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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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67화
파계 3권 - 17화
카카카캉!
듣기 싫은 마찰음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날카롭고 화려한 검의 변화가 오칠이 크게 휘두른 묵철곤에 막힌 것이다.
‘역시 쉽지 않다는 건가!’
경 보주는 오칠이 간단하게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스샤샤샤샤샤―
한 걸음씩 물러나며 묵철곤을 휘두르는 오칠의 정면을 월광검의 수많은 그림자가 벽처럼 빼곡하게 채워나갔다.
천붕십이절(天鵬十二絶).
대외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의 무공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검법이다. 하지만 오칠을 압박하는 공격의 정수는 천붕십이절이 아닌, 검끝에서 송골송골 맺히며 폭발하듯 퍼져나가는 푸른 기운이었다.
청살진기(靑殺眞氣).
과거 배화교를 구성하는 백팔 가문은 각기 그만의 독특한 내공심법을 가지고 있었다. 즉, 배화교 무공의 중심은 내공심법에 있고, 검법, 도법, 창법, 장법 등등은 그저 외적인 요인이며, 가문의 특성과 지위는 내공심법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 보주가 익힌 청살진기는 그 내공심법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열 가지 신공 중 하나였다.
번쩍! 카캉― 번쩍! 번쩍! 카캉―
청살진기의 기운이 점점 강력해지면서 월광검은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 빛은 주변으로 넓게 퍼져나가고, 둔탁하게 방어막을 만들고 있는 묵철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하지만 공격의 기세가 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경 보주의 가슴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분명 그의 공격은 오칠을 압도하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투박하기 그지없는 쇠몽둥이를 뚫고 들어가 오칠의 몸을 난자해야 마땅하는데도 그러질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쇠를 무처럼 자를 수 있는 월광검은 진작 쇠몽둥이를 잘라냈어야 했다. 더구나 천붕십이절은 변화와 날카로움만 따져보아도 무림에서 당할 것이 없는 검법이었다. 그런데 오칠은 저 투박한 몽둥이로 그 화려한 검의 그림자를 모두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슬슬 익숙해지는군.’
오칠은 그의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푸른 검영을 막아가면서 내심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경 보주가 펼치는 천붕십이절은 그도 알고 있는 검법이었다. 칠 대 교주의 기억을 통해 백팔 가문의 무공은 모두 그의 기억 속에 담겨져 있었고, 또 직접 익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익히고, 수련한 것과 직접 그 검법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가 익힌 무공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은가.
그 모든 무공을 실전에 적용하고, 익숙해지게 하는 것은 결코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경 보주의 공격을 막고 살피면서 이제는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어떻게 공격해올지, 어떻게 검이 움직일지를 거의 파악했고, 이제는 그에 대응하는 공격을 펼칠 수도 있었다.
‘이제는 청살진기를 해결할 차례군.’
오칠은 추측할 수도 없는 막대한 내공을 갈무리하고서, 그의 사지로 끊임없이 힘을 보내주는 단전 저 안쪽으로부터 작은 불꽃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 불꽃은 푸르고, 붉고, 강렬한 것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의 육체를 기이한 열기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오칠이 운용하기 시작한 내공심법은 천마신공이다. 그것도 극성까지 끌어올린 데다, 안으로 갈무리하지 않고 외부로 기운을 마음껏 폭출시킨 천마신공이다.
원래 천마신공은 범천공(犯天功)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초대 교주로부터 조금씩 발전되어 와, 그 성정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며 여러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파천혈전공(破天血戰功), 만겁독황공(萬劫毒皇功), 사마천빙공(邪魔天氷功), 파황신공(破凰神功), 탈명현음마공(奪命玄陰魔功), 아수라지옥기공(阿修羅地獄氣功), 그리고 칠 대 교주에 의해 천마신공이라 불리었으니, 그때에 이르러 가장 완벽한 신공이 되었다.
천마신공은 배화교 최고의 호교심공이며, 배화교에 전해지는 모든 내공심법의 정수이고 근간이며, 이를 바탕으로 펼치면 검이고, 도이고, 창이고 모든 것이 무공이 된다는,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공인 것이다.
‘뭐지?’
주변을 온통 푸른 검영으로 채우고 있던 경 보주도 오칠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사실, 오칠의 머리칼이 하늘로 곤두서고, 온몸에서 붉고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듯 피어오르며, 옷깃은 가득 팽창하여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리는데 알아채지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투박한 쇠몽둥이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와, 그가 만들어낸 검광을 하나씩 하나씩 터트리며 소멸시키고 있다면 더더욱 모를 수가 없었다.
“어디 마음껏 발악해봐라―!”
우우우웅―
순간, 오칠의 커다란 음성이 공간을 거세게 진동시키며 경 보주의 전신으로 전해져왔다.
“큭!”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경 보주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서… 설마 천마야소(天魔野嘯)?”
일순간에 오 장여를 물러난 경 보주는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다.
천마야소는 배화교의 교주만이 펼칠 수 있다는 강력한 음공이었다. 천마신공을 익혀야만 내지를 수 있는 소리로, 만인을 제압하는 힘이 담겨 있다고 했다. 소림사의 사자후(獅子吼)와는 달리 어느 한 명을 상대로 발휘할 수도 있는 무공이기에 더욱 강력한 음공이라 평가되는 무공이다.
“뭘 그리 놀라나?”
오칠은 이가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경 보주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걸음에 한 장을 줄여버리는 그 놀라운 보폭은 걸음이라는 표현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걸음마다 땅이 움푹움푹 파이고, 먼지가 휘몰아치며 표현할 수도 없는 엄청난 압력이 전해져왔다.
“자… 잠깐!”
경 보주는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오칠은 그의 지척으로 다가왔고, 묵철곤은 묵직한 기운을 사방으로 뿌려대며 그의 정면으로 내리쳐지고 있었다.
쾅―!
땅이 흔들리고, 커다란 먼지바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묵철곤을 피해 공중으로 솟구친 경 보주는, 어디에 있는지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오칠을 향해 소리쳤다.
“대화는 이미 끝났어.”
“……!”
경 보주의 놀란 시선이 위로 들려졌다.
어느새 오칠은 공중에 떠 있는 그보다 더욱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받아라!”
오칠은 지체치 않고 묵철곤을 휘둘렀다.
경 보주는 이를 악물고, 월광검을 위로 베어 올렸다.
샤샤샤샤샤―
천붕십이절의 수많은 푸른 검영이 공기를 무겁게 내리누르며 떨어지고 있는 묵철곤을 뒤덮어갔다.
키키키키키키킹―
“……!”
순간, 경 보주의 눈이 당혹감으로 크게 뜨여졌다.
그저 엄청난 압력으로 떨어지는 듯했던 묵철곤이다. 그의 월광검이 만들어낸 검영들에 둘러싸여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묵철곤은 검영과 부딪치기 직전에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수많은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천붕십이절?’
어떻게?
그가 만들어내는 푸른 검영들을 하나씩 맞상대하며 내리쳐지는 묵철곤의 그림자들을 보는 경 보주의 머릿속은 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더 이상 당황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오칠이 펼치는 무공은 분명히 천붕십이절이었고,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있는 이 기이한 두려움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뭔가 수를 써야만 했다.
‘진정 천마신공이란 말인가?’
그가 수련한 청살진기는 이백여 년 전에도 적수를 찾기 힘든 강력한 신공이다.
비견될 수 있는 신공은 몇 있었지만, 압도할 수 있는 공력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마신공.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그 강대한 무공이 아니라면, 지금 경 보주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물어봐야 했다. 대답을 들어야 했다. 오칠이 주변 가득 발산하고 있는 이 강대한 기운이 진정 천마신공인지 알아야 했다.
그러나 경 보주는 물을 수가 없었다. 입을 열 틈도 없었다.
오칠은 마치 흥에 겨운 듯이 천붕십이절을 펼치며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조금이라도 기운을 흐트러트리게 되면 간신히 방어를 치고 있는 푸른 검영들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그의 온몸으로 저 투박하기 그지없는 쇠몽둥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내리고 말 것이다.
‘좋다!’
경 보주는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온몸 가득 퍼져 있는 내공을 두 팔로 끌어올리고 월광검에 밀어 넣었다.
지잉― 지잉― 지잉―
월광검의 울음소리였다.
투명하리만치 하얀 검신이 마치 달빛을 담은 듯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주변 가득 펼쳐진 푸른 검영은 더욱 선명해지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던 방어벽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타탁.
공중에서 격돌하던 경 보주와 오칠의 신형이 땅으로 내려서고, 바닥과 주변의 나무들이 파헤쳐지고, 쪼개지고, 광폭한 바람에 휘날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앗―!”
경 보주의 기합이 공간에 파동을 일으키고, 월광검은 마지막 힘을 머금고 오칠을 향해 폭발하듯 휘둘러졌다.
“하하하! 좋아!”
즐거운 탄성과 함께 오칠의 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뭉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묵철곤은 눈앞을 가득 채우는 묵광을 발산하며, 눈이 시리도록 푸른 월광검의 검영을 향해 퍼져나갔다.
콰콰쾅―!
마치 산을 무너트릴 듯 강렬한 충격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주변 수목들은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뒤흔들렸다.
쿠쿠쿠쿠.
뿌옇게 일어난 먼지 사이로 허름한 정자가 격돌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쿠쿠쿠쿠쿵―!
그리고 정자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허물어지고, 가라앉으려는 먼지 사이로 다시금 두터운 바람이 일렁이게 만들었다.
“…….”
경 보주는 그의 등 뒤에서 정자가 무너지는데도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의 몸 상태는 그런 것들에 반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내부 기혈은 금방이라도 주화입마를 일으킬 것처럼 요동치고 있고, 전신은 엄청난 압력에 부딪친 충격으로 지독한 고통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앞에는 그를 그렇게 만든 오칠이 조금의 충격도 없었다는 듯 담담한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견딜 만해?”
오칠은 처음부터 그랬듯, 변함없이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큰 격돌 속에서도 너무도 멀쩡한 묵철곤을 어깨에 걸치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내가 살아남았으니, 이제는 어떻게 할래?”
오칠이 놀리듯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경 보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그는 야생마처럼 날뛰고 있는 기혈을 진정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엔 당신이 내 손에서 살아남아야 할 차례군.”
“…….”
“아니면 패배를 시인하고 무릎 꿇어. 그러면 내가 살려줄지도 모르니까.”
경 보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오칠의 말이 자존심을 건드리고, 그를 화나게 한 걸까?
아니었다. 기혈이 진정되면서 탁한 기운이 위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웩!
“헉… 헉… 헉……!”
가슴에 응어리졌던 검은 피를 울컥 쏟아낸 경 보주는 너무나 지친 얼굴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천마신공이오?”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경 보주는 아까부터 가슴에 담았던 물음을 끄집어냈다.
그 자신이 패배했건, 오칠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건, 조금 뒤에 그의 목이 잘리게 되건 상관없었다. 지금 그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
오칠은 다가오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얼굴에 짓고 있던 비틀린 웃음을 지우고, 메마르고 건조한 시선으로 경 보주를 바라보았다.
“그게 중요한가?”
얼굴 표정만큼이나 건조한 음성이었다.
경 보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소리쳤다.
“중요하오!”
오칠은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찼다.
“배화교인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바보인 모양이야.”
“말해주시오! 그것이 천마신공이오?”
“대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잖아.”
“당신에게 직접 들어야겠소!”
경 보주는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목소리에 담으려는지, 아니면 무언가에 매우 화가 난 것인지 계속해서 소리쳤다.
오칠은 그런 경 보주를 더욱 무감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맞아. 천마신공이야.”
“…….”
경 보주는 대답을 듣자 멍한 표정이 되었다.
꾹 다물어진 입술은 뭔가를 참고 있는 듯 움찔거리고, 어깨를 시작으로 몸 전체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경 보주는 손에 쥐고 있던 월광검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한 걸음씩 오칠을 향해 걸어갔다.
점점 굽혀지는 목과 허리, 그리고 무릎은 오칠의 바로 지척에 이르러서는 몸을 완전히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오체투지(五體投地).
무한 제일의 사파문 수장이 극공경의 자세로 오칠의 앞에 엎드린 것이다. 그리고 꾹 다물고 있던 그의 입이 열리며 격동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신(臣) 광명좌사(光明左使) 경모혁이 교주님을 배알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