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65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65화
파계 3권 - 15화
시끌시끌.
주점 밖은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들로 시끄러웠다. 그 소리를 들으며 주점 안에 앉아 있는 냉대손은 울상을 지었다.
“또요?”
“무슨 문제 있어?”
오칠은 별일 아니라는 듯 툭 내뱉었다.
“그건 아니지만… 주군, 지금까지 제가 데려간 아이들이 스무 명이 넘었다는 거 아십니까?”
“몰라. 내가 숫자까지 세고 있으리?”
오칠은 차를 마시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반응에 냉대손은 속이 끓었다. 하지만 오칠이 무서워서 감히 밖으로 표출하지는 못하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부터 애들 키워서 무슨 문파 하나 만들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무슨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왜 갈 곳 없는 애들을 데려와서 저희들에게 일을 맡기라고 하시는 겁니까? 다른 형님들에게 간 아이들에다, 금 문주님한테 간 아이들까지 하면 벌써 백 명이 훌쩍 넘습니다. 그러니까 주군께서 그 많은 아이들을 지금부터 키워서, 나중에 써먹으려고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오칠은 냉대손을 빤히 쳐다봤다.
“너 참, 차가운 녀석이구나. 넌 배곯고 잠잘 곳 없는 애들 보면 측은하지도 않니?”
“예?”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러니 내가 좀 도와주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안 나냐고.”
냉대손은 솔직히 안 나는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도 일찍 부모를 잃고 아등바등 살면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그래서 지금처럼 무리 하나를 이끌 정도가 되지 않은 것인가, 라고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칠의 표정을 보자면 아니요, 라고 말했다가 괜히 맞을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다.
“물론 측은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하지만 뭐?”
“어릴 때는 사서 고생 한다고 하잖습니까.”
“어릴 때가 아니라, 젊어서겠지.”
“아, 예. 젊어서요. 여하튼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 봄이 오고, 그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이 저의 평소 지론입니다.”
“그래, 그게 네 지론이구나.”
오칠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냉대손도 이제야 말이 통하네, 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지만, 곧 오칠의 차가운 시선을 받고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런데 내 지론은 너하고 다르거든. 내가 애들 데려다가 호의호식시키라고 하디? 그냥 주점이나 객잔에 데려가서 일시키고, 배나 곯지 않게 하라는 거 아니냐.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아, 예, 예. 그… 그러셨지요.”
“애들 맡을래, 안 맡을래?”
“맡아아죠!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주군의 명을 어기겠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암요, 당연히 맡아야죠!”
“그래야지. 그럼 애들 데리고 이제 가봐.”
“예.”
괜히 오칠의 성질을 건드린 건가 싶어서 냉대손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냉대손에게 오칠이 물었다.
“무공 수련은 잘 하고 있어?”
냉대손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울상이 되어 더욱 험악해졌던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밤낮을 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는 말이었다.
냉대손은 정말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오칠이 가르쳐준 것들은 그로서는 감히 꿈도 못 꿀 높은 경지의 무공들이었고, 그래서 냉대손은 내 인생에 이런 기회는 다시없을 것이라며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중이다.
분명 구장질 등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엔 오칠에게 가식적인 충심이었던 것이, 이제는 점점 진심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세상에 누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단한 무공을 가르쳐주겠냐, 하는 생각을 하면 절로 감복하는 마음이 들 수박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칠이 거지 아이들을 맡기는 것에도 크게 반발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오칠이 시키니 겁이 나서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함부로 무공 드러내지 마.”
냉대손 등에게 가르친 무공은 배화교의 무공.
물론 배화교의 무공이라 해서 전설처럼 사악한 것은 아니다. 뭐, 몇 가지는 진짜 사기(邪氣)를 가득 뿜어내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싶어서, 오칠은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말라고 자제를 시켜두었다.
사실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왕공단 등은 예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으니까 말이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 있으면 괜히 혼자서 골머리 앓다가 주화입마 같은 거 걸리지 말고 물어보러 와.”
“예, 주군. 그럼 가보겠습니다.”
냉대손은 깊이 허리를 숙이고 나가서는 십여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주점을 떠났다.
그 아이들은 이제 냉대손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나, 혹은 그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조금 미안해지네.”
냉대손이 사라지자 오칠은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물론 그 얼굴에는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일 뿐인 것이다.
“인마, 애들 이제 그만 데려와.”
오칠은 출출하다는 그를 위해 요리를 해서 들고 나오는 종삼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데려오는 거 아니라니까요.”
“그럼 그 녀석들이 어떻게 알고 여길 오는 거냐?”
“그야 저도 모르죠. 혹시 녀석들 사이에 소문이 난 게 아닐까요?”
“무슨 소문?”
“오칠님께 가면 일자리를 준다더라, 하는 소문 말이에요.”
오칠은 나는 몰라요, 하는 얼굴로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는 종삼을 한 대 때려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오칠의 표정을 보고 내심을 눈치 챈 종삼이 얼른 뒤로 물러나버렸다.
“진짜 저는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
오칠은 그런 종삼이 더욱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다가 젓가락을 들었다.
코끝에서 아른거리는 음식 냄새를 계속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에 대한 욕구는 완전히 돌아온 걸까?’
문득 오칠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신경 쓰지 말자며 먹기 시작했다.
쩝쩝쩝.
“맛있죠?”
종삼의 물음에 오칠은 입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오칠이 먹고 있는 것은 동안자계(東安子鷄)라고 하는 닭볶음 요리였다. 종삼이 요리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인데, 두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맛을 내는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오칠의 말대로 종삼은 확실히 요리 쪽에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근래에 종삼이 무공을 가르쳐달라는 말을 안 하는 것도, 그런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요리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되면 행복을 느끼고, 더욱 빠져들게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탁.
오칠은 순식간에 접시를 비우고, 종삼을 쳐다봤다.
“네 녀석이 데려온 애들로 인해 이리 골머리를 썩일 줄 내가 어찌 알았겠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사실 종삼은 할 말이 많았다.
그가 몰래 음식을 나눠주는 것을 알게 된 오칠이 아이들을 데려오라 했고, 그러다 보니 은근히 소문이 나서 대여섯 명에 불과하던 아이들이 십여 명으로, 다시 기십 명으로 불어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이 불어나서 매일같이 주점을 찾아오자 감당하기 힘들어진 오칠은 왕공단 등에게 아이들의 일자리를 지시했고, 그 소문이 퍼지자 다시 많은 아이들이 오칠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물론 그 근원을 따지자면 종삼의 존재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초나 과정은 전적으로 오칠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간 오칠에게 맞을 것 같아서, 종삼은 그저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의 말만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막을 방도도 없잖아요.”
“…….”
오칠은 왜 없어! 라고 말하려 했다.
그냥 몇 놈 두들겨주고 쫓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겁이 나서라도 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거 이제 와 후회하면 뭐 하겠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찾아오는 애들을 조금 전처럼 냉대손 등이나 금 문주에게 맡기면 되고, 자신에게 크게 문제되거나 귀찮아질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
드륵.
갑자기 오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갔다 와야겠다.”
“예? 갑자기 어디를요?”
“알 거 없어.”
오칠은 밖으로 나가려다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방으로 갔다.
그런데 방에는 그가 찾는 것이 없었다.
“묵철곤 어디 있어?”
오칠이 방에서 나오면서 묻는 말에 종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묵철곤이라니요?”
“검은색의 쇠몽둥이처럼 생긴 것 말이다.”
“아~!”
종삼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곧 뭔가 죄를 지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중요한 거예요?”
“어디 있는지나 말해.”
종삼은 황급히 주방으로 뛰어갔고, 오칠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가 황당하다는 듯 종삼을 쳐다봤다.
“묵철곤이 왜 거기 있어?”
“그게요…….”
묵철곤은 아궁이 밑에 반쯤 틀어박혀 있었다.
종삼의 말대로라면 불붙은 장작을 들추고 하는 등등의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불속에 넣어도 달궈지지도 않고, 쓰기가 편했다나.
“생긴 것도 투박하고 해서 별거 아닌 줄 알았어요.”
오칠은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외견상 묵철곤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잘 다듬어지지 않았고, 그냥 우중충한 검은색이라 더욱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오칠은 묵철곤을 아궁이에서 빼들어 바닥에 탁탁 털었다. 역시 만년묵철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작은 그을음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 물건 함부로 건드리지 마.”
“예.”
오칠은 경고를 하는 정도로 끝내고 주점을 나왔다.
“늦으세요?”
잘못한 것이 있어서인지 종삼은 밖에까지 따라나와 물었다.
“몰라.”
그 말만을 하고서 오칠은 빠르게 주점으로부터 멀어졌다.
“도대체 어딜 가시는 거야?”
종삼은 오칠이 순식간에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더구나 방에 두고서 건드리지도 않던 그 묵철곤이라 하는 쇠몽둥이를 가지고 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누구랑 크게 싸우려고 그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종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껏 모든 상대를 맨주먹으로 해결한 오칠이 누가 무서워서 무기를 들고 나가겠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게다가 이왕 무기를 가져갈 생각이면 모양이라도 그럴듯한 칼이나 구해서 가져가지, 그 투박하기 그지없는 쇠몽둥이로 뭘 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종삼은 오칠의 갑작스런 외출에 대한 궁금증을 지워버렸다.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도 없으니, 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속편한 일인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종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점으로 들어갔다.
* * *
무한 북쪽으로 솟아 있는 산 중턱으로 자잘한 나무들이 우거지고, 그 앞쪽으로 툭 튀어나온 공터 위엔 오래된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척 보아도 오랜 풍상에 시달린 정자는 거미줄이 쳐 있고 먼지가 쌓여, 외견만으로도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에서 멀어져 있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모혁.
천목보의 경 보주는 산 중턱에 세워진 그 오래된 정자에 서 있었다.
“…….”
그는 저 아래로 펼쳐진 무한 동북구 지역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보통 사람은 그저 깨알처럼 보일 뿐인 전경이지만, 경 보주에게는 달랐다. 그는 보통 사람의 열 배는 더 세밀하게 전경의 내부를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놀라운 시야를 이용해 누군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오래 걸리는군.’
경 보주는 한 식경 전에 오칠에게 이곳으로 오라는 전음을 보냈었다.
물론 오칠이 있는 주점에서 이곳까지는 뛰어도 반 시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건 보통사람의 걸음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경 보주 정도의 고수에겐 일각이면 충분한 거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의 짐작대로 오칠이 그 누군가라면, 충분히 자신과 비슷한 시간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는 듯 아직 정자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일 수 있겠지.’
경 보주는 오칠과 만난 이후로 주체하기가 힘들었던 흥분과 마음의 부담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컸다. 그의 선대로부터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존재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도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