?”
“열혈군에는 정파에서도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많으니, 절로 짝이 생길 것이라 여겼겠지요. 또는 표국에 간섭할 수 없도록 산서에서 멀리 떨어진 호북 은시(恩施)로 보낸 것일 수 있습니다.”
또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등등의 어두운 추측도 있었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오칠도 그 점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목 소저가 적극 환영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무공에 대한 집착이 꽤 강했다고 하더군요.”
“그럴 거야. 목운교는 어릴 때도 그랬으니까.”
결론은 여러 상황과 목운교의 의지로 그녀가 백천맹 열혈군에 들어갔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단철방에서 경 보주가 보낸 서신을 읽고 생각했던 오칠의 결심은 보다 확고해졌다.
“문파를 만들어야겠어.”
“……?”
“정파의 이름을 내건 문파가 필요해. 백천맹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정파 문파가 말이야.”
“알겠습니다.”
경 보주는 두말 않고 수긍했다.
분명 의문이 들 테고, 그 이유도 알고 싶었을 테지만 그는 거기서 생각을 멈추었다. 오칠이 하고자 한다면 그는 그 어떤 것이라도 따르면 그뿐인 것이다.
그것이 교주에 대한 경 보주의 믿음이었고, 오칠을 교주로 받아들인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오칠의 물음에 경 보주는 고개를 숙였다.
“문파의 이름만 정해주십시오.”
“음… 아! 무적 정의파(無敵正義派). 어때? 그럴듯하지?”
유치하기 그지없는 이름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시키더라도 그보다 더 나은 이름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 보주는 그 이름이 단순히 장난스런 의미로 지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파에 대한 조롱.
오칠이 무적 정의파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그런 의미가 내포된 것이 분명할 것이다.
물론 그런 추측은 경 보주 개인의 생각일 뿐이었다. 지금 오칠의 입가에 지어진 장난스런 미소는, 그 문파 명에 그렇듯 깊은 뜻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니까.
“즉각 방법을 간구하겠습니다.”
“좌사를 믿고 있지.”
오칠은 경 보주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얼마나 오래 알았고, 얼마만큼 믿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경 보주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오칠은 그런 경 보주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도 나름대로 신뢰라는 이름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36장. 감숙성 난주에 그가 있다
감숙성(甘肅省) 무위(武威).
그 인근 지역은 하서회랑(河西回廊)이라고도 부른다. 일부의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거의가 사막 지대를 이루는 곳이지만, 옛부터 본토와 서역(西域)을 잇는 주요 교통로가 되었고, 무위를 시작으로 장예(張掖), 주천(酒泉), 옥문(玉門), 돈황(敦煌) 등의 고대 비단길의 역사적인 도시가 줄을 잇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과거의 명성이었고, 무위 또한 다르지 않았다.
지금의 무위는 그저 하서(河西) 및 청해의 양모를 집산하고, 보리의 생산이 많은 곳이며, 과거 오호십육국 시대에는 다섯 왕조의 도읍지였고, 당나라 이후에는 양주(凉州)의 국도라는, 그 주변 도시들도 갖고 있는 옛 명성에 만족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나, 그래도 무위는 교역 도시였고, 나름대로 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니, 주변 곳곳에 객잔과 주점들이 즐비한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시(巳時:오전 9~11시) 말.
고만고만한 크기에 적당하게 허름한 주점들 중 어느 한 곳으로 한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사내는 주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망설임 없이 가장 구석진 곳으로 걸어갔다. 당연히 그 구석에 누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 생각대로 그곳에는 한 명의 삐쩍 마르고, 머리가 부스스한 장년인이 삶이 지겨워죽겠다는 얼굴로 싸구려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십마각(十馬脚).”
사내는 장년인의 앞자리에 앉기 전에 우선 그렇게 말했다.
열 마리 말의 다리라는 뜻의 그 호칭은 당연히 장년인을 이르는 말이었고, 누구든 그의 앞에 앉기 전에 규칙처럼 하는 말이었다.
십마각이라 불리는 장년인이 그리 말하게 시킨 것이 아닌, 어느 때부터인가 그렇게 되어버렸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별 의미 없는 관례라고나 할까.
드륵.
사내는 자리에 앉았고, 관심도 없다는 얼굴로 여전히 술을 홀짝이고 있는 십마각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난주에 전할 것이 있소.”
난주(蘭州).
감숙성의 성도(省都)로, 본래 한나라 때의 금성(金城)현이었다. 진(晋)나라 때는 금성군이었고, 오호십육국 때는 걸복건귀(乞伏乾歸)가 금성왕이 되어 그곳에 도읍을 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인 무엇도 지금의 두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사내는 품에서 꺼내드는 서찰을 십마각이 건네받길 바랐고, 십마각은 이 서찰을 전하는 데에 얼마의 돈을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었다.
“대금은 일이 끝났을 때 주겠소.”
“안 해.”
십마각은 당장에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서찰을 내밀고 있는 사내는 도적놈이었다. 사내를 이곳으로 보낸 자는 무위와 난주를 오가며 교역 물품을 털고 있는 도적 떼의 우두머리 중 한 명이었다. 지금 내민 서찰의 내용은 언제 얼마 정도 규모의 어떤 상단이 난주로 향할 것이냐, 하는 등등의 내용인 것이다.
위험 부담이 큰 일이라 당연히 다른 자잘한 일들에 비해 손에 들어오는 돈이 많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믿는 마음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었다. 벌써 오 년이 넘게 거래를 해왔다는 점도 그런 믿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불문가지.
십마각 자신도 과거에는 그들과 비슷한 일을 해왔었기에 도적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배려나 믿음이란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두 번 거래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사정 좀 봐주시오.”
“그럼 딴 사람에게 맡겨.”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십마각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이오.”
“그건 그쪽 사정이지.”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난주의 동료들에게 전할 정보들은 방금 접한 아주 따끈따끈한 정보들이었다.
그들 도적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상단의 이동로를 귀신같이 찾아내 습격하자, 상단들은 자신들의 행로가 미리 노출되고 있다는 판단 하에 철저히 행로의 정보를 차단했고, 그래서 도적들은 상단이 출발하고 나서야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말을 달려가도 이틀 거리에 있는 난주에 전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른 걸음이 필요했다. 열 마리 말의 다리가 달려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십마각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빌어먹을! 협박할 수도 없는 일이고.’
사내는 잠시잠깐 십마각을 협박하여 일을 맡길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생각으로 그쳐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십마각은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빠른 것뿐만이 아니라 귀신처럼 움직여서,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옷깃 한 번 스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처음 십마각이 이곳 무위에 왔을 때, 그를 건드리려 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간 도적들이 수십이었으니, 더더욱 협박이란 말을 입에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내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협상 조건을 내밀어야 했다.
“그럼 우선 반만 해결합시다.”
“반?”
“지금은 열 냥밖에 없소.”
요 근래 거대 상단의 움직임이 적어서 자잘한 일만 해왔던 그들이라, 당장에는 황금 이십 냥이라는 큰돈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십마각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도 앞에 앉은 사내 무리가 요즘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도 적당하게 수긍하기로 했다.
“내 돈 떼어먹으면 알지?”
“걱정 붙들어 매시오.”
사내는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순간 그 주머니는 사라져버렸다. 십마각의 손이 그 주머니를 낚아채서 품에 감춘 것이다.
“잘 알겠지만, 반나절 안에 소식을 전해야 하오.”
하루 반의 여유는 있어야 도적들이 준비를 하고, 상단들을 찾아내 감시하다가 적당한 장소와 시간에 습격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