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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77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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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77화

파계 4권 - 2화

 

 

 

 

 

“내가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칠은 고저 없는 무감각한 음성으로 물었고, 매 자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말했다.

 

“우린 도망치지도 않을 거고, 오칠님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발설하지 않을 거예요. 설사 어머니가 묻는다고 해도 말이에요. 그러니 오칠님이 우리를 죽일 이유가 없지요.”

 

매적화의 떨리던 음성은 점점 더 진정되어지고, 분명해졌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잡은 오칠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잠시 그녀를 긴장시켰지만, 그뿐이었다. 그녀와 매청화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오칠의 붉은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여자는 확실히 영리해.”

 

오칠의 눈동자에 어린 붉은빛이 엷어져갔다.

 

그리고 두 자매의 목을 움켜잡은 손에서도 힘이 풀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모든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매 자매를 바라보는 오칠의 눈동자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곧 무감각하고, 나른한 특유의 눈동자로 돌아왔다.

 

“후회해도 우리가 해요.”

 

매청화가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매적화는 그런 동생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오칠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침상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두 자매를 향해 손짓했다.

 

“왠지 피곤해.”

 

오칠의 나른해져가는 음성을 들으며 매 자매는 그의 품으로 살포시 안겨들었다.

 

그리고 오칠의 손짓에 등불이 꺼지고, 방 안을 채우는 세 사람의 고른 숨소리까지 뒤덮는 짙은 어둠에 잠식되어버렸다.

 

 

 

 

 

* * *

 

 

 

 

 

“이걸 다듬고 싶다고?”

 

오칠은 화 방주와 그 일족의 충성을 다짐받은 날로부터 몇 가지 귀찮기도 하고(칠 대 교주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설교), 성가시기도 한(화 일족의 지난 이백 년 역사를 듣고, 무공 시현을 감상) 일들을 하면서 다시 십여 일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무한으로 돌아가려는 오칠은 그의 앞에 공손하게 선 화 방주를 의문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만년묵철(萬年墨鐵)은 오칠님의 위엄에 걸맞는 최고의 철입니다. 어딜 가도 그만큼 뛰어난 묵철을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 그 모양은 오칠님의 위엄에 걸맞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모양이 조잡하니 대장장이인 자신이 보다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만들어보겠다는 뜻이었다.

 

“모양 같은 건 내게 의미가 없어.”

 

오칠이 쇠사슬이었던 만년묵철을 이렇게 만든 것은 그저 무공을 익히는 데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막대한 내공을 감당할 것이 필요했고, 당시에 마땅한 재료라고는 만년묵철뿐이었으니까. 그러니 화려하고, 멋스러움 같은 것은 지금도 필요 없었다. 사용할 수만 있다면 충분하니 말이다.

 

“철을 다루는 자로서 최고의 재료를 그처럼 놔둘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해주십시오.”

 

화 방주는 생긴 것 답지 않게 듣기 좋게 말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진실한 이유는 그들 배화교의 교주가 그처럼 무식한 모양의 쇠몽둥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이겠지만.

 

오칠은 허리에 차고 있던 묵철곤을 내밀었다.

 

“이왕 손을 대려면 최고로 만들어. 아니면 그냥 이대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 나으니까.”

 

“절대 오칠님께 부끄러운 놈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화 방주는 아직 완전히 낫지도 않은 몸에 힘을 잔뜩 주면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마도 오칠의 말이 장인으로서의 그의 투지를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나중에 연락하지.”

 

오칠은 화 방주 뒤에 몰려 있는 이백여 명의 사람들을 쭉 둘러보고서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가자.”

 

오칠의 나지막한 명령에 마부석에 앉은 경대광은 마차를 출발시켰고, 그 뒤를 열 명의 무사들이 따랐다.

 

그리고 마차가 떠나는 뒤에서 화 방주를 비롯한 그 일족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마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진정 배화교를 향한 충실한 믿음을 가진 신도들이자, 교주인 오칠의 완벽한 추종자가 된 것이다.

 

 

 

 

 

* * *

 

 

 

 

 

두두두두두.

 

단철방을 떠난 마차는 오칠이 어디서도 쉬지 말고 무한으로 가라는 명령에 올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리고 적당하게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말의 피로를 줄이는, 마부 경대광의 능숙한 솜씨 덕에 일행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만 하루 만에 무한 성곽에 당도할 수 있었다.

 

“멈춰라!”

 

히히힝!

 

커다란 일갈과 함께 속도를 줄이고 있던 마차가 우뚝 멈췄다.

 

잠을 자고 있던 오칠의 눈이 자연스럽게 떠졌다.

 

“성문 위병들입니다.”

 

매적화가 보지 않고도 밖의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 오칠에게 말했다.

 

지금 시간은 대략 묘시(卯時:오전 5~7시) 초. 하지만 성문을 여는 시간은 진시(辰時:오전 7~9시) 초였으니, 아직 한 시진이나 남았고, 그런 성문에 접근하는 마차를 제지하는 것은 위병들의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하나, 마차를 끄는 이는 천목보의 총관이 아닌가. 더구나 마차 뒤로는 열 명의 무사들까지 대동하였는데, 평소 사람들의 출입을 살피는 성문의 위병들이 경대광이나 천목보의 무사들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게다가 밖에서 안을 살피겠다는 등등의 단호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경대광이나 천목보의 위세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덜컹.

 

“…….”

 

순간, 문이 열리고 서늘한 새벽 기운이 마차 안으로 와락 밀려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말없이 열린 문을 바라보는 오칠 대신에 매적화가 눈살을 곱게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나 문을 연 사내는 매적화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차 안을 살필 뿐이었다.

 

“아녀자가 있는 마차 안을 이리도 무례하게 열어도 되는 것인가요!”

 

“성문을 책임지는 자로서의 당연한 책무일 뿐이오.”

 

사내는 여전히 살피는 시선을 숨기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리고 오칠은 그런 사내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때 그 장수군.’

 

문을 연 사내는 오칠이 처음 무한으로 왔을 때 성벽 위를 순찰하고 있던 그 장수였다.

 

그리고 그때 오칠의 짐작대로 장수는 바로 이곳 성문의 교위(校尉)였던 것이다. 또한 그때의 생각대로 장수는 꽤나 고지식한 인물임이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호북의 금력을 틀어잡고 있다는 천목보의 총관이 끄는 마차를 붙잡아 조사할 생각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다른 성문의 교위였다면 개문 시간이 아니라도 벌써 성문을 열어 안으로 들여보내줬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 새벽에 깨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올곧은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거 같소만.”

 

마차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할 것 같은 교위를 경대광이 매우 불쾌한 얼굴로 제지했다.

 

“내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숨기기라도 했소?”

 

교위는 의심스럽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경대광을 쏘아보았다.

 

경대광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설사 도지휘사(都指揮使) 어른이라 해도 이리 하시지는 못했을 것이오!”

 

경대광은 천목보의 위세를 드러내며 교위를 압박하려 했으나, 교위는 그 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곳 성문을 책임지는 것은 도지휘사 어른이 아니라 나요.”

 

“흥! 도지휘사 어른이 그 말을 들으면 어찌 생각하실지 궁금하구려.”

 

경대광은 오칠을 모시는 중요한 책무를 행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매우 분노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경대광의 협박에도 교위는 요지부동이었다. 오칠의 생각대로 참으로 고지식한 장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이 오칠의 마음을 좀 더 너그럽게 만들었다.

 

“됐어. 안을 살피고 싶으면 살펴봐.”

 

오칠은 벌떡 일어나서는 매 자매와 함께 마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교위가 마차 안을 꼼꼼히 살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호패(신분 증명서)와 노인(여행 증명서)을 보여주시오.”

 

마차에서 나온 교위의 말에 경대광의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져버렸다.

 

“여기 위병들이 날 알고 있는데 무슨 호패가 필요하단 말이오!”

 

경대광의 손가락이 자신들을 향하자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위병들의 얼굴이 더욱 크게 찌푸려졌다.

 

그들은 무력으로나 금력으로나 대단한 힘을 가진 천목보의 총관을 건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고 있었다. 또한 이 일로 자신들의 명줄이 끊길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상관을 제지할 수도 없는 것이, 그들 상관의 고집은 그들로서는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황성에서 근위병을 지휘하는 영군도위(領軍都尉)였을 정도로 무예가 출중했지만, 타협을 모르는 그 성정 때문에 이곳 무한의 성문교위로까지 좌천되었을 정도이니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겠는가.

 

만약 그의 양부가 종오(五)품 각사원외랑(各司員外郞)이 아니었다면 진작 파직되었거나, 목이 잘리고 말았을 것이 분명했다.

 

“규정이요.”

 

성문교위는 앞으로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고, 경대광은 어쩔 수 없이 품에서 호패와 노인을 꺼내주어야 했다.

 

“호패를 보여주시오.”

 

매 자매와 뒤에 있는 열 명의 무사들까지 모두 확인한 교위는 마지막으로 오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집에 두고 왔어.”

 

오칠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에게는 호패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 자명했다.

 

“호패를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것을 모르시오?”

 

“알지만, 옷을 갈아입다가 깜빡했지.”

 

“이분의 신분은 내가 보장하겠소. 만약 일이 생길 시에는 내게 따지면 될 일이 아니오?”

 

경대광이 포박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교위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교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런 경대광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하지만 이제부터 호패를 꼭 지니고 다니시오. 그리고 개문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성문에 접근하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것임을 잘 명심해두시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의 그 무례한 행동도 잊지 않을 것이오.”

 

경대광은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라는 눈빛으로 교위를 노려봤다.

 

하지만 역시나 교위는 그런 눈빛에 끔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 반 시진은 더 있어야 개문하니, 마차를 뒤로 빼서 기다리시오.”

 

“대단하신 교위의 이름은 어찌 되시오?”

 

경대광이 차갑게 소리쳐 물었다.

 

“북성문교위(北城門校尉) 노백이오.”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자신의 이름을 밝힌 성문교위 노백은 불안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위병들을 데리고 성문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그는 이러한 경우에 매우 익숙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당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무례한 행동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경대광은 오칠에게 머리를 숙이며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오칠은 고개를 저었다.

 

“저자는 건들지 마.”

 

“예?”

 

“저 사내는 직무에 충실한 것뿐이잖아. 저런 자 하나쯤은 있어야 나라가 잘 돌아가지.”

 

왠지 전혀 그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경대광은 두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 호패나 하나 만들어줘. 혹시 모르니까 노인도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그럼 난 성문이 열릴 때까지 잠이나 자야겠다.”

 

오칠은 매 자매와 안으로 들어갔고, 경대광은 노백이 사라진 성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부석에 올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루 동안의 강행군에 그도 매우 지친 상태였으니, 휴식을 취하려는 것이었다. 성문교위의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어쩌면 그가 매우 지쳐 있어 신경이 예민해진 탓일지 모른다.

 

어쨌든, 마차는 그렇게 성문이 열릴 때까지 정지했다가 반 시진 뒤 무한 성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