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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9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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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96화

파계 4권 - 21화

 

 

 

 

 

“그를 만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남궁관보는 저 뒤로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에 감싸이고 있는 경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제갈모학은 그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천목보는 사파의 기치를 내걸고 있을 때도 흑천맹의 가입을 거부했어.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지.”

 

“하지만 그래서 더욱 천목보를 놓칠 수 없는 게 아닙니까?”

 

남궁관보는 제갈모학이 직접 무한으로 온 것도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사실 그런 천목보였기에 정파로 성향을 바꾸는 걸 이해할 수 없었네. 그래서 내가 경 보주를 만나서 그 의도를 파악해보려고 한 거고.”

 

“…….”

 

“하지만 그를 보고 난 알았네. 그는 바꾼 것이 아니야.”

 

“……?”

 

“그저 오칠이란 자의 뒤를 따라갈 뿐인 거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경 보주는 진짜로 오칠이란 자에게 패배한 모양이야. 그것도 마음으로 승복될 정도로 완벽하게.”

 

남궁관보는 그 특유의 냉막한 표정 때문에 아무런 동요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제갈모학을 따라온 각주들처럼 놀라고 있었다. 그저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자가 그렇게 대단한 자일까요?”

 

적각(赤閣) 각주가 의문이 든다는 듯 물었다.

 

그러나 제갈모학의 대답은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오늘 군자검을 패배시킨 검법만 보자면, 그리고 검막을 펼친 걸 보자면, 그는 젊은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진 자야. 어쩌면 경 보주를 압도할 정도로 무공이 높은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자가 어떤 자인지를 알 수가 없었네. 그가 정파인인지도, 사파인인지도 파악할 수 없었어.”

 

남궁관보 등은 오칠이 펼친 검법이나 내공 성향은 매우 도교적인 느낌이었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제갈모학이라고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뛰어난 지모에 버금갈 정도의 무공 실력도 가지고 있었으니, 오칠의 무공 성향을 통해 그가 도교적 무공을 익혔다는 걸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 것이었다. 한데 그걸 알고도 사파니 정파니 하는 문제부터 명확하지 않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자는 우리의 큰 적이 되는 겁니까?”

 

제갈모학은 또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그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

 

“하지만 앞으로 알게 되겠지. 이제 우리는 그를 차근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감시하게 될 테니까.”

 

제갈모학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남궁관보 등의 각주들과 함께 말에 올라 흑천맹이 있는 산동 거야(巨野)를 향해 빠르게 움직여나갔다.

 

 

 

 

 

* * *

 

 

 

 

 

“제갈모학과 그 일행은 조금 전에 떠났습니다.”

 

유신명은 공야정진에게 보고하고서 말안장에 그의 창을 끼어 걸었다.

 

그리고 공야정진이 떠나자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공야정진은 경가장의 저 안쪽, 심처라고 불리는 오칠 등의 주요 인물이 거처하는 곳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인군(人群) 군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네.”

 

“그라시면?”

 

“오 장문인 말일세.”

 

“어제 잠시 이야기를 나누셨을 때 무슨 특별한 말이라도 있었습니까?”

 

유신명은 거의 막바지로 넘어가는 술자리에서 오칠이 공야정진에게 조용히 무슨 말을 했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뭔가 중요한 대화였는가 싶어 묻지 않았지만, 지금 공야정진의 표정을 보니 궁금증이 커져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별말 없었네. 그냥 구경도 할 겸 맹을 찾아오겠다고 하더군.”

 

“그냥 오겠다고 한 겁니까?”

 

“그렇네. 그 말뿐이었어.”

 

“백천맹에 가입하라는 말씀은 하셨습니까?”

 

“했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자신이 맹을 찾아가면 다시 논의해보자더군.”

 

“천목보가 그랬듯, 무적 정의파도 말만 정파를 자처하고 맹에는 가입하지 않을 생각이 아닐까요?”

 

“그럴지도. 하지만 그자는… 모든 게 모호하더군.”

 

“……?”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어. 난 그가 정파인인지, 사파인인지도 분명하게 구분 지을 수가 없었네.”

 

남궁관보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움찔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야정진은 그 이상으로 생각이 깊고 지모가 뛰어나니, 자신이 생각한 것도 충분히 감안하고 말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럼 무적 정의파는 우리의 적이 될 수도 있겠군요.”

 

“글쎄, 아직은 알 수가 없네. 일단은 그와 무적 정의파를 지켜보도록 하지. 그가 맹으로 찾아오면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고, 틈을 만들어 속내를 드러내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공야정진은 그 말을 끝으로 경가장의 심처가 있는 방향에서 시선을 돌렸다.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말하지 않은 몇 가지 의문들이 있었다.

 

개파 행렬을 빙자하여 비무대로 사용할 쇠판을 미리 깔아둔 것이라던가, 난데없이 화웅섭이 나타나 현철병기를 선물로 준다던가, 그리고 갑자기 비무를 연 것이라던가. 생각해보면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경모혁이 오칠에게 철저히 승복되어진 모습을 보였지만, 무적 정의파의 탄생 자체부터가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이든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공야정진은 유신명 등의 군장들과 함께 말에 올라 백천맹이 있는 호북 은시(恩施)를 향해 말을 몰아갔다.

 

 

 

 

 

제42장. 그들은 간웅(奸雄)을 원치 않는다

 

 

 

 

 

경가장의 심처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건물에 정갈한 분위기로 꾸며진 방.

 

그곳에서 오칠은 매적화, 매청화 자매의 시중을 받으며 옷을 입고 있었다.

 

“기억하겠지?”

 

매 자매가 입혀주는 대로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던 오칠이 문득 물었다.

 

“예, 오칠님.”

 

지금 오칠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듯했지만, 사실은 매 자매에게 전음으로 배화교 백팔마공의 하나인 섭혼요마신공(攝魂妖魔神功)의 구결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왜?

 

열락문은 오칠이 배화교의 교주임을 알게 된 후에도 충성을 맹세했고, 그래서 오칠은 그에 상응하는 대우로 배화교 일가의 지위를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열락문의 대표 무공인 색혼공과 월음신공 등은 이백여 년 전, 섭혼요마신공을 익혔던 가문의 하급 무공들이었다. 하니, 그녀들은 이미 배화교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따진다면 뒤늦게 진실을 안 철근문의 금철산이나 사두문의 왕공단 등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상태로 충성을 맹세하고, 그 무공을 전수받았음은 물론, 열락문처럼 일가의 지위를 받은 것 자체가 억지스러운 것이었지만, 지금에서 그게 뭐 중요한 일이겠는가.

 

이미 그들은 오칠로 인해 배화교의 일원이 되었고, 스스로 선택했다고 하며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데 말이다.

 

다만 금철산은 배화교의 무공이 아니라, 오칠이 소림사 장경각에서 외우고 익힌 무공을 전해 받았기에 이렇게까지 인연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소림사의 무공이 아닌, 장경각에서 소장만 하고 있던 불교적 색깔이 없는 무공).

 

그러나 금철산은 이미 오칠을 은공으로 여기고, 마음으로 승복했기 때문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오칠의 숨겨진 배경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들은 백천맹이나 거대 문파들이 느끼는 마교에 대한 거부감을 공유하고 있지 않기에 쉽게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거대 세력들이 흔히 말하는 마교의 횡포와 두려움은 전혀 현실감이 없는 것들이니까.

 

오히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오칠의 존재가 더욱 강력하게 그들의 의지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되었습니다.”

 

매 자매가 뒤로 물러나자 오칠은 허리에 부채를 꽂고, 왼쪽 허리엔 묵철곤을 찬 뒤, 한쪽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 전신을 비춰보았다.

 

무늬 없는 백의 비단옷일 뿐이지만, 고급 비단으로 몸에 딱 맞춘 크기라 더할 수 없이 어울려 보았다. 사실, 그의 외모가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뽐내기 때문에, 의복은 그저 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좋군.”

 

오칠은 만족해하고는 매 자매에게 섭혼요마신공으로 펼치는 월하요무편(月下耀舞鞭)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잘 보고 외워.”

 

오칠은 나중에 가르쳐줘도 된다고 말하는 매 자매에게 나중에 시간을 낼 정도로 자신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과 함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채찍을 쓰는 것이 익숙하니 다른 설명은 안 해도 되겠지?”

 

오칠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은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목을 시작으로 손가락까지 그 움직임은 참으로 기묘하고 요사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어때?”

 

한참 손목을 움직이던 오칠이 물었다.

 

매 자매는 잠시 낭패한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칠의 손동작을 외우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녀들이 천재가 아닌 이상 한 번 보고 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좀 변화가 많기는 하지만, 손목과 손가락이 이어지는 움직임을 잘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거야.”

 

오칠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집중해서 봐야 할 부분을 설명하고는 다시 월하요무편의 초식을 시현해 보였다.

 

손에는 채찍도 쥐어져 있지 않았지만, 오칠은 손동작만으로도 그 위력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도록 완벽하게 펼쳐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십여 번이나 지치지 않고 보여준 끝에, 외웠다는 매 자매의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열심히 수련해. 백천맹에 갔다가 돌아오면 실력을 확인해볼 테니까.”

 

오칠이 전해준 구결과 초식을 가만히 음미하고 있던 매 자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백천맹에 가시는 건가요?”

 

“응. 오늘 검룡천화장에 가서 불가침 협약을 맺고서 내일 출발할 거야.”

 

“저희가 보필하겠습니다.”

 

“안 돼. 백천맹에는 나 혼자 간다.”

 

“하지만…….”

 

매 자매는 수긍할 수 없다는 듯, 자신들은 오칠을 멀리 떠나보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오칠은 단호했다. 백천맹을 구경한다는 것은 핑계이고, 진정한 이유는 목운교를 만나기 위해서인데, 매 자매를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매 자매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같이 가길 원한 것이었다. 오칠이 만나고 싶어 하는 목운교란 여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목운교를 만나러 갔다가 오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오칠은 그녀들의 속내가 어쨌든, 절대 같이 갈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 경모혁도 경씨 삼형제 중 둘을 달려 보내 오칠을 보좌하게 하고, 무사들을 최소 백 명으로 하여 호위하려고 했지만 오칠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다. 오칠은 그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상은, 그 어떤 상황에도 구속 받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다녀올 때까지 무공이나 열심히 수련해. 난 힘없는 자들은 곁에 두고 싶지 않으니까.”

 

이왕 맺어진 인연은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이 생기는 건 절대 바라지 않았다.

 

오칠은 그래서 매 자매에게 섭하요마신공 등의 무공을 전해준 것이다. 물론 일가의 지위를 준다는 의미가 더 컸지만 말이다.

 

“보기 싫으니까 얼굴 펴.”

 

오칠은 울상을 짓는 매 자매를 잠시 바라보다 두 팔을 벌렸다.

 

매 자매는 곧 환하게 웃는 얼굴로 오칠의 품에 안겨들었고, 오칠은 그렇게 잠시 동안 두 여인을 안고 있다가 방을 나왔다.

 

오칠은 경모혁과 화웅섭을 포함한 배화교 여덟 가문의 수장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칠님을 뵙습니다.”

 

문을 지키고 있던 위맹한 눈빛의 무사들이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문을 열었다.

 

쿠쿠쿵.

 

건물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문이 열리고 수십 개의 횃불에 의해 밝혀진 대전의 모습이 드러났다.

 

뚜벅. 뚜벅. 뚜벅.

 

오칠이 들어서자 좌우로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화웅섭과 경모혁을 포함한 장년의 사내들이 일시에 오체투지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들 모두가 무적 정의파의 개파식에서도 한자리씩 자치하고 있던 얼굴들이었으니, 바로 이백여 년 동안이나 신분을 감추고 배화교의 명맥을 유지해온 일족의 수장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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