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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02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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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02화

파계 5권 - 2화

 

 

 

 

 

오칠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모혁을 보자마자 노백을 살려야겠다고 말했다.

 

“방법은 있겠지?”

 

“무엇보다 안찰사를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의 최고 권력자는 안찰사(按察使)가 아니었다.

 

그의 위에는 성의 최고 행정 기관인 승선포정사사(丞宣布政使司)의 수장인 포정사(布政使)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너무 높이 올라가면 일을 정교하게 처리하기가 힘들어지는 법이다. 적당한 선에서 일을 추진하면 그 위와 아래의 문제는 알아서 조율이 된다고나 할까.

 

“그는 어떤 사람이지?”

 

안찰사의 인간됨을 묻는 것이었다.

 

“중심을 잘 잡는 인물입니다. 적당하게 똑똑하고, 적당하게 권력을 휘두를 줄 아는 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

 

“명령만 내리시면 두 시진 내에 준비할 수 있습니다.”

 

대역죄에 얽힌 인물을 빼돌리는 일이다.

 

아무리 천목보가 이전부터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에 쓰이게 될 금액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경모혁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만큼 천목보가 가진 재력이 엄청나다는 것이고, 오칠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직접 협상을 하겠다.”

 

“오칠님께서 상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모에 얽힌 일이다. 아무리 노백이 곁가지에 걸린 것뿐이라 해도 권력자들은 자신의 목줄이 걸린 일에는 신중해지게 되어 있어. 그러니 내가 직접 만나서 딴생각 못하도록 만들어놓겠다.”

 

오칠은 권력자들이 때에 따라 얼마나 영악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자들에게는 돈뿐만이 아니라 적당한 공포심을 심어줄 필요도 있다. 오칠은 안찰사가 자신의 제의를 두말 않고 받아들일 정도의 공포를 심어줄 능력이 있는 것이다.

 

“두 시진 뒤에 안찰사와 만날 약속을 잡아.”

 

오칠은 이제부터 노백이 고문당하지 않도록 손을 써놓으라는 것과 안찰사를 설득한 뒤에 노백을 어찌 바꿔치기할지, 그리고 그 이후에 노백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라는 등등의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이봐요!”

 

경모혁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전옥서의 입구를 나서던 오칠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손여설이었다. 시장에서 행인에게 전옥서의 위치를 물어 찾아온 그녀가 지금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제형안찰사사에서 보자.

 

오칠은 전음을 마지막으로 대화를 끝내고 경모혁을 보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다가오는 손여설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리면 어떡해요?”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요. 우린 아직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고요.”

 

오칠은 손여설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예쁜 얼굴이다. 이제 막 스물이 되어 향긋한 꽃을 피워가기 시작했고, 검룡천화장이라는 배경 등 여러 기타적인 요건을 보자면 어떤 남자도 마다할 수 없는, 아니 먼저 접근하여 환심을 사고 싶을 정도의 여인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칠에게 손여설은 그저 여인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이성의 존재 중 하나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자신에게 관심 있다는 걸 이렇듯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돌아가.”

 

“예?”

 

“장원으로 돌아가라고.”

 

손여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와 실망감을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왠지 갑자기 몸이 굳고, 입이 열리지가 않았다.

 

“난 너한테 관심 없어.”

 

오칠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손여설의 귀를 따갑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그녀는 왜 자신의 몸이 굳었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오칠의 눈 때문이었다. 너무나 차갑게 빛나는 그 눈에 겁을 먹은 것이다.

 

“난 나를 성가시게 만드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아. 여자를 때리지는 않지만, 때리지 않고도 굴욕을 주는 방법은 많이 알고 있거든. 하지만 검룡천화장과의 협정이 있기 때문에 참는 거다.”

 

손여설은 어깨를 잘게 떨었다.

 

오칠의 저 아름다운 얼굴에 드리워진 사악함에 두려움을 느끼고 몸서리를 치는 것이다.

 

“돌아가. 한 번만 더 나를 귀찮게 하면 협정이고 뭐고 가만두지 않겠다.”

 

오칠은 돌처럼 굳어버린 채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는 손여설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망연히 서 있는 그녀를 남겨두고 주점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 * *

 

 

 

 

 

주점으로 돌아온 오칠은 우선 여행 중에 먹을 수 있게 음식을 만들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만히 방에 누워서는 경모혁과 만날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되었군.’

 

시간이 되자 오칠은 방을 나와 종삼에게서 음식이 들어 있는 커다란 꾸러미를 받아들고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뭐지?”

 

입구에서 경모혁을 만난 오칠은 황금이 들어 있을 커다란 상자가 아닌 작은 목합을 받아들고 의아해 했다.

 

“묘안석입니다.”

 

묘안석(猫眼石).

 

돌이지만, 고양이 눈 모양처럼 생겨 천금의 가치를 지녔다고 하는 보석이다. 그것도 다섯 개나 들어 있다고 하니, 이 작은 목합은 황금으로 가득 채운 금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진 것이다.

 

오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목합을 소매 자락에 집어넣고 한 병사의 안내를 받아 안찰사가 있다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찰사의 집무실로 들어간 오칠은 한 식경도 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오칠을 안내했던 병사는 오칠이 밖으로 나오면서 열려진 집무실의 문틈으로 창백하게 질린 안찰사의 얼굴을 보았다. 그건 애써 감추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지독한 공포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병사는 집무실에서 결코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기이한 협상이 있었다고 추측했고, 자신이 본 것은 절대 입 밖으로 흘려서는 안 된다는 걸 확신했기에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으며, 이후로도 절대 떠올리지 않았다.

 

“오늘 해시(亥時:밤 9~11시) 말.”

 

안찰사와 협상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오칠은 경모혁에게 노백을 옥에서 꺼낼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제형안찰사사 산하 전옥서에선 작은 소란 하나가 일어났다. 감옥에서 죄수들의 탈출 기도가 있었고, 그 와중에 몇 명의 죄수와 옥졸들이 죽고 다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드러난 사망자의 신원에는 역모에 얽혀 잡혀 들어온 각사원외랑(各司員外郞)의 양자이자, 전 영군도위(領軍都尉)였던 노백의 이름도 있었다.

 

 

 

 

 

* * *

 

 

 

 

 

장강의 물결은 옅은 황톳빛으로 일렁였다.

 

어느 곳은 홀쭉하여 거칠고, 어느 곳은 하염없이 퍼져서 흘러가는 듯 마는 듯 느긋하기만 했다. 저 멀리 낚싯대를 걸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강태공이 있는가 하면, 한쪽엔 사람을 가득 실고 장강의 물고기 모두 잡아보겠다는 욕심 가득한 어선도 있다.

 

‘장강은 길고 길어 장강이라 했지?’

 

난간에 기대어 드넓은 장강의 한곳을 바라보며 오칠은 눈을 깜빡였다.

 

길기만 하다는 장강이 육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으니, 어찌 길기만 하다 할 수 있을까.

 

“배고프지 않냐?”

 

오칠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얼굴에 눈과 입부분만 뚫려 있는 하얗고 동그란 가면을 쓴 사내에게 물었다.

 

노백.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는 노백이었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노백은 눈을 감고서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웃음을 지었다.

 

“때가 된 것 같기는 하군요.”

 

“그렇지? 그럼 뭐든 먹어야겠군.”

 

오칠은 아직 완전히 몸이 온전치 않은 노백에게 가만히 있으라 하고는 선실에서 보따리를 가지고 나왔다.

 

“흠, 이번엔 뭘 먹을까?”

 

무한을 떠난 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 음식들이 가득한 보따리를 살펴보며 오칠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종삼은 기특하게도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맛을 잃지 않는 것들로만 만들어서 어떻게 보면 지루한 수로행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무공 하나 정도는 가르쳐줄까?’

 

오칠은 무한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리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물론 그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요리 실력과 탁월한 장사 수완으로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종삼이 아직까지 무공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만약 종삼이 원한다면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몸은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기는 한데, 역용술은 어때?”

 

바싹 튀긴 오리 다리를 뜯어 물고, 향이 좋은 죽엽청을 한 모금 들이킨 오칠은 그의 앞에 앉아 역시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노백에게 물었다.

 

“이제 좀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너 생각보다 이해력이 좀 떨어진다.”

 

노백은 웃었다.

 

오칠의 말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상대의 기분 같은 것은 개의치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여과 없이 내뱉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노백은 그런 오칠의 말투에 익숙해져가고 있고, 그 점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가식 없는 솔직함이고, 그래서 의심할 필요 없이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오칠이 그를 위해 목숨을 내준다느니, 누구도 구출할 수 없는 사지에 잡힌 그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느니 하는 문제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믿음이었다.

 

노백이 판단해볼 때, 오칠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의동생이라 해도, 오칠은 자신의 목숨을 걸 인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았다. 누가 자신을 위해 죽는다는 건 그 자신도 원치 않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겠지?”

 

“부분 부위에 한해서는 반각 정도 유지할 수 있을 듯합니다.”

 

“겨우 그 정도야?”

 

오칠은 정말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다시 술 한 모금을 들이켰다.

 

하지만 오칠의 타박은 약간 억지스런 면이 강했다. 그가 말하는 역용술이란 것은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는 등의 수준 낮은 변용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면환용공(千面換容功).

 

내공을 이용해 얼굴의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기법이자 내공심법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기를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오 성에 이르렀다고 해도 한 시진을 겨우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의 소모가 큰 기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기법을 고작 사흘 만에 이해하고 운용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노백의 노력과 재능은 충분히 인정해줄만 한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이 천면환용공은 특이하고, 난감한 상황을 염두에 둔 대비용이었다.

 

사흘여 전, 노백은 죽음을 가장하여 전옥서에서 빠져나왔지만,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다닐 수 없는 처지였고, 그래서 경모혁이 준비한 하얀색의 가면을 써야만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가면은 보기에는 섬뜩한 모양이지만, 능력 있는 장인이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서 마치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다행히도 노백은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가면을 쓰게 되면 이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관병이나 포쾌의 의심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가면을 벗어야 하고, 혹시라도 노백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경우에 대비하여 아주 잠깐이라도 얼굴을 변형시킬 수 있는 천면환용공을 익혀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천면환용공은 희한하게도 천원무극단공(天元無極丹功)이라고 하는 백팔마공을 익히기 위한 기초심법이었다.

 

천원무극단공은 극성에 이르기 전에는 성취가 높아질수록 내공을 운용할 때 피부가 점점 붉어지는 단점(상대가 내공의 운용 유무를 알아챌 수 있다)을 가진 기공이었다.

 

그러나 오칠은 폭발시키듯 공력을 발산하는 천원무극단공을 바탕으로 펼칠 수 있는 탄섬보(彈閃步)가 창을 사용하는 노백에게 가장 효용성 있는 신법이라 판단하여 익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오 형님, 머리는 왜 그렇게 풀어헤치신 겁니까?”

 

둘 다 배를 채우고 오칠이 보따리를 선실에 두고 오자 노백이 그동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물었다.

 

오칠은 무한을 떠나면서 옷도 회색빛의 평범한 경장으로, 그리고 단정하게 틀어 올리고 있던 머리는 얼굴의 대부분을 가릴 정도로 길게 풀어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면 세상 남자들이 얼굴을 들고 다니질 못하잖아.”

 

“…….”

 

노백은 입을 다물었다.

 

오칠의 진지한 얼굴은 그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란 걸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백이 코웃음 칠 수도 없는 것은 진정 오칠의 얼굴은 자신이 보아도 너무나 빼어나기 때문이었다.

 

‘나란 녀석도 질투를 하는군.’

 

노백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이 원하는(빼어난 얼굴과 능력 등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오칠이었다. 그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그에게 질투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노백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그렇게 완벽한 것 같은 오칠에게도 부족한 뭔가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감성.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이것일 것이다.

 

인간적 감성.

 

말과 행동에 조금의 빈틈도 없는 것 같은 오칠에게서 노백은 그러한 인간적 감성을 느낄 수가 없었다.

 

물론 오칠이 누구라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진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그처럼 완벽한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는 걸 노백은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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