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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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4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01화
파계 5권 - 1화
“머리 조심하십쇼.”
앞장 서 길을 안내하는 옥장(獄長)은 어두컴컴한 감옥 내부의 천장이 갑자기 낮아졌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르는 오칠이 머리를 부딪칠까 염려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밤을 낮처럼 볼 수 있는 오칠은 옥장의 충고가 필요 없었고, 어서 길이나 안내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순순히 잡혔다고는 해도 이런 곳에 가둘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오칠이 안내를 받아 들어온 감옥은 죄목이 무거운 자들을 가두는 곳으로, 기존의 감옥보다 더 밑으로 땅을 파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오칠로서는 노백을 왜 이런 곳에 가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노백은 역모와 관련하여 갇힌 것이기에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닐 것이지만, 순순히 오랏줄에 묶였으니 이런 곳에 가두지 않더라도 도망칠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여깁니다요.”
얼마나 오래되었을지 알 수도 없는 두꺼운 쇠문들이 좌우로 십여 개나 있었고, 옥장이 멈춰 선 곳은 그런 쇠문들 중에서도 가장 끝 쪽이었다.
“열어.”
오칠의 명령에 옥장은 얼른 열쇠를 빼 들어서 쇠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자물쇠 구멍에 끼워 넣었다.
끼릭끼릭 하는 비틀린 소리에 이어 두꺼운 자물쇠가 풀려 나왔고, 옥장은 쇠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고서 있는 힘껏 용을 썼다. 하지만 이곳의 문은 그 무게만 수백 근이 넘는 것들이었고, 옥장 혼자서는 결코 열어젖힐 수가 없었다.
옥장은 난감했다. 사안이 사안이어서 그가 직접 오칠을 안내했고, 그래서 쓸데없는 눈과 귀가 생기지 않도록 옥졸들을 대동하지 않았는데 이런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놔두고 나가 있어.”
“예? 하지만…….”
옥장은 자신보다 더 작은 몸집을 가진 이 아름다운 사내가 쇠문을 어찌 열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지만, 중한 죄인을 만나는 그를 그냥 방치해도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오칠이 죄인과 함께 탈출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곳은 출구가 딱 한 곳뿐이고, 그래서 탈출하기가 하늘을 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그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가정일 뿐이었다.
‘위에서 뭐든 다 해주라고 했으니…….’
고민은 길지 않았다.
옥장은 위에서 지시받은 것도 있었기 때문에 알겠다며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입구 쪽으로 물러나버렸다.
쿠쿵! 쿠쿠쿠쿠쿵!
옥장이 온 힘을 다해도 끄떡도 않던 쇠문은 오칠이 한 손으로 당기는 힘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쉽게 열렸고, 오칠은 그대로 캄캄한 옥방으로 들어섰다.
“…….”
오칠은 잠시 침묵했다.
옥방은 매우 좁았고, 그래서 양쪽 손목과 발목에 굵직한 쇠고랑을 차고서 벽에 매달려 있는 노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왜 오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걸까?
그건 노백의 몰골 때문이었다.
몇 년간 갈아입지도 않은 것처럼 찢겨지고 해져버린 옷에다, 전신 곳곳에 물들어 있는 선혈. 오칠이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축 늘어져 있는 노백의 상반신은 광인처럼 풀어헤쳐진 긴 머리칼이 보기 흉하게 뒤덮고 있었다.
오칠은 말도 않고 노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칼을 좌우로 헤집고서 푹 꺾여 있는 고개를 바로잡아 들어올렸다.
“…….”
노백의 눈동자는 오칠을 보고 있었다.
반응도 없기에 정신을 잃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오칠은 노백의 머리 위쪽의 백회혈에 손을 얹고 기를 흘려 넣어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근맥이 절단되거나, 기혈이 엉키거나 하는 문제는 없었다. 그저 외적으로 고문을 당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꽤 심하게 고문을 당했는지 기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오칠은 부드럽게 공력을 움직여 노백의 내부를 안정시켜주었다.
“인마, 왜 아무 말도 안 해?”
머리에서 손을 뗀 오칠의 물음에 노백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잘 오셨소, 형님. 그런 말도 못하냐? 이 자식, 그렇게 안 봤는데 싸가지가 없네.”
노백은 다시 웃었다.
“의동생이 이 지경인데 농담이 나옵니까?”
오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당한 게 아니잖아.”
“역시 형님답습니다.”
노백은 이기적일 정도로 솔직한 오칠의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원래 오칠이 이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고, 걱정되어 미치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말이다.
“도망치지 왜 순순히 잡혀 들어왔냐?”
“역모에 걸려들었습니다.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요. 전 평생 도망치며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지극히 노백다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신분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을 것이고, 나라의 힘이 미치지 않는 국외로 나갈 수도 있으며, 혹은 산으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그깟 역모의 굴레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니 평생 도망쳐야만 한다는 노백의 말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그의 혈육과 같았던 양부가 휘말린 역모에 아무런 죄도 없이 얽혀서 이렇듯 잡혀와 고문까지 받았지만, 그냥 순순히 죽어주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너 병신이냐?”
“…….”
오칠은 그를 바라보고 있는 노백에게 짜증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너 같은 놈만 보면 구역질이 난다느니, 하는 의동생에게는 절대 할 수 없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한참이나 쏟아 부었다.
“…….”
말라붙은 핏물과 자잘하게 긁힌 상처로 인해 노백의 표정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 얼굴은 분노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무리 싸움에 패하고 술을 먹으면서 형제의 의를 맺었지만, 어찌 의형이란 자가 의동생에게 이처럼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날 욕하고 조롱하기 위해 찾아온 겁니까?”
노백은 화난 심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그런 노백의 반응에 오칠은 히죽 웃어주었다.
“아직 완전히 힘을 잃은 것은 아니구나.”
“……?”
“죽지 마라.”
“……!”
“죽지 마, 인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말 그대로다. 죽지 말라는 거야.”
“이미 결정된 겁니다.”
노백은 슬며시 오칠의 시선을 피하면서 자신의 목숨은 이제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오칠은 그런 노백의 생각을 용납할 수 없었다.
“살고자 하면 살 수 있어. 왜 죽으려고 하냐?”
“살아서 무엇 합니까? 나라의 녹을 먹던 자가 대역 죄인이 되었는데, 무슨 낯으로 살아가란 말입니까?”
“미친 자식! 네가 나라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장수가 됐냐? 포쾌로 좌천까지 됐는데도 꿋꿋하게 임무에 충실한 것이 황제에게 상이라도 받고 싶어서 그런 거야?”
“…….”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 때문에 노백이 포쾌로 남아 있는 게 아니란 걸 오칠은 알고 있었다.
“그래! 백 보 양보해서 네 집안이 오랫동안 대대로 녹을 받았고, 나라의 은혜를 입으며 살아왔기에 그에 보답하는 의미로 충을 지키는 것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럼 넌 뭐냐? 네가 세상에 살아 있는 의미는 뭐냔 말이다.”
“…….”
“개똥밭을 뒹굴어도 이승이 났단다. 네가 죽으면 충이고, 의이고 그게 다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것이 되는 거다.”
“그건 형님의 생각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충과 의가 목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 그런 사람도 있지. 하지만 분명한 진실은 어차피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거다. 너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있기에 세상이 있는 것이고, 그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걸 인정하라는 거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꼭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정도로 목숨은 가볍지 않다. 죽지 않을 방도가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거다.”
“…….”
“말해봐라. 무엇 때문에 너의 목숨을 그렇게 가볍다고 확신하는 거냐? 역모? 그것이 네 목숨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는 말이냐? 너의 양부가 네 죽음을 기껍게 생각할까? 황제란 자가 충의가 가득한 네 죽음에 감동이라도 받을 거 같으냐? 헛소리야! 웃기는 소리라고!”
오칠은 자신의 메마른 감정을 채찍질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갑작스런 감정의 상승은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다.
과거 그의 가문이 무엇 때문에 멸문했고,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오칠은 어떻게 노력해왔으며, 죽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해왔던 지난 삶의 기억 때문이었다.
한데, 노백을 보라.
살기 위한 티끌만큼의 노력도 없다. 죽음이란 그저 놓아버리면 되는 그런 하찮은 것이라는 노백의 모습이 오칠은 역겨웠고, 한편으로는 불쌍했다. 그리고 그의 굳어버린 사상을 오칠은 절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라. 과거의 네가 충과 의를 위해 살았다고 하면, 이제 그런 너는 죽었다고 생각해라. 이제부터 그런 너는 죽은 것이고, 너 자신만을 위해 사는 새로운 네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란 말이다.”
“그럴 수 없습니다.”
노백의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그럴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절망감 가득한 표정을 오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뭐가 그럴 수 없어!”
오칠은 노백의 산발한 머리카락을 거칠게 움켜잡아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붉은빛이 번득이는, 분노와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노백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세상에 그럴 수 없는 건 없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냥 하면 되는 거다.”
“형님, 전… 저는…….”
노백의 눈동자는 슬펐다.
지금껏 늘 딱딱하게만 굳어 있던 그의 눈동자는 너무나 슬프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백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잡은 오칠은 살기와 분노를 지우고 웃으며 말했다.
“도저히 널 위해 살 수 없다고 한다면, 나를 위해 살아라. 나의 아우이니 나의 든든한 아우로서 사는 거야. 이 형님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아우가 되라. 넌 이미 한 번 목숨을 포기했었으니 앞으로 어떤 죽음의 상황이 와도 두렵지 않을 테지. 그 두려움 없는 삶을 내게 다오. 난 그런 네가 필요하다.”
“…….”
노백은 멍하니 오칠을 바라보았다.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지금껏 그런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된 그의 양친에게도, 무과에 급제하여 황궁에 들어가 장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고 무한의 성문교위가 되었을 때도, 결국 포쾌가 되었을 때도 자신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오칠처럼 절실하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양부조차 좌천되어 무한으로 가는 그에게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야 하고, 죽은 부친의 유언을 잊지 말라는 의미로 그를 위로했을 뿐이었다.
‘난 사실 죽기 싫었던 건가?’
노백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자신의 감춰진,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실한 속마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오칠이 그런 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준 것이다. 진실이 무엇인가를, 자신이 진정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준 것이다.
‘난 살고 싶었던 거다!’
노백은 오칠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머리를 크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오칠을 향해 말했다.
“살고 싶습니다.”
“…….”
“형님, 전… 전 살고 싶습니다!”
오칠은 웃었다.
그리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세상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죽을 수 있다,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결국 그 내면에는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막아주기를, 말려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널 여기서 꺼내주겠다. 반드시 널 죽지 않게 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예, 형님.”
노백은 조금의 의심도 없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칠은 그런 노백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몸을 돌려 옥방을 나와 경모혁을 만나기 위해 감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