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71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71화
파계 3권 - 21화
제32장. 객잔(客棧)에는 객(客)이 있다
무한에서 마성(麻城)까지는 걸어서 사흘 거리였다.
급하게 말을 타고 달리면 하루도 안 걸리고, 느긋하게 마차로 움직이면 하루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다.
오칠 등을 태운 마차는 느긋하게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을 출발하고 어느덧 여정의 반을 움직였고, 그래서 저녁 무렵쯤 그리 초라하지도,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객잔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기로 했다.
히히힝.
마차가 서고, 호위하듯 뒤를 따르는 열 명의 무사들을 태운 열 마리의 말이 멈춰 섰다.
타탁.
마부가 마부석에서 내렸다.
그의 가볍고도 날랜 몸놀림만으로도 그가 평범한 마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부의 이름은 경대광이었다.
경 보주의 세 아들 중 첫째이고, 지금은 경 보주를 대신하여 조용히 마차를 몰면서 오칠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마차 문을 열고 있는 이는 경대광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순간 둘째인 경중광으로 바뀔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셋째 경소광이 오칠을 보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 세 형제는 부친인 경 보주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외모의 세 쌍둥이들이고, 때때로 각자의 역할을 바꾸어 일을 하고는 하니까 말이다.
“객잔에 도착했습니다, 오칠님.”
경대광은 오칠이 그들의 가문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배화교의 교주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호칭은 그에 맞게 지존, 혹은 교주라는 호칭이 맞을 것이나 오칠은 그런 호칭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사람들에게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고,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도 그랬듯 ‘님’자를 붙여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이다.
덜컥.
문이 열리고 마차 안에서 향긋한 내음과 함께 여인의 옷자락이 빠져나왔다.
누구라도 한 번 보면 반하고 말 정도로 매혹적인 매적화, 매청화 자매가 먼저 마차에서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자다가 일어난 듯 눈을 비비며 오칠이 내렸다.
“여기서 자고 간다고?”
“오칠님을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깊이 머리를 숙이는 경대광에게 오칠이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경대광의 말투와 충정, 그리고 고지식함은 그 부친과 똑같았다. 무한에서 출발하기 전에 인사만 받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두 형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칠은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상 그러한 경 부자들의 행동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들이 자처해서 하겠다는데 굳이 막을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선대로부터 무슨 교육을 받은 것인지 과하다 싶을 정도의 믿음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행동을 막을 방도도 없었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말에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안을 살펴라.”
경대광은 객잔을 향해 눈짓하며 천목보의 무사들에게 명령했다.
객잔 안에 혹시라도 있을 위험에 대해 조사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칠이 그들을 불러 세웠다.
“부산 떨지 마.”
오칠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하지 말라고 했다.
더구나 오칠에게 살수를 펼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아직 그 존재도 무림에 드러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설혹 그런 자들이 있다 해도 오칠이 그냥 당할 정도로 만만한 존재도 아니었다.
“들어가자.”
오칠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매 자매를 양쪽에 거느린 채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먼저 오칠 등을 맞이한 것은 계산대에 앉은 주인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객잔 안에 있는 손님들이 대화를 멈추고 살피는 시선을 던졌다. 척 보아도 범상치 않은 오칠 등에게 호기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담담한 시선으로 객잔 안을 둘러보는 오칠의 앞으로 경대광이 나섰다.
“밖에 마차와 말이 있네. 좋은 먹이를 먹이게.”
그렇게 말하고 그가 품에서 어떤 패를 보여주자, 객잔 주인은 눈동자를 화등잔만 하게 뜨고는 황급히 계산대 밖으로 뛰어나왔다.
“소인의 눈이 어두워 천목보의 분이신 줄 몰라 뵈었습니다.”
경대광이 보여준 패는 천목보에서도 행주(行住:상행을 주도하는 우두머리)급 이상의 사람임을 나타내는 증표였다. 무한과 그 근방 상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목보를 상대로 객잔 주인은 당연히 굽실거려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게다가 객잔 주인은 이미 며칠 전에 천목보로부터 귀한 손님이 하루 머물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가장 크고 깨끗한 방을 준비해두었습니다.”
또한 고급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무한 성내에서 실력 있는 숙주까지 데려다놓았다.
“우선 배나 좀 채우지.”
경대광과 객잔 주인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오칠은 매 자매와 함께 가까운 탁자에 가서 앉았다.
실상 객잔의 절반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고, 창가와 같이 좋은 자리는 이미 그들이 선점하고 있어 오칠이 앉을 만한 자리는 입구에서 가까운 자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오칠이 전음으로 경대광에게 좋은 자리를 만들겠다는 등등의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미리 지시하지 않았다면 더 괜찮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조용하군.”
오칠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부채를 내리며 느긋하게 의자에 기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기저기에서 놀란 탄성이 들려왔다. 객잔 안을 채운 이들 중 대부분이 사내들이었고, 그래서 처음 그들의 이목은 모두 매 자매에게 쏠려 있었으나, 이제는 아름다움으로도 뒤지지 않는 오칠에게 집중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오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오칠 주변 탁자에 앉은 무사들의 날카롭고도 사나운 눈빛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도 경대광과 객잔 주인의 대화를 들었고, 그래서 천목보의 무사들임을 알았으니 감히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데, 그런 중에도 무사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여섯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보다 정확히는 다섯 명의 호위무사와 그 윗사람들이라 짐작되는, 용모가 빼어난 두 명의 젊은 남녀였다.
그런데 그들의 시선은 뭔가 기묘했다. 뭔가 경멸하는 듯하기도 하고 화가 난 듯도 하면서, 크게 도발하지 않으려는 절제된 시선이었다.
“곧 음식을 준비해올리겠습니다.”
오칠이 일행 중에서 가장 높은 인물임을 알아챈 주인이 넙죽 머리를 숙이고는 주방으로 움직였다.
“내일 정오 무렵이면 단철방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경대광이 오칠의 앞에 앉으며 남은 거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데, 단철방이라니? 오칠이 만나려고 하는 배화교의 광명우사가 단철방의 인물이란 말인가?
아니, 단철방 자체가 광명우사의 가문이었단 말인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단철방(鍛鐵幇).
그곳은 말 그대로 대장간이었다. 전국에 그 숫자만 수천이나 되는 대장간 중에 한 곳인 것이다. 하지만 호북 마성의 단철방이라 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호북 마성의 대장간은 나라에 무기를 공급하는 곳으로, 그 규모와 실력 면에서 전국 최고라고 불리는 대장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 단철방의 명성은 무림에서도 그 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으니, 현재 무림에서 그 이름을 날리고 있는 보검, 보도들의 대부분이 호북 마성의 단철방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낯이 익은데?’
경대광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오칠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감히 시선을 보내지도 못하고 있는 객잔의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노골적으로 불쾌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육남 일녀를 향해서 말이다. 오칠은 그중에서 용모가 빼어난 두 남녀에게 주목했다. 그들의 생김새가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룡천화장의 사람들입니다.”
오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매적화가 그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검룡천화장?”
오칠의 담담한 눈동자에 밝은 빛이 일었다.
그것은 진한 관심으로 인해 생겨난 반응이었다.
검룡천화장(劍龍千花莊).
초대 장주는 이백여 년 전 마교와의 싸움에서 두각을 나타내 검룡이라 칭해지기까지 한 인물로, 대대로 그 장주도 초대 장주의 별호를 이어받아 검룡이라 불리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의 검룡천화장은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검법을 통해 그 명성을 드높이고 있고, 장원을 대표하는 검법인 무류천화검(舞流千花劍)은 화려함과 정교함이 극을 이루는 검법으로, 무림에서도 인정한 절정의 검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룡천화장은 천목보와 함께 무한을 양분하고 있는 정파문들의 중심 문파라는 것이다.
그들이 오칠 일행을 향해 경멸하는 듯하기도 하고 화가 난 듯도 하면서 크게 도발하지 않으려 하는 절제된 시선을 보낸 것엔 오칠 일행이 경쟁 문파이고, 사파문인 천목보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칠도 검룡천화장의 명성을 알고 관심을 보인 걸까?
아니었다. 오칠은 검룡천화장의 이름이나 명성 등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저 왜 젊은 남녀가 눈에 익은지 깨닫고는 관심을 보인 것이다.
“목운교가 검룡천화장에 머물렀었다고 했지?”
오칠의 물음에 경대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넉 달 전, 일행과 함께 보름간 머물렀다가 백천맹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경 보주는 그 자신의 말대로 오칠이 찾고자 했던 목운교의 소재를 마성에 가기 전에 알아냈다.
그리고 오칠에게 전했는데, 그 내용은 목운교가 백천맹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검룡천화장의 사람을 따라 장원에 왔고, 보름 뒤에 다시 일행들과 함께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때 목운교의 뒤에 있던 사람들 중 저 두 사람이 있었군.’
오칠이 목운교에게서 만두를 적선 받을 때, 뒤에서 그녀를 부른 일행이 있었다.
그 일행 중에는 지금 오칠이 보고 있는 두 남녀가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낯익은 것이다.
‘물어볼까?’
오칠은 두 젊은 남녀에게 직접 목운교에 대해 물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들이 이쪽으로 던지고 있는 시선은 전혀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눈동자에는 호기심도 있지만, 그보다 더 진한 경멸감이 뒤섞인 걸 보면 사파에 대한, 그리고 천목보에 대한 감정이 결코 좋은 방향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경 보주에게 목운교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라고 했으니, 괜히 귀찮은 일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정보는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저 두 사람은 누구지?”
오칠은 이제 자신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는 두 남녀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경대광에게 물었다.
“검룡천화장 장주의 장손인 손이정 소협과, 그 동생인 손여설 여협입니다.”
경대광이 소협과 여협이라 칭한 것은 손이정 등이 그의 말을 듣고 있음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림인이고, 이곳 객잔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오기 전과 달리 객잔 안은 상대적으로 매우 조용해서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인사를 하고 와야겠군요.”
경대광이 일어섰다.
“경쟁하고 있는 문파의 사람들이 아닌가?”
오칠이 뭘 인사까지 하냐는 의미로 물었다.
더구나 경대광은 이십 대 후반의 나이였으니, 약관에 이른 손이정 등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먼저 머리를 굽히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대광은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저는 장사꾼입니다. 장사꾼에겐 적아가 없지요.”
오칠은 그렇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목보가 경 보주의 가문에 의해 운영되기는 하나, 그 몸체는 상인 연합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인 연합을 이끌고 있는 천목보는 오칠에 대한 순수한 믿음과 맹목적인 충성심을 갖고 있는 반면, 이익을 위해서는 원수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계산적이기도 한 것이다.
“이 경 모가 손이정 소협과 손여설 여협께 인사드립니다.”
손이정 등이 있는 탁자에 다가간 경대광은 포권을 해보이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성만 들어서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소.”
손이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퉁명스런 말투로 경대광에게 대꾸했다.
더구나 경 씨 삼형제가 쌍둥이인 것에 대해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이는 연륜이나 무림에 출도한 시기를 따져보아도 무척이나 예의에 어긋난 것이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손이정이 무척이나 오만한 인물이라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검룡천화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룡천화장의 초대 장주는 마교와의 싸움을 통해 명성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사파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대쪽같은 성품을 가진 인물로도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