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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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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73화

파계 3권 - 23화

 

 

 

 

 

다음날 아침.

 

객잔 주인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은 오칠 일행은 사시(巳時:오전 9~11시) 초에 단철방이 있는 마성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경대광의 예측대로 정오 무렵, 그리 크지 않은 마성현의 북쪽 산자락 밑에 형성되어 있는 단철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대장간이란 티가 팍팍 나는군.”

 

때는 팔월 중순으로 가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맺히는 날씨였다.

 

하지만 그런 자연스런 열기와는 다른, 뭔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인위적인 기운이 좌우로 길고 높게 만들어진 담장 안쪽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묵직한 충격음, 아마도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쇠를 두드리는 소리일 것이 분명한 둔탁한 충격음이 은은하게 전해져왔다.

 

“오칠님,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 합니다.”

 

단철방 입구에는 마차 두 대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문과 사람 세 명이 나란히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있었다.

 

하지만 큰 문은 안에서 만들어진 무기를 외부로 방출할 때나, 혹은 철광석 등을 실은 마차가 안으로 들어올 때 외에는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사람인 경우에는 작은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꽤나 대단한 곳이군.”

 

오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마차에서 내렸다.

 

아니, 사실 그리 기분 나쁠 것은 없지만, 이제부터 오만하고 패도적인 인물이 되어서 광명우사가 자신을 교주로 인정하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고의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다.

 

굳이 지금부터 연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모든 결과에는 그에 합당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리 와.”

 

오칠은 양팔을 벌리며 매 자매에게 손짓했다.

 

매 자매는 순순히 다가왔고, 오칠은 두 여인의 가는 허리를 감아 바짝 끌어안았다.

 

그런 오칠의 모습은 여색을 밝히고, 풍류나 일삼는 방탕한 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고, 그래서 품에 안긴 매 자매나 경대광, 그리고 뒤에 있는 열 명의 무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매 자매의 시중을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지금처럼 품에 안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객잔에서조차 방을 따로 썼을 정도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각자 다른 이유이기는 했지만 오칠을 믿고 있었고, 오칠의 그 어떤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참으로 괴이하여, 상대의 그 어떤 행동도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편협한 시선을 갖게 하니,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맹목적인 충심이라는 말로 대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매 자매를 끌어안고 있는 오칠을 필두로 작은 문 안쪽으로 들어선 일행을 향해 한 명의 젊은 사내가 다가왔다.

 

“경 총관님이시군요.”

 

오칠을 향해 약간 탐탁지 않은 시선을 던지며 다가서던 젊은 사내는 경대광을 알아보고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경대광을 비롯한 삼형제가 무한에서 유명한 천목보의 총관이고, 그들 모두 팔 년 전에 검을 얻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거니와, 간간이 경 보주의 서신을 들고 단철방을 찾아왔었으니 몰라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사내도 눈앞에 보이는 경대광이 삼형제들 중 정확히 누구인지는 몰랐다.

 

“방주님을 뵙기 위해 찾아왔네.”

 

“방주님은 연철각(鍊鐵閣)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아름답기 그지없는 두 여인을, 보고 있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품에 꼭 안고 있는 오칠의 모습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사내는 의문을 표하지 않고 일행을 안내했다.

 

“연철각이 뭐지?”

 

여인을 안고 있는 자세로 걷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닌데도 오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한 자세를 고집하며 느긋하게 뒤를 따랐다.

 

더구나 그의 걸음 때문에 일행 모두의 걸음이 느려졌고, 그래서 앞장서 길을 인도하는 사내는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고 있을 뿐,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내의 속내 같은 것은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듯 오칠은 주위를 둘러보며 경대광에게 질문까지 하고 있었다.

 

“단철방은 다른 대장간과 달리 철광석을 녹이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쇠의 형태를 잡아가는 여러 공정을 부분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철각은 그중에서도 가장 최종적인 작업을 하는 곳이지요.”

 

경대광에게 물은 것이었지만, 대답은 길을 안내하는 사내에게서 나왔다.

 

그 정도는 경대광도 알고 있을 테지만, 방의 일을 타인이 설명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에 재빨리 대답을 한 것이다.

 

“방주도 일을 하나?”

 

약간의 조롱기가 섞인 물음이었고, 그래서 사내는 기분이 나빴지만 꾹 참아내고 대답했다.

 

“단철방은 실력에 따라 지위를 얻고, 그에 합당한 명예를 가지게 됩니다. 당연히 방주님은 단철방 최고의 장인이시고, 장인은 한시도 철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단철방의 모든 사람은 그 지위 고하를 떠나서 능력에 맞게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실력도 있고, 성실, 근면한 인물이라. 그 누가 그런 사람을 마교의 인물라 생각할까.’

 

오칠은 문득 무림이 그래서 배화교를 두려워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경 보주도 그렇고, 단철방의 방주도 그렇고, 어느 한 방면에서 뛰어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 실력과 노력이 어우러져 성공하고 싶은 인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분명 아직 보지 못한 다른 배화교의 가문들 역시 나름의 부와 명예, 그리고 힘을 갖추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렇듯 잠재된 힘을 가지고 있는 배화교는 기존의 무림인들에게 너무도 강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뿔뿔이 흩어진 지금이 이러한데, 철옹성처럼 합쳐져 있던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노력하는 자, 성실한 자, 뚜렷한 신념을 가진 자들로 가득한 배화교는 너무나 강한 무리였고, 그러한 배화교에 자신들의 모든 것이 뒤덮여버릴까 무림은 짙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칠 대 교주의 기억은 다르지만 말이야.’

 

칠 대 교주의 기억 속의 배화교와 무림의 싸움은 나라와 무림의 실익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래로 관과 무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그저 허울 좋은 이야기일 뿐,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배화교와 같은 종교는 결코 나라에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 만큼 탄압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무림까지 동원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초가 되어 배화교는 마교가 되고, 마교는 무림에 있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배화교는 그러한 무림의 공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 모든 싸움의 전말이고,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외적인 시선에 담긴 내용일 뿐이다.

 

배화교는 너무도 강했고, 그러한 절대적인 강함을 무림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배화교가 마교가 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타앙. 탕. 타앙. 탕. 타앙. 탕.

 

오칠이 잠시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키는 시간 동안 일행은 목적하고 있던 연철각에 도착했다.

 

연철각은 단순하고 투박한 모양새였지만, 지붕 위로 솟구친 십여 개의 굴뚝에서 연신 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매우 커다란 규모의 건물이었다.

 

그리고 연철각의 꽉 닫힌 문 안쪽에서는 다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와 듣기 좋게 두드려대는 망치질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들어가자고.”

 

오칠이 잠시 배화교에 대해 떠올렸던 생각들을 접고서 꽉 닫힌 문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런 오칠의 앞을 사내가 막아섰다.

 

“안 됩니다.”

 

오칠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감히 자신을 막아선 사내의 행동에 크게 노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연기였든 무엇이든 그 눈빛만큼이나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왜?”

 

사내는 갑작스런 오칠의 변화에 꽤나 당황한 듯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칠은 자신의 음성에 내공을 실어 좀 더 위협적인 기운을 발산시키고 있었다. 사내가 드러내지 않고 있는 내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저항한다고 해도 기가 죽을 정도로 강한 내공을, 그것도 은연중에 천마신공의 기운까지 담은 내공을 말이다.

 

‘역시 백팔 가문의 내공심법을 익혔군.’

 

사내가 당황한 것은 오칠의 음성을 통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오칠이 자신의 목소리에 강한 내공을 실었기 때문이 아닌, 사내가 수련한 내공의 근원이며, 상위 심법인 천마신공의 기운을 담았기 때문에 사내는 자연스럽게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칠님, 고정하십시오.”

 

싸늘한 침묵 사이로 경대광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오칠은 전혀 지우지 않은 천마신공의 기운을 눈빛에 담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경대광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이것이 지존의 위엄이라는 것인가?’

 

오칠이 단지 돌아보았을 뿐인데도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는 심리적 충격을 받고 있는 경대광은 너무도 놀란 상태였다.

 

부친에게서 오칠이 누구고, 어떠한 존재이며, 무슨 무공을 익혔을 거라는 등등의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기세를 접하자 상상했던 것 이상의 압박감이 전해져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압도당한 채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오칠님을 염려하여 막아선 것입니다.”

 

“……?”

 

“연철각은 보통 사람은 절대 참아낼 수 없는 고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열기와 수증기만으로도 화상을 입을 정도로 말입니다. 단철방의 장인들도 일양진력(日陽眞力)이라는 양강기공을 익히고 있기에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오칠님을 막은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오칠은 전혀 수긍하지 않고 있다는 듯 기운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그 기세를 강하게 하며 사내가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게 만들 정도의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왜?

 

그 이유는 곧바로 연철각 안에서 들려오는 웅혼한 음성을 통해 밝혀졌다.

 

“어느 놈이냐―!”

 

우우웅!

 

문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나게 큰 고함 소리였다.

 

음성에 실린 기운으로 볼 때 경 보주 못지않은 내공의 고수였고, 그래서 오칠의 얼굴에는 흡족한 표정이 지어졌다.

 

‘한번 싸워보고 싶네.’

 

칠 대 교주의 기억에 광명우사는 열화혼원기(熱火混元氣)라고 하는 극양신공을 익히고 있었다.

 

광명우사의 가문은 오래전부터 그러한 내공의 특성으로 불을 다르고 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로서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칠은 경 보주의 섬세함과는 달리 힘으로 가득 찬 무공을 펼칠 광명우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또 그러한 상대에게 자신은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였다.

 

쾅―

 

돌로 된 손잡이가 달린 묵직한 철문이 둔중한 충격음과 함께 흔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으니, 열리자마자 문의 틈새를 통해 비집고 나오는 후끈한 열기에 경대광을 비롯해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화아아~

 

일순간 하얀 수증기가 극도의 열기를 안고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열린 문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열기는 너무도 뜨거운 것이라, 뒤로 멀찍이 물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얼굴을 빨갛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몇 사람은 예외였다.

 

오칠과 그 품에 안겨 있는 매 자매.

 

그들은 피부를 녹여버릴 듯 뜨거운 수증기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전혀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 석상처럼 우뚝 서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까지도 뜨거운 수증기의 영향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는 듯 멀쩡하기만 했다.

 

아니, 약간 이상한 점은 있었다. 오칠과 매 자매의 주변에는 뭔가 푸르스름한 막과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한령빙음공(寒靈氷陰功)?”

 

아직도 가시지 않은 뿌연 수증기 너머에서 불신에 가득 찬 음성이 들려왔다.

 

굵직하고 우렁우렁한 그 음성은 문이 열리기 전 들려온 고함과 같은 음성이었고, 곧 모습을 드러낸 팔 척 장신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장년의 대머리 사내가 내지른 소리이기도 했다.

 

“넌 누구냐!”

 

호목 같은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사내, 현 단철방의 방주이자 배화교의 광명우사라고 하는 숨겨진 신분을 가진 화웅섭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오칠은 대답도 않고 뒤로 고개를 돌려 경대광을 쳐다봤다.

 

“내가 온다는 걸 모르나?”

 

“이틀 전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경대광의 말에 오칠은 다시 고개를 돌려 화 방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야.”

 

“…….”

 

화 방주는 경대광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의 눈앞에 여자들을 안고 서 있는, 얼굴이 예쁘장한 이 젊은 사내놈이 경 보주가 서신으로 전해왔던 칠 대 교주의 전인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 걸까?

 

그래서 당혹스런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러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침묵하고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다만 오칠과 화 방주 사이에는 너무도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