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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7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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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76화

파계 4권 - 1화

 

 

 

 

 

제34장. 광명우사(光明右使)를 얻고 귀환하다

 

 

 

 

 

좌우로 각기 두 개씩 지펴져 있는 횃불의 흐릿한 일렁임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백여 명의 사람들 머리 위를 부드럽게 비추며 침묵을 감고 돌았다.

 

고요함.

 

오칠의 짜증스런 물음이 던져지고도 장내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야?”

 

오칠은 다시 물었다.

 

목소리 가득 힘을 담아 자신의 기분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신(臣) 광명우사(光明右使) 화웅섭, 방 내에 있는 모든 일족을 이끌고 교주님께 복종하고자 왔사옵니다.”

 

화웅섭은 고개를 들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교주?’

 

매 자매는 오칠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그녀들은 오칠의 진정한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경 보주가 그의 가신임을 자처한다는 것만으로 범상치 않은 과거와 신분을 갖고 있으리라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교주라니!

 

오칠은 어떤 종교의 수장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광명우사라는 말은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어디선가…….

 

‘마교?’

 

생각이 그에 이르자 매 자매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들어가 있어.”

 

오칠은 품에 안겨 있는 매 자매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는 그런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자시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들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해결할 생각으로 방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물론 따로 말을 하지 않더라도 뒤쪽에 시립하고 있는 경대광이 매 자매가 도망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오칠은 더 이상 그녀들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넌 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칠은 싸늘한 시선으로 화 방주를 쳐다보았다.

 

“소신의 불경을 용서해주십시오.”

 

화 방주는 고개를 조아리며 이마로 땅을 쿵쿵 찍었다.

 

뒤에 있는 이백여 명도 그를 따라 머리를 조아리고, 똑같이 이마로 땅을 찍으며 용서해 달라고 입을 모아 소리쳤다.

 

‘빌어먹을.’

 

도대체 지난 오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화 방주는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거동도 불편한 몸으로 저리 머리를 땅에 찍어대는 걸까.

 

“불경을 저지른 죄는 목숨으로 사죄하겠습니다. 부디 저희 일족을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오칠이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자, 화 방주는 고개를 들어 오칠을 올려다보며 간절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도대체 뭐야?’

 

화 방주의 얼굴에 거짓은 없었다.

 

진정 교주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무엇이 화 방주의 생각을 바꾸어놓은 것일까?

 

‘나의 오만을 꿰뚫어보신 저분이야말로 교주님이시다.’

 

화 방주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칠과의 격돌 뒤에 정신을 잃었다가 다음날 깨어난 화 방주는 그때부터 오칠이 그에게 했던 말들을 마음으로 되뇌어보았다.

 

‘넌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네가 가진 명예와 힘을 빼앗길 것이 두려운 거야.’

 

 

 

 

 

내가 두려워한 걸까?

 

 

 

 

 

‘넌 강한 힘에 굴복당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네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조종당하는 것이 두렵겠지. 지금껏 쌓아올린 너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운 거야.’

 

 

 

 

 

나의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한 걸까?

 

 

 

 

 

‘너의 가문은 이백 년 전에도 그 지위에 앉아 있었고, 배화교가 산산이 흩어져버린 이백 년 동안에도 여전히 그 지위에 앉아 있어. 그건 네 가문의 명예이고, 전통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이름만 다른 욕망일 뿐이야.’

 

 

 

 

 

나와 가문은 명예와 전통에 얽매여서 즐기고 있었던가?

 

 

 

 

 

‘그런 특권을 가진 자신의 지위는 인정하면서도 날 인정하지는 않겠다고? 이백 년 전에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교주의 욕심으로 생겨난 거란 말이냐?’

 

 

 

 

 

교주의 욕심 때문이었다.

 

과거의 참혹한 역사는 분명 교주의 욕심이 불러온 결과였다.

 

 

 

 

 

‘광명우사는 종이 아니다. 광명우사는 교주의 조언자이며, 실행자이고, 친우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과거의 모든 것들을 교주 혼자만의 의지라고 말하는 거냐? 지금도 변함없이 지위를 유지하고,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내세우는 네가 감히 교주를 탐욕자라 욕을 하고 있는 것이냐!’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이 나의 착각일까?

 

나는 일족의 치욕을, 이백여 년 동안 나타나지 않은 교주에게 뒤집어씌우고 싶었던 걸까?

 

화 방주는 고민하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가 들어왔던 과거의 모든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교주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거의 잊혀버린 경전(經典:아베스타)의 내용 중 유일하게 남은 기도문 하나를 떠올렸다.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데도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말해야만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

 

행해야만 하는데도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생각한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한 것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행한 것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소서.

 

 

 

 

 

욕망과 절제에 대한 자기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도문이었다.

 

그리고 화 방주는 오칠이 말했던 스펜타 마이뉴와 앙그라 마이뉴의 대화를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그들의 대화는 무엇이 옳고 나쁜가에 대한 규정을 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이고, 인간의 존재 가치가 다르게 여겨질 수 있다는 진리의 문제였다.

 

 

 

 

 

‘난 탐욕스런 사람이다. 나는 욕망을 감추지도 않는다. 난 내가 하고자 하면 망설이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을 무너트리고, 수만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해도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오칠의 말은 세상에서 지탄받을 수밖에 없는 악의에 찬 열변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만을 보고, 자신만의 기쁨을 얻고, 자신만의 행복을 꿈꾸는, 가장 자신만의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화 방주는 그런 오칠의 가치를 공유할 수 없었다.

 

아마 남은 평생 동안에도 그런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 그 며칠 동안의 고민과 생각 속에서 무엇보다 분명해진 것은 오칠의 존재였다.

 

‘무엇보다 분명한 신념이,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탐욕일지라도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진실 된 모습이야말로 절대자의 요건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교주일수밖에 없는 오칠의 가치였다.

 

자신의 진실 된 모습을 끄집어내어, 상대의 숨겨진 진실을 꿰뚫어보는 절대자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화 방주 자신은 광명우사로서, 신하된 자로서의 가치를 추구해야만,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바탕으로 오칠을 보필할 수 있어야만 스스로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존재 가치의 확립.

 

바로 그것이 화 방주의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오칠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이유인 것이다.

 

“하찮은 이 목숨을 받으시고, 저희 일족에게 충성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충성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충성을 허락해주시옵소서!”

 

화 방주의 음성과 그 이하 이백여 명의 열성적인 외침은, 듣기 좋은 울림으로 마당 전체를 공명시켰다.

 

그러나 오칠의 얼굴은 더욱 차갑게 굳어갔다.

 

‘어이가 없군.’

 

이런 사태가 일어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정확히 어떤 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행동과 말들 중에서 화 방주를 감복시킨 무엇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황당했다.

 

‘이미 늦었으니 꺼져버리라고 할까?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번복하지 않는다고 소리칠까?’

 

오칠은 잠시 그렇게 해버릴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마치 광신도를 보는 듯한 외침으로 볼 때, 이들을 모두 죽이기 전에는 내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들은 보이는 그대로 광신도였다.

 

겉으로 드러나면 일족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종교를 이백여 년 동안이나 신봉하고 있었고,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을 선보였다는 것을 증거로 전대 교주의 전인을 자처하는 인물에게 충성한다느니, 복종한다느니 하는 사람들이 광신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여지기 전에는 절대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오칠은 이들 광명우사의 일족을 받아들이면서 생기게 되는 이득을 생각하기로 했다.

 

더구나 무한으로 돌아가 오칠이 하고자 하는 일엔 단철방 같은 그럴 듯한 무리의 가세가 더욱 큰 보탬이 될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있어서 나쁠 것도 없었다.

 

“한 번은 용서해주지. 광명우사는 우선 몸을 회복하는 데에 힘쓰고 다시 날 찾아와라.”

 

오칠은 그 말만을 하고 몸을 돌렸다.

 

경 보주 때처럼 용서고 처벌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등등의 의미 없는 대화를 또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주 만세, 교주 재림 만만세 등등의 외침을 뒤로하고 오칠은 얼른 방으로 돌아왔다.

 

“안 도망갔네?”

 

오칠은 방에 들어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매 자매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저희가 도망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매적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매청화는 담담한 시선으로 오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누구인 줄 알게 되었는데, 두렵지 않은가?”

 

오칠은 그녀들의 옆을 지나쳐가며 말했다.

 

매적화는 침상에 누우며 묘한 시선을 보내는 오칠을 마주쳐다보았다.

 

“솔직히 당황했지만, 두렵지는 않습니다.”

 

“두렵지 않다라…….”

 

오칠은 상체를 일으키며 웃음을 지었다.

 

하나, 그 웃음을 마주 대하는 매 자매의 몸은 절로 경직되었다. 뭔가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그녀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칠에게서 전해져오는 그 두려움의 정체는 보다 직접적인 힘으로 나타났다.

 

우우웅―

 

“아!”

 

“아!”

 

순간, 매 자매의 신형이 앉아 있는 채로 오칠이 내민 손을 향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격공섭물(隔空攝物)!’

 

매청화는 지금 언니와 자신의 몸을 끌어당기는 무형의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경악했다.

 

그리고 어느새 오칠의 양손에 목을 틀어 잡힌 채로 눈앞을 가득 채우는 붉은빛에 저도 모르게 떨기 시작했다.

 

붉은 눈, 붉은빛, 그리고 붉은 살기.

 

오칠의 눈동자는 그 모든 걸 보여주고 있었다. 웃음을 짓고는 있지만 더할 수 없이 사악한 미소는 순식간에 두 자매의 가슴을 진탕시키고, 용기를 빼앗아갔다.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가 본데, 마교 교주는 꽤나 두렵고 살벌한 사람이야.”

 

그 두렵고 살벌한 마교 교주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매 자매는 자신들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들의 목을 틀어잡고 있는 오칠의 손에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순식간에 목이 부러지고 말 것임을 잘 알기에 그 두려움은 더욱 큰 것이었다.

 

“전설은 말이야, 그 내용에 진실이 있기에 전설이 되는 거야. 그리고 비밀이 많을수록 더욱 신비롭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점점 음산해지는 듯한 오칠의 음성이 심장을 옥죄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일었지만, 금방이라도 목이 부러질 것 같은 절망감이 그녀들의 머릿속을 뒤흔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없지?”

 

“무슨 말이 듣고 싶으신가요?”

 

매적화가 저도 모르게 떨리는 음성을 가다듬으려 애쓰면서 말했다.

 

오칠은 그런 매적화를 빤히 바라보다 붉게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돌려 매청화를 쳐다봤다. 그리고 물었다.

 

“이대로 죽일 수도 있어.”

 

“죽이고 싶으면 죽이세요.”

 

매청화 특유의 퉁명스런 말이었다.

 

분명 그녀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애써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