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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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86화
파계 4권 - 11화
‘그렇다면!’
노백은 전신을 차분하게 휘돌던 내공의 움직임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단전에 압박을 가하고, 내공의 회전 속도에 집중하며 근육을 좀 더 원활하고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공력을 실어주었다.
샤샥. 샤샤샤샤샤샥―
둔탁한 방망이가 찔러가는 동작 속에서 생겨났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매섭고도 날카로운 소리가 주변을 짜릿하게 울려댔다.
이전에도 빠르게 움직이던 방망이였지만, 지금은 이전에 비할 수 없는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늘처럼 날카로운 경기를 일으키는 방망이는 수십 개로 늘어난 오칠의 신형을 하나하나 노리며 압박했다.
“대단한데!”
하지만 탄성만 질렀을 뿐, 오칠은 그 섬뜩한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수십으로 늘어난 그의 신형만큼이나 많아진 수십 개의 손으로 방망이를 마주쳐갔다.
떠덩. 떠떠떠떠떠떠떵―
나무 중에서도 가장 단단하다는 청피목(靑皮木:물푸레나무)으로 만들어진 방망이와 오칠의 맨손이 격돌한 순간 마치 묵직한 쇠몽둥이끼리 강하게 맞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은 뒤로 물러나 서로를 바라봤다.
아니, 오칠은 그저 바라보는 시선이었지만, 노백은 놀람과 당황이 뒤섞인 분노의 시선으로 오칠을 보고 있었다.
‘강하다!’
강했다.
황성의 근위병이었을 때도, 그 수장인 영군도위의 자리에 올랐을 때도, 그리고 이곳 성문교위로 좌천되었을 때도 노백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창법이 막힐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는 군부의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 군부 제일이라 칭송되는 창법을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유일한 후인으로서 그러한 자신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백은 우물 안의 개구리만으로 만족한 소인배가 아니었다. 군부의 장수였지만 그는 무인이었고, 자신을 단련하고 시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무림인들과도 실력을 겨루어보았다.
황제의 앞에서 싸웠고, 군부에 투신한 무림인들과도 싸웠고, 북경 근방에서 이름이 있는 무림인들을 몰래 찾아가 비무를 청하기도 했다. 노백이 싸웠던 이들은 다양한 무기와 다양한 방어 수법, 다양한 공격 수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백은 지금껏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낙화천공창법은 창으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예외 없이 상대를 허물어트려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자는 다르다.’
이곳 무한으로 좌천되어 오고 나서는 제대로 된 실력의 무인들과 손속을 겨뤄본 적이 없었지만, 노백은 단 한시도 무공 수련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그를 지배해온 자신감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자신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분명히 이 오칠이란 자는 노백이 만났던 그 어떤 무인보다 강한 것이다. 그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정은 했지만, 그러한 사실이 오히려 노백의 투지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더 이상 군부의 장수도 아니었고, 일개 포쾌의 신분이 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낙담 속에 자신의 임무만을 자각하며 삶을 이어가던 그에게 진한 활력이 새롭게 치솟아 올랐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의 손에는 창이 없다는 것이다. 진정 그의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손에 창을 쥐고 있어야 했다.
“이제야 드러내는군.”
오칠이 다시 웃었다.
하나 그건 비웃음도, 조롱기 어린 웃음도 아니었다. 뭔가 보았다는, 이제야 노백을 상대할 만해졌다는 만족스런 웃음이었다.
오칠은 본 것이다. 노백의 눈동자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싸우고 싶다는 열망을 말이다. 그리고 노백도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에게 무공만큼 확실한 표현 수단은 없었으니까.
“각오해라!”
노백은 이전에 비할 바 없는 단호하고 힘찬 음성으로 소리쳤다.
“각오하게 만들어봐.”
오칠은 히죽 웃으며 꽉 움켜진 주먹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우웅―
“……!”
막 자세를 잡고 있던 노백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어떤 무형의 힘을 느끼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펑!
노백의 신형이 크게 흔들리며 뒤로 몇 걸음이나 밀려났다.
감각에 의지한 방어였기 때문에 완벽히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형의 힘이 그의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뭐지?’
넉 장의 거리를 격하고 덮쳐온 이 막강한 권력에 노백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뭔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떠오르지 않는 이 권력의 정체를 알기 위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무공이냐!”
하지만 오칠은 고개를 저었다.
“비밀.”
노백은 순순히 자신의 무공을 알려주었지만, 오칠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펼친 무공은 백보신권.
굳이 자신이 펼친, 그리고 이제부터 펼칠 무공이 소림의 무공이라는 걸 설명까지 하면서까지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노백 역시 잠시 놀람과 궁금증이 일었던 것일 뿐, 꼭 알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상대의 무공이 무엇이든,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무공을 펼치고 싸우면 그뿐인 것이다.
“좋다!”
쿵.
노백은 무겁게 발을 내딛었다.
진각(震脚).
그 어떤 무공에서도 그렇듯, 찌르기 공격을 더욱 강력하게 펼칠 수 있도록 만드는 발걸음이며, 공격이 시작되는 가장 근원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기본에 충실했던 만큼 노백의 발창법은 준비 동작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공격 초식이었다.
‘더 빨라졌군.’
오칠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방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격을 위해서였다.
우웅―
빠르게 전진해 들어가던 노백은 오칠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주먹을 내뻗은 순간, 계속 전진하기보다 방망이를 더욱 힘껏 내밀어 빈 공간을 찔렀다.
펑―
백보신권의 보이지 않는 권력과 격돌한 방망이의 끝에서 공간이 진동했다.
하지만 벽에 막힌 것처럼 우뚝 멈췄던 노백은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쿵.
연이은 진각에 방망이는 다시 발창법의 수법으로 오칠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오칠은 물러났다. 하지만 역시나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격을 위한 후퇴였다.
펑―
또다시 터진 공간의 진동음.
노백은 이를 악물고 내심으로 좀 더 빨리, 라고 외치며 진각을 밟고 발창의 수법으로 방망이를 찔렀다. 그리고 오칠은 이에 맞서 백보신권을 연이어 펼치며 권력을 쏘아 보냈다.
펑― 펑― 펑― 펑―
미세한 전진과 후퇴의 공방이 격렬한 공간의 진동으로 물결쳤다.
그리고 좀 더, 좀 더, 라고 자신에게 외치며 스스로를 닦달하는 노백의 방망이가 드디어 오칠의 백보신권보다 빨리 공격의 흐름을 움켜잡았다.
“흡!”
오칠은 백보신권을 펼칠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고 양팔을 교차시키며 짧고 강하게 호흡을 정지했다.
뻑―!
교차시킨 오칠의 양팔에서 강렬한 충격음이 터져 나오고, 슬쩍 당겨졌던 방망이는 일순간 오칠의 복부를 노리고 뻗어나갔다.
치명적인 일격은 아니었다 해도 분명 양팔이 잠시간 마비될 정도의 강력한 충격이었고, 그래서 오칠이 팔을 움직여 복부를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노백의 손속에는 뿌듯한 자부심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만,
떵―
“큭!”
방망이의 단단한 울림 속에 고통과 당혹스러움을 참아내는 노백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손목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해소하려 애쓰면서 노백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오칠의 신형을 의문 섞인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어떻게 팔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 어떤 수법으로 그의 방망이를 막아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의문이 뒤섞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내심으로 떠올린 의문은 그 자신이 아니면 답해줄 수 없는 법.
그래서 입도 뻥긋하지 않고 일노박룡수(一怒博龍手)의 수법으로 꼿꼿이 세운 손날을 내리치는 오칠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노백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콰직―
공격 대상이 사라지면서 일노박룡수의 강대한 경기는 땅을 한 척이나 파고들고, 오칠의 신형은 가볍게 내딛은 땅을 밀어내며 순식간에 물러나는 노백의 코앞에 다가서 있었다.
“내가 이긴 거 같지?”
오칠의 음성은 노백의 양 어깨와 가슴을 걷어차는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와 거의 동시에 내뱉어졌고, 그래서 노백은 입도 뻥긋 못하고서 내부를 뒤흔드는 큰 충격을 느끼며 삼 장여를 날아가 땅을 나뒹굴어야 했다.
“이런, 너무 셌나?”
강하게 걷어차서 미안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고작 그 정도의 충격에 일어나지 못하면 넌 약골이고, 애송이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이었다.
“크으~”
노백은 일어났다.
약골이 아니라고, 자신은 애송이가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양팔을 늘어트린 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당신이 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내 탓은 아니잖아?”
오칠은 노백의 눈동자에서 사라지지 않은 투지를 보았고, 또한 창이 없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억울함도 읽어냈다.
“당신은 정말 소문대로 강한 사람이오.”
어깨와 가슴의 부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이었지만, 노백은 그 고통을 꾹 참아내고 입을 열었다.
“아니, 아마도 사람들은 당신이 진정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하오.”
노백은 오칠이 강한 자라는, 언뜻 들었었던 무한 제일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처럼 직접 손속을 겨루어보면 오칠이 소문 이상으로 엄청난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오. 당신은 강한 사람이지만 무인은 아니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오칠은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달고 물었다.
왠지 진짜로 궁금하다는 표정이 아니라, 노백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주는 듯한 표정이었고, 그래서 그 음성은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듯 무미건조했다.
“당신처럼 장난하듯 싸우는 사람은 처음 봤소.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 우습게 여겨지는 것이오? 아니면 당신에게 비견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여흥에 불과한 것이오? 난 지금 당신과 싸운 것이 부끄럽소. 무인도 아닌 사람에게 패배한 내가 너무나 부끄럽소.”
노백은 고통을 참고 말했었기에 잠시 길게 숨을 내쉬고, 찌푸린 눈으로 말없이 서 있는 오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신의 말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하라는 듯이 말이다.
“크크크!”
오칠은 거친 비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 커다랗게 웃었다.
“하하하하!”
“…….”
노백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저 상체를 흔들어대며 크게 웃는 오칠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당신, 정말 답답한 인간이군.”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난다는 듯 눈가를 손으로 비빈 오칠은 웃음의 잔재를 지우지 못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무엇이 답답하다는 것이오?”
“이봐, 내가 언제 당신에게 무인이고 싶다고 했나?”
“…….”
“아니면, 누가 날 무인이라고 하던가?”
“사람들은 당신을 무한 제일 고수라고 했소.”
소문에는 무한의 사파 제일의 고수가 오칠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했고, 무한 정파 제일의 고수라는 검룡천화장의 장주가 경 보주와 비슷한 실력이 아닐까 하고 추측되고 있으니, 오칠이 무한 제일 고수라고 평가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 하지만 무한 제일 고수가 무인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생겨난 거야?”
“……!”
노백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공을 익히고, 단련하고, 수련하는 자가 무인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리고 그렇게 몸에 익힌 무공으로 무한 제일 고수라고 칭해지는 이가 무인이 아니라면, 무한에서 또 누가 무인으로 불릴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무인이 아니라면,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한단 말이오?”
“난 나일 뿐이다. 오칠! 그것이 지금 내 이름이고, 나를 지칭하는 것이야. 무인? 하! 누가 날 무인이라고 부르라 했나! 난 나 자신을 위해 무공을 익혔고, 또 나 자신을 위해 싸웠다!”
오칠은 하늘을 향해 크게 손을 내저었다.
노백은 그 손짓이 그에게 쏟아지고 있다는 소문과 명성, 그 모든 것들을 날려버리는 거부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노백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