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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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75화
파계 3권 - 25화
퍼펑! 퍼퍼펑!
울컥!
“헉… 헉… 헉……!”
또다시 핏물을 뱉어낸 화 방주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던 의복은 이미 걸레처럼 형체를 잃어버렸고, 그 안으로 보이는 찢겨진 상처는 냉수에 담겨진 고기처럼 파랗게 변색된 상태였다.
“이래도 날 인정할 수 없어?”
오칠은 얼굴에 비웃음을 담고 물었다.
화 방주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고통 때문이 아닌, 분노 때문이었다.
“진정한 배화교인은 힘을 숭배하지 않소!”
“그래? 하지만 지금껏 무림에 알려진 배화교는 네 말과는 다른데? 마교. 이런 말 들어봤지? 무림이 배화교를 어느 정도 외곡했다고는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맞소. 이백 년 전, 배화교는 마교란 이름으로 불렸소. 하지만 그건 배화교가 힘을 숭배했기 때문이 아니오. 교를 이끈 자의 욕심이 배화교를 마교라 불리게 만든 것이오. 난 또다시 그런 자를 교주로 섬기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소!”
“투쟁은 배화교의 교리야. 생존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생존? 과거의 배화교가 그저 생존을 위해서만 싸운 것이란 말이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였다면 정사 무림과 그런 전쟁을 일으킬 필요도 없었소. 지금 우리를 보시오. 밖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 우리는 여전히 배화교의 교인들이고, 그 믿음도 변함이 없소.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데 아무 걱정도 없소. 우리의 일을 하고, 우리의 믿음을 지켜나가면 그뿐인 것을, 세상을 향해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싶어 한 역대의 교주들은 평범한 안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교인들을 희생시킨 것이란 말이오!”
“생각이 많군.”
“……?”
“겁쟁이의 변명이야.”
“……!”
“괜히 과거를 들먹일 필요 없어. 넌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네가 가진 명예와 힘을 빼앗길 것이 두려운 거야.”
“그게 무슨 말이오!”
“넌 강한 힘에 굴복당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네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조종당하는 것이 두렵겠지. 지금껏 쌓아올린 너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운 거야.”
“나를 모욕하지 마시오!”
“모욕? 하하하! 정말 웃기는 일이군! 넌 배화교의 광명우사임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너의 가문은 이백 년 전에도 그 지위에 앉아 있었고, 배화교가 산산이 흩어져버린 이백 년 동안에도 여전히 그 지위에 앉아 있어. 그건 네 가문의 명예이고, 전통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이름만 다른 욕망일 뿐이야. 한데, 그런 특권을 가진 자신의 지위는 인정하면서도 날 인정하지는 않겠다고? 이백 년 전에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교주의 욕심으로 생겨난 거란 말이냐? 넌 착각하고 있어. 광명우사는 종이 아니다. 광명우사는 교주의 조언자이며, 실행자이고, 친우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과거의 모든 것들을 교주 혼자만의 의지라고 말하는 거냐? 지금도 변함없이 지위를 유지하고,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내세우는 네가 감히 교주를 탐욕자라 욕을 하고 있는 것이냐!”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오칠의 전신은 기이한 열기에 휩싸여갔다.
붉고 푸른빛이 부풀어 오르는 옷깃을 따라 일렁이고, 뒤로 묶어놓은 머리칼은 가늘게 흐트러지며 하늘로 곤두섰다.
“처… 천마신공!”
화 방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두려움이 갑작스럽게 그의 가슴을 저며 오기 시작했다. 그러한 감정의 폭풍은 화 방주를 당혹시켰고, 그의 이성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이를 악물었지만 그의 신형이 잘게 떨리고, 심장의 두근거림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거칠고 격렬했다.
“난 배화교의 교주다! 하지만 난 네가 원하는 교주가 아니다! 난 네가 섬겨야 할 지존이며, 너의 삶을 결정하는 절대자란 말이다―!”
우우우웅―!
천마야소(天魔野嘯)의 엄청난 음공이 공간을 진동시키며 화 방주의 전신을 떨어 울렸다.
“크윽!”
화 방주는 뒤로 물러났다.
아니,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난 것이다. 그의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압력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으아~!”
화 방주는 온몸 가득 힘을 주고 두 팔을 번쩍 쳐들었다.
단전의 내공을 모두 끌어올리고, 열화혼원기를 극성으로 운용했다.
화르르르!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했다.
너무도 강한 열기 때문에 화 방주가 서 있는 바닥이 시커멓게 변색되고, 주변에 놓여 있던 철 공구들은 붉게 달아올라 구부러지며, 담금질에 쓰이는 물은 벌써 수증기가 되어 천장에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발악해봐라! 그만큼 바닥에 짓눌러주마!”
오칠은 흉포한 웃음을 터트리며 화 방주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바닥이 갈라지고, 일그러졌다. 전신에서 뿜어지고 있는 내공의 폭발적인 바람에 망치, 모루 등의 쇠붙이들이 좌우로 날아갔다.
“당신이 교주가 될 수 없게 막겠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고 말겠소!”
화 방주는 오칠을 향해 마주 걸어가며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천마야소의 수법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오칠의 웃음소리에 묻혀 허망하게 바닥으로 쓸려나갔다.
하지만 화 방주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막고 말겠다고, 오칠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다시는 배화교가 마교라 불리지 않게 하겠다고, 그의 가슴 가득 번져가고 있는 두려움을 꾹꾹 내리누르며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막아라! 나의 욕망을 막아라! 너의 온 힘을 다해 막아봐―!”
오칠의 묵철곤이 번쩍 들려졌다.
태산이 들리는 듯 육중한 힘이었고, 불꽃에 휩싸인 화 방주를 향해 내리칠 때는 하늘이 주저앉는 것처럼 압도적이었다.
화르르!
화 방주는 열화혼원기의 모든 기운을 도에 담아 정면으로 떨어지는 묵철곤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화려함도, 정교함도, 변칙도 없이 순수하게 내리치고 올려치는 두 개의 무기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충돌했다.
꽝!
소리를 잠식하는 공간의 진동음이 주변을 휩쓸었다.
화덕이 무너지고, 집기들은 쪼개져 밀려났다. 화덕에서 빠져나와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하던 불꽃마저 잠식되며 충돌의 여파 속에서 주변은 고요 속에 잠겨 들어갔다.
“…….”
오칠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 장 앞에선 화 방주가 도를 하늘로 들고 있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오칠의 묵철곤을 막았던 그 순간에 그의 시간은 정지해버린 걸까?
주룩.
화 방주의 입가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빠직.
순간, 화 방주의 손에 들린 도의 끝에서 작은 실금이 생겨났다. 그 작은 실금은 점점 길게 이어져 나무줄기처럼 도신 전체로 퍼져나갔다.
와지지지직!
작은 실금으로부터 시작된 균열은 너무도 단단했던 도를 일순간에 수백 개의 조각으로 만들었고, 그것들은 화 방주의 발아래로 떨어져 산산이 흩어졌다.
털썩.
앞가슴을 온통 자신이 흘린 핏물로 점철한 화 방주는 더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고 소리쳤지만, 몸은 그의 의지를 따를 수 없는 상태였다.
뚜벅뚜벅.
오칠은 화 방주의 지척에 다가와 섰다.
완전히 쓰러지지 않은 화 방주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와 멈춘 오칠의 발을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 오칠을 노려봐주고 싶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급스런 가죽신이 신겨진 오칠의 발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주… 죽이시오.”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화 방주는 간신히 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오칠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발치 아래 주저앉아 있는 화 방주의 뒤통수만 쳐다봤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오칠은 지금의 상황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의 패도적인 모습을 보였으니 화 방주는 자신이 교주임을 더욱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가문들도 그런 화 방주를 본받아 오칠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뭔가 좀 부족하군.’
오칠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앙그라 마이뉴가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후라 마즈다께서는 어째서 인간에게 욕심을 가르쳐준 것일까? 라고.”
화 방주는 오칠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대꾸할 힘도 없었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스펜타 마이뉴가 말했다. 아후라 마즈다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었다, 라고. 앙그라 마이뉴는 의아하여 되물었다. 영원한 생명? 그 물음에 스펜타 마이뉴는 웃으며 말했다. 태초에 에덴에 있던 인간들은 다른 동물들과 함께 무의미하게 살아가던 지성 없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후라 마즈다님이 지혜의 사과를 먹게 해 스스로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지. 인간들은 의지를 전승하고 자신이 살아간 흔적을 남김으로써 육체가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는 삶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라고. 그 말을 듣고 앙그라 마이뉴는 다시 의아하여 물었다. 인간이 죄악의 사과를 먹고 알게 된 것은 욕심과 수치심뿐이지 않았는가? 라고. 하지만 스펜타 마이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후라 마즈다께서는 욕심으로 생겨난 수치심이야말로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최고의 원동력이라고 말이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화 방주의 머리 위로 오칠은 잔뜩 오만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난 탐욕스런 사람이다. 나는 욕망을 감추지도 않는다. 난 내가 하고자 하면 망설이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을 무너트리고, 수만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해도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오칠은 가만히 화 방주를 내려다봤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
오칠은 칠 대 교주의 기억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말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이 이상 패도적이고,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인물을 연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이제 물러날 때가 되었다는 걸 감지하고 마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너는 내 손을 더럽힐 가치도 없으니, 그 하찮은 목숨은 살려두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겁쟁이로 살아라. 다른 가문들도 필요 없다. 난 나를 경배하는 자만을 받아들일 뿐, 그렇지 않은 자들은 내게 벌레 같은 존재들일 뿐이다.”
오칠은 뒤돌아섰다.
그리고 묵직한 걸음으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내부를 가로질러 연철각의 정문에 이르렀다.
쿠쿠쿠.
묵직한 철문이 열리고, 밖에서 잔뜩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외부인들의 접근은 완전히 차단했는지 주변엔 매 자매 등과 연철각의 장인들, 그리고 몇 명의 단철방의 인물들로 추정되는 자들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단철방의 사람들은 특히나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오칠은 그들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경대광만을 보며 말했다.
“쉬어야겠다. 숙소로 안내해.”
“화 방주는 어찌 되었습니까?”
경대광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죽지는 않았어.”
오칠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그리고 걱정스런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매 자매를 품에 안고서 처음 연철각으로 안내했던 사내의 뒤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웅성웅성.
오칠이 사라진 연철각은 혼란과 소란스러움만이 가득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경대광은 그런 소란 속에 남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화 방주의 상태도 살펴야 하고,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단철방의 배화교인들에게도 설명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로 인해 경대광은 적지 않은 곤욕을 치러야 할 것이 분명했다.
* * *
오칠은 길게 기댈 수 있는 의자에 매청화의 무릎을 베게 삼아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워 있는 그의 손에는 경 보주가 인편으로 보낸 서신이 들려 있었다. 서신은 한 장에 불과했고, 내용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칠에게는 꽤나 중요한 내용들이었다.
‘목운교…….’
서신의 내용은 오칠이 만나고자 하는 목운교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적혀 있었다. 보다 세부적인 사항은 무한 성내로 돌아가면 경 보주에게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지금 그 서신으로 인해 하나의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오칠님.”
매적화가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 화 방주님께서 와 계십니다.”
“어?”
오칠은 의아한 시선으로 매적화를 쳐다봤다.
지금은 화 방주와 연철각에서 싸우고 나서 오 일이나 지난 시점이다. 그리고 오칠이 알기로 큰 부상을 입은 화 방주는 그의 거처에서 치료에 힘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늦은 밤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아직 거동하기도 힘들 그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부상 때문이 아니라도, 화 방주와의 관계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오칠이었다.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여서 자존심을 깨부쉈고, 패도적인 교주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화 방주가 자신에게 완전히 마음이 돌아섰을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여길 떠나라고 직접 말하려는 건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이 들자 오칠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얼른 해결을 보고 무한으로 돌아갈 생각인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덜컹.
오칠은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단철방을 돌아다닐 때마다 그랬듯 매 자매를 품에 안고서, 느긋하게 횃불에 밝혀진 긴 복도를 지나 넓은 마당으로 가는 긴 주랑(柱廊:기둥만 있고 벽(壁)이 없는 복도)을 걸어갔다. 오만함과 가슴에서 생겨나는 만족스러움을 그대로 얼굴에 담고서 말이다.
“……!”
하지만 주랑의 끝, 마당으로 들어서는 곳 바로 앞에서 오칠은 석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넓은 마당 가득, 이백은 족히 넘을 듯한 사람들이 엎드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가장 앞에는 척 보아도 심한 부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화 방주가 다른 사람들처럼 엎드려 있었다.
당연히 오칠은 뭔가 원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다음 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