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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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23화
파계 5권 - 23화
“허허허. 빈도는 당최 오 장문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모르겠구려.”
오평 진인은 오칠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기를 원한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칠은 당신들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차분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난 무공이 아니라, 무공을 배우는 열정을 보고 싶소. 자세히 언급하지는 못하지만, 홀로 무공을 수련하다시피 한 내게 많은 사람이 같이 모여 수련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가 힘든 모습이오. 그래서 열혈군의 인군을 견학하겠다는 말이오. 또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백천맹과 정파의 미래를 가늠해보고 싶소.”
오칠이 매우 젊은 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하는 말은 매우 우스울 수 있는 내용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처럼 들린다고나 할까.
하지만 오칠은 한 문파의 장문인이었다. 그리고 그 문파는 무한을 대표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만큼 오칠의 존재는 나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보다 한참이나 어린 오칠이 공대를 하지 않음에도 총수와 장로들이 전혀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오 장문인의 뜻은 확실히 알아듣겠소. 하나,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인 것 같소. 하니, 다른 장로님들도 함께 이 일에 대해 논의하고 나서 가부를 알려드리겠소이다.”
총수는 오늘 저녁 식사를 초대한다면서 그때 다른 장로들을 소개하고, 오칠의 요청에 대한 답변을 하겠다고 했다.
“알겠소.”
오칠은, 그럼 저녁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게 되길 고대하고 있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이야 뻔하지.’
오칠은 같이 일어나 대총부 건물 밖까지 마중을 나온 총사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며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총사와 장로들은 오칠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었다. 다른 문제들은 둘째 치고, 무적 정의파를 백천맹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목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오칠이 무적 정의파를 만든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점 때문이 아니던가.
그렇게 오칠은 처음 그를 안내했던 사내의 뒤를 따라 다시 그의 숙소로 향하면서 목운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적어도 한 달 동안은 그녀와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잔뜩 들떠갔다.
* * *
“장로님들은 가셨습니까?”
오칠을 마중하고 총사가 응접실로 돌아와 보니, 안에는 공야 각주 혼자 남아 있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서둘러 돌아가더군요. 아마도 오 장문인의 일로 십장회를 소집하려는 것이겠지요.”
공야 각주는 그런 소소한 일에까지 한 달에 한 번밖에 열지 않는 백천맹 최고 의결회의를 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총사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에 대해서 장로들에게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자신은 자신의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각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참으로 모호한 인물이더군요.”
총사는 공야 각주가 무적 정의파 개파식에 다녀와서 했던 말을 거론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저는 왠지 그가 위험한 자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각주님은 정파인인지, 사파인인지 분명하게 구분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지만, 전 그가 사파 쪽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느껴졌습니까?”
“그는 마치 당당한 정파의 수장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너무 자유스러웠습니다. 마치 사파인처럼 생각과 말에 거침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다만, 그는 말을 좀 더 순화시켰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공야 각주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그는 그렇더군요. 정확히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이전에 내가 보았을 때와는 뭔가 달라진 듯합니다. 이전에는 그의 눈과 표정에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는데, 방금 전의 그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 그 속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는 분명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혹 흑천맹과 접촉한 것이 아닐까요?”
“글쎄요.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그런 변화가 생겼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전 그의 개인적인 성정의 변화라고 봅니다. 뭔가가, 아니면 누군가가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점으로만 본다면 그는 여전히 모호한 인물이군요.”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단 그를 지켜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한 달 동안 열혈군에 있게 하면서 관찰하다 보면, 그의 감추어진 과거를 밝혀낼 수 있게 될 것으로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맹으로 들어섰을 때부터 천이각의 이목을 그에게 집중시키도록 했습니다.”
“모두 말입니까?”
총사는 우려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천이각은 백천맹의 모든 정보를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만 이목이 쏠려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아닙니다. 지금 맹에 있는 아이들만 동원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천이각의 이 할은 오 장문인에게 붙어 있게 되는 것이군요.”
“그렇지요. 하지만 한시적일 뿐입니다. 사안에 따라 유동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를 해두었습니다.”
공야 각주는 크게 염려할 일은 없을 것이라 했고, 총사는 믿고 있겠다는 말과 함께 최근 흑천맹의 동향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오칠에 대한 일은 저 뒤쪽으로 제쳐두고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 백천맹의 오랜 경쟁자에 대해서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53장. 관조(觀照)
그들은 두 시간 내내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더군요.”
총사를 비롯한 장로들과의 거창한 저녁 식사가 자정이 다 되도록 이어진 지금에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노백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네가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서 정해진 운명이야. 그들은 그래도 예의가 있어서 가면을 벗어보라는 말은 안 하잖아. 뭐, 속으로야 억지로라도 벗겨서 숨겨진 정체를 알고 싶어 했겠지만 말이야.”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노백은 불쾌한 기분을 토로하는데, 오칠은 오는 내내 싱글거리며 웃고 있어서 하는 말이었다.
“그들이 내 요구를 받아들였으니까 당연히 기분이 좋지.”
“예상한 일이라고 했잖습니까.”
“예상했어도 기분 좋은 것은 기분 좋은 거야.”
“그 목 소저가 어떤 분인지 진짜 궁금하군요. 그렇게 대단한 여인입니까?”
오칠은 대꾸하지 않았다.
목운교에 대해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노백이 짐작하는 그런 여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칠과 노백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칠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노백에게 조금 뒤에 등불을 끄라고 했다.
“왜 그러십니까?”
“잠시 밖에 나갔다 올 텐데, 날 감시하는 놈들이 그걸 눈치 채게 해서는 곤란하거든.”
노백은 깜짝 놀랐다.
“누가 우릴 감시하고 있습니까?”
“그래. 우리가 백천맹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쭉 감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아마 천이각에 소속된 자들이겠지.”
“왜 우릴 감시합니까?”
“내가 신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예?”
“나의 과거는 철저한 비밀에 덥혀 있지. 게다가 정파인이라고 내세우고는 있지만, 백천맹에는 가입도 안 한 상태야. 그러니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감시를 붙여둔 거야. 내가 견학하겠다는 걸 받아들인 것도 날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속셈 중 하나이니까.”
“그러면 지금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겁니까?”
“고함을 지르지만 않으면 된다. 그들은 내 무공이 높다는 걸 알고 있고, 너도 정문에서 애송이를 상대로 실력을 입증했으니 함부로 접근할 생각은 못할 거야. 그들이 우리의 이목을 개의치 않을 정도의 은신술을 익혔다면 모르지만 말이지.”
하지만 살수들을 공적으로 삼는 현 무림에서 변변한 살수비급 하나 전해지지 않은 상태로, 제대로 된 은신술을 익힌 사람이 누가 있을까.
천이각의 무사들도 본신의 무공을 이용한 기술적인 은신을 펼치고 있을 뿐이지, 고수의 이목을 완벽하게 속였던 이백여 년 전 전성기를 누리던 살수들에게는 미칠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들은 은형대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러한 은형대조차 오칠의 이목을 속일 수가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현재 무림에서 오칠을 속이고 다섯 장 안으로 몰래 다가올 수 있는 자는 전무하다고 말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딜 나가시려는 겁니까?”
“잠깐 누굴 만날 일이 있어. 마음 같아서는 이리로 오라고 하고 싶지만, 주위에 깔린 눈들이 많으니 내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여하튼 괜한 의심 사지 말고, 알아서 불 꺼라.”
“그런데 불을 끈 뒤에 나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노백은 의아하여 물었다.
밖에서 누가 빤히 보고 있다면 불이 밝혀져 있는 상태로 문을 열고 나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등불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만으로도 감시자들은 오칠이 방에 있는지, 없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 방법이 있지.”
오칠은 등불이 비추는 곳을 지나 고의로 음영을 크게 만들면서 침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침상에 누워버렸다.
“이렇게 하면 놈들이 내가 자겠거니 생각하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그리고 이 상태로 내가 밖으로 빠져나가면 되지 않겠냐?”
노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어떻게 밖으로 나가느냐가 문제였다. 문도 열지 않고,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게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백은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 나갈 생각이……!”
순간, 노백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갑자기 오칠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아주 잠깐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침상을 바라보는 그 순간의 틈 사이에 오칠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방 안 어디에서도 오칠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오칠은 어떻게 사라진 걸까?
노백은 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바로 코앞에서 누군가의 종적을 놓쳤다는 것부터가 무인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오칠은 늘 그를 당혹케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인 것을
“참 대단한 사람이야.”
노백은 그렇게 말하는 것밖에는 달리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곧장 오칠이 지시했던 대로 등불을 끌 뿐이었다.
“후~”
자신의 침상에 앉아 가면을 벗고 가부좌를 튼 노백은 긴 숨을 내뱉으며 천원무극단공의 심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의형에게 짐이 되는 아우는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그가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우선적인 목표였고, 또 그렇게 노력해가고 있는 것이다.
* * *
‘이놈들이 어디 어디에 숨어 있는지 파악해볼까.’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는 귀영백변신법(鬼影百變身法)으로 방에서 빠져 나온 오칠은 지붕 위에 납작하게 엎드려, 자신을 감시하는 천이각의 무사들이 은신해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오 장여 밖에서 몸을 숨긴 채 감시하고 있는 일곱 명의 위치를 찾아낸 뒤, 귀영백변신법을 펼치며 그들 사이를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감시망을 벗어난 오칠은 한 줌의 진기만으로 십 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대붕장천비(大鵬長天飛)를 펼치며 나는 듯 지붕을 뛰어넘어 다녔다.
오칠이 지나는 방향 곳곳마다 횃불을 밝히고 있는 경비무사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오칠이 그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설사 밤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자가 있다 해도 오칠의 모습은 그저 하나의 야조(夜鳥)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휘리릭.
오칠이 주변에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내려선 곳은 정문의 오른쪽 높다란 담장이었다.
―나와라.
오칠은 고의로 기세를 흘려, 자신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누군가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순간, 담벼락의 어둠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쑥 빠져나와 오칠의 앞에 부복했다.
―오칠님을 뵙습니다.
그림자는 어제저녁 오칠이 남긴 표식을 통해 명령을 받은 뒤,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있던 은형대의 제 삼 조장이었다.
삼 조장은 산하 조원 열 명과 함께 은시에 자리를 잡고 있는 천목보의 세력(천목보 소유의 상점)에 상주하면서, 오칠과 경모혁 사이를 잇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좌사에게 내 말을 최대한 빨리 전해라.
오칠은 열혈군의 몇몇 인물들이 은형대가 괴멸시킨 현묘채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은형대나 천목보에 대한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도록 즉각 조치를 취하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그에 알겠다고 대답한 삼 조장은, 오칠이 또 다른 지시를 내릴 것인가, 하고 기다렸다. 오칠은 그런 삼 조장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했다.
‘쓸데없는 짓이야.’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다르게 오칠은 삼 조장에게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내가 있었던 어촌 마을에 도움을 주라고 해. 자연스럽게 말이야.
그곳에 아직까지 소림제일고수 광죽 노승이 있을지도 모르니 더욱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이라고 전하게 했다.
―가봐.
―존명.
삼 조장은 나타날 때와 같이 담벼락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오칠은 순찰을 도는 경비무사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귀영백변신법으로 기척을 감추며 다시 그의 숙소로 몸을 날렸다.