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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93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47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93화

파계 4권 - 18화

 

 

 

 

 

카칵―!

 

“…….”

 

“…….”

 

날카로운 격타음과 함께 남궁관보와 유신명의 신형이 다시 거리를 벌리고 섰다.

 

즐기듯이 탄성을 지르며 싸우던 유신명이나, 변함없는 냉막함으로 상대를 직시하기만 하던 남궁관보 모두 잠시의 침묵으로 서로를 응시하더니 조금씩 발끝을 움직였다.

 

뭔가 기회를 잡으려는 분위기.

 

두 사람은 이전까지의 격돌이 그저 탐색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듯 본격적으로 강력한 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후우―”

 

순간, 유신명이 길게 호흡을 내쉬었다.

 

핏―

 

섬광.

 

창날도 아닌, 헝겊으로 싸여진 목창이 쭉 내밀어지며 눈으로 좇기도 힘든 섬광으로 변해 남궁관보의 미간을 향해 뻗어나갔다.

 

쾅!

 

묵직한 격돌과 함께 남궁관보의 어깨가 흔들렸다.

 

하나, 충격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간에 당도하기 직전의 목창을 목검으로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화악―

 

이번엔 목검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목창을 따라 앞으로 쏘아지듯 찔러갔다.

 

목창과 같은 빠름은 아니나, 보통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는 속도로 가장 적절하게 순간을 포착하여 찔러가는 목검은, 순식간에 유신명의 요혈을 파고들려 했다.

 

티티티티티티팅.

 

하지만 유신명이 뒤로 물러나면서 창대를 좌우로 둥글게 흔들고, 목검의 진로를 연속으로 차단하면서 남궁관보는 확실한 공격의 틈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남궁관보는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에 강렬한 무언가가 응어리지고, 짧게 좌우상하로 움직이던 목검이 더욱 크게 반경을 넓혀가더니 십자 모양을 그리며 뭔가 묵직한 기운을 뿜어냈다.

 

후웅―

 

눈에 그 형상이 보일 정도로 명확한 십자 모양의 검기가 목검에서 쏘아진 순간, 유신명은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더욱 꽉 쥐어진 창대를 둥글게, 둥글게 회전시키며 여전히 그의 신체 일부를 영향권 안에 둔 십자검기에 맞서갔다.

 

쾅! 콰쾅! 쾅! 콰콰쾅―

 

남궁세가 가주에게만 전해지는 비전 무공인 제왕무적검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검공이라 하는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의 일초 십자광무(十字光懋)를 막아가는 이십팔섬추혼창의 회전력은 귀가 멍멍할 정도의 충격음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충분한 거리를 벌리지 못한 상태에서 그 여파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는 일. 유신명의 소매는 걸레처럼 찢겨져서 누가 보더라도 낭패를 당했다는 걸 알게 했다.

 

하지만 유신명은 애송이가 아니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수많은 싸움을 통해 지금껏 충분한 경험을 쌓은 노련한 고수였다.

 

피피핏! 피피피핏―

 

십자검기가 흩어지고 두 사람 사이에 잠시의 공백이 생겨난 순간, 유신명의 목창은 조금 전까지 방어의 의지로 만들어내던 회전력을 공격적 의지로 전환하여 남궁관보의 전신을 빼곡하게 찌르고 있었다.

 

화화만개(花花滿開).

 

창끝에서 피어나는 수십 개의 창날이 마치 만개한 꽃이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었다. 스치기만 해도 옷이 찢겨나가고, 살이 갈라져 핏물을 토해내게 만들 수 있는 무서운 꽃이었다.

 

그래서 남궁관보는 눈앞을 가득 채우는 꽃의 화려함에 넋을 잃지 않고, 목검을 빠르게 움직이며 꽃잎을 그리고 있는 창대를 잘라버리려 했다.

 

티티티팅! 티티티티티팅―

 

일순간에 수십 개로 늘어난 목검의 그림자.

 

현운비도(玄雲秘刀).

 

수십 개의 검영을 만들어내는 섬전십삼검뢰의 무섭도록 화려한 검식이 화화만개에 맞서 남궁관보의 전면을 뒤덮어갔다.

 

펑! 퍼펑! 펑! 퍼펑! 펑―

 

하나의 꽃이 꺾이면 하나의 꽃이 다시 생겨나고, 또 하나의 꽃이 꺾이면 다시 생겨난 꽃이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것 같군!”

 

“가히 막상막하야!”

 

“빙검과 신창의 실력은 소문 이상이었어!”

 

사람들은 두 사람의 대결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도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그저 전에 들었던 빙검과 신창의 대한 소문을 떠올리며 감탄할 뿐이었다.

 

―어때?

 

오칠은 문득 경모혁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비등한 실력입니다. 신창의 정교함을 빙검의 무거움이 막고, 빙검의 강력한 도기를 신창의 날카로움이 밀어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서로의 장점을 통해 상대의 장점을 제압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무승부가 되겠군.

 

경모혁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오칠이 무승부라 말하고는 있지만, 대답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묻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젊은 지존은 이상할 정도로 노련하고 심계가 깊은 인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대답한다면 그건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게 될 것입니다.

 

오칠은 웃었다.

 

―쉽게 말해.

 

―두 사람의 실력은 한 치의 격차도 없으니, 그러한 비등함을 무너트릴 계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언가 일반적인 격식을 깨트릴 수 있는 공격을 해야 합니다. 즉, 다치는 것을 두려워말고 억지로라도 상대의 틈새를 만들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상대를 패배시키기 위해 그 정도의 두려움쯤은 가볍게 내버릴 수 있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 말은, 누군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아무리 목검이나 목창으로 싸운다고 해도 고수에게는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아!

 

경모혁은 그제야 오칠이 말하는 의도를 깨달았다.

 

지금의 비무는 여흥이었다.

 

즉흥을 빙자하여 비무를 연 것은 그저 오늘의 개파식이 천목보의 계략이 아니라, 오칠이 무한 사파문들을 제압하여 새로이 정파문을 만든 것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믿게 하고, 보다 확실하게 각인시키자는 취지이니 어느 누가 크게 다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특히나 무림을 크게 나누고 있다는 백천맹과 흑천맹의 양대 고수들이 다치는 일이 있어서는 더욱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다가는 정사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무적 정의파는 그 대전의 도화선으로, 그리고 싸움의 중심이 되어 휘말리게 될 것이니까.

 

―적당한 때에 저들을 막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하지만 무승부로 할 수 있게 기회를 잘 포착해.

 

―예, 오칠님.

 

빙검과 신창, 그 어느 한쪽도 이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 또한 두 세력의 자존심을 저울질하게 되는 것이고, 무림인들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큰 싸움을 벌이는 족속들이니, 결코 그런 일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되었다.

 

‘지금 막아야겠군.’

 

경모혁은 남궁관보와 유신명의 싸움을 유심히 살피다가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지금껏 서로가 뿜어내는 경기가 폭파하며 그 여파로 옷깃이 찢어지고, 가는 핏줄기까지 생겨나는데도 한 치의 틈새조차 파고들지 못해 일진일퇴만을 거듭하던 두 사람이 뭔가 최후의 일격을,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이다.

 

 

 

 

 

제41장. 빙산의 일각을 보다

 

 

 

 

 

‘일일천패(一一千敗).’

 

남궁관보는 연속으로 창대를 튕겨내고 뒤로 물러나며 공력을 두 팔로 끌어 모았다.

 

목검에 내공을 가득 응축하여, 강기라고 부를 수도 있는 형성화된 검기를 뽑아내 펼치는, 섬전십삼검뢰 최고의 초식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분명 목검은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나갈 테지만, 상관없었다. 이 이상 아무런 진전도 없이 일진일퇴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그가 이기든, 지든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인 것이다.

 

‘창천비풍(蒼天秘風)뿐이다!’

 

유신명도 남궁관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팔로 공력을 집중시키고 목창의 끝은 남궁관보를 향한 한 점을 겨냥한 채, 그 고정된 겨냥점을 따라 창대를 손 안에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이십팔섬추혼창 최고의 초식인 창천비풍은 그 회전력을 통해 엄청난 폭발력을 뿜어내는 일격필살의 초식이기 때문이다.

 

‘지금!’

 

‘간다!’

 

공력의 집중이 정점에 이르고, 손의 감각이 최고조에 오른 순간, 두 사람은 일시에 무기를 정면으로 밀어냈다.

 

후우우우웅―

 

화아아아앙―

 

목창은 둘 사이의 공간을 꿰뚫듯이 맹렬히 회전하며 뻗어나가고, 목검은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응축된 공력을 파란 빛줄기처럼 뿜어냈다.

 

콰득. 콰드드득―

 

뿌득. 뿌드드득―

 

목창과 목검은 서로 마주치기도 전에 비틀린 신음부터 내질렀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공을 담아내는 것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나무 병기는 자신의 소임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넉 장의 간격은 그들에게 아주 잠깐에 불과했고, 그 잠깐의 순간이면 부서지기도 전에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

 

“……!”

 

하지만 순간, 두 개의 나무 병기는 목적한 곳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그들은 뭔가 그들 외에 다른 외적인 힘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순식간에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 그들을 산산이 부서트리고는 그들의 주인까지 밀려나게 만들었다.

 

“크윽!”

 

“크윽!”

 

가슴까지 기른 수염을 좌우로 흩날리는 유신명과 냉막하게 무표정하기만 하던 얼굴을 살짝 찡그린 남궁관보는, 동시에 철판을 쿵쿵 밟으면서 신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느새 철판을 벗어나 맨 땅에 서 있다는 걸 깨닫고 당황했다.

 

“오~!”

 

“아~!”

 

“세상에!”

 

사방에서 놀란 신음과 경악에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보는 사람들조차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인 것이다.

 

“무슨 짓이오!”

 

유신명은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충격의 여파 속에 아직도 가슴이 아릿하지만, 갑작스레 방해를 받아 이렇듯 밀려나기까지 했다는 것이 그를 분노하게 한 것이다.

 

“…….”

 

하지만 유신명과 달리 남궁관보는 말없이 그들을 방해한 경모혁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말보다는 행동이 우선이라는 듯 손잡이만 남겨진 목검을 바닥으로 내던지고 진열대 쪽으로 걸어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그의 걸음은 우뚝 멈춰졌다. 경모혁의 손에 그들처럼 목검이 들려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저걸로 우리 둘을 물러나게 했다고?’

 

남궁관보는 순간 깨닫게 된 그 사실에 몸을 돌려 경모혁을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그리고 유신명 역시도 그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경모혁을 바라보았다.

 

경모혁이 천목보의 보주이기는 했으나 그 무공 실력에 대해 알려진 것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과거부터 그렇게 알려져 있었듯 검룡천화장의 장주와 비견될 수준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 이상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이 적당하오.”

 

경모혁은 그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는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물론 유신명도, 남궁관보도 그 뜻을 알아들었다. 유흥에 불과한 비무에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듯 싸울 필요는 없고, 그래서 막았다는 뜻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에겐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느 정도 힘이 빠져 있었다고는 하지만, 가장 강력한 일초를 펼치는 중에 허망하게 막혀서 볼썽사납게 비무대(쇠판) 밖으로 밀려난 상황은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궁관보는, 그리고 유신명은 두 사람의 문제는 제쳐두고 경모혁에게 비무를 청하려고 했다. 이대로는 자존심상 그냥 물러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단상에 앉아 있던 오칠이 그들의 윗사람들에게 더 이상 소란이 생기지 않게 되길 소망한다며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인내와 양보의 미덕이 살아 있다는 걸 모두가 보게 된다면, 오늘의 기쁜 자리가 더욱 빛이 날 것이라 믿소.”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그 진정한 속뜻은 소란 떨지 말고 아랫것들 단속 좀 하지, 라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우리야 오 장문인의 말에 크게 불만이 없으나, 저쪽에선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소이다.”

 

공야정진은 얼굴에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제갈모학의 싸늘한 시선을 무시하고 오칠에게 말했다.

 

만약 자신이 무승부라고 인정하면, 제갈모학 역시도 승패를 따지지 말고 물러나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제갈모학 역시도 분하지만 자신이 이겼다든지, 다시 비무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주장을 할 수가 없기에 오칠의 말에 따를 것이라며 남궁관보를 들어오게 했다.

 

“가르침을 받아보고 싶소만.”

 

싸늘한 시선만을 던진 후 아무 말도 없이 들어가는 남궁관보와는 달리, 유신명은 공야정진의 눈짓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서 경모혁에게 언제고 비무하자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경모혁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사사로이 움직일 몸이 아니오.”

 

“그럼 오 장문인께 허락을 받으면 되겠소?”

 

경모혁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칠님께서 하라 하시면 나는 따를 것이오.”

 

“……!”

 

경모혁의 말에 놀란 것은 유신명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을 들은 모두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아니, 경악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수하로서가 아니라, 마치 주인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충복이나 할 만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이거 정말 혼란스럽군.’

 

공야정진은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진정 오칠이란 저자가 경모혁을 제압하고, 그 세력까지 굴복시켜 무적 정의파란 유치하기 그지없는 이름을 가진 문파의 기치 아래 다른 사파문들과 함께 묶어놓은 것이란 말인가?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처음의 등장이나 지금의 모습만 보자면 그것이 사실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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