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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2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124화

파계 5권 - 24화

 

 

 

 

 

‘한 번만 보고 올까?’

 

대붕장천비의 경공으로 지붕을 박차며 날아오른 오칠은, 문득 목운교가 머물고 있는 곳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는 곧바로 그대로 방향을 틀어 또 다른 지붕을 박차고서, 경모혁이 전해준 정보를 떠올리며 목운교가 머물고 있는 숙소를 향해 움직였다.

 

‘많기도 하군.’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목운교가 있다는 곳에는 수백 채의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분명 저 많은 건물들 중에서 목운교의 숙소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칠에겐 아니었다.

 

그가 숙소의 위치에 대해 전해 받은 정보는 꽤나 세부적이었고, 각 건물마다엔 어느 문파의 누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명패가 달려 있었기에, 복잡한 방향 정보를 빠짐없이 기억하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이면서, 칠흑 같은 야밤에도 대낮처럼 볼 수 있는 야시 능력만 발휘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걸 가능케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저곳이군.’

 

오칠은 일각도 되지 않아 목운교의 숙소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산서금검문(山西金劒門) 목운교.

 

한 명만 기거하도록 지어진 듯한 작은 숙소의 문에 달린 명패의 내용이었다.

 

‘…….’

 

지붕 처마에 박쥐처럼 매달려 명패를 바라보는 오칠은 갑자기 마음이 우울해졌다.

 

‘왠지…….’

 

명패에는 외로움이 묻어 있는 듯했다.

 

한 명보다는 두 명, 혹은 세 명이 함께 기거하는 숙소가 주변에 더욱 많다는 것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냥 명패에서 그런 느낌이 전해져왔다. 어쩌면 목운교가 어떻게 산서금검문에 가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열혈군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을 오칠이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막연하게 목운교가 외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지?’

 

오칠은 문득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의아해했다.

 

벌써 해시(亥時:밤 9~11시)가 훌쩍 넘어 자정이 되어가고 있었으니 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칠은 마음만 먹으면 방 안의 아주 작은 숨결까지 감지할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의 고수였다. 그러니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간 거야? 혹시…….’

 

오칠은 산서금검문이 목운교를 열혈군에 보낸 이유 중에 하나를 떠올렸다.

 

열혈군에는 정파에서도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많으니, 절로 짝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유 말이다.

 

‘빌어먹을!’

 

오칠은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한창 피가 끓는 나이 때의 젊은 남녀가 어울리게 되면, 저도 모르게 호감이 생기고 애정이 피어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유대감의 끝에는… 성적인 교감이 이어지기 마련인 것이다.

 

아무리 여인이 순수하고 맑아서 혼전 순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고 해도, 남자는 끊임없이 본능을 갈구하는 짐승이었고, 남자의 집요하고 달콤한 유혹을 받아야 하는 여인은 결국 육체적 사랑까지 허락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게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지.’

 

 

 

 

 

어린 오칠에게 쾌락이란 것을 처음 알려주고 교육시켰던 마나님은 남녀의 성(性)을 그렇게 정의했었다.

 

그리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 오칠도 성(性)에 대해 마나님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 오칠은 자신이 그러한 일에 대해 너무 해박하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저 순수하게 상상할 줄 모르는 자신의 머릿속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제서 목운교가 바람이 쐬고 싶어 밤 산책을 나갔나 보다, 아름다운 별빛을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언덕을 찾아 나섰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괜히 왔네.’

 

어떠한 진실은 모르느니만 못하다고 했던가.

 

오칠은 씁쓸해진 마음을 무시하려 애쓰면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저 목운교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온 것뿐이잖아.’

 

오칠은 자신이 느끼는 이 기분이 참으로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했다.

 

목운교는 어렸을 때의 첫사랑일 뿐이었다. 세상의 쓴맛, 단맛 다 본 자신이 순수하게 첫사랑을 들먹이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목운교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에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치미는 것은 더욱 우스운 일인 것이다.

 

“…….”

 

오칠의 귀가 쫑긋했다.

 

아까부터 서북쪽 방향에서 날카로운 칼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신경이 쓰인 것이다. 어떤 놈이 하릴없이 달밤에 무공 수련으로 청승을 떠나 보다, 하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왠지 어떤 놈인가 확인해보고 싶었다.

 

사실 목운교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오칠은 지붕을 박차고 서북쪽으로 몸을 날렸다.

 

‘여자다.’

 

반경이 오십 장을 조금 넘을 듯한 연무장이었다.

 

양쪽으로 피워져 있는 두 개의 횃불과 슬쩍슬쩍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달빛에 의지한 연무장은 흐릿한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여인이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목운교!’

 

오칠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조금 전까지 목운교가 어떤 남자와 만나기 위해 숙소를 나간 것이라 생각하며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오칠은 연무장 한쪽에 자작나무들이 높이 자라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부드럽게 밤하늘을 날아 가장 무성한 자작나무 꼭대기에 사뿐히 내려선 오칠은 조용히 목운교를 바라보았다.

 

 

 

 

 

* * *

 

 

 

 

 

휘휙!

 

반원을 그리며 위로 휘둘러진 검은, 다시 반원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위에서 아래로, 좌우에 우로, 우에서 좌로 움직이는 검은 끊임없이 원형을 만들어내며 달빛과는 다른 광채를 뿌렸다. 미미하긴 하지만 그건 검기였고, 원과 원을 이어가면서 목운교의 검은 아무도 없는 연무장의 중심을 매섭게 휘저어갔다.

 

‘회풍무류검법(回風無流劍法).’

 

오칠은, 목운교가 질끈 동여맨 머리를 찰랑거리며 펼치고 있는 검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어린 목운교의 모습이 뚜렷이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그녀가 밤마다 나뭇가지를 들고 펼치는 회풍무류검법의 동작 또한 그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시 보는 회풍무류검법은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공부밖에 몰랐던 어린 소년의 눈과 검봉의 미세한 떨림까지 볼 수 있는 고수의 눈은 어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준 낮은 검법은 아니네.’

 

이를 악물고 온힘을 다하는 목운교의 얼굴과 그녀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리고 그 누구의 시선도 없기에 더욱 거침이 없는 몸짓에 쏠려 있던 오칠의 시선은 이제 그녀가 펼치고 있는 회풍무류검법으로 집중되었다.

 

검법이 특이하여 오칠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 아니라, 목운교가 그만큼 열정을 담아 펼치는 검법이 어떠한지를 파악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대단히 뛰어나진 않지만, 검법이 갖추어야 할 점은 다 갖춘 검법, 하지만 어느 한쪽의 특징을 크게 살리지 않았기에 장점도 단점도 보이지 않아 평범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검법, 전장을 누벼야 하는 무장 가문의 가전 무공이라 것이 약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강(强)이 부족한 검법.

 

그것이 오칠이 느낀 회풍무류검법이었다.

 

물론, 지금 본 것만으로 모든 걸 알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한 점이 없으리란 것은 확실했다.

 

이어 오칠은 목운교가 어느 정도로 이 검법을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급해.’

 

목운교는 너무 마음이 앞서고 있었다.

 

평범한 회풍무류검법에서 그래도 특징을 찾는다면, 원과 원을 이으며 원만하고 차분하게 상대의 공세를 막고 공격으로 이어간다, 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목운교는 그 원을 그리기 위해 너무 급하게 검을 움직였다. 흐릿한 검기를 이용해 그려나간 원형의 빛이 사라지기 전에 또 다른 원형의 빛을 그려내며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흐름을 쫓기보다 성급하게 앞서가고 있었던 것이다.

 

즉, 차분하게 움직여야 할 검로가 오히려 성급함으로 인해서 원형의 모양을 흐트러트린다고나 할까.

 

목운교는 그 이유가 자신의 검이 너무 느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아무리 해도 원이 제대로 완성되어지지 않을 테고, 분명 그녀는 지금껏 계속해서 실패감만 맛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챙그랑!

 

목운교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헉헉거리는 숨을 가다듬기도 전에 검을 바닥으로 내던지는 것만으로도 오칠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운교는 다시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회풍무류검법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열심이구나.’

 

오칠은, 과거 목운교가 나뭇가지를 들고 검법을 연습했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키도 많이 자라고, 얼굴도 바로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지만, 그런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검법에 대한 열정과 그녀의 노력하는 모습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런 목운교를 확인하고 나자 오칠은 즐거웠다. 자신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해왔던 일들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녀를 찾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휘이익― 휘이익―

 

목운교의 검은 원형을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 기세만큼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십여 년 동안을 끊임없이 수련해왔을 테니, 초식의 정교함은 둘째 치고 기세를 발출하는 감각만은 거의 완성된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다만, 공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기세는 높아도 흐릿한 검기를 발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후~”

 

초식을 마무리한 목운교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

 

순간, 오칠은 내심으로 당황했다.

 

목운교의 시선이 오칠을 향해 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칠은 곧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을 감추고 있는 자작나무 꼭대기 위로 모습을 드러낸 달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목운교는 숙소로 돌아가 씻을 생각도 않고 한참을 그렇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달, 그리고 그 주변으로 콩알만 하게 반짝이는 별들. 목운교는 그런 밤하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칠은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에 공력을 돋워 시력을 높였다. 그에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칠은 목운교의 눈동자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고, 그녀가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몽롱하게 잠겨들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에 비춰지는 밤하늘이 아닌, 그녀의 기억 속에 그려져 있는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추억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뭘 추억하는 거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칠은 오랜 세월 목운교를 볼 수 없었던 만큼,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알게 되겠지.’

 

한 달이란 시간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오칠은 목운교에 대해 많이 알고, 또 많은 것을 느껴볼 생각이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말이다.

 

스릉, 탁.

 

밤하늘로부터 시선을 거둔 목운교는 검을 검집에 넣은 뒤, 연무장을 가로질러 그녀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오칠은 그녀를 쫓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과, 또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을 기약했다. 목운교를 만날 내일을 말이다.

 

목운교가 보았을 밤하늘을 힐끔 쳐다본 오칠은, 그대로 자작나무를 박차고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소리 없이 몸을 날렸다.

 

 

 

 

 

제54장. 목운교

 

 

 

 

 

눈이 떠졌다.

 

“…….”

 

목운교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뺨으로 전해지는 새벽의 서늘한 기운을 그대로 놔두며, 아직 맑아지지 않은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시(子時:밤 11~1시) 말에 수련을 마치고 잠이 들어, 늘 그렇듯 진시(辰時: 오전 7~9시) 초에 일어나는 그녀는 그렇게 수면으로 늘어져버린 마음을 다시금 본래의 상태로 되돌렸다.

 

“…….”

 

상체를 일으킨 목운교는 잠시 그대로 침상에 앉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처럼 잠에서 깬 인군의 동료들이 새벽 수련을 위해 연무장으로, 혹은 개인 연공실로 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본격적인 인군의 단체 수련이 있기 전까지 그들 개개인의 수련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목운교는 그들과 동참하지 않았다. 그녀의 개인 수련 시간은 밤이었다. 사람이 많으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집중하기가 힘이 든다는 점 때문에 밤을 선호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 연공실에서 해도 되지만, 목운교는 갑갑하게 꽉 막힌 곳에서 수련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목운교는 새벽에 심법 수련을 했다. 그녀가 익힌 내공심법이 음기에 근원을 둔 것이라, 음기가 강한 새벽에 수련하는 것이 더욱 낫기 때문이었다.

 

잠옷을 가벼운 무복으로 갈아입고서 세면으로 더욱 정신을 맑게 한 목운교는, 가부좌를 틀고 앉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의자를 방 중심에 놓아두고 그 위에 앉았다.

 

“후!”

 

우선 힘차고 짧은 호홉을 통해 밤 동안 쌓인 탁기를 뱉어낸 후,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하여 심법의 구결을 떠올렸다.

 

곧 단전에서 내공이 빠져 나와 온몸의 기혈을 각성시키고,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호흡은 점점 길고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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