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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68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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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68화

파계 3권 - 18화

 

 

 

 

 

제30장. 강자(强者)는 힘으로 사람을 모은다

 

 

 

 

 

나무가 뽑히고, 땅이 파헤쳐져 그 모습은 엉망이 되었지만, 숲은 다시 본래의 평화를 찾았고, 주위는 고요함에 휩싸였다.

 

그리고 바위에 앉아 있는 오칠과 그 앞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엎드려 있는 경 보주 사이에도 침묵이 감돌았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오칠은 그만 일어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 보주는 더욱 몸을 낮추며 감히 그럴 수 없다 했다.

 

“감히 교주님께 불경을 저질렀으니 벌을 내려주십시오.”

 

벌써 한 식경째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오칠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좋아, 그러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벌을 내려야 하지?”

 

오칠 자신은 모르니, 경 보주가 말해보라는 것이다.

 

실상 이런 상황 자체가 우스운 것이라는 의미였지만, 경 보주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불경하였으니 목숨으로 죄를 씻어야 하나, 재림하신 교주님을 보필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몸이기에 사지 중 하나를 자르는 것으로 대신하겠사옵니다.”

 

“…….”

 

오칠은 경 보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나 경 보주는 하명을 기다린다는 듯 머리를 땅바닥에 더욱 바짝 붙였고, 자신의 말이 절대 허튼소리가 아님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칠은 조금 더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지.”

 

경 보주가 팔을 자르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 아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아직까지 배화교와 어떤 인연을 맺을지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상하 관계를 확립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경 보주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오칠은 목소리에 힘을 담고 차갑게 말했다.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냐?”

 

경 보주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중에 해결하자고.”

 

“교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오칠은 지금처럼 무게를 두고 말을 해야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경 보주에게 일어나 앉으라고 했다.

 

경 보주는 재빨리 상체를 일으켜 무릎을 꿇고 공손한 자세로 오칠을 올려다보았다. 오칠은 경 보주가 그런 극공경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영 불편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우선 교의 상황을 말해봐.”

 

“예, 교주님. 이백여 년 전, 정사 무림과 크나큰 대전을 치르고, 칠 대 교주님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기세를 잃은 교는…….”

 

경 보주의 기나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칠 대 교주가 죽고 배화교는 정사 무림의 총공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당시 교를 구성하는 백팔 가문 중 절반 이상이 멸문하고, 나머지는 훗날을 기약하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가문들은 중원 각 지역에서 신분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 각 가문들과의 교류는 거의 단절된 상태입니다. 현재 살아남은 가문들을 찾고는 있지만, 백천맹과 흑천맹의 이목을 피해야 하고, 가문들이 철저하게 과거를 숨기고 있어 찾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가문과는 교류를 잇게 되었고, 몇몇 가문은 그 소재를 파악해두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 십여 개 가문은 알고 있고, 나머지는 그 존재 유무도 알지 못한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경 보주는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어쨌든, 아주 망한 것은 아니라니 다행이군.”

 

물론 말뿐이었고, 내심 잘되었다 여기고 있었다.

 

사실, 오칠은 십여 개에 불과할지라도 배화교의 가문들이 이백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전해지기로는, 정사 무림의 공격에 배화교는 그 잔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오칠은 배화교인들이 극소수나 살아남았겠지, 그저 과거의 영화를 이야기로 전해들은 소수의 후인들만이 존재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칠은 천상루에서 경 보주가 청살진기를 익혔다는 걸 느꼈을 때도 그 극소수의 후인들 중 한 명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십여 개의 가문이 존재하고, 어딘지 모를 곳에 그보다 더 많은 가문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고 하니 충격일 수밖에.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칠 대 교주의 안배로 인해 계승자가 되었고, 교주나 다름없는 능력을 얻었지만, 오칠은 배화교와 깊이 연관을 맺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더구나 무림에서 절대 공적인 배화교의 교주가 되면 이후에 얼마나 험난한 일이 생겨날까.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하명만 하시면 연락이 되는 가문의 수장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말하는 경 보주를 보며 오칠은 문득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겨났다.

 

“그런데 말이야. 나머지 가문들도 모두 좌사와 같은가?”

 

“……?”

 

“좌사처럼 나를 교주로 인정하겠느냐는 거지. 좌사만 해도 내가 천마신공으로 힘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날 불신하고 있었잖아.”

 

“그것이…….”

 

경 보주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을 통해 오칠은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감출 거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봐.”

 

“그럼 솔직하게 말씀 올리겠습니다. 현재 교류를 하고 있는 일곱 개의 가문 중에 교주님께 순순히 머리를 숙일 가문은 셋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가문은 쉽게 수긍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교류를 하지 않고 있는 여섯 가문은 저희와의 교류 자체를 거부하는 만큼 교주님의 재림을 알린다 해도 외면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군.”

 

오칠의 얼굴은 별 표정 없이 담담했지만, 내심 매우 만족했다.

 

‘그럼 그렇지. 이백 년이나 흐른 지금도 충성이니, 뭐니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종교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배타와 수용을 오가는 다각적인 사상 속에 담길 수 있는 몇몇 종교에 한해서일 뿐이다. 즉,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후의 평화를 도모하는 종교야말로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배화교처럼 인간이 산다는 것은 투쟁하는 것이며, 투쟁하는 것이 최고조에 이를 때 인생이 강렬해진다는 사상을 가진 종교는 늘 위정자(爲政者:정치하는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적대적인 시선을 받고, 또한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든 법이다.

 

그리고 그런 종교는 결국 퇴색되고, 엷어져서 지워지게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배화교는 무엇보다 힘을 우선시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 그들의 후인들은 종교적 향수보다는, 당시 무림을 격동시켰던 힘에 대한 기억을 동경할 뿐, 어떤 사상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왔는가는 개의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경 보주와 같이 선대로부터 이어져온 사상을 맹목적으로 섬기고, 난데없이 나타난 이를 교주로 떠받드는 경우는 드물고도 드문 경우라는 말이다.

 

게다가 경 보주도 결국 천마신공을 몸소 겪고 힘에 굴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 정사 무림과 유혈 충돌을 하고, 대전이란 이름의 큰 싸움을 한 순간부터 배화교의 종교적 색채는 사라지고, 말 그대로 무림 문파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아니, 이미 처음부터 배화교는 문파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즉, 배화교를 처음 전한 이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중원에 막강한 힘을 갈무리하고 있는 문파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할 수 있었다.

 

“많은 세월이 지났으니,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

 

오칠은 안타깝다는 듯, 하지만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강요를 통해 그들을 통합시킬 생각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종교란 자율적인 판단과 선택이지, 강요가 될 수 없다고 말이다.

 

배화교 자체만 해도 선악의 구분을 가르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는 등등의 교리와 사상까지 들먹이며, 혹시라도 경 보주가 반박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렸다.

 

‘이제 크게 귀찮아지는 일은 없겠지.’

 

칠 대 교주는 구세주가 세상을 구원하고, 스펜타 마이뉴가 앙그라 마이뉴를 굴복시켜 아후라 마즈다의 영원한 왕국이 세워질 그날까지 신도들을 이끌라고 했다.

 

쉽게 말해, 칠 대 교주의 기억을 통해 능력을 얻었으니 배화교인들을 이끌라는 것이지만, 그 배화교인들이 꼭 많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소수라도 그저 믿음이 있는 이들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처럼 세 개 정도의 가문이라면 크게 신경 쓰일 일도 없을 것이다. 그저 가끔 그가 알고 있는 교의 사상과 지식을 전해주면 되고, 그것만으로도 교주의 역할은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경 보주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교류를 잇고 있는 가문 중에는 광명우사의 가문이 있습니다. 광명우사를 한번 만나 보시는 게 어떠할는지요. 그의 믿음은 누구보다 크나, 과거의 배화교를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마교라 불리었던 과거의 배화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나머지 세 가문도 교주님께 머리를 숙일 것입니다.”

 

오칠은 싫어, 혹은 별로, 아니면 관심 없어, 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그저 만나는 것뿐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악명을 가진 배화교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에 어울리는 패도적이고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서 더욱 거리끼게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귀찮긴 하지만, 그 정도의 수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그런데 광명우사의 가문은 어디에 있나?”

 

“무한에서 멀지 않은 마성(麻城)에 있습니다.”

 

오칠도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호북 동북 쪽에 있는 곳으로,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규모 있는 현이다.

 

“며칠 내로 떠나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준비되면 주점으로 찾아와. 아, 그리고 찾을 사람이 하나 있는데.”

 

“하명하십시오.”

 

“이름이 목운교야.”

 

오칠은 그가 기억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금철산 등에게 했던 것처럼 매우 추상적인 설명이었다. 하지만 경 보주는 차분히 듣고 있다가 마성으로 떠나기 전까지 찾아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빨리?”

 

“무한에서 천목보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경 보주의 가문이 상인의 길로 들어서고, 상인 연합을 구성한 것도 무한을 비롯한 전 중원에 관한 정보를 용이하게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래야 배화교에 대한 정사 무림의 시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개방이 부럽지 않을 정보망을 구축해두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편리하군.’

 

오칠은 수하들이 있다는 것, 특히 천목보와 같은 세력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자신에게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려가자고.”

 

오칠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월광검을 챙겨 보필하듯 뒤를 따르는 경 보주와 함께 산을 내려갔다.

 

 

 

 

 

* * *

 

 

 

 

 

“또 천상루에 가세요?”

 

종삼은 한 달이 넘게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던 오칠이, 다시 목욕을 한 뒤 백색비단옷을 입고 방을 나왔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오칠은 묵철곤을 허리에 차고, 부채를 꺼내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마성에 간다.”

 

“예? 마성이요? 거긴 왜요?”

 

“만날 사람이 있어.”

 

“누구요?”

 

“많이 알려고 하지 마. 다쳐.”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입을 다물 종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주점 안으로 들어온 사람 때문에 종삼은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천목보 보주이자 배화교의 광명좌사인 경모혁이다.

 

그리고 그의 등장에 종삼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감히 얼굴도 마주할 수 없는 무한 제일의 사파고수가 나타난 것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갔다 온다.”

 

오칠은 돌처럼 굳어서 입도 뻥긋 못하고 있는 종삼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주점을 나왔다.

 

그러나 오칠은 곧바로 마차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다. 주점 밖 오 장여 앞에 길목을 막고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열락문의 매 문주와 그녀의 두 딸, 그리고 열락문의 상위 고수들 백여 명이 머리를 푹 숙이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뭐야, 이거?”

 

오칠은 이미 주점 밖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들이 왜 저러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경 보주에게 물은 것이고, 즉각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오칠님께서 제가 섬기는 분이라는 걸 알고 잘못을 깨달은 매 문주가 석고대죄(席藁待罪:거적을 깔고 엎드려 처벌을 기다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칠은 더 자세히 듣지 않아도 그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매 문주는 경 보주의 반 협박을 받고 온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매 문주가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미천한 소첩이 감히 오칠님께 죄를 지었으니, 벌을 주십시오!”

 

오칠이 가까이 다가가자 매 문주는 고개도 들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매 자매와 그 산하 고수들도 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죄를 지었다며 벌을 내려달라고 입을 모아 소리쳤다.

 

‘숙이고 있는 얼굴 표정은 어떨지 궁금하군.’

 

매 문주가 스스로 자진해서 온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면, 저 말들도 본심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코가 땅에 닿도록 숙이고 있는 얼굴엔 당연히 그 말에 어울리는 표정이 지어져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잔뜩 찡그려져 있겠지. 혹은 수치심에 붉게 물들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 내심이야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겉과 속이 다른 법이고, 오칠은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