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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70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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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70화

파계 3권 - 20화

 

 

 

 

 

그들은 몇 개의 광장을 지나고, 몇 개의 긴 계단을 오르내린 뒤 또다시 하나의 작은 광장에 들어섰다. 사실, 이곳은 광장이 아니라, 연무장이었다.

 

다음 대 교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니 거의 확실한 소교주의 개인 연무장인 것이다.

 

“위지무성―!”

 

위지무성이 연무장에 들어서자 분노에 찬 고함이 내부를 쩌렁하게 울리며 전해져왔다.

 

고함을 지른 자는 크고 단단한 육체와 사내다운 인상에다가, 호목(虎目)같은 눈을 가진 중년의 사내였다.

 

중년 사내는 이곳 연무장의 주인인 소교주였다.

 

방금 전 위지무성의 손에 목이 부러져 죽은 교주의 아들이자, 모든 제자들의 대사형이며, 다음 대 교주로 내정된 막강한 권력을 코앞에 둔 교의 이인자였다.

 

하지만 대단한 지위에 있는 그의 몰골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고급스러웠을 비단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손에 쥔 붉은 칼은 만근처럼 무거워 보였으며, 죽은 자들이 뿜어낸 핏물로 흠뻑 젖은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의 노인과 십여 명의 무사들 역시 낭패한 몰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집요하고도 살인적인 공격에서 소교주를 지켜내느라 그들이 느끼는 피로는 더욱 심한 상태였다.

 

물론 그들처럼 소교주를 보호하다 죽은 수십 명의 동료들보다 나은 처지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정 그들을 지치게 하는 이유였다.

 

그들의 주위로는 수십 명을 죽였는데도 아직 그보다 훨씬 많은 무사들이 칼을 겨누고 있었고, 아직 싸움에 끼어들지도 않은 장로들과 교주의 또 다른 제자들이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더구나 이 모든 반란의 주동자인 위지무성이 나타났으니,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위지무성이 당당하게 나타났다는 것은, 연무장 밖에 그들을 도와줄 그 어떤 사람도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절망.

 

현재의 상황은 그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티끌만큼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작금의 현실 앞에 그들은 점점 기운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한쪽은 분노로 인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오기가 치밀어 올라, 지친 그들의 몸에 힘과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네놈이 감히 반란을 주도하다니! 고아인 네놈을 데려다 키워준 교의 은혜를 이따위로 갚는단 말이냐―!”

 

소교주의 고함은 잔뜩 악에 바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구차한 것이었다.

 

“사형의 그 말은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구려. 그리고 저기 사제들도 모두 고아들이라 분명 상처를 받았을 거요.”

 

위지무성의 비아냥거림에 소교주의 고함은 더욱 초라해진 데다, 우스갯소리로 전락해버렸다.

 

“킬킬킬!”

 

“깔깔깔!”

 

한 명의 여인과 세 명의 사내들이 경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위지무성의 사제들이었다.

 

교주에게는 소교주를 비롯하여 여덟 명의 제자가 있는데, 그중 넷은 오래전부터 위지무성의 반란에 동참했으며,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진작 살해당했고, 또 다른 하나는 소교주에게 충성하다가 지금 연무장에 처참한 시체로 나뒹굴고 있는 중이다.

 

“사형은 우리 교에서 무엇보다 우선하는 첫 번째 교리를 잊었소? 투쟁. 그것이 우리의 기본 교리요. 힘을 우선으로 삼고, 세상을 향해 투쟁하라! 난 삼 장로의 손을 잡고 교에 들어온 순간부터 쭉 그 말을 교육받아왔소.”

 

그 삼 장로 역시 위지무성의 반란에 동조했기에 한쪽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형은 이제껏 귀를 막고 살았던 모양이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답답한 소리를 할 리가 없지 않겠소.”

 

“깔깔깔!”

 

“킬킬킬!”

 

“크크크!”

 

소교주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소교주를 비롯하여 그를 보호하고 있는 장로들과 무사들은 너무도 화가 나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욕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분노에 반란의 무리들은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크게 웃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들에게 완벽한 승리를 안겨줄 상황이니까 말이다.

 

“내가 오늘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꼭 죽이고 가겠다!”

 

소교주는 이를 악물고 붉은 칼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얼마든지 덤비라는, 아니 자신이 이제 덤벼들 것이라는 분명한 의지가 표출되었다.

 

하지만 그가 위지무성에게 갈 수 있을까?

 

이곳엔 위지무성 대신 싸울 수 있는 이들이 백 명도 넘었고, 그들은 절대 소교주의 마지막 발악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한데, 위지무성이 앞으로 나섰다. 그것도 모두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명과 함께 말이다.

 

―아비의 목숨도 내가 거두었으니, 그 아들의 목숨도 내가 끝을 내야겠지.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드는 위지무성의 전음이 소교주의 머릿속에 둔중한 울림으로 전해졌다.

 

“으아―!”

 

소교주의 신형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벽처럼 둘러싼 이들을 단번에 뛰어넘어 위지무성을 덮쳐들어갔다.

 

후아앙―

 

붉은 칼은 그 색깔만큼 선명한 적광을 뿜어내며 위지무성을 향해 떨어졌다.

 

혈뢰검공(血雷劍功).

 

재탄생된 교의 가장 막강한 무공이고, 교주와 그 후계자에게만 전수되는 무공이다. 그러나 그 강맹한 공격에도 위지무성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뽑아든 검을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은 너무도 느릿하기만 했다.

 

하지만 붉은 칼과 그의 검이 격돌하는 순간, 그의 몸에선 폭풍 같은 검은 기운이 폭출되고, 그를 반으로 쪼개버릴 것처럼 붉은 칼을 내리치고 있던 소교주의 전신을 엄청난 힘으로 날려버렸다.

 

“커헉!”

 

핏물을 뿜어내며 뒤로 날아가는 소교주의 몸을 두 명의 장로들이 받아냈다.

 

하지만 소교주를 날려버린 힘은 너무도 강하여 그들 역시 뒤로 밀려났고, 나머지 한 명의 장로까지 가세해서야 멈출 수 있었다.

 

“크하하하! 모두 보아라,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주의 힘인 파천혈전공(破天血戰功)이다―!”

 

위지무성의 몸에선 먹물보다 진한 검은 기운이 뭉클 뭉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검은 기운은 호신강기처럼 그의 몸을 둘러싸고, 그가 휘두르는 검을 따라 소교주를 막아 선 무사들을 향해 번개처럼 쏘아졌다.

 

“크악!”

 

“아악!”

 

“커억!”

 

검은 기운에 휘말린 무사들은 사지가 잘리고, 머리가 터져나가며 힘없이 무너졌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공력을 끌어올려 무기에 주입했고, 검은 기운을 막으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검은 기운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들의 무기를 휘어감아 부셔버렸다. 그 무기를 가진 주인의 육체까지 사정없이 헤집어 자르고, 터트려버렸다.

 

“모두 죽어라―!”

 

일순간에 무사들을 모두 몰살시킨 위지무성은 간신히 몸을 가누는 소교주와 세 명의 장로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우우우우웅―

 

세 명의 장로는 그들이 익힌 가장 강력한 무공을 펼쳐 위지무성을 막아갔다.

 

소교주도 장로들과 합세해서 남은 힘을 다해 붉은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위지무성의 검에서 뿜어지는 힘은 그들이 뿜어낸 힘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힘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파천혈전공의 기운에 압도당해 있었다. 그들 자신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본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움츠러들어 있는 것이다.

 

콰콰콰쾅―!

 

“크악!”

 

네 개의 비명은 하나의 비명처럼 동시에 울리며 사방으로 핏물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시체의 파편 사이에서 위지무성은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바닥에 진득하게 깔린 핏물과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검은 강기의 빛 무리가 그의 모습을 더욱 광폭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수하들과 사제들은 멍하니 위지무성을 바라보았다.

 

두려움.

 

그들의 눈동자에는 그 외에는 다른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지무성의 순수한 광기와 힘 앞에 할 말을 잃었고, 경탄하고 있었다.

 

“교주가 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교주가 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누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연무장을 가득 채운 모든 이들이 바닥에 엎드려 위지무성을 향해 소리쳤다.

 

“교주님 만세! 혈천신교(血天神敎) 만세!”

 

“교주님 만세! 혈천신교(血天神敎) 만세!”

 

연무장을 울려대는 소리는 그렇게 점점 크고 격렬해졌다.

 

그러나 그 중심에 선 위지무성의 얼굴은 도리어 차갑게 가라앉았다. 조금 전 그를 휘어 감고 있던 광폭한 열기는 존재감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위지무성은 교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목표는 고작 중원의 남쪽 귀퉁이 복건성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넓은, 그보다 더 높은 곳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만리신투를 잡아야겠지.’

 

칠 년 전, 소림사 외학전에서 배화교 교주의 계승서를 찾는 것에 실패한 뒤, 위지무성은 다시 칠 대 교주의 계승서를 찾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소림사에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는 배화교전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만리신투를 찾아가 적당한 협박과 회유를 해서 소림사에 침투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전혀 생각도 못한 상황이 생겼으니, 그의 명으로 소림 본사에 배화교전록을 훔치기 위해 숨어든 만리신투 견봉생이 종적을 감춘 것이다.

 

그래서 위지무성은 모든 정보력을 동원하여 그를 찾기 시작했다. 배화교전록에 뭔가 중요한 기록이 있고, 그래서 만리신투가 욕심이 일어 도망갔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페르시아어로 쓰인 배화교전록의 내용을 어찌 알게 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기이한 문자로 쓰인 책이라 욕심이 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오랜 탐문 끝에 얼마 전 그가 북서쪽 감숙성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내로 직접 감숙성으로 갈 생각이다. 배화교전록은 그만큼 중요했고, 그 내용이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리신투처럼 또다시 도망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되기에 직접 찾아가려는 것이다.

 

‘놈을 잡아오면 배화교전록을 찾을 수 있고, 그리고 배화교 칠 대 교주의 계승서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단서를 통해 계승서를 얻으면 위지무성은 지금보다 더욱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무림엔 그의 적수가 없을 만큼 말이다.

 

그리고 그때는 본격적으로 무림 정벌을 시작할 생각이다. 과거 배화교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백여 년 전 오대 가문이 배화교의 잔여 세력을 규합하여 새로이 만든 혈천신교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업을 달성하는 것이다.

 

‘바로 내가 최초의 무림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엔 더욱더 높은 곳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황제.

 

하지만 위지무성의 욕망은 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이루면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볼 수밖에 없는 그의 탐욕은 만족을 모르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위지무성은 그 탐욕이 좋았다. 그것이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은 오늘의 즐거움을 만끽해볼까.’

 

위지무성은 죽은 이들의 파편 사이에서 나뒹굴고 있는 소교주의 붉은 칼을 집어 들었다.

 

혈천검(血川劍).

 

혈천신교의 초대 교주 때부터 전해지는 것으로, 피를 삼키면 더욱 날카로워진다는 보검이다. 그리고 혈천신교의 교주가 지녀야 할 신물이었다.

 

위지무성은 혈천검을 번쩍 들어올려 파천혈전공의 기운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파천혈전공의 검은 기운과 혈천검 특유의 붉은빛이 어우러져 그의 머리 위를 물결쳤다.

 

“오늘 혈천신교는 새로이 거듭나리라―!”

 

강대한 내공이 응집된 음성이 연무장 안을 가득 채우고, 파천혈전공의 기운에 압도당한 사람들은 더욱 두려움을 느끼며 교주 만세를 외쳤다.

 

복건성 무이산

 

이백여 년간을 웅크리고 있던 혈천신교는 새로운 바람에 휩싸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