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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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72화
파계 3권 - 22화
마교와의 싸움 중에 정사가 연합을 하고 있음에도 절대 사파의 인물들과는 어울리지 않았고, 마교가 무너진 후에는 맹의 울타리에 사파와 같이 속하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했다.
그래서 초기에 검룡천화장이 크게 번성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검룡천화장은 철저한 정파문이고, 그래서 더욱 정파인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성향이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파에 대해 매우 호전적이다. 실상 사파문이라 당당히 밝히고 있는 천목보와 무한을 양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괴이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내막을 가만히 살펴보면 확실한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천목보는 상인 연합이고, 검룡천화장의 영역은 물론 호북 전체에 막강한 자금력을 발휘하는 천목보와 싸워서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만약 초대 장주였다면 그러한 여건을 따지지 않고 천목보와 싸움을 했겠지만, 그 후인들은 선대보다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하하! 저는 첫째인 경대광입니다. 손이정 소협의 지적을 받고서야 지금껏 만난 사람들에게 실수를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대광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을 터트리고 감사하다는 말까지 했다.
손이정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사파인들은 상종할 자들이 아니야.’
도발을 했음에도 경대광이 감정을 감추고 있는 것이 그가 사파인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손이정이다.
하지만 그것은 경대광이 사파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사파인으로 손이정 앞에 섰다면, 벌써 탁자가 부서지고 큰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경대광이 웃음으로 감정의 분노를 감출 수 있는 것은 그가 뛰어난 상인이기 때문이다.
상인은 보이지 않게 상대를 공격하고, 그 뒤를 쳐서 쓰러트리는 방법을 쓰지, 정면에서 공격해서 자신도 손해 볼 일은 절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정면에서 싸우는 방법을 택하는 상인이 있다면, 그는 영리한 상인이라 할 수 없고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경대광은 혼자가 아니었다.
부친의 명으로 그들 가문의 주인인 오칠을 보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는 함부로 감정을 끄집어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지금 경대광이 분노를 감추며 웃고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 그러한 감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혹 두 분은 단철방으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손이정이 별로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경대광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소.”
“손이정 소협께선 이미 이 년 전에 이급 장인에게 검을 만드셨으니… 이번엔 손여설 여협께서 만드실 모양이군요. 저는 팔 년 전에 일급 장인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는데, 손여설 여협께서도 그리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검룡천화장에선 스물이 되면 단철방에 의뢰해 검을 만드는 전통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문파들이 그 나이 때에 검을 만들지만, 단철방에서 검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검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대광이 무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검룡천화장의 전통을 거론한 것은 그저 무의미한 대화를 지속시키고자 함이 아니었다.
경대광은 손이정이 약관을 조금 넘은 나이에 불과하며, 손여설도 어리다는 걸 지적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은 그들보다 경험과 나이가 많고, 단철방에서 의뢰인의 능력에 비례하여 장인을 지정해주고 있으며, 손이정은 검을 만들 당시 이급 장인에게서 검을 얻었으니 무공 경지에서도 자신이 두 사람보다 뛰어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을 도발하려면 상대를 봐가며 해야지, 잘못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만.”
수치심과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어져 있는 손이정에게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어주며 경대광은 일행의 자리로 돌아왔다.
“단단히 삐쳐버렸군.”
오칠은 검의 손잡이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손이정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경대광에게 말했다.
하지만 오칠의 그 말이 더욱 손이정의 분노를 크게 한 모양이다. 그가 당장이라도 씹어 먹을 것 같은 얼굴로 오칠을 노려보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칠은 경대광이 그랬듯 환한 미소로 그 살기 어린 눈빛을 맞받아주었다.
“오칠님께 면사를 하나 만들어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옆에 있던 매적화가 오칠의 귓가에 자그맣게 속사였다.
“……?”
오칠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매적화를 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잘나도 피곤하지.”
매적화가 가리킨 곳은 여전히 살기를 뿌리고 있는 손이정의 바로 앞자리였다.
그곳에는 손여설이 오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엔 이전의 경멸하는 듯하기도 하고 화가 난 듯도 하면서 크게 도발하지 않으려는 절제된 감정이 아닌, 순수한 관심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여인이 마음에 드는 사내를 보았을 때나 드러내는 그러한 의미의 감정이 말이다.
“꽤나 당돌하군.”
오칠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매적화나 오칠이 시선을 느끼고 마주보는데도 시선을 돌리지 않는 손여설의 행동만으로도 그녀의 성정을 대충 짐작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혼나본 적이 없고, 극진한 사랑만을 받았겠지.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들면 상황이나 처지를 개의치 않고 표현하고 말이야.’
그렇게 결론을 내린 오칠은 손여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철부지의 시선에 일일이 반응할 이유가 없었기에 관심을 접은 것이다. 하지만 보지 않고도 손여설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랑만 받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거부당하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여기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오칠은 상관없었다.
필요하다면 모를까, 오칠은 지금 손여설 등의 반응 하나하나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냄새 좋은데.”
객잔 주인까지 합세하여 주방에서 가지각색의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오칠 일행은 다른 손님들의 놀란 시선을 뒤로하고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 * *
“오라버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손이정의 방으로 들어온 손여설은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무얼 말이냐?”
검을 닦고 있던 손이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는 객잔 아래층에서 경대광과 만난 이후, 계속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경대광에게 모욕을 받고도 참아야 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천목보와 다툼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참은 것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였다.
“경대광이 단철방에 가는 이유 말이에요.”
“무기를 만들려는 이유밖에 더 있느냐.”
단철방은 대장간이었고,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대광은 이미 무기가 있잖아요.”
“그럼 그 일행이 볼 일이 있겠지.”
손이정은 경대광과 관련한 대화를 더 이상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손여설은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오라버니도 들었지요? 경대광은 그 사내를 윗사람으로 대하고 있었어요. 경대광은 경 보주의 장남에다가 천목보에서 다른 형제들과 같이 총관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인자나 마찬가지인 인물이라고요. 그런 자가 윗사람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더구나 그 사내는 그리 특별한 점도 없었다고요.”
사실 특별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만으로도 손여설이 만났던 그 누구보다 특별했으니까. 하지만 손여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 옷차림이나, 허리에 투박한 쇠몽둥이를 차고 있는 것이나 그리 대단할 것 같지 않은 외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마도 어느 고관의 자제이겠지. 천목보는 상인 연합체다. 경대광은 천목보에서도 행주 이상인 총관의 신분을 가진 자야. 그러니 높은 권력을 가진 고관의 자제를 접대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는 고관의 자제처럼 보이지 않던데요?”
“너 그 사내의 양옆에 앉은 여인들이 누구인 줄 아느냐?”
손여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같은 여인이지만 그녀들의 용모는 매우 빼어날 뿐만 아니라, 그 옷차림과 동작들은 너무나 매혹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마치 시비처럼 사내의 시중을 들지 않았던가. 그 모습을 떠올리자 손여설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녀들 중 한 명은 천상루의 기녀다.”
“기녀요?”
“너는 적청쌍미라고 들어보지 못했느냐?”
“적청쌍미가 뭐죠?”
“열락문은 알고 있지?”
“여자들만 있다는 사파문 말인가요?”
“그래, 적청쌍미는 그 열락문 문주의 두 딸을 칭하는 별호다. 그리고 그중 적미는 천상루에서도 매우 유명한 기녀야.”
“흥, 기녀들 따위를 내가 알고 있을 이유가 없죠.”
손여설은 기녀들을 자존심도 없이, 웃음과 몸을 파는 천한 여자들이라 여기고 있었다.
손이정은 그런 손여설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미 매적화가 그렇게 단순한 기녀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사내가 천상루에서도 최고라고 하는 적미를 데리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신분이 낮은 인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손이정도 약간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었다.
적미 매적화뿐만이 아니라, 기녀도 아닌 청미 매청화까지 시중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가 듣기로 매청화는 성정이 차가워 사내를 돌처럼 여기는 여인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손이정은 곧 쉽게 결론을 지었다.
‘그런 매청화까지 시중들게 만들 정도로 신분이 높은 자겠지.’
경대광을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자이니, 매청화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단철방에 가는 것은 아마도 신분을 드높이기 위한, 혹은 자신의 위세를 부리기 위한 보검을 얻고자 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원래 권력을 가진 자는 그렇게 외적인 것에 치중하곤 하니까 말이다.
“그 사내 기분 나빠요. 그 건방진 눈빛도 그렇고, 비웃는 것 같은 웃음도 그렇고.”
손여설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손이정은 그런 동생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자신이야 그가 비아냥거리는 말에 화가 났었다지만, 동생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하는 말을 보면 자신 때문에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사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투덜거리고 있으니 더욱 이상한 일이 아닌가.
“넌 그를 너무 신경 쓰는구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는 너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마치 그를 계속 관찰한 것처럼 말하지 않느냐.”
“말도 안 돼요! 난 그가 경대광의 일행이기 때문에 잠시 보았을 뿐이에요!”
얼굴까지 빨개진 손여설은 손을 마구 내저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모습이 손이정의 눈에는 더욱 이상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도 아직 여인의 여러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내일 뿐, 손여설이 오칠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뭔가 지금껏 그녀가 보아왔던 사내들과는 다른 점을 느끼고 남다른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알 수는 없었다.
“그냥 한 말이니 화내지 말거라.”
손이정은 손여설이 화를 내면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기에 얼른 그녀를 다독였다.
“내일은 중요한 날이 아니냐. 어서 돌아가 푹 쉬고, 좋은 장인을 만나 검을 받을 생각을 하거라.”
“알겠어요. 하지만 오라버니,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난 기녀나 끼고 있는 그딴 쓰레기 같은 사내에겐 조금의 관심도 없으니까 말이에요.”
“알겠다. 내가 실언을 했으니,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마.”
“난 이제 잘게요. 내일 봐요.”
손여설은 얼른 방을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직도 손이정이 한 말에 분이 풀리지 않은 걸까?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속내가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아직도 당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방을 나온 그녀의 시선은 삼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항하고 있었다. 바로 오칠 등이 머무르고 있는 삼 층 말이다.
‘난 그딴 사내에게 관심 없어!’
손여설은 그렇게 자신에게 소리쳤다.
너무도 아름다운 오칠의 얼굴이 머릿속에 또렷이 기억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호기심일 뿐이다. 사내에게 반했다는 등의 감정은 그녀에게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자야겠어. 그러면 쓸데없는 생각도 안 하게 되겠지.”
손여설은 삼 층 계단에서 시선을 돌리고는 서둘러 그녀의 방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