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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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74화
파계 3권 - 24화
제33장. 지존(至尊)은 탐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철곤은… 만년묵철(萬年墨鐵)로 만든 것이오?”
무거운 침묵을 깨고서 화 방주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뭔가 터질 듯한 분위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오칠은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나도 몰라. 하지만 아주 단단한 철이긴 하지. 예전에는 내 발목을 속박하고 있던 것이지만… 지금은 내 무기야.”
화 방주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만년묵철은 아무나 다룰 수 없는 철이오.”
“하지만 난 가능했지.”
오칠은 매 자매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허리에서 묵철곤을 꺼내들었다.
“이걸로 맞으면 무지 아플 텐데. 어때, 한번 맞아볼래?”
묘했던 분위기가 다시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화 방주의 반들거리는 이마에 불끈불끈 핏대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말은 않고 있지만, 그가 매우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다.
“눈이 많소.”
화 방주의 말에 경대광 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철방에 속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단철방에 일이 있어 방문한 사람들까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오.”
화 방주는 그 말만을 남기고 수증기의 뿌연 안개에 잠겨 있는 연철각 안쪽으로 사라졌다.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가?”
오칠은 고개를 돌려 경대광을 쳐다봤다.
경대광은 그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들어가서 화 방주님과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오칠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직접 해결하지. 모두 여기서 기다려.”
오칠은 망설임 없이 연철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조금 뒤, 수십 명의 장인들이 황급히 밖으로 나왔고, 곧바로 철문이 굳게 닫혔다.
* * *
장인들까지 모두 밖으로 나가버린 연철각 내부를 오칠은 산책하듯이 거닐고 있었다.
‘한령빙음공이 아니라면 정말 몸이 녹아내리고 말겠군.’
내부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엄청난 불길이 일고 있는 화덕이 수십 개나 있었고, 쇠를 담금질하는 데 쓰이는 물과 그로 인해 생겨난 수증기가 높은 천장 위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말 그대로 단철방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극양의 내공심법을 수련하는 광명우사의 가문이 아니라면 만들어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부를 오칠은 백팔 가문의 무공 중 하나인 한령빙음공의 차가운 공력을 일으키면서 걷고 있는 것이다.
따당. 따당. 따당. 따당.
마치 금(琴)을 연주하듯이 맑고도 힘 있는 타격음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오칠은 쇠를 두드리는 것이 분명한 망치질 소리를 따라 걷고 있었다.
“…….”
어느 순간, 오칠의 걸음이 멈췄다.
모든 장인들이 밖으로 나가버린 내부는 그저 열기만이 가득할 뿐 인적 없이 공허했지만, 지금 오칠의 오 장 앞은 예외였다.
그곳엔 화 방주가 커다란 망치를 들고서 모루 위에 올려놓은 길쭉하고도 두꺼운 쇠를 내리치고 있는 중이었다.
도(刀).
아직 모양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 도였다.
그리고 화 방주가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보다 선명한 모양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따당. 따당.
화덕에 들어갔다가 나온 쇠에 망치가 내리쳐지고.
치익.
식어가는 쇠는 물에 담궈져 완전히 열을 빼앗긴 채 화덕에 들어갔다가, 또다시 그 위로 망치질이 이어졌다. 그리고 풀무질을 하여 화덕의 열기를 높이고, 다시 쇠를 화덕에 넣고 담금질을 하는 작업들이 반복해서 이어졌다.
실상 그러한 모든 작업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화 방주는 그걸 하고 있었다. 정확하고도 빠른 동작으로, 하나하나 마무리하며 혼자서 하나의 도를 완성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작업을 오칠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대단하군.’
오칠은 진정 감탄하고 있었다.
화 방주는 말 그대로 경지에 오른 장인의 모습이었다. 극에 이른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연스러움으로, 한 치의 실수나 망설임도 없이 쇠를 다루고 있었다.
따당.
어느 순간, 쇠를 내리치는 손길이 정지했다.
치익―
기포를 일으키며 물이 끓고, 뿌연 수증기가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하나의 도가 화 방주의 손에 잡혀, 화덕에서 뿜어지는 붉은 불길에 비춰지며 높이 들어올려졌다.
도신은 아직 매끄럽지 못하고 투박했다. 거의 완성에 이른 것이긴 했지만, 숫돌로 날을 갈고 닦아야 하며 손잡이는 가죽 끈으로 감아야 비로소 사용하기 좋은 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 방주는 더 이상 완벽해질 수 없다는 시선으로 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녀석을 만드는 데 두 달이 소요됐소.”
화 방주는 들어올린 도를 아래로 내리며 오칠을 향해 내밀었다.
정확히는 도의 끝으로 오칠의 심장을 겨눈 것이다. 그러나 오칠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화 방주의 시선을 따라 도의 끝을 쳐다보았다.
“그걸로 날 찌르고 싶은가?”
“도는 베는 데 사용하는 무기요.”
“그렇다고 찌르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맞는 말이오. 무기들은 각기 특성을 갖고 있지만, 사용하고자 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쓸 수가 있소.”
“다시 묻지. 나를 시험해보고 싶은가?”
“…….”
“지금 당장 내가 진정한 배화교의 교주인지, 거짓 없는 칠 대 교주의 전인인지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닌가?”
화 방주는 고개를 저었다.
“경 보주가 이미 확인했으니, 당신이 전인인지에 대해 또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소. 그는 나보다 철저하고, 주도면밀한 사람이니까.”
“그럼 당신의 지금 태도를 어찌 생각해야 하지?”
오칠의 담담한 물음에 화 방주는 무표정으로 손에 쥔 도를 흔들었다.
“자신이 만든 도가 잘 만들어졌는지 확인해보고자 하는 대장장이의 열망이라고 생각하시오.”
“크크크!”
오칠은 웃었다.
듣기 좋은 웃음은 아니었지만, 웃고 있었다.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화덕의 불길 속에 일렁이는 오칠의 얼굴은 아름다움과 기괴함을 동시에 내뿜고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웃고 있는 것이다.
“생긴 것 같지 않게 말을 잘하네.”
갑자기 얼굴에 그려진 웃음을 지워버린 오칠이 말했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묵철곤을 들어올려 화 방주가 내밀고 있는 도의 끝을 향해 마주 내밀었다.
“하지만 건방져.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 네가 누구인지 잊어버린 건가? 아니면 나를 무시하겠다는 건가?”
오칠의 얼굴엔 음성을 통해 뿜어지는 것만큼이나 흉포한 분노가 그려지고 있었다.
“광명우사는 나의 오른팔이 되어야 할 자다! 그러데 감히 내게 칼을 겨눠! 알려주지! 내가 누구인지, 너는 어떻게 나를 대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겠어!”
순간, 오칠의 전신에서 차가운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주변이 온통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는데도 오칠의 전신을 시작으로 그 주변엔 하얀 서리가 생겨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급작스럽게 공기를 냉각시켰다.
“역시 한령빙음공이었어!”
화 방주는 크게 소리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전신에서 화마와 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화 방주는 이백여 년 전, 최고의 열양기공이라 불리던 열화혼원기의 공력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오칠이 운용한 한령빙음공은 열화혼원기의 상극이라 불리는 최고의 한빙기공이었다.
“어때, 붙어볼 만하지?”
오칠은 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묵철곤을 내리쳤다.
그러자 묵철곤으로부터 뿜어진 차가운 기운이 공간을 격하고 화 방주를 향해 날아갔다.
빠지지직―
마치 개울 위로 내려앉는 겨울 한파처럼 바닥을 얼리면서 뻗어나간 한령빙음공의 냉기는 순식간에 화 방주의 지척으로 들이닥쳤다.
“하압!”
하지만 힘찬 기합과 함께 화 방주의 도가 내리쳐지고, 도극에서 뿜어져 나간 열기가 날아오는 냉기를 녹여버리며 역으로 오칠에게 뻗어나갔다.
화아아아~
열화혼원기의 기운은 한령빙음공처럼 한곳에 집중되는 공력이 아니었다. 일순간에 주변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오칠의 전신을 뒤덮을 강력한 불꽃까지 일으켰다.
촤아악―
하지만 오칠의 전신을 단번에 뒤덮어버릴 것 같은 불꽃이 순간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틈새로 오칠의 신형이 빠져나오며 화 방주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과광―
냉기가 응축된 묵철곤과 열기에 가득 찬 도가 충돌하며 공간을 떨어 울렸다.
사방으로 투명한 얼음조각이 날아가고, 작은 불꽃이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바닥을 휘돌았다.
울컥.
다시 공중으로 솟구쳐 가볍게 땅에 내려선 오칠과 달리, 단단한 돌바닥을 움푹움푹 주저앉히며 뒤로 밀려난 화 방주는 한 움큼의 핏물을 뱉어냈다.
하지만 뒤로 밀려났다는 충격보다는, 오칠이 사용한 무공에 화 방주는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대력경혼십절도(大力驚魂十絶刀)로…….”
오칠이 그의 성명절기를 알고 있고, 펼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경 보주로부터 오칠이 모든 가문의 무공들을 섭렵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는 것과, 그래서 더욱 교주가 확실하다는 주장을 서신으로 접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칠은 한령빙음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배화교 백팔 가문은 각기 독특한 특징의 심법을 가지고 있는 만큼, 무공 역시도 그에 적합하고 최고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청살진기(靑殺眞氣)엔 천붕십이절(天鵬十二絶)이, 섭혼요마신공(攝魂妖魔神功)엔 월하요무편(月下耀舞鞭)이, 그리고 열화혼원기(熱火混元氣)엔 대력경혼십절도(大力驚魂十絶刀)가 신공의 위력을 더욱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것처럼, 한령빙음공(寒靈氷陰功)은 수라월강도법(修羅月剛刀法)이라는 가장 적합한 무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칠은 전혀 반대의 성향을 가진 한령빙음공으로 대력경혼십절도를 펼쳤다. 그리고 화 방주 자신에게 이렇듯 큰 내상을 입힌 것이다.
화 방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지금 그는 불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오칠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 그런 화 방주의 내심을 눈치 챈 오칠은 별일 아니라는 듯 히죽 웃었다.
“나 교주잖아.”
그렇게 화 방주를 조롱하듯 말을 툭 내뱉은 오칠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당신처럼 힘만을 내세우는 자는 교주 자격이 없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오칠을 향해 화 방주는 노한 음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오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철곤을 들었다가 석 장이나 떨어진 화 방주를 향해 내리칠 뿐이었다.
빠찌직. 찌직. 찌지지직―
바닥이 얼어붙고, 공기가 얼어붙으며 비단 찢어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의 끝에 서 있는 화 방주는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고, 손에 쥔 도를 크게 휘두르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펑―
화 방주가 서 있던 곳과 그 주변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신형은 공중으로 솟구쳐 오른 상태, 오칠의 묵철곤은 다시 방향을 틀어 화 방주를 향해 냉기를 뿜어냈다.
화아아―
아래로부터 쏘아져 오는 냉기에 맞서 화 방주의 도가 강력한 불꽃을 토해냈다.
퍼펑―
공간을 진동시키는 충격음과 함께 화 방주의 신형은 천장까지 밀려 올라갔다.
그가 토해낸 강력한 열양지기는 얼음이 되어 산산이 흩어지고, 냉기는 그의 도를 타고 올라 소매까지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화르르르~
화 방주는 냉기로 인해 심맥이 상하지 않도록 재빨리 열화혼원기의 공력을 팔로 보내 불길을 일으키고, 몸을 회전시키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오칠이 기다리고 있었다. 싸늘한 기운이 맺혀 있는 묵철곤을 들고, 너무도 아름다워 사악하게까지 보이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내게 굴복하지 않겠다면 너의 삶은 의미기 없다. 그냥 죽어라!”
오칠은 공간을 냉각시키며 묵철곤을 휘둘렀다.
화 방주는 황급히 도를 휘둘러 막았고, 화덕의 불길에 비춰지며 반짝이는 얼음 알갱이들이 하늘로 흩뿌려졌다. 그러나 묵철곤은 수십 개로 늘어나 또다시 화 방주를 압박해 들어갔다.
찌직. 찌지지지직―
주변이 온통 얼음벽에 휩싸인 듯 묵철곤에서 뿜어지는 냉기에 화 방주의 온몸이 뒤덮여갔다.
퍼펑! 펑!
“크윽!”
연신 뒤로 물러나는 화 방주의 신형은 조금씩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의 단전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열화혼원기의 기운은 오칠이 뿜어내고 있는 한령빙음공에 밀리고 있었다. 상극의 기운이라 해도 그 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